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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누가 들으면 이혼했다가 합친 줄 알겠다. 그러나 어쨌든 우리 부부는 떨어져 산 지 3년 만에 합치게 됐다.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던 남편이 퇴직했기 때문이다.

떨어져 산 3년은 그야말로 꿀맛(?) 같은 세월이었다. 다달이 붙여주는 봉급 덕으로 생활은 폈지, 잘 해야 한 달에 두어 번 올까 말까 한 남편이니 손님 접대하듯 별식 몇 개 장만해 대접하면 그만이지, 도무지 성가실 일이 없었다.

더구나 얼굴 자주 맞댈 일이 별로 없으니 갈등 또한 있을 일이 없었다. 볼 때마다 반갑고 애틋하고, 흡사 신혼부부 저리 가라 할 정도였으니, 누이좋고 매부좋고 가재잡고 도랑치고. 우리 부부가 딱 그 짝이었다.

달콤한 별거는 끝나고 감옥 생활이 시작되다

@BRI@그런데 내 언제 '삼식이' 타령도 늘어놓은 적이 있었지만 각자 자유롭게 살던 두 사람을 한 집안에 모아놓으니 곧 숨통이 막히기 시작했다.

먹고 싶으면 먹고, 자고 싶으면 자고, 벌러덩 자빠져 있다 마음 내키면 후다닥 튀어나가고…. 라이프 스타일이 완전히 '자유부인' 찜쪄 먹던 내 생활에 무지막지한 제동이 걸린 것이다.

우선 주변 지인들이 맘껏 이용하던 사랑방이 폐쇄됐다. 누가 막아서가 아니라 바깥주인이 떡 버티고 있으니 손님들이 알아서 기게 된 것이다. 덕분에 나만 답답해졌다. 3년, 그게 어디 짧은 세월이던가. 그 긴 시간 그야말로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르고 살던 나다. 그 재미를 일순에 날려버린 내 남편, 어찌 적응이 쉽겠는가.

밥에 물말아 김치 하나 덜렁 놓거나 그것도 귀찮으면 우리밀라면으로 때우던 밥상도 달라졌다. 남편이 좋아하는 메뉴 번갈아가며 준비하다보니 그 신경도 만만치 않았다. 먹이고 치우고 빨래하고….

3년간 마누라를 무지 행복하게 해줬던 그 고마움. 남편 앞으로 쌓아놓은 고마움의 적금통장이 눈에 띄게 줄어들고 새록새록 신경질만 불어났다. 그러나 벼룩도 낯짝이 있다고. 아무리 그래도 남편 논 지 얼마나 됐다고 대놓고 짜증을 부리겠는가. 그저 안 보는 데서 궁시렁궁시렁 내 맘 내가 달래보려 무진장 노력하는데 그게 말처럼 쉽지 않은 게 탈이다.

또 하나. 앞으로의 생활에 대한 불안감이다. 월급쟁이 3년은 두 아이 학비 내고, 생활비 충당하고. 그나마 빚지지 않은 것이 다행이지 저축할 여유는 전혀 없었다. 3년 결산 퇴직금을 받고 보니 아무리 아껴 써도 6개월이면 바닥이 난다.

재취업의 가능성은 쉽지 않고, 뾰족한 대책은 없고. 다른 실직자들이 처한 고초의 오십보백보가 지금 우리 처지다.

단발머리 귀신도 사라지고, 영양실조도 면하고

그러나 앞길 막막하다고 인상 쓰고 살면 뭐가 달라지나? 마음을 고쳐먹기로 했다.

남편이 내 곁에 와서 좋아진 일이 뭐가 있나? 많다. 다시 생각해 보니 참 많다. 우선 수시로 나를 괴롭히던 악몽이 사라졌다. 가위눌림이 어찌나 심했던지 잠자리에 들기 전 늘 긴장했다.

어느 날은 머리맡에 삼십대 초반쯤으로 뵈는 단발머리 귀신이 새초롬히 앉아 나를 째려보고 있기도 했다. 금방이라도 내 목을 조일 것 같은 공포에 목이 터져라 아들을 불러댔는데 목소리도 안 나오고 몸도 움직여지지 않고 정말로 죽는 줄 알았다. 그 와중에도 '아, 아들이 지금 없지. 나 혼자만 있지' 그 생각이 드니 더더욱 무서웠다.

집 안에 나를 보호해 줄 유일한 보호자랬자 철딱서니 없는 진돗개 '몽이' 놈 하나. 아쉬운 대로 "몽아, 몽아..." 목 놓아 불렀더니 이 놈이 글쎄 마루문 앞으로 달려오는 것이었다. 그 순간 잠이 깨 어찌나 무섭든지 집안에 불이란 불은 전부 켜놓고 뜬 눈으로 밤새운 해프닝도 있었다.

돌이켜보니 남편과 한 이불 속에 잠든 뒤부터 그렇게 나를 괴롭히던 악몽이 눈녹듯 사라진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리고 또 하나. 남편 덕분에 영양실조를 면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혼자 살면서 제일 문제가 끼니를 적당히 해결하는 습관이다. 남편이나 손님이 올 때만 진수성찬을 마련하고 나 혼자 있을 땐 그야말로 거지밥상이 따로 없다. 남편과 함께 살고부터 밥상이 달라졌다. 매끼 찬 한 가지라도 맛난 것 올려놓으려 나름대로 애를 쓰고 있는 중이다.

운동을 좋아하는 남편 따라 한두 시간 걷기도 종종 하는 편이니 건강에도 도움이 된다. 음악 좋아하는 남편 덕에 듣기 싫어도 강제로 음악감상을 해야 할 판이니 팔자에도 없는 '교양녀'가 되게 생겼다. 두루두루 장점을 따져보니 보통 남는 장사가 아니다.

▲ 생 일선물로 남편한테 받은 꽃다발.
ⓒ 조명자
12월은 내 생일달이다. 1300일이 넘는 감옥 생활 중에도 마누라 생일을 기억하지 못했던 남편이다. 1점 몇 평이라던가? 그 좁은 감방 안에서 뭔 할 일이 있다고 마누라 생일도 기억 못 하나, 열받아 치사하게 눈물까지 흘린 일이 있다.

그런 남편이 생각지도 않게 선물을 내밀었다. 딴에는 남편 백수 됐다고 기가 팍 죽어 어깨처져 있는 마누라를 위로해주고 싶었나 보다. 세상에 내가 여지껏 받아 본 꽃다발 중에 제일 큰 꽃다발을 안겨주면서 부상으로 금일봉까지 두둑이 건네주었다.

어찌나 감격스럽던지. 꽃비싼 겨울철에, 이렇게 커다란 꽃다발을…. 받으면서 순간적으로 이 정도면 얼마를 줬을까 아깝기도 했지만 어쨌든 남편의 마음씀에 새삼 행복해졌던 시간.

사는 게 다 그렇지. 이렇게 저렇게 억지로 꿰맞춰 행복해지려고 애쓰다 보면 곧 좋은 날도 오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 '2006, 나만의 특종'에 응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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