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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식의숲
"조균부지회삭(朝菌不知晦朔)이오 혜고부지춘추(蟪蛄不知春秋)니, 차소년야(此小年也)라(아침버섯은 그믐과 초승을 알지 못하고 쓰르라미는 봄과 가을을 모르니, 이것은 생명이 짧은 것들이다)."

동양철학의 진수로 간주되는 노장사상의 대표적인 인물인 장자가 <남화경(南華經)> '소요유편'(逍遙遊篇)에서 모든 생명의 유한성과 본원적인 의미를 설파한 말이다. 우주의 장구한 생명과 비교한다면 인생은 정말로 한순간이다. 그러기에 장자는 제한된 생명에 얽매이지 말고, 그것을 뛰어넘는 정신성과 깊이 있는 삶을 추구하라고 가르쳤다.

그런데 우리 주위를 찬찬히 살펴보면 버섯이나 쓰르라미 못지않게 짧은 생애를 사는 생명들이 참으로 많다. 그 중 흔히 잡초로 불리는 한해살이풀을 생각해보자. 한여름의 작열하는 태양을 머리에 이고 아스팔트나 시멘트 골목길에 버티고 서서 꿋꿋하게 살아가는 잡초. 그 강인한 생명력은 어디서 오고, 인간은 그것들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

반면 우리가 발붙이고 살아가는 지구는 어느새 45억 년을 살아왔다고 한다. 그러나 지구도 생명이 있는 존재며, 때가 되면 아름다운 지구 역시 생을 마감해야 한다. 최근 과학 연구 결과에 의지해 인간은 이제 지구의 궁극적인 운명을 예견할 수 있게 되었다. 인간의 경이로운 예지능력은 경탄할 만하지만, 종말의 예견은 우울하다.

"과학자들이 자신감 있게 행성들의 생애를 제대로 알 수 있게 된 것은 최근의 일이다. 지질학, 해양학, 생물학, 대기과학, 천문학 등 다양한 분야의 상호협력으로 지구의 활동 메커니즘, 무자비한 햇빛에 대한 반응, 궁극적으로 지구가 어떻게 사라질 것인가 등을 짐작할 수 있게 됐다."(<지구의 삶과 죽음>, 14~15쪽)

생명의 상호작용 : 잡초와 지구

만일 잡초가 없어진다면 세상은 어떻게 보일까. 차도와 인도는 물론이려니와 공터나 학교 운동장 혹은 논밭에서 무리를 이루고 살아가는 잡초가 없어지면, 세계는 어떤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올 것인가. 자연의 토대가 사라져버린, 황량하고 메마른 미래도시가 연상되지 않는가. <풀들의 전략>을 쓴 이나가키 히데이로는 단적으로 말한다.

"잡초는 쓸모가 없으니까 모조리 없애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않다. 잡초는 인간과 같은 공간에서 살도록 태어난 식물이다. 그런 잡초마저 살아갈 수 없는 환경이 되어버린 세상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잡초가 잡초답게 살 수 없는 세상에서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겠는가?" (<풀들의 전략>, 197쪽)

인간의 필요와 욕망에 따라 모든 잡초가 제거되거나, 우심한 환경오염으로 잡초까지 사라지면 인간도 건강하게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이다. 잡초가 세상에 등장한 것은 인간의 소용을 위해서가 아니며, 모든 생명에는 나름대로 존재하는 뜻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을 거시적이고 과학적으로 해석하면 다음과 같다.

"식물은 동물에게 필요한 산소를 만들어냈고, 동물은 식물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이산화탄소를 내놓았다. 동물과 식물은 먹고, 죽고, 시체가 썩고 다시 태어나는 순환과정을 무수히 반복했다. 생명은 근본적으로 서로 협조하도록 설계되어 있었고, 그런 과정에서 지구에는 더욱 다양한 생물종이 출현했다." (<지구의 삶과 죽음>, 64쪽)

세상의 어느 것도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 생명의 최종 분해자인 미생물의 활동이 모든 것을 무로 돌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 그것은 죽음과 탄생의 지속적인 순환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특정한 목적을 위해 생물이나 생물종을 파괴하거나 개조하는 행위, 나아가 새로운 생물종을 만들어내는 일에는 세심한 사려와 반성적 행위가 수반되어야 한다.

