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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지하 <꽃은 시작에 불과하다>, 한지에 먹, 30×60cm
ⓒ 김지하

5월 16일부터 25일까지 '생명평화재단 기금 마련을 위한 김지하 묵란전'이 인사동에 있는 갤러리 올과 원주 가톨릭센터에서 열립니다. 시인의 스승인 무위당 선생 13주기 추모행사의 하나인 이번 전시회에는 40여점의 난 그림이 출품되고, 수익금은 선생이 후학들에게 남겨주신 생명평화사상을 계승발전시키는 일에 사용됩니다.

김지하 시인의 난과 무위당의 난은 비슷한것 같으면서 매우 다릅니다. 무위당의 난은 그가 사상가이기 때문에 철학적이고, 김 시인의 난에는 시적 흥취가 풍기는 간결함과 함축미가 있습니다.

그래서 시인의 난은 쉬운 것 같으면서 어렵고, 어려운 것 같으면서 쉽습니다. 물론 어느 감정을 느끼든 그것은 보는 사람의 몫입니다. 그러나 시인으로부터 직접 이야기를 들으면 보다 정확히 그의 난을 이해할 수 있고, 요즈음 그의 생각도 들을 수 있을 것 같아 인터뷰를 했습니다.

시인을 만나 것은 5월 14일 오후 창덕궁 근처의 어느 찻집에서였고, 거의 2시간에 걸쳐 우문과 현답이 오갔습니다. 시인은 난 그림은 설명으로 알 수 있는 것이 아닌데, 그걸 물어보면 어떻게 하냐고 장난기 가득한 웃음을 지으셨습니다.

"보는 사람이 난초의 획이나 기운을 느껴야지. 그걸 머리를 써서 이해하려고 하거나, 아니면 그림이 곱다 곱지 않다 이런 식으로 이쁘고 미운 걸로 따지면 못 알아요. 알기가 어려워요. 난을 치는 건 자기 수양을 하는 것이고, 그래서 치는 사람도 기를 모아 치고, 보는 사람도 그 기운을 느껴야 해요. 고걸 너무 머리를 쓰고 짱구를 굴려 가지고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잘못 보는 거지. 이쁜 난초는 중요하지가 않아요.

선의 움직임을 따라가다 보면 느낌을 느끼게 돼 있어요. 그림 그리는 것은 달달달 떨면서 이쁘게 그릴려고 하다 보면 그 기운을 못 느껴요. 휙 하고 갈기는 것. 그러다 보면 그 기운을 느낀다구. 옛날 사람들은 다 느껴요. 시원하기도 하고, 웅장하기도 하고, 어떨 때는 아주 섬세하기도 하고 그런 느낌이 다 있죠. 따로따로…."

시인은 이렇게 말하면서도, "전통을 멀리 하고, 유럽식 그림 같은 것만 보는 것에 익숙해진" 그리고 전시는 가지 않고 컴퓨터 이미지로만 자신의 난을 보는, 그래서 "난을 볼 줄 모르는" 불특정 다수의 관람객들을 위하여, 자신의 난과 자신이 생각하는 세상 그리고 오마이뉴스의 역할과 독자들에게 주고 싶은 이야기를 풀어나갔습니다.

▲ 김지하 <바람의 길> 한지에 먹, 35.5×53.5cm
ⓒ 김지하

"의미로 따지기는 그렇지만 이런 것은 있지요. 바람의 길이다... 뻔한 얘기지만 난초에서 제일 어려운 것이 표현이에요. 표현. 바람에 흩날리는 것 같은 잎사귀가 제일 어렵지요….

바람에 흩날리는 잎사귀를 그릴려면 삼절 이라는 것을 써야 아는데... 꺽어질 절자. 뭐냐면 굵었다 가늘었다 굵었다. 그러면 어떻게 될까 이파리가 바람에 흔들리겠지. 그런데 그것이 기본이에요.

