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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어떤 주제로든 어떤 식으로든 '역사'라는 단어를 떠올릴 때는 항상 제일 먼저 카(E. H. Carr)의 "역사란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말이 떠오른다.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 이것은 역사를 가장 정확하게 바라본 카의 관점이면서 또한 역사라는 것과 현재와의 관계성을 끊을래야 끊을 수 없다는 사실의 반증이다.

또 크로체는 "모든 역사는 '현대사'이다"라고 선언했다. 역사가는 과거의 사람이 아닌 현재의 사람이다. 또 역사가의 손에 의해서 쓰여진 '역사'를 보는 사람들도 또한 현재의 사람들이다. 이를 통해 역사란 과거의 유물이 아닌 현재 속에 들어와 지금 우리와 함께 호흡하며 생활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한미FTA는 올해 가장 뜨거운 이슈였다. 전국에서는 한미FTA 반대 시위가 끊이지 않았으며 유력한 정치인들 또한 한미FTA에 대한 찬반 의견을 말하면서 그 관심을 드러냈다. 하지만 한미FTA를 바라보는 대다수의 사람은 겉으로 드러난 장단점만을 따지며 그 속에 내재된 본질에 다가서지 못하고 있다. 이에 과거 가장 긴 기간 그 세력을 존속시켜 왔으며 다양한 민족,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며 유지되어 온 세계국가 로마의 역사가 '신자유주의'의 전도사인 한미FTA와 더 나아가 EU 등을 통한 세계화 문제, 그리고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어떤 대화를 이어나갈지 들어보기로 하자.

로마 시대의 경제활성화 vs 한미FTA를 통한 경제활성화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를 보면 가장 많이 나오는 단어 중 하나가 '팍스'이다. '팍스 로마나', 즉 로마에 의한 평화는 대외적인 야만족의 침략에 대한 안전뿐만 아니라 대내적인 치안 유지까지 포함되는 개념으로서 로마의 황제 또는 공화정 시대의 집정관, 원로원들이 가장 중시한 것이다. 로마가 그렇게 오랫동안 존속해 왔고 또한 안정적으로 발전해 올 수 있었던 이면에는 '팍스 로마나'가 유지되고 그로 인해 로마 제국이라는 광역 경제권이 기능을 발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생활이 안정되면 민심도 안정된다. 민심이 안정된다는 것은 군사력을 이용한 방위가 기능을 발휘하는 것과 아울러 안전보장 체제가 가동하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이것은 로마의 전통인 종합안전보장의 철학이기도 했다.

로마에서의 '팍스'는 곧 경제활성화였다. 하지만 한미FTA를 통해 기대되는 경제활성화는 관세철폐를 통한 수출 증가와 외국인 투자자의 직접투자 유치, 그로 인한 일자리 창출이다. 또 일자리가 많아지면 양극화가 해소되면서 균형적인 발전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논리다.

하지만 FTA로 인한 외국인 직접투자는 일자리가 아니라 투기를 만든다. 지금까지 외국인 직접투자의 투자형태를 보면 일자리 창출이 거의 없는 인수합병을 위한 투자가 2000년에 14.1%에서 2005년에는 45.6%로 3배가량 증대했다. 한미FTA가 체결된다면 외환은행을 통해 4조5천억 원을 남긴 론 스타나 진로를 통해 3조원을 남긴 골드만삭스 같은 투기자본이 더 기승을 부릴 것이다.

또한 한미FTA 체결은 대내적으로 국내 산업의 구조조정을 의미한다. 이는 장기적으로 대다수의 실업자를 양산할 것이며, 사회 계층의 양극화는 더욱더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우리 시대의 '팍스', 그것은 전쟁에 의한 보호나 치안뿐 아니라 외국자본, 단순히 이익만을 생각하는 외국자본의 투기로부터의 보호까지 그 외연을 확장해야 한다.