인간의 욕망 : 잡초와 작물, 가축화의 의미

ⓒ 도솔
욕망의 관점으로 자연과 생명을 들여다보면 인간이 이룩한 발전에 내재한 문제들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문명의 붕괴>에서 제레드 다이아몬드가 주장한 것처럼 육류에 대한 현대인의 지향과 욕망이 과도한 목장의 출현을 불러왔고, 그 때문에 메탄가스 방출이 심화돼 지구온난화 속도가 더 빨라졌다. 이것을 확대해보자.

"인간은 어떤 분야에서는 생물종 다양성을 촉진하고, 다른 분야에서는 억누른다. 인간은 오랜 옛날부터 진화의 힘을 자기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이용해왔으며, 인간의 의지가 아니라면 존재하지 않았을 동식물종을 만들어냈다. '가축화'라 불리는 작업은 식량을 얻기 위한 효율적이고도 잔혹한 생물 개조작업이자 식량 확보에 위협적인 종을 가차 없이 제거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지구의 삶과 죽음>, 70쪽)

종족보존과 확산을 위해 인간이 진행한 작업의 결과물이 오늘날 부지불식간에 우리 식탁에 오르고 있다. 유전자를 변형해 만든 콩이나 옥수수 가공식품, 바다에서 대량으로 양식하는 온갖 어패류, 페니실린을 비롯한 각종 항생제를 맞고 성장해 도축된 육류 등을 본보기로 들 수 있다. 잡초와 작물의 관계도 이와 비슷하다.

"작물도 옛날에는 잡초의 하나였다. 인간이 그 중 쓸모 있는 점만 택해 개발한 것이 작물이다. 작물과 잡초는 다르지만, 작물이나 잡초 모두 인간과 맺은 관계 안에서 경이적으로 진화한 식물이란 점에서는 다르지 않다. 작물이 인간의 관리에서 벗어나 잡초가 되거나, 잡초가 인간의 눈에 들어 작물이 되는 일도 드물지 않다." (<풀들의 전략>, 127쪽)

지은이는 메귀리나 어저귀, 고마리나 참억새 등을 예로 들며 작물과 잡초의 관계를 설명한다. 경춘선을 타고 가다보면 북한강변에 '새터'라는 곳이 있다. 서울 인근 대학생들이 야유회 장소로 즐겨 찾는 장소다. 그런데 새터라는 지명은 참억새를 관장했던 곳이라는 뜻에서 비롯했다는 것이다. 예전에 참억새는 지붕을 이는 고급재료로 쓰였다고 한다.

무엇을 할 것인가

오늘날 세계상을 확립하고 올바로 이해하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하루가 멀다 하고 들려오는 과학기술 문명의 눈부신 성과는 현대인의 오감을 자극한다. 반면 우리의 의식과 생활습관은 그 속도를 온전히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여기서 존재와 의식의 괴리가 발생한다. 과학만능주의가 지배하는 물질문명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인구, 기술, 정보 등이 오늘날과 같은 속도로 증가한 시대는 일찍이 없었다. 과학발견 속도가 이처럼 빠른 적도 없었으며, 이런 발견의 성과를 종합하고 이해하기가 이토록 어려웠던 적도 일찍이 없었다." (<지구의 삶과 죽음>, 23쪽)

신속하게 변화, 발전하는 과학기술의 시대를 살면서도 인간이 마냥 행복한 것은 아니다. 지구촌 곳곳에서 발생하는 수많은 재앙과 전쟁의 소용돌이나, 과도한 집착과 욕망이 불러온 폐해는 개인적인 범주를 훨씬 벗어나고 있다. <지구의 삶과 죽음>을 쓴 지은이들은 인간의 한계를 지적하면서 과제를 제시한다.

