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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실미도>와 <태극기 휘날리며> 등이 잇달아 천만 관객을 동원하면서, 한국영화의 중흥기를 이끌고 있다고 합니다. 이와 함께 할리우드를 비롯해 미국에서는 한국의 스크린쿼터를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도 더욱 강해지고 있습니다.

한신대학교 조성대 교수는 이같은 스크린쿼터의 폐지와 축소 주장에 '쏘렌토와 산타페가 잘 나간다고 자동차시장 전면 개방해야 하나'라고 반문하면서, 한국영화의 특수성과 영화산업을 비춰볼 때 시기상조라는 입장을 보내왔습니다... 편집자 주)


▲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의 한 장면.
최근 한국영화의 천만 관객시대를 맞아 사회일각에서 스크린쿼터를 폐지 내지 축소해야 한다는 논의가 일고 있다. 한국영화가 국제적 경쟁력을 갖추었기에 이제 영화산업부문에서 자유무역의 논리가 타당하다는 얘기인 듯하다.

그러나 이러한 논의는 소위 대박영화의 흥행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어 '장님 코끼리 만지기'식의 취약한 논리구조를 지니고 있다. 마치 '쏘렌토와 산타페가 잘 나가고 있으니, 자동차시장을 전면 개방해도 된다'는 것과 다른 얘기가 아닌 것이다.

한국영화에서 스크린쿼터제는 1966년 제2차 영화법개정 이후 3차례의 수정을 거쳐 현재 연간 2/5 이상(146일) 한국영화를 상영해야 한다는 오늘의 제도에 이르고 있다.

물론 경제정책적 관점에서 이는 보호무역정책이라 할 수 있으며 자유무역정책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한국영화산업의 현주소를 나타내는 다음의 지적들은 영화산업의 더 많은 자유무역화의 타당성을 검토하기에 앞서 진지하게 고려해보아야 할 문제점들이다.

한국영화산업의 현주소

먼저, 한국영화산업은 1980년대 초반 증가 추세를 보이다가 중반 이후 대폭 하락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물론 1960-70년대의 한국영화산업의 영세성이 가져온 구조적 모순의 결과라고도 볼 수 있지만, 1980년대 중반 이후 한국영화산업의 침체는 1985년 한미영화협상을 시발로 진행된 영화시장개방과 결코 무관하지 않았다는 점도 지적되어야 한다.

이 시기 한국영화시장 개방은 한마디로 미국 할리우드 영화산업의 전략의 결과물이었는데, 크게 외국영화사의 국내영화업 허용, 수입편수쿼터제 및 외화수입가격 상한선 폐지, 외화수입 프린트 벌수 제한 폐지 등을 골자로 하고 있었다. 이후 한국영화산업은 외화수입에 치중하는 형태를 보였는데, 이는 결국 한국영화의 제작 경쟁력 확보에 큰 차질을 빚었었다.

둘째, 최근 1990년대 중반 이후 한국영화의 중흥이 스크린쿼터보다는 국내영화시장 개방의 효과라는 산업연구원의 정책보고서가 있었는데, 이는 자유무역지상주의가 가져온 섣부른 판단이라고 보인다. 우선, 보고서는 최소 2000년 이전까지 전국영화관들이 스크린쿼터를 제대로 준수하지 않았다는 점을 전혀 고려하지 못하고 있다.

예를 들어, 스크린쿼터 문화연대가 활동을 개시한 1993년 전국 영화관들이 허위로 보고한 한국영화 상영 일수는 무려 55일에 달했고, 이 해 한국영화의 시장점유율은 15.9%에 불과했다. 그 후 문화연대의 활동이 강화되면서, 허위상영일수는 1999년부터 한자리수로 떨어졌고, 이는 한국영화의 점유율 향상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다시 말해, 1990년대 말부터 비로소 스크린쿼터제의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스크린쿼터제는 자본의 안정적 수급 보장할 수 있는 유일한 장치

셋째, 1990년대 중반 이후 한국영화의 부흥은 단순한 시장개방의 효과라기보다는 스크린쿼터 문화연대의 활동과 더불어 이 시기부터 본격화된 대기업자본과 금융자본의 영화산업진출, 멀티플렉스 상영관의 도입, 새로운 제작자와 감독의 진출 등의 산업현대화적 요소의 결합이 가져온 결과라고 보아야 한다는 점이다.