한미FTA는 경제적 침략이다. 심하게 말하면 그것은 자본을 통해 하는 전쟁이다. 로마 시대의 야만족이 로마 영토 내로 침략해 재산을 빼앗고 농지를 파괴하고 전리품을 가득 싣고 자기 나라로 돌아가는 것과 다르지 않다. '팍스 로마나'는 생명의 위협과 재산의 도난으로부터 시민들을 지켜줌으로써 민심의 안정과 경제활성화를 이루었다. 하지만 로마의 기간산업인 농업을 융성하기 위해 그라쿠스 형제와 카이사르가 추진했던 정책들로 미루어 볼 때 그 당시에 한미FTA와 같은 경제적 침략이 있었다면 로마의 파트레스(아버지)들인 황제와 원로원은 그것을 좌시하고 있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한미FTA와 EU는 세계화로 가는 지름길?

로마 제국의 피지배자인 그리스인이면서 <영웅전>의 저자로 유명한 플루타르코스는 로마인의 패자 동화 정책이야말로 로마가 크게 성장한 요인들 가운데 하나라고 단언했다. 대표적인 예로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8년에 걸쳐 갈리아 전역을 정복했는데, 어제까지만 해도 적장이었던 사람이 로마군에 투항하면 그의 가족에게는 로마 시민권을 주고, 율리우스라는 자기 가문 이름까지 주고, 유력한 부족장에게는 로마 원로원 의석까지 주었다.

또 본국과 식민지가 지배하는 쪽과 지배당하는 쪽으로 엄격하게 나뉘는 후세의 제국들과는 달리, 본국과 속주 사람들이 같은 공동운명체에 속한다고 생각한 로마인의 제국관은 그들이 제국을 '파밀리아(familĭa)'라고 부른 데에 잘 나타나 있다. 로마인은 공동운명체를 하나의 대가족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로마인 이야기> 15권 336쪽). 이것이 지성에서는 그리스인보다, 체력에서는 게르만 민족보다, 경제력에서는 카르타고인보다도 뒤떨어진 로마인이 유럽 전체를 지배하고 팍스 로마나를 누릴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이다.

요즘의 중심담론 중 하나가 바로 세계화 담론이다. 하지만 세계화라는 것이 과연 위와 같은 로마의 동화라는 말과 같은 것일까라고 생각하면 대답은 단호히 노(NO)다. 마르코 폴로의 시대까지만 해도 유럽인들이 중국에 대해 남긴 기록을 보면, 문명 간의 분명한 '차이(difference)'를 자각하고 그에 대해 흥미롭게 기록하기는 하지만, 적어도 '차별(discrimination)'이나 서양의 우월감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그런데 18세기 이후에 유럽인들이 동양을 기술한 것을 보면, 차이가 어느새 차별로 전화되어 있는 문맥들을 발견하게 된다. 이처럼 근대를 거치면서 로마 시대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경계짓기와 타자화, 그리고 그 결과로 파생된 배타적 정체성을 생산해 냈다. 로마 시대에는 그들이 같은 파밀리아(대가족)에 속한다고 보았고 그 증거로 카이사르는 아직은 야만족에 지나지 않았던 갈리아인들에게 자기 '가문' 이름까지 나눠주었다. 이처럼 이때에는 우리가 지금 흔히 생각하는 가족, 민족, 국민이라는 경계가 없었다. 그들은 자신이 로마인이라는 자각이 있고 또한 로마를 위해 일할 수 있다면 모두가 하나의 가족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세계화는 이처럼 민족, 국민이라는 틀을 해체하고 차이를 차별이 아닌 단지 차이로만 바라보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가. '신자유주의'의 대표적 사례인 유럽연합(EU)을 보자. 유럽연합은 그 연합에 속한 개별 국민국가의 경계를 느슨하게 만들면서 동시에 국가라는 틀을 유럽이라는 외연이 확대된 형태에 적용함으로써 사실은 더 규모가 크고 경계가 강고한 국민국가의 형태를 만들었다. 이로써 그들은 미국 또는 동양과의 배타적 정체성을 더욱 공고히 다졌을 뿐이다.

