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장사나 해 볼까?"

요즘 이런 말을 심심찮게 듣습니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번듯한 직장에 다니고 있는 친구인데도 불구하고 짧아지는 정년에 잦은 구조조정으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더구나 비정규직이거나 혹은 실업자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미래는 더더욱 두렵습니다.

저는 "장사가 말처럼 쉬운 줄 아나?"하면서 웃어넘기지만, 정말 장사해서 먹고 사는 일은 어렵습니다. 시커멓게 타 들어가는 속을 보여줄 수도 없는 노릇이니 그저 웃을 수밖에요.

하루 백반 40그릇 남짓... 재료비 남기기도 어려워

▲ 세 개에 1000원 하던 순두부가 하나에 500원으로 올라도, 한 통에 1500원하던 양상추가 2000원으로 올라도 식당의 특성상 음식 가격을 올리기는 힘듭니다.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습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작년 3월 저는 부산 중앙동에서 조그마한 음식점을 내게 되었습니다. 20대 후반의 젊은 여자가 장사를 시작한다고 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의아해 하기도 했고, 걱정도 많이 했습니다. 그러나 남들처럼 '대박신화'는 아니지만, 열심히 하루하루 살다 보면 테이블 두개인 식당이 3개로, 4개로 늘어날 거라는 기대와 설렘이 있었기에 그렇게 두렵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런 생각으로 버티기에는 매일 매일 닥쳐오는 현실이 그리 만만하지 않았습니다.

우리 식당은 직장인을 대상으로 1인분에 4천원짜리 가정식 백반을 파는 곳입니다. 최소한 재료비라도 남기려면 하루에 50~60그릇은 팔아야 합니다. 하지만 요즘은 30~40그릇이 고작입니다. 작년 여름부터 매출이 줄어든다 싶더니 계속 바닥을 치고 있습니다. 요즘 배달을 다니다 보면 사무실이 비어 있는 게 많이 눈에 띕니다. 주문 오던 곳이 뜸하다 싶어 찾아가 보면 사무실이 비어 있더군요. 계속되는 경기 침체로 절대적인 수요가 줄어들고 있는 겁니다.

반면 세 개에 1000원 하던 순두부가 하나에 500원으로 올라도, 한 통에 1500원 하던 양상추가 2000원으로 올라도 식당의 특성상 음식 가격을 올리기는 힘듭니다. 저희 가게는 사무실이 많은 식당 밀집 지역에 자리하고 있어서 야채를 대주는 분이 있습니다. 대부분 가게가 이 분에게서 야채 등 각종 재료를 구입하는데 대금 결제를 오전에 하는 일은 없습니다. 주로 오후에 돈을 치르는데 아침부터 돈 나가면 재수 없다는 속설을 핑계로 대지만 실상은 바로 바로 값을 치를 돈이 없기 때문입니다. 아침에 외상으로 받은 재료를 가지고 점심나절 돈을 벌고, 오후에서야 그 재료비를 치르는 겁니다.

하루만 매상이 떨어져도 당장 내일 구입해야 할 재료비며, 각종 공과금, 집세, 인건비 등이 밀리게 되니 저의 꿈과 희망에서 점점 멀어지는 것 같은 두려움이 들기도 합니다. 가게 주인의 독촉 전화는 "부쳐 드릴 게요"라는 말로 넘어갈 수 있었지만, 매일 같이 얼굴을 마주하는 이모들의 인건비가 밀릴 때는 정말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은 심정이 됩니다. 결국 2명이던 배달 이모를 1명으로 줄였습니다. 이렇게 이름만 '사장'이지 일하는 사람들 인건비 맞춰 주고 정작 자신은 가져갈 돈이 없는 '사장'은 비단 저뿐만이 아닙니다.

남지 않는 장사 없다고? 권리금이라도 받으려고 문 여는 것

▲ 구조조정으로 살아갈 방법이 없는 사람들과 취업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사람들이 어쩔 수 없이 생존을 위해 선택하는 것이 바로 '장사'입니다.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습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장사꾼이 장사해서 남는 게 없다는 건 거짓말이라고 하죠? 그거 거짓말 아닙니다. 지금 상당수 자영업자들은 자금난에 쪼들리면서 현금서비스 등으로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습니다. 저도 고민 끝에 가게를 내놓기로 하고 부동산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그랬더니 장사 잘된다고 하는 다른 가게들도 내놓은 지 오래라며, 가게를 내놓아도 나가기 쉽지 않을 거라고 하더군요. 그리고 지금 장사하는 건 권리금이라도 어떻게 건져 보려고 마지못해 하고 있는 거라고 덧붙였습니다.