바람에 흩날리는 것. 표현. 그런데 여기에는 조건이 있어. 골기가 반드시 있어야 해요. 뼈다귀 골자. 기운 기자. 골기. 바람에 흩날리면서도 휙 꺽어져 버리면 안되고 빳빳이 서면서 바람에 흩날리는… 반대죠. 서로. 이게 같이 있어야 되지요.

바람에 흔들리면서도 무너지지 않는 뼈기운. 그러니까 옛날식으로 말하면 세파에 흔들리면서도 절대 무너지지 않는 기개, 기상이 있어야 한다 이거지요.

그것이 역시 기운인데 하나는 바람에 막 흔들리는 거고. 하나는 곧게 자기를 지키는 것. 이 두 개가 서로 모순인데 마치 난초에 바람이 잠깐 머물다 가는 것 같은… 그것을 바람의 학문이니 바람의 길이니 하면서 내 식의 얘기가 나온 거지요…."

▲ '난'에는 '타는 목마름'이 없어요
ⓒ 오마이뉴스 조경국

위의 난에 대한 설명이 끝나자 시인은 목이 마른 듯 차를 한모금 마셨습니다. 그래서 용기를 내어 난에도 '타는 목마름'이 있냐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시인은 질문이 너무 황당하다는 듯 웃음을 터트리며, "난의 경지에는 그런 것 없다"며 손사래를 치셨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의 난에 시적인 제목이 들어가는 이유는 "휙 갈기면서 나오는 기운에 '플러스 알파'를 하는 의미일 뿐이지, 제목은 어떤 경우에도 난초의 의미가 될 수 없다"면서 감성과 감각으로 봐야 함을 다시 한번 강조했습니다.

"원래 난초를 그릴 때는 왼손으로 땅을 짚어요. 이게 뭐예요. 왼쪽은 천지 할 때 땅(地), 붓을 든 손은 공중에 띄워놔요. 허공에. 이게 뭐예요. 이건 하늘, 天이지. 휙 갈기면서 나오는 기. 기운이 사람이에요. 천, 지, 인 그걸 느껴야지 그걸 머리로 생각해 가지고는 알 수도 없고 되지도 않고 괜히 복잡해지기만 해요."

▲ 김지하 <기우뚱한 균형>, 한지에 먹, 30×60cm
ⓒ 김지하

"이건 중도의 얘긴데... 가운데 중자. 난초는 반드시 균형이 있어야 돼요. 좌우 균형이라든가. 근데 좌우가 균형을 잡는 것은 바람이 전혀 없을 때나 머릿속에 있는 난초가 그렇지요. 실제 난초는 언제나 조그만 바람에라도 흔들려요. 그래서 흔들리면서 기우뚱해지는 거지요. 기우뚱하면서도 균형을 잡는 것 이것이 난초의 특징입니다."

시인이 난초를 통해 중도를 표현한 이유는, 그가 중도에 대해 깊게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많은 시간을 할애하여 오마뉴스와 독자들에게 중도를 당부했습니다.

"이 시대에 가장 요청되는 것은 중도예요. 중도. 중도라는 것은 있음과 없음, 가득참과 텅빔, 늙음과 젊음, 정치 문제로 치면 성장과 분배, 생산과 소비 여러 가지 대립적인 것이 있죠. 이런 것들이 함께 있는 것, 공존하는 것이 시대정신이에요. 그걸 중도라고 해요.

아날로그와 디지털 시대가 결합해야 하고, 진보와 보수가 결합해야 하고, 역동성 즉 움직이는 것과 균형, 안정이 결합해야 하고, 남과 북이 결합해야 되고, 영남과 호남이 결합돼야 하고. 여러 가지가 결합되는 것이 이 시대의 사상이고 운명이고 중도지요.

근데 이것을 제일 잘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누구냐 할 때 10대, 20대, 30대 초, 중반의 전 인구의 78%에 달하는 디지털 세대, 붉은 악마 세대, 한류 세대라고 할 수 있죠.

