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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김밥집에서 일합니다

요즘 저는 오토바이를 탑니다. 노란색 오토바이 앞에 철가방을 두고서 말입니다. 오토바이 색깔과 같은 노란 헬멧을 쓴 저의 모습을 처음 보게 되었을 때는 웃음이 나오곤 했는데, 지금은 헬멧 쓰고 배달 다니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저, 사장되었습니다.

사실 사장이라고 해봤자 6평도 채 안되는 가게에 테이블 두개가 고작인 식당에 손수 배달하는 처지이지만 말입니다. 이제 개업한 지 꼭 3일이 지났습니다. 저에게는 그 시간이 한 3달은 된 것 같습니다. 하루 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도무지 기억할 수 없을 정도로 정신이 없었습니다.

우선 사무실과 인쇄소들이 많은 곳에 조그마한 가게를 하나 장만했습니다. 별다른 경험도 없고 뛰어난 요리 실력을 갖춘 것도 아닌데, 식당을 한다고 하니 걱정을 하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아직 젊으니 차라리 다른 곳에 더 많은 투자를 하라는 충고도 있었지만, 그래도 다른 것보다 하고 싶으니 어쩌겠습니까? 한번 해봐야겠지요.

준비를 하면서부터 부딪히게 되는 것이 하나둘이 아니었습니다. 저의 가게는 식당들이 즐비한 골목입니다. 그 곳에서 20년씩 장사를 하신 분들도 계시고 새로운 메뉴들이 자주 등장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당연히 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습니다. 또 다른 식당이 들어서게 되니 주변 사람들이 반길수만은 없는 것 또한 당연합니다. 식당을 준비하면 인사도 드릴 겸 주변 식당에 식사를 하러 가니 서로 어색한 웃음만이 오고 갑니다.

생각보다 쉽게 가게가 구해지기는 했는데 그 다음부터가 문제였습니다. 페인트 칠을 하는 것부터 간판을 달고 그릇들을 사고, 주방을 꾸미는 것 하나 하나 쉽지 않았습니다. 준비한 돈이 넉넉했다면 일이 훨씬 더 수월했을 터인지만, 아끼려고 하니 신경만 더 쓰이고 일은 일대로 되지 않기도 했습니다.

그럭저럭 준비가 되고 개업 날 아침에 일어났더니 온 몸이 뻐근하더군요. 긴장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개업전 날 홍보 전단지를 들고 여기저기 찾아다니다 보니 조금 피곤했던 것 같습니다.

개업 날은 그야말로 정신이 쏙 빠진 날이었습니다. 태어나서 가 본 적이 열 손가락 안에 드는 곳이니 지리도 낯설고, 점심 시간 1시간 안에 모든 주문을 다 소화해야 하니 배달도 빨라야 하는데, 마음처럼 쉽지 않았습니다. 급기야 헤매다 두번이나 도로 돌아왔으니 더 말할 필요가 없겠지요. 주문을 했던 분들은 늦게 온다고 독촉 전화는 오고, 배달은 밀려가는데 몸은 하나뿐이니 축지법이라도 배워둘 걸 하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점심 시간이 끝나면 거짓말처럼 사람들도 없고 전화도 조용합니다. 그러면 배달갔던 그릇들을 찾아오고 설겆이를 하고 나면 저희의 점심시간이 돌아옵니다. 아침을 일찍 먹고 점심을 늦게 먹으니 허기가 질 수밖에 없습니다. 식당에서 일하는 사람이야 말로 진짜 밥을 제대로 못 챙겨먹는다는 말은 사실입니다. 식사 시간도 시간이지만, 찬이 떨어지거나 하면 부족한 찬으로 밥을 먹어야 하니깐 말입니다.

정신없던 개업일이 지나고 다음날이 되니 조금씩 익숙해지는 것이 생깁니다. 그릇 포장하는 솜씨도 늘었고 오토바이 타는 리듬도 빨라졌습니다. 저와 함께 배달일을 하는 이모도 조금씩 흐름을 타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실수하고 부족한 곳이 많아 부끄럽기도 합니다.

아직 새벽 시장 보는 것이 서툴어서 나름대로 싸다고 사온 물건이 더 비쌀 때도 있고, 늘 웃겠다는 다짐도 피곤함에 조금씩 일그러지는 것도 느껴집니다. 일하는 사람들이 편한 작업 환경이 필수적이라는 것을 아는데, 좁은 주방과 낮은 화력, 그리고 약한 물로 일하는 사람들의 피곤을 풀 시간을 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고작 제가 커피를 타는 것으로 만회할 뿐이지요.

일을 정리하고 다음날의 찬거리를 준비하고 퇴근합니다. 하루 하루 퇴근 시간이 빨라지는 것을 보니 일이 잡혀가는 것 같기도 합니다. 내일도 저는 새벽에 시장에 다녀와서 식당으로 출근합니다. 12시가 되면 다시 노란색 헬멧을 쓰고 철가방을 들고 오토바이를 몰게 되겠지요. 아직은 익숙한 것보다 낯선 것이 더 많지만, 점차 익숙해 질 것 같습니다.

얼마나 자주 배달 이야기를 쓸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제가 배달하면서 느끼는 것을 많이 전해드리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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