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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양성 아래 판소리 박물관에 봄이 만개하고 있었다. 금빛 잉어가 여유를 즐기면서 헤엄을 치고 있는 모습이 가슴에 와 닿는다. 그들의 움직임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그들의 시간과 사람의 시간은 다르지 않은가. 그런데 우리는 사람의 관점에서 그들을 바라보고 있는 것은 아닌가.

▲ 여유
ⓒ 정기상
물속에서 자유를 누리고 있는 모습을 통해 안하무인(眼下無人)적으로 생각하고 살아가고 있다는 자책감을 가지게 된다. 이런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니, 또 다른 세상이 들어온다. 봄은 생명을 가져다 줄 뿐만 아니라 생명의 경이로움까지 창조하고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활기 넘치는 모습만을 보고 감탄하고 있는 한정적인 나의 생각을 반성하게 된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적용되는 일반적인 기준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하루살이의 시간과 잠자리의 시간 그리고 사람의 시간과 영생의 시간은 모두 다 다를 수밖에 없지 않은가. 하루살이의 일생은 하루이지만, 사람의 일생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그렇다면 하루살이를 비웃어야 할 이유가 사라진다.

▲ 동백
ⓒ 정기상
시간에 대한 이런 생각은 판소리 박물관의 바로 이웃에 있는 동리 신재효 고택으로 들어가는 입구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사이에 꽃을 활짝 피어낸 동백이 그렇고 그 아래에 이제 꽃을 피워내려고 꽃봉오리를 맺고 있는 꽃 잔디를 통해 알 수 있다. 빨갛게 열정을 발하고 있는 동백꽃과 이제 갓 피어나려고 하는 꽃 잔디 꽃은 다른 색깔을 가지고 있다. 저마다 독특한 세계가 있음에도 그것을 간과하고 있는 것이다.

세상이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운 것은 저마다 독특한 세상을 창조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런 세상은 보지 않고 똑같은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게 되니,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일상이 단조로워지고 짜증이 나는 것이다. 개성을 존중하고 함께 즐기는 생활을 하게 된다면 날마다 아름다운 날들이 될 것이다.

▲ 꽃 잔디
ⓒ 정기상
어제가 오늘이 아니고 내일 또한 오늘이 아님에도 우리는 그것을 착각한다. 오늘이 어제 같고 내일 또한 오늘 같을 것이란 고정관념이 사람을 우울하게 만드는 것이다. 물질만능주의는 이런 생각을 더욱 고착시켜 끝없는 추락의 길로 밀어내는 것이다. 이런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자신의 마음에 달려 있다.

기준을 달리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기준을 달리한다는 것은 존중한다는 것이다. 그들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배려해준다는 의미다. 그렇지 않으면 들어갈 수 없는 세상인 것이다. 활짝 핀 동백과 이제 꽃봉오리를 맺고 있는 꽃 잔디의 모습은 분명 다르다. 물론 아름답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그 아름다움에도 차이가 있다.

▲ 꽃봉오리
ⓒ 정기상
둥글둥글 기쁜 듯 피어나려고 하고 있는 꽃 잔디의 꽃봉오리에서는 희망을 볼 수 있다. 오늘이 아름다운 것은 내일 만개할 수 있다는 기대와 바람이 있기에 우뚝해질 수 있는 것이다. 그 것은 새로운 세상으로 들어가는 문이 되는 것이고 화엄 세상을 구축하는 일이기도 한다. 화엄의 세상은 삼천대천세계라고 하였다.

기준을 달리하고 독특한 개성을 존중하게 되면 수많은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것이다. 그 곳은 아름다움으로 장식되어 있는·세상이다. 그 곳에는 새로움이 날마다 피어난다. 단조로움을 느낄 겨를이 없다. 숨 가쁘게 벌어지는 오묘한 변화에 푹 젖어들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행복은 저절로 피어날 수밖에 없다.

▲ 존중
ⓒ 정기상
동백이 만들어내는 세상은 그 세상대로 아름답다. 눈이 부실정도로 아름다우니 흠을 잡을 수가 없다. 마찬가지로 꽃 잔디 꽃이 만들어내는 세상 또한 아름답다. 희망이 있고 설렘이 있으니, 바라보는 그 자체만으로도 즐거워진다. 활기가 넘쳐나고 가슴에 그득 채워지는 만족감으로 날아오를 것만 같다.

동리 신재효 고택에 피어 있는 꽃들을 바라보면서 지천명을 생각하게 된다. 공자님께서는 마흔의 나이를 불혹의 나이라 하였고 쉰의 나이를 지천명의 나이라고 하였다. 불혹이란 흔들림이 없다는 뜻이고 지천명이란 하늘의 뜻의 알 수 있게 된다는 의미이다. 지천명의 확실한 것은 미혹한 나로서는 알 길이 없지만 짐작을 해본다.

▲ 새로운 세상
ⓒ 정기상
동백의 꽃은 꽃대로 존중해주고 꽃 잔디의 꽃의 경이로움을 찾게 되면 순간순간이 새로워진다. 지금 여기가 빛나고 있으니, 그것으로 충분한 것이 아닌가. 돌아다보면 후회가 앞선다. 순간의 소중함을 다가오지 않은 미래로 인해 깨닫지 못한 것이다. 흘러간 과거에 집착함으로서 오늘을 소홀하게 한 것이다. 어리석음의 결과가 아닐 수 없다.

지천명이란 바로 이런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닐까. 동백의 아름다움과 꽃 잔디 꽃에서 찾을 수 있는 지혜를 아는 것이 바로 하늘의 뜻을 아는 것은 아닐까. 동양의 섹스피어라고 불리는 동리 선생님의 우뚝함이 그래서 더욱 빛나는 것이다. 판소리 열 두 마당을 완성이 그 것을 말하고 있다.

▲ 지천명
ⓒ 정기상
꽃 앞에서 행복해진다. 실패한 지난날도 절대로 실패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 것의 체험이 다가올 미래에는 아주 소중하게 사용되어질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당신이 있어서 행복해질 수 있는 존재가 바로 사람이 아닌가. 당장은 아무런 소용이 없을지 모르나, 모든 것이 존재하는 것은 꼭 필요하기 때문에 존재할 수 있다. 갓 피어나려고 하는 꽃봉오리의 경이로움에서 지천명을 생각하였다.<春城>

덧붙이는 글 | 전북 고창 신재효 고택에서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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