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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우리당 정동영 의장과 지도부들이 일산홀트복지타운에서 벌인 장애인 목욕 봉사가 언론을 통해 보도되면서 이와 관련, 장애계의 반발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정동영 의장을 비롯한 지도부는 지난 2일 일산홀트복지타운(이사장 말리홀트)을 방문해 장애인 목욕 봉사 활동을 가졌다. 이날 황색 앞치마를 두른 정동영 의장과 2명의 관계자가 장애인을 목욕시키는 과정에서 다리를 위로 치켜드는 장면이 사진과 동영상으로 찍혀, 신문은 물론이고 지난 3일 일부 방송에서도 여과 없이 방영된 것이 문제가 된 것.

장애계, 언론사 및 일산홀트복지타운에 문제의 사진 삭제·사과 요구

▲ 일산홀트복지타운 홈페이지에 게재됐던 문제의 사진(장애인의 얼굴이 노출된 것을 모자이크 처리함)
ⓒ 이철용
장애계는 지난 4일부터 성명서를 발표하는 등 거세게 반발하고 나섰다.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이사장 이성재)는 지난 4일 '더 이상 장애인을 이용하지 마라'는 제목의 성명서에서 '장애인을 이용한 이미지 정치 중단과 방송법에 장애인 차별 금지 규정 제정, 장애인의 치부를 시설 운영에 이용하지 말 것'을 요구했다.

또 이 성명서는 '여야 가릴 것 없이 정치인들은 틈만 나면 자신의 이미지를 위해 국민을 이용하곤 했는데, 더 이상 장애인을 이용한 이미지 정치를 반복하지 말고 소리 없이 진정한 장애인복지를 펼치길 바란다'고 밝혔다. 이어 일산홀트복지타운 관계자에 대해서도 실망감을 감출 수 없다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언론 보도에 대해 '장애인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고발 하기보다 시청률에만 급급해, 약자의 현실을 이용해 선정적인 볼거리를 만들어내는 못된 습성을 뜯어고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같은 날, 장애인이동권쟁취를위한연대회의(이하 이동권연대)도 '장애인에게도 인권은 있는가?'라는 제목의 성명서를 발표하고 '열린우리당의 중증장애인을 이용한 정치적인 목욕쇼에 분노한다'며 강하게 항의했다.

이동권연대는 '이번 보도는 열린우리당과 언론이 그토록 연출하고 싶었던 감동의 모습은커녕 자신들의 정치적 이해를 위해 한 장애인의 인권을 무참히 짓밟는 위선에 분노를 금할 수 없다'고 밝히고, 나아가 '당사자의 의지와 관계없이 중증장애인을 물건처럼 이들에게 제공한 일산홀트복지타운에 대해서도 분노를 표한다'고 밝혔다.

또 이들은 열린우리당에게 '한 중증장애인의 인권을 철저히 짓밟은 이번 사태를 공식적으로 사과하고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방송과 신문, 인터넷 등에서 선정적으로 보도한 것에 대해 언론사들도 공개적으로 사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그러한 장면을 연출하도록 내버려 둔 일산홀트복지타운도 잘못을 인정하고 공개 사과와 재발 방지에 힘써야 한다'고 전했다.

사단법인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회장 장기철)도 지난 4일 성명서를 내고 '지난 17대 총선에서 9번째 공약으로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을 내걸었던 열린우리당의 이번 행동은, 과연 그들이 '장애인이 차별 받지 않는 세상을 만들겠다'고 약속했던 열린우리당이 맞는지 의문스럽다"며 사진을 공개한 <연합뉴스> 측에도 유감을 표하며 사과와 사진 삭제를 요구했다.

한국여성장애인연합(상임대표 이예자)도 지난 5일 성명서를 발표하고 '정치인, 복지관계자, 언론인을 비롯한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가 발가벗겨진 채 유린당하는 장애 아동의 현실을 직시하며, 뼈를 깎는 자기 반성이 있어야 한다'라며 장애아동인권 보장을 위한 법적, 제도적 장치와 일상의 문화를 함께 만들어 갈 것을 촉구했다.

<연합뉴스> 사진부장, "개인적으로 유감"
열린우리당, "언론사에 사진게재 중지 요청"


이러한 장애계의 반발에 당시 사진을 공개한 <연합뉴스>의 사진부장은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장애계의 이러한 반응과 요구를 연락을 받아 알게 되었다"고 답했으나, 무엇이 문제인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는 "타 언론사에서도 같은 사진이 실렸는데, <연합뉴스>에만 항의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처사이다"라고 말했다.

해당 사진을 게재한 <연합뉴스>의 국회출입 담당자인 이희열 차장 역시 "특별한 의도가 없었던 것을 문제 삼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 차장은 "그 곳 목욕탕이 협소해 사진기자들이 다 들어갈 수 없어 사진기자 1인과 영상 1인이 들어가 촬영을 하고 공동으로 사용한 것"이라 당시 정황을 설명했다. 그러나 이 차장은 이어 "장애계에서 강하게 반발하는 것에 대해 개인적으로는 물의를 일으켜 죄송하다"고 말했다.

이번 사건에 대해 열린우리당측에서는 "문제를 인식해 홈페이지에 게재되었던 사진을 지난 4일 즉시 삭제했다"고 밝혔다. 이어 "공식적으로 당 차원에서 입장을 정리한 바는 없고 공보실 내부 논의를 통해 대책을 마련할 예정"이라고 입장을 정리했다. 또한 "문제가 된 사진을 게재한 언론사에 사진 협조 요청을 한 사실이 없고, 6일 중으로 해당 언론사에 사진게재 중지를 공식적으로 요청을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일산홀트복지타운 기획행정과 신상문 과장은 "장애계를 통해 구체적으로 이번 사건과 관련해 반발이 있다는 사실을 전해듣지 못했다"며 "이번 일은 일상적인 방문에서 이루어진 자원봉사였기에 특별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지만 문제가 확대되고 장애계가 반발하고 있는 것에 대해 개인적으로 사과를 표한다"고 밝혔다.

장애인들, "장애인 이용한 이미지 정치 중단하라"

이번 사건에 대해 장애계 단체들은 물론, 장애인 당사자들도 거세게 항의를 하고 있다. 선진희라고 밝힌 한 네티즌은 열린우리당 홈페이지 게시판에 "30살 넘은 청년을 그 많은 사람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목욕시킨 것은 분명 인격모독입니다. 그는 아무 데서나 소변을 보는 어린 아기가 아닙니다. 그에게는 분명 큰 상처였을 것입니다. 모를 것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라며 장애인 당사자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은 행동에 대해 일침을 가했다.

이번 일은 다시 우리에게 '장애인에게 인권이 있는가?'라고 묻고 있다. 그동안 일부 언론이 장애인들을 동등한 인격체로서 일반인과 대등하게 대하기보다 철저하게 시혜와 동정의 대상으로 받아들인 것에 대해 반성하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지난달 20일 장애인의 날, 일부 장애계는 장애인차별철폐 투쟁의 날을 선포하며 '시혜와 동정은 그만, 당당한 권리를'을 외쳤다. 그러나 그 외침이 채 가시기도 전에 발생한 이번 사건은 기성 정치와 제도권이 아직도 장애인을 '시혜와 동정의 대상'으로 보고 있다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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