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 김원숙 <신부>, 캔버스에 유채, 45 x 45㎝
ⓒ 김원숙
김원숙 화백의 많은 작품에서는 슬픔과 외로움이 느껴집니다. 얼굴이나 화폭에 외롭고 슬픈 삶의 흔적이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의 그림은 보는 사람들에게 깊은 여운을 남깁니다.

이 작품에도 여인이 불켜진 방안에 혼자 앉아있고, 댓돌 위에도 고무신이 한 켤레만 가지런히 놓여있어 외롭고 슬픕니다. 그런데 그림을 찬찬히 살펴보면 문틈으로 나와있는 옷자락에 뭔가 사연이 있는 듯 보입니다. 김 화백의 작품에는 이런 암시와 은유가 많은데, 이것이 그의 그림이 갖고 있는 또 하나의 특징입니다.

이 그림에서 보이는 문틈에 걸린 옷자락은, 신혼 첫날밤 신랑이 신부에 대해 오해를 하고 도망갔다가 몇십 년 후 돌아와 그때의 오해를 푼다는 '신부 원귀' 설화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신부는 초록 저고리 다홍치마로 겨우 귀밑머리만 풀리운 채 신랑하고 첫날밤을 아직 앉아 있었는데, 신랑이 그만 오줌이 급해져서 냉큼 일어나 달려가는 바람에 옷자락이 문 돌쩌귀에 걸렸습니다. 그것을 신랑은 생각이 또 급해서 제 신부가 음탕해서 그 새를 못 참아서 뒤에서 손으로 잡알당기는 거라고, 그렇게만 알고 뒤도 안 돌알보고 나가 버렸습니다. 문 돌쩌귀에 걸린 옷자락이 찢어진 채로 오줌 누곤 못 쓰겠다며 달아나 버렸습니다.

그러고 나서 40년인가 50년이 지나간 뒤에 뜻밖에 딴 볼일이 생겨 이 신부네 집 옆을 지나가다가 그래도 잡시 궁금해서 신부방 문을 열고 들여다보니 신부는 귀밑머리만 풀린 첫날밤 모양 그대로 초록 저고리 다홍 치마로 아직도 고스란히 앉아 있었습니다. 안쓰러운 생각이 들어 그 어깨를 가서 어루만지니 그때서야 매운 재가 되어 폭삭 내려 앉아 버렸습니다. 초록 재와 다홍 재로 내려앉아 버렸습니다. - 서정주 '신부'


인간의 보편적 삶의 모습과 감정 담아

김원숙 화백은 1972년 홍대 미대 재학 중 미국으로 그림 유학을 떠났고, 지금까지 미국에 살고있습니다. 그런 그가 '신부' 이야기 뿐 아니라, 수로부인, 심청 이야기 등 한국 설화에 바탕을 둔 작품을 많이 그린 이유는, 한국을 눈으로 볼 수 없고 오직 가슴으로만 느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김 화백의 눈에 보이는 세상은 한국이 아니라 미국이기에, 직접 보지 않고도 그릴 수 있는 한국의 설화와 신화를 화폭에 담아 '한국성'을 유지했습니다. 그리고 세계인들의 공감을 얻기 위해 '한국성' 속에 인간의 보편적 삶의 모습과 감정을 담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19995년 유엔에서 '올해의 예술가'로 선정되었고, 외국 화랑과 미술관에서만 34회의 개인전을 열면서 '세계적 작가'로서의 입지를 굳혔습니다.

▲ 김원숙 화백의 '집' 시리즈
ⓒ 김원숙
▲ 김원숙 <피리>, 나무에 유채, 40 x 40㎝, 2002
ⓒ 김원숙
김 화백의 작품에는 한국 집이 많이 등장합니다. 그 이유는 그가 이방인의 삶을 살기 때문에 한국에서 살던 집에 대한 향수 때문일 수도 있고, 집이 삶의 바탕이라는 의미를 강조하려는 의도일 수도 있습니다.

위의 '피리' 역시 그가 즐겨 사용하는 소재인 초가집 안에서 외롭게 보이는 여인이 피리를 불고 있습니다. 그런데 커튼이 반쯤 걷힌 곳에 끝이 보이지 않는 길이 보입니다. 여인이 가야야 할 길인지, 피리 소리가 멀리 퍼져 나가길 바라는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작가는 "보는 사람의 느낌대로 보면 된다"라고 합니다.

이런 은유가 바로 김원숙 화백 그림의 탁월함이고 매력입니다. 그래서 김원숙 화백의 전시회에 간 애호가들은 그의 그림을 오랫동안 바라봅니다.

▲ 김원숙 <마음의 집>, 돌석고에 채색, 21 x 21 x 23㎝, 2005
ⓒ 김원숙
▲ 김원숙 <수로부인 2>, 캔버스에 유채, 168 x 122㎝, 1990
ⓒ 김원숙
김원숙 화백이 화가로서 가진 훌륭한 점의 하나는, 쉬지 않고 새로운 표현방법을 추구한다는 점입니다. 그는 서양화뿐 아니라 수묵화·도조와 조각의 세계를 넘나들 뿐 아니라, 자신의 그림을 좋아하지만 경제적 여유가 많지 않은 애호가들을 위해 석판화도 만듭니다. 그리고 작년에는 우리나라 조선시대 기생들의 시를 모아 영문으로 발간한 <기생시조 화집>에 삽화도 그렸습니다.