특히, 1990년대 후반부터 본격화된 금융자본의 진출은 자본 공급의 확대와 이로 인한 제작비 규모의 증가 등 한국영화시장의 파이를 키우는 역할을 담당했고, 이는 바로 합리적 제작시스템 구축 - 실증적인 시장분석을 통한 마케팅 개념의 도입, 제작과 기획의 분리, 프로듀서 시스템의 정착 등 분야별 전문화, 산업적 마인드 - 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이러한 한국영화산업의 현대화 이면에 스크린쿼터제와 문화연대의 적극적인 활동이 뒷받침되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한국영화의 사활은 안정적 자본공급과 안정된 수요에 달려 있는데, 영화산업의 거의 모든 분야에서 자유무역이 시행되고 있는 한국영화시장에서 스크린쿼터제는 현재 자본의 안정적 수급을 보장할 수 있는 유일한 제도적 장치로 기능하고 있다.

넷째, 현재 스크린쿼터의 폐지 내지 축소가 미국이 내건 '한미투자협정'체결의 전제조건임에도 주목해야 한다. 투자협정 자체의 실익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연구가 필요함을 열외로 묶어두더라도 미국 영화인협회의 지적은 48%대의 한국영화 국내시장점유율이 할리우드영화의 세계시장 잠식력을 고려할 때 과도하다는 문제제기이다.

그러나 그들의 지적은 1999년 이후 한국영화의 현대화와 더불어 영화시장이 급속히 팽창했고, 이와 더불어 2002년 할리우드영화의 매출액 또한 1997년보다 약 2.5배 증가했다는 사실을 놓치고 있다. 다시 말해, 한국영화의 성장은 외국영화의 매출을 잠식하는 것이 아니라 파이자체를 키워 동반성장을 꾀하는 소위 '윈-윈'게임을 주도해왔고, 스크린쿼터제는 이를 가능케 한 하나의 시스템으로 기능해왔다고 볼 수 있다.

유치산업 단계 못 벗어난 한국영화산업

마지막으로 아직 한국영화산업이 유치산업단계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점이 지적되어야 한다. 한국영화산업이 시장점유율 40%대를 넘어선 것은 불과 5년밖에 되지 않았다. 또한, 비록 비약적으로 증가했다곤 하나 한국영화의 수출이 전체 수입구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03년을 기준으로 6.6%에 불과하다. 전체 매출액의 50% 이상을 해외시장에서 벌어들이는 할리우드영화나 30% 정도를 해외시장에서 거둬들이는 홍콩영화에 비교할 때, 이는 아주 미약한 수준이라 할 수 있다.

아울러, 한국영화가 수출실적의 약 62%를 여전히 아시아시장에 의존하고 있음도 고려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 점유율 50%시대를 맞아 '이제 스크린쿼터제가 없어도 무방하지 않겠는가'고 말하는 것은 시장점유율 신화에 사로잡혀 코끼리의 모습을 바로 보지 못하는 장님의 우를 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일찍이 독일의 정치경제학자 프리드리히 리스트는 '각 국가들의 경제발전 정도가 달라 섣불리 자유무역정책을 채택하면 영원히 강대국의 원료공급국의 지위를 벗어나지 못하게 된다. 오히려 발전도상에 있는 국가의 경우 자신의 경제발전 정도에 상응하는 경제정책을 채택해서 경제발전 정도를 높여 강대국의 수준에 이르렀을 때 비로소 자유무역과 국제분업을 실현해도 늦지 않다'고 역설한 바 있다.

천만 관객의 시대와 점유율 50%라는 외형적 신화에 모두가 과도하게 집착하는 이 시점, 19세기 중엽 세계의 공장으로 군림하던 영국에 대응하여 조국 독일의 경제발전을 고민했던 리스트의 고견을 경청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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