이들에게 중도란 무슨 뜻이냐. 중도는 마치 매일 먹는 밥과 같아요. 이들 세대에겐. 왜 그러냐 하면 문화가 키워드죠. 이 세대는. 정치 경제가 아니라. 근데 문화야 말로 중도라. 간단히 얘기해 보면 아날로그와 디지털이 결합해야죠.

디지털 논리는 가장 핵심적인 것이 노, 예스, 예스, 노라고. 온 오프. 오프 온. 천정 치면 바닥, 바닥 치면 천정, 이게 바로 이진법, 이진법이 중도예요.

어느 한쪽에 기울지 않고 그러나 가운데도 아니고 전체를 다 융합하는 것, 그러면서 한 단계 초월하는 것, 즉 새로운 시대를 여는 것. 바로 이것이 젊은 세대의 힘이에요. 오마이뉴스가 이런 태도를 갖고 나가면서,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좋은 점을 끓어다가 통합시켜야지요."

물론 중도에 대한 시인의 생각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회를 바라보는 생각과 사상은은 획일적일 수 없기에, 김지하 시인의 생각도 이 사회에 존재하는 다양한 생각과 사상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 김지하 <소남과 판교 이후에>, 한지에 먹, 35×65cm
ⓒ 김지하

"소남, 판교. 청나라와 명나라때 사람인데 이 두 사람이 난초의 명인이죠. 또 석파(대원군), 완당(추사) 또 원정(민영익) 이런 사람들이 다 난초의 명인인데 이 사람들이 간 뒤에는 동아시아에 묵란, 난초 그림의 대가가 없어요.

나의 스승 무위당이 그 말을 햇는데 그 까닭을 모르다가 오늘 가만히 생각하니 그것이 곧 긴 이파리에 표현, 바람에 흔들리고 있는, 그것이 가슴 속에 있는 고통, 한이 문제가 있었다. 한이 없이는 바람에 흔들리는 고민, 즉 고통이 긴 이파리가 있을 수가 없다. 가슴에 한이 많아야 기운이 뻗쳐… 가슴에 고통이 많아야 기운이 뻗친다고.

그러니까 대원군 난초가 유명하지만 집권 뒤의 난초는 알아주지 않아. 또 워낙 많이 팔아 먹었고. 집권하기 전 뭔가 불만이 많았을 때 난을 쳐요.

가슴에 고통이 많은 사람, 우울함이 많은 사람의 난초 끝은 소실점이 안 보여요. 소실점이... 어디서 끝나는지 몰라요. 이게 장엽이죠.

바람에 흩날리는 긴 이파리. 이것을 하나로 쳐 주는데 내 그림에는 끝이 있는가 모르겠네요. 긴 이파리가 하나 나왔죠? 그래서 난초가 괜히 어렵다고...

그래서 난초를 볼 때에는 뭔가 의미를 찾지 말고 기운부터 느끼고 봐야 하는 겁니다. 대신 선제조건은 난초를 치는 사람이 잘 쳐야지요."

김지하 시인을 인터뷰하면서 느껴지는 생각은, 젊은 세대들에 대한 이해의 폭이 짐작보다 크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운동하는 후배들이 와서 운동자금을 마련한다고 하면 흔쾌히 수십 장의 난 그림을 줬습니다. 그러나 그림을 받아간 후배들 중 일부는 '난이나 치고 있다'며 그를 욕하고 비난했습니다. 그래도 그는 "조금씩 도움이 됐으면 된 거고, 그걸 갖고 칭찬을 받으려는 마음도 없었고, 그냥 마음을 잡으려고 난을 그렸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청년들이 신선한 감각으로 우리 역사나 문화에 대해서 깊이를 가지고 유럽이라든가 세계적인 것과 결합시키면서 가고 있다"면서 우리나라의 미래를 매우 긍정적으로 보고 있었습니다.