이런 김 화백의 그림에 대한 열정은 그림 그리는 일을 재미있게 생각하기에 가능합니다. 그러나 그는 그림을 쉽게 그리는 화가가 아닙니다. "아직도 아침 기도를 드리러 빈방에 들어가는 수도승들처럼, 빈 화실에서 자기와의 춤과 싸움에 임하는" 자세로 정신을 집중시켜 작품을 탄생시키는 그런 화가입니다.

위의 작품에서는 물에 빠진 여인이 빠른 물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집 밖으로 떠내려가고 있습니다. 아무리 손을 뻗으며 발버둥쳐도 세상의 험한 물살은 여인을 그렇게 떠나보냅니다. 그것이 세상이라고, 삶은 그렇게 슬프고 고통스러운 것이라는 화가의 외침이 들어 있는 작품입니다.

이야기를 그림으로 만드는 데 탁월한 재주 가진 화가

▲ 김원숙 화백의 '연속 그림' 시리즈
ⓒ 김원숙
▲ 김원숙 <바늘구멍 1·2> 나무에 유채, 각 18x 18㎝, 1992
ⓒ 김원숙
▲ 김원숙 <달빛 아래의 길>, 캔버스에 유채, 48 x 91㎝, 1992
ⓒ 김원숙
김원숙 화백은 그림으로 이야기를 만들거나, 이야기를 그림으로 만드는데 탁월한 재주를 가진 화가입니다. 그래서 그는 한 액자 속에 줄거리가 있는 두 점의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바늘구멍'처럼 독립된 두 액자에 줄거리가 연결되는 그림을 그리기도 합니다.

그가 이야기가 있는 그림을 많이 그린 이유는 어린 시절의 가정환경과 연관이 있습니다. 그는 어렸을 때 언론인이자 음악인인 아버지가 건네주는 동화책과 소설책을 많이 읽었고, 할머니에게 많은 옛날이야기를 들으면서 자랐습니다. 그리고 옛날이야기를 듣고 난 후에는 그 이야기를 그림으로 그려 형제들에게 보여줬다고, 미국 미술평론가 엘레놀 허트니와의 인터뷰에서 밝혔습니다.

이런 독특한 유년 시절의 경험 때문에 그는 이야기를 그림으로 표현하는데 익숙했고, 훗날 의식적 혹은 무의식적으로 그림 속에 이야기를 담거나 이야기를 그림으로 표현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광수 전 국립현대미술관 관장은 그의 작품에 대해 "일기의 형식과 같은 숨김없는 고백체이기 때문에 그의 작품 앞에 서면 그림을 본다는 것에 앞서,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라고 했습니다.

영국의 미술평론가 휘트니 채드윅 역시 "김원숙의 그림은 프랑스 표현을 빌려 '그려진 시'라고 할 수 있고, 그림 속의 뜻을 각자의 가슴 속에 새롭게 그려볼 수 있도록 해준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여인이 강물을 퍼서 항아리에 담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 김원숙 <강물을 퍼담듯이>, 캔버스에 유채, 168 x 168㎝, 1992
ⓒ 김원숙
김 화백 그림의 특징이 잘 나타난 작품입니다. 화폭 속에 눈에 익은 강과 산, 그리고 항아리가 있어 쉽게 공감이 가지만, 여인이 강물을 퍼서 항아리에 담는 이유가 무엇인지 한참 생각하게 합니다.

그러나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않고 정희성 시인의 절창 '저문 강에 삽을 씻고'를 떠올리면, 화폭 속에 흐르는 강의 의미와 여인이 강물을 퍼담는 의미가 자연스럽게 이해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흐르는 것이 물뿐이랴
우리가 저와 같아서
강변에 나가 삽을 씻으며
거기 슬픔도 퍼다 버린다.

일이 끝나 저물어
스스로 깊어 가는 강을 보며
쭈구려 앉아 담배나 피우며
나는 돌아갈 뿐이다.

삽자루에 맡긴 생애가
이렇게 저물고, 저물어서
샛강 바닥 썩은 물에
달이 뜨는구나.

우리가 저와 같아서
흐르는 물에 삽을 씻고
먹을 것 없는 사람들의 마을로
다시 어두워 돌아가야 한다.

- 정희성 '저문 강에 삽을 씻고'


▲ 김원숙 <푸른 강물>, 캔버스에 아크릴릭, 106x 125㎝, 1996
ⓒ 김원숙
이 그림 역시 삶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작품입니다. 격동적으로 흐르는 인생의 강물, 빠른 물살이 무서워 강 언덕에 뱃머리를 걸치고 있는 돛단배, 그리고 산 사이로 난 길. 거친 세상 속에서 어디를 향해 어떻게 가야 할지 고뇌하는 많은 사람의 마음속 모습인지도 모릅니다.

김 화백이 이런 은유적 작품을 즐겨 그리는 이유는, 자신의 그림이 화가만의 그림이 아니라, 보는 사람과 함께할 수 있는 그림이 되기를 원해서입니다.

자신의 경험 혹은 주변 인물들의 삶의 모습을 이야기하듯 화폭에 옮긴 후, 보는 사람들에게 '당신은 어떤 삶을 살고 있느냐?', '살면서 이런 경험을 해본 적이 있는냐?'라는 질문을 던지며, 삶에 대해 같이 생각하자는 것입니다.

김원숙 화백의 이런 '이야기 그림(story base painting)'은 우리나라 현대미술에서 쉽게 만날 수 없는 독특한 그림형태이기 때문에, 그의 작품들은 한국 현대미술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는 쓸쓸하고 슬프고 외로운 그림을 많이 그렸지만 '행복한 화가'입니다.

태그:#김원숙, #이야기 그림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