"기술은 무한히 발전하지 않는다. 물리와 화학법칙은 보편적이며, 인간의 요구에 따라 변하지 않는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는 아름다움과 다양성, 자원이 넘쳐나는 영광스러운 한여름이다. 그러나 여름이 언제나 계속되지는 않는다. 이 순간의 지구는 매우 소중한 선물이며, 아끼고 즐겨야 할 대상이다." (<지구의 삶과 죽음>, 280~298쪽)

이들이 제기하는 최종적인 과제는 지구의 운명을 결정할 두 가지 최대변수인 '이산화탄소량'과 지구로 들어오는 '태양에너지량' 가운데 전자에 집중되어 있다. 이산화탄소량에 따라 지구에 주기적으로 기상이변이 발생했다는 사실을 근거로, 그들은 인간의 자제를 촉구한다. 그런데 사태가 여기에 이르면 묘한 모순을 느낄 수밖에 없다.

1992년 리우 '유엔환경회의'에서 채택한 '교토의정서'는, 186개 기후변화협약 회원국 가운데 유럽연합 15개 회원국은 8%, 미국은 7%, 일본은 6%를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세계 최대의 온실가스 배출국인 미국은 '교토의정서' 자체를 거부하고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다. 미국 학자들은 이산화탄소량을 줄여야 한다고 촉구하지만, 미국 정부는 '나 몰라라'하며 외면하고 있는 실정 아닌가!

잡초의 삶도 사람과 다르지 않다

고작 한해를 사는 풀이건, 180년까지 산다는 거북이건 목숨은 유한하다. 얼마 전 언론보도에 따르면 몇몇 과학자들은 우주 나이를 190억 년 정도로 추산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니까 그 이전에는 우주 어디에도 '공허' 자체를 제외하면 아무 것도 없었다는 뜻이다. 그러다 지구가 탄생하고, 어느 땐가 생명이 발생해 오늘날 우리가 사는 지구가 되었다.

70억명에 육박하는 인간의 번영도 놀랍거니와 지구 도처에서 각축을 벌이며 치열하게 생존을 추구하는 뭇 생명들의 노력도 눈물겹다. 그러므로 우리 주위에서 소리 없이 살아가는 다양한 생명에게 따뜻한 눈길을 던져보는 일도 그다지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사람들은 잡초를 이름 없는 풀이라고 멸시한다. 그러나 이름 없는 풀은 없다. 사람들이 모를 뿐이다. 잡초에겐 자기만의 이름과 아름다움과 특징이 있다. 그것들은 다양하고 생기에 차 있다. 잡초의 삶도 사람과 다를 바 없다. 잡초의 특징은 무엇보다 역경에 끊임없이 마주서는 강인함이다. 잡초는 식물계의 하층민인 셈이다." (<풀들의 전략>, 6쪽)

잡초의 눈높이에서 잡초를 인간과 동일한 생명체로 이해하고 바라보려는 지은이의 시도가 아름답고 의미 있게 다가온다. 지극히 짧은 시간을 살면서도 나름의 수수께끼와 사연을 담고 있는 여러 잡초를 들여다보면서 지은이는 잡초의 생활방식에서 인간의 그것을 느낀다고 기술한다. 지은이가 바라보는 생명의 신비와 깊이가 느껴지는 대목이다.

불과 100년 만에 인간은 마차에서 비행기로, 레이저와 인터넷, 로켓과 우주여행 시대로 진입했다. 그러나 과학기술의 발전은 제한되어 있으며, 지금 인류는 과도한 화석에너지 사용과 환경오염으로 지구를 위험수위로 몰아가고 있다.

언젠가 수명을 다하게 될 지구의 목숨을 앞당기려는 인간들에게 잡초가 던지는 전갈을 들어보라.

"얼마나 덧없는 생인가!"

덧붙이는 글 | <지구의 삶과 죽음>, 피터 워드 - 도널드 브라운리 지음, 이창희 옮김, 지식의 숲, 2006.

<풀들의 전략>, 이나가키 히데히로 지음, 최성현 옮김, 도솔, 2006.


풀들의 전략

이나가키 히데히로 지음, 최성현 옮김, 미카미 오사무 그림, 도솔(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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