"클릭만 하면 자료가 쏟아지니 요즘 20대 아이들이 많이 클릭해요. 20대 중에서도 우리 세대보다 역사 인식이 더 많은 청년들이 많이 있어요. 그걸 통해서 새로운 것을 보고 있는 거죠. 그런 것들을 현대화 시키면서 한류에 결합시켜야죠.

한류라는 것을 생각해 봐요. 한류가 지금 뜨고 있는데 뜨는 과정에서 조금 낮아지는 과정도 있긴 하지요. 그러나 이것은 콘텐츠를 요구하지요.

어마어마하고 재미있고 신선한 콘텐츠를 요구하는데, 콘텐츠는 어디로부터 오는가? 두 군데서밖에 안 와요. 하나는 천지하고 또 하나는 과거 역사에 대한 재해석. 18세기 15세기, 12세기, 8세기, 상고대, 신화시대. 거꾸로 내려오면 이미 시작됐어요. 뭐가 시작됐어요. 이미 18세기의 이야기, 음란서생, 황진이, 드라마 중에 주몽, 연개소문, 대조영 앞으로 단군도 나온다는데 이런 것이 르네상스 기운이에요. 앞으로 잘 이루어져요. 오마이뉴스같은 디지털 매체들이 그걸 불을 지르는 역할을 해야 할 거예요."

▲ 김지하 <오, 고구려! 오호, 오녀산성!>, 한지에 먹, 68×45.5cm
ⓒ 김지하

시인의 이야기는 끝이 없었습니다.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해서는 신랄한 비판을 하면서, 일부 젊은이들이 중국에 대해 갖고 있는 '패배주의'를 경계했습니다.

판소리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는 가수 조용필과 비를 '비교 분석'하기도 했고, 우리 것을 찾는 자세, 정체성을 놓치지 않아야 하는 당위성을 강조했습니다. 그래야 우리 것과 서양의 것을 결합시키는 "로칼하면서 글로벌한 것"을 찾을 수 있는 것이라고 구체적인 방향을 제시하였습니다.

▲ 우리 민족의 장래는 희망적이라고 생각해요.
ⓒ 오마이뉴스 조경국
김지하. 한때 그의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떨리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수갑을 차고 사형을 선고받는 모습에 분노하는 가슴들이 있었고,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를 부를 때 눈물을 흘리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시인은 그 뜨거운 가슴과 눈물 뒤에서 모진 고문을 감내해야 했고, 그의 젊음은 그렇게 시대 앞에 바쳐졌습니다.

세상이 바뀌었지만, 그의 몸과 마음은 허물어질 대로 허물어졌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상상할 수 없는 한과 아픔과 슬픔이 그에게 남겨졌습니다. 그래서 그는 난을 치며, 한과 아픔과 외로움을 달랬습니다. 그의 중년은 그렇게 자신의 치유를 위해 바쳐졌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제 환갑을 넘긴 시인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마음은 여전히 젊었고, 민족의 장래에 대한 희망과 확신 그리고 젊은이들에 대한 믿음과 사랑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번 여름에 발간하는 '김지하의 세계문화 기행'을 통해, 자신이 생각하는 세계 문화와 문명 그리고 우리의 문화와 문명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그가 그 책에서 보여줄 '희망의 메세지'에 대한 기대와 함께, 이번 '묵란전' 전시회에 가셔서 김지하 시인이 이야기한 '난의 기운'을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덧붙이는 글 | □ 생명평화재단기금 마련을 위한 김지하 수묵화전 
서울 전시 : 5/16(수) ~ 5/20(일) 갤러리 올(안국동 02-720-0054) 
원주 전시 : 5/21(월) ~ 5/25(금) 가톨릭센터 

이 기사는 인터뷰는 이승열 기자, 인터뷰 기획은 이충렬 기자 ,그리고 인터뷰 정리와 기사작성은 공동으로 했습니다.


태그:#김지하, #김지하 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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