제가 이곳에 가게를 열고 난 후 이미 4곳이 문을 닫았습니다. 3개월을 넘기지 못하고 가게 주인이 바뀐 곳도 있습니다. 저도 부동산에 가게를 내놓았지만 찾는 사람이 있다는 연락 한번 없네요.

상황이 이렇다 보니 기존 상인들은 떠들썩하게 개업을 하고, 떡도 돌리고, 전단도 돌리면서 개업을 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웃음을 지을 수가 없습니다. 저도 처음에는 또 다른 식당이 들어오기 때문에 텃세이거나 경쟁심 때문일 거라고 여기고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막상 가게를 시작하고 보니 새로 개업하는 집을 보면 저 역시 걱정이 앞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사하려는 사람들은 늘어나고 있습니다. 정부는 이런 현상을 '난립'이라고 표현하더군요. 하지만 자영업자들의 '난립'은 자영업자들이 '대박 신화'를 좇아 선택하는 방식이 아닙니다. 구조조정으로 살아갈 방법이 없는 사람들과 취업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사람들이 어쩔 수 없이 생존을 위해 선택하는 것이 바로 '장사'입니다.

내가 받은 정부 컨설팅 "열심히 한번 해 봐라?"

지난 달 말 정부는 소위 '자영업 대책'이라고 하는 걸 내놓았다가 일주일 만에 번복했습니다. 자영업자를 지원하겠다면서 자격증제를 도입해 무분별한 '난립'을 막겠다는 것이었죠. 그 대안으로 프랜차이즈로 전환을 유도하겠다는 것도 있었는데요, 그 안은 돈 없는 자영업자를 위한 것인지 프랜차이즈업자들의 주머니를 불리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영세업자들을 위한 컨설팅을 제공하겠다고 정부는 호기 있게 장담했지만 저는 그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장사를 시작하기 전 돈이 부족해서 대출을 받는 건데, 정작 대출은 장사를 시작한 뒤에야 나온다는 겁니다. 결국 대출 심사가 끝날 때까지 약 한달 정도 급하게 돈을 다른 곳에서 빌릴 수밖에 없는 형편이 됩니다.

사업 계획서를 검토하는 과정에서도 정확한 분석이나 필요한 정보는 없었습니다. 정작 제가 장사를 시작하려고 하는 곳에 대한 상권분석서는 있지도 않았습니다. 전문적인 컨설팅을 원한다고 했더니 컨설팅 하는 사람의 명함을 건네주더군요. 한번의 전화 통화만 있었을 뿐 저는 그 분의 얼굴도 보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받을 수 있는 컨설팅은 "열심히 하면 좋은 성과가 있을 것"이라는 격려뿐이었습니다.

주5일 근무제는 어떤가요. 저는 개인적으로 주 5일 근무제에 반대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주 5일 근무제를 실시하면서 우리 같은 자영업자들은 전혀 고려되지 않은 건 문제입니다. 토요일은 워낙 평일보다 매출이 떨어지는데 지금은 1/4정도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래도 식당이기 때문에 그 몇몇 사람을 위해 문을 여는 거지요. 주 5일 근무를 시작하면 우리 같은 영세 식당에 피해가 갈 게 뻔한데 정부는 아무런 대책도 내놓지 않았습니다.

가게를 개업하기 전날의 설렘이 떠오릅니다. 잠도 못 자고 정신도 없었지만 그저 열심히 하면 될 거라는 희망으로 부풀었던 기억…. 하지만 일년여가 지난 지금, 생활비도 제대로 만들지 못하고 하루하루 빚만 늘리고 있는 지금 제 모습이 너무도 답답합니다. 그저 노력만으로 되지 않는 일들이 너무 많은 현실 앞에서 정부는 제대로 알고 대책을 내놓았으면 합니다. 정말 "장사나 해 볼" 현실이 아니니까요.

태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