이를 통해 볼 때 '신자유주의'라는 것은 '세계화', '지구화'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지만 한편으로는 국민국가의 틀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이중성을 보여줌으로써 로마인이 거쳐 온 동화와는 다른, 오히려 제국 후기의 오도아케르나 테오도리크와 로마인들의 '공생'의 관계와 비슷하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해 준다. 유럽연합은 단지 미국과 동양이라는 타자에 대항하기 위해 자신들의 힘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간 것으로 로마 시대의 아버지들인 원로원이 '호모 노부스(신인)'들을 계속 받아들이면서 경계가 형성될 여력을 주지 않았던 것과는 반대로 그들만의 '공생'을 통해 경계를 강화해 나갈 뿐이다.

똘레랑스의 부재

한국을 대표하는 단어를 꼽으라면 모 CF에도 나왔듯 '정(情)'이라고 할 수 있는 반면, 프랑스는 '똘레랑스'라고 할 수 있다. 프랑스말 사전이 밝힌 똘레랑스의 정의를 보면 '다른 사람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방식의 자유 및 다른 사람의 정치적·종교적 의견의 자유에 대한 존중'을 뜻한다. 이는 <로마인 이야기> 전반에 걸쳐 로마인들이 다른 민족, 다른 종교에 보여줘 왔던 로마인의 보편성과 상당히 흡사하다. 카이사르 이후 로마화의 우등생이라고 불린 갈리아의 나라 프랑스에는 로마인의 정신이 아직도 상당히 많이 반영되고 있다.

로마인이 그토록 오랜 기간 번영을 유지한 원인을 꼽으라면, 감성적으로는 같은 파밀리아(대가족)의 일원이라는 동화정책, 그리고 이성적으로는 다른 사람의 자유를 인정해 주는 똘레랑스(물론 그 시대에는 없던 단어지만), 거기에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라는 말을 만들었던 가도와 항만 같은 인프라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이 세 가지의 공통점을 들라고 하면 중심과 주변의 자유로운 소통이다. 중심과 주변이라는 말은 단순히 지역적인 의미만이 아니라 정치적인 의미, 경제적인 의미까지 모두 내포하고 있다. 중심은 항상 주변의 목소리를 귀 기울일 필요가 있으며, 중심의 고통은 주변만이 알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이러한 중심과 주변의 소통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중심(미국, 서양, 강대국, 백인)들은 주변(동양, 약소국, 유색인종)들과 경계 짓기를 강화하며 그 경계를 허물 생각은 하지 않는다. 제국 후기의 문제로 시오노 나나미가 가장 강하게 제시하고 있는 것은 이러한 소통의 부재이다. 또한 그것은 셋 중 다른 어느 것보다도 똘레랑스의 부재를 뜻한다.

실제 사회 생활에서 똘레랑스는 소수에 대한 다수의, 소수민족에 대한 대민족의, 소수 외국인에 대한 다수 내국인의, 약한 자에 대한 강자의, 가난한 자에 대한 가진 자의 횡포를 막으려는 이성의 소리로 나타난다. 그리고 권력의 횡포로부터 개인을 보호하려는 의지로 나타난다. 하지만 '신자유주의'의 물결과 그로 인한 세계화는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지, 누구에 의해 시작된 것인지 의문을 갖는다면 똘레랑스의 부재를 절실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미국과 서구 사회, 즉 오리엔탈리즘을 생산해내고 자신들이 타자화했던 대상들에게조차 그러한 오리엔탈리즘을 내재화시켜 그것을 전략적으로 은폐하는 것을 볼 때, 또한 이번에는 자신들이 진정으로 원하는지도 모르고 세계화의 물결 속에 자신의 몸을 맡기고 흘러가는 소수, 약자, 약소국들을 볼 때 똘레랑스의 부재가 아쉬울 뿐이다. 또 그러한 똘레랑스의 정신이 살아 있었던 로마 시대가 그립다. '신자유주의'의 주요한 도구인 FTA와 세계화 속에 언젠가 똘레랑스의 정신이 깃들 수 있기를 바라면서, 그리고 다시금 모든 인종, 모든 민족, 모든 종교들이 서로를 존중하고 경계를 짓지 않는 세상이 오기를 바라면서 이 글을 마무리한다.

태그:#로마인 이야기, #한미FTA, #세계화, #신자유주의, #똘레랑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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