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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에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춘천 가는 기차에 대한 나의 향수어린 기억들은. 춘천 가는 기차는 노래에도 여러 번 사용될 만큼 누구에게나 서정적인 경험으로 남겨져있는 듯 보인다.

그 날은 유난히도 기차가 타고 싶었다. 중간고사를 막 끝내고 아직은 오전이었다. 이른시간은 아니었지만 왠지모르게 기차가 타고싶었다. 막 시험을 마친 고등학생이라는 신분에 기차여행으로 낭만을 더하기엔 너무 흐린 날씨였지만, 내 발걸음은 꾸준히 청량리역을 향하고 있었다.

교복과 책가방, 그리고 손에 쥐어진 약간의 돈. 충분했다. 청량리역은 시끌벅적했다. 대학생들과 박스에 들어 있는 소주병들이 MT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했다.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고등학교 초부터 친하게 지내던 친구와 둘이 대학생들을 바라보며 더욱 설레는 마음으로 기차표를 끊었다.

왜 하필 춘천행 열차였을까? 아마도 답은 가장 가까운 일탈이 가능한 곳이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가깝지만 새로운 곳, 기차에 몸을 싣고 가면 닿을 수 있는 거리에 있던 곳이기 때문에 그랬던 것 같다.

대학생들의 MT시즌이었기에 우리에게 주어진 건 입석 2장이었다. 역 앞 햄버거가게에서 햄버거세트를 주문했다. 시간도 촉박했고 우린 기차 입구계단에 자리를 잡았다. 덜컹하고 기차가 출발하는 순간, 왠지 모를 감동에 마음이 설렜다.

부모님의 허락 없이 여행을 하게 된 우리는 일탈이라는 단어를 조금이나마 느껴보고 싶었던 것 같다. 하늘은 여전히 회색이었다. 서로의 귀엔 이어폰을 꽂고 함께 라디오를 들으며 햄버거를 먹었다. 덜컹거리는 기차칸에서 나란히 밖을 바라보며 '윤종신의 2시의 데이트'를 듣는 두 고등학생.

시험기간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에겐 어쩌면 비행청소년이라는 느낌을 심어줬을 수도 있는 광경이다. 기차가 한번씩 간이역에 설 때마다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금곡, 평내... 이름들이 점점 낯설어 질수록 여행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 더 와 닿는 듯했다.

우리는 강촌에서 내렸다. 춘천까지 가는 기차였지만, 강촌에서 자전거를 타고 싶다는 낭만이 또 우리 마음을 흔들어놨던 것이다. 강촌에 내렸을 때, 하늘은 너무나 높고 푸르렀다. 그 사이 내린 비가 하늘은 맑게 씻어놓고 간 것이다. 녹음이 짙은 산과 맑은 강물. 우리는 돌밭길을 따라 걸었다.

그 사이 종착역으로 향하는 기차는 그림에 더욱 깊은 인상을 남기며 산속으로 사라졌다. 자전거를 타고 달린 강촌의 거리는 너무나 아름다웠다. 빗물을 머금은 나뭇잎에 햇살이 비치면 마치 크리스마스트리를 보는 듯 반짝거렸고, 대학생들의 끊임없는 행렬은 에너지를 공급하는 것 같았다.

반나절 동안 자전거를 타고 닭갈비로 마무리를 한 후 해가 뉘엿뉘엿 질 무렵 기차역으로 향했다. 출발할 때와 달리 온 몸이 피곤했던 터라 조금 더 기다려서 앉아갈 수 있는 티켓을 끊었다. 기다리는 동안 본 밤의 강촌역은 지금도 너무나 그립다. 불빛하나 없는 강을 따라 다리가 있고, 그 위에 가로등이 역까지 비춰주고 있었다.

역에도 주황색 불빛이 켜지고 검은 물 위엔 한 점 한 점 주황색별이 떴다. 어둠만큼이나 조용했던 기차역에 나란히 앉았다. 시간이 되기 전에 기차가 종종 지나갔다. 어두운 밤을 가르던 기차들은 하나같이 환한 빛을 싣고 다시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3년이 지난 후, 춘천 가는 기차에 다시 한 번 몸을 실었다. 이번에는 그 친구가 아닌 다른 두 친구와 함께 춘천을 목표로 정했다. 가는 길에 계란도 사먹고, 앉아서 편안하게 춘천까지 가면서 나는 3년 전의 기억을 되살렸다.

나는 대학생이 되었고 함께했던 그 친구는 내 곁에 없다. 그 때만해도 늘 함께 추억을 만들 것만 같았던 친구였지만 살다보니 점점 연락도 뜸해진다. 강촌역에서 다시 한 번 사람들이 쏟아져 내린다. 그 때처럼 잔뜩 음식과 술을 챙긴 모습으로.

덧붙이는 글 | <철도와 함께 떠나는 여행> 응모글


태그:#춘천, #기차, #고등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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