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날이었다. 내 머릿속은 그야말로 쥐가 나기 일보 직전이었다. 논술수업 때문이었다. 올해 고등학생이 된 동생이 논술을 알려달라고 한 건, 꽃 피는 봄의 어느 날, 대학입시에 논술이 중요해진다는 소식이 들려온 때였다.

내가 무슨 논술을 알려줄까 싶었지만 사교육비 절감을 위해 논술수업이라는 것을 하기로 했다. 그렇게 해서 여름까지 꾸준히 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이게 생각처럼 만만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있었다.

나는 행동과 달리 정부와 사회를 비판하는 데는 많은 '말'을 한다. 이것은 논술수업 때도 마찬가지. 내가 하는 수업이라는 것은 온통 비판 투성이다. 그런데 이걸, 동생이 그대로 따라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좋다고 생각했다.

TV뉴스와 신문에서 하는 말만 철석같이 믿던 동생이 월드컵 때도 미선이, 효순이부터 생각하고, 또래답지 않게 자본주의의 맹점을 나름대로 논리적으로 지적하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무슨 이유인지 동생의 학교에서는 그렇게 삐딱(?)하게 쓰면 성적을 A+로 주니 금상첨화라고 여겼다.

논술 수업으로 회의론자가 돼 버린 동생

@BRI@그러나 그건 짧은 생각이었다. 내가 무심코 했던 말들이 쌓이고 쌓이다보니 감수성 어린 17살 녀석이 이상해지고 있었다. 회의론자가 됐다고 할까? TV뉴스에 정치인이 나오면 일단 "또 거짓말 하려고?"라는 말만 하고, 정부에서 무슨 정책을 시행한다고 하면 "나라 말아먹으려고 작정했구나"라는 말부터 하고 있으니, 뭔가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척들이 모인 자리만 해도 그랬다. 지방선거 직후, 투표할 사람이 없어 기권했다는 어르신에게 동생은 "그런 태도가 이 나라를 말아먹는 겁니다"라고 결연히 말하기도 했고, 아는 사람이 후보라서 뽑았다는 분에게는 "연고주의도 심각한 문제입니다. 그렇게 하면서 나라 욕할 자격 없는 겁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처음에는 똑똑한 말 한다고 좋아하던 분들도 나중에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해서 우물거렸고 이내 화살은 나에게 쏟아졌다. 동생의 급격한 변화는 논술수업과 때를 맞췄기 때문이다.

이걸 계속 해야 하나, 그만 둬야 하나? 동생의 글 솜씨가 늘어나는 것은 분명 반가운 일이지만, 이건 확실히 고민거리였다. 그런데 때마침 한미FTA협상과 북한의 미사일 발사 문제가 사회적인 쟁점으로 부각됐다. 난 이거만 하고 그만둬야겠다고 생각했다. 또 흥분하지 말고 중립(?)적인 태도로 양비론적인 말만 하자고 다짐하며 수업을 했다.

그런데 그게 생각처럼 안 됐다. 한미FTA만 해도, 나는 이해영 교수의 <한미 FTA, 낯선 식민지>를 옆에 낀 채로 흥분하고 말았다. 그렇게 1시간 정도 떠들었을까? 동생이 갑자기 한숨을 쉬었다.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동생이 "그럼 우리 어떡해?"라고 푸념조로 말했다. 순간 할 말이 없었다. 그래서 그냥 '어른'이 되기로 했다. "그러니까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하는 거야!"라는 말로써 말이다.

이어서 북한이 미사일 발사한 것을 설명하는데 생각과 달리 이야기가 자꾸만 엉뚱하게 흘러갔다. 해방 이후부터 지금까지의 북한과 미국의 깊고 깊은 관계를 말하면서, 나아가 우리나라의 입장까지 설명하다보니 그랬던 게다. 내가 그렇게 돌팔이 실력으로 횡설수설하는데도 동생은 열심히 듣기만 했다. 아주 진지하게.

"형, 우리 희망은 있어?"

동생의 태도와 달리 너무 흥분한 것 같아서 이야기를 대충 끝내려 했다. 그런데 동생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그만하자"고 하니까 "그럼 미국 편 들어야 돼?"라고 물어온 것이다. 딱히 할 말이 없었다. 그러자 동생은 "북한 편 들어야 돼?"라고 했다. 애매했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해야 할까? 그래서 아주 '뻔한' 소리들만 하고는 이번에도 "그러니까 넌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하는 거야!"라고 말했다. 그 말을 남기고는 일어서려는데 동생이 나를 붙잡고 물었다.

"형, 우리 희망은 있어?"

희망…. 그 말을 듣자 가슴이 먹먹해졌다. 희망이라? 희망? 그게 있었던가? 말문이 막혔다. 되레 9살이나 어린 고1 동생에게 물어보고 싶었다. 희망이 있니?, 라고. 아니면 나도 그게 궁금하다고 말하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말을 쉽게 할 수는 없는 법인지라 가만히 있었다. 그런 나를 보는 동생의 눈동자는 진지했다. 초롱초롱하다는 눈빛은 이럴 때나 쓰는 말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문득, 17살 때의 내 모습이 그려졌다. 그 시절에 친구들에게 물은 것은 '민증을 요구하지 않고 담배 파는 곳이 어디인가?'하는 것과 '여자들과 만나서 뭐하고 놀아야 후회가 없을까?'하는 것 따위였다.

아! 그 시절 나는 어른들의 연고주의를, 제대로 의미를 모를지라도 대놓고 비판해본 적도 없었고 선거권을 포기하는 어른들에 대한 쓴소리도 해본 적이 없었다. 하물며 희망은 어떤가? 그런 단어를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 당연히, 누군가에게 희망을 물어본 적도 없었다. 그런데 내 동생은, 희망을 묻고 있었다.

그것을 깨달았을 때, 나는 답을 알았다. 답은 바로 내 앞에 있었다.

"네가 바로 희망이다."

희망이라는 것은, 동생처럼 그것을 궁금해 하고, 찾고 싶어 하는 사람이 바로 그 주인공이 아닐까? 나는 멋쩍게 웃으며 그리 말했다. 내 말에 동생은 다시 한번 물었다. "형은?"이라고.

나는 어떤가? 나도 그리 될 수 있을까? 너처럼 희망을 궁금해 한다면, 나도 곧 희망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믿어도 되는 거겠지? 우습지만, 어쩌면 유치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난 그때부터 그렇게 믿기로 했다. 나 또한 그 추상적인 단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 후로도 계속.

그 일 이후, 지금도 나는 희망을 자처한다. 이것을 말하면 다들 흰소리 한다고 핀잔주지만, 나는 진정으로 믿기에 그리 말한다. 17살 때는 담배 파는 곳을 찾았지만, 26살에는 희망이 무엇인지 나름대로 답을 얻었기에 당당하다.

그래서인지 모르겠다. 올해의 사자성어가 '밀운불우'니 하고 있는데 나는 올해가 뿌듯하기만 하고, 내년 또한 그리 될 것이라고 믿고 있다. 너도 희망, 나도 희망이라며 여기저기서 희망이 솟구치고 있는데 어찌 그렇지 않을까? 해가 바뀌는 지금도 즐거운 것은, 어쩔 수가 없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 2006, 나만의 특종


태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