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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는 우리 사회의 각종 현안에 대해 좀더 깊이 있는 분석과 대안을 독자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매주 2차례에 걸쳐 [대안칼럼]을 내보내고 있습니다. 대안연대회의 소속 국내외 학계와 연구소 전문가 18명이 칼럼진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성공회대학교 NGO대학원 차명제 교수는 이번 17대 총선을 통해 지역주의 해체와 여성 진출, 진보성향 정당 의회 진출 등 헌정사상 초유의 사건들이 전개됐다고 평가했습니다. 차 교수는 특히 한국의 시민사회가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지, 또 새롭게 변화된 현실에 어떻게 대응해 나갈 것인지 자문하고 바른 대안을 찾아야 한다고 밝히고 있습니다...편집자 주


제17대 총선에서는 지난 선거와 달리 한국 정치의 미래를 결정할 눈에 띄는 몇 가지 중요한 결과들이 도출되었다.

이를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첫째 지역주의가 부분적으로 해체되고 있다는 것이다. 열린우리당과 민주노동당이 전국적으로 비교적 고른 지지를 얻었다는 점이 이를 반증하고 있다.

둘째는 여성들의 정치 진출이 그 어느 때보다 획기적으로 증가했다는 것이다. 여성의원이 전체 의석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13%에 이르러 16대보다 무려 배 이상 증가하였다.

셋째는 소위 진보 성향의 민주노동당이 10석을 얻어 의회에 처음 진출했다는 것이다. 민노당은 지역구에서도 두 석을 확보했을 뿐만 아니라 유권자들로부터 12,3% 이상의 정당 지지를 받아 단번에 민주당을 제치고 제3당의 위치를 확보한 것이다.

넷째로는 소위 수구 보수 정치인들이 대거 몰락하고 정치 신인들이 전체 의석의 거의 2/3를 차지할 정도로 정치판의 물갈이가 진행되었다. 이와 함께 열린우리당이 과반수이상의 의석을 얻어 원내 제1당이 되어 안정적인 국정운영이 가능케 되었다. 1945년 이후 사상 최초로 진보 진영이 국회의석의 과반수를 획득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끝으로 선거 기간 중 각 정당들은 정책을 제시하고 이에 대한 유권자들의 지지를 얻으려 노력 했다기 보다는 유권자들의 감성을 자극하는 상징적 의미를 전달하고 감정에 호소하는 구호를 외침으로써 정책이 실종된 선거판을 마련하였다. 이는 정당들의 정책생산 능력의 부재를 드러내는 것으로써, 지금까지 한국의 정당들이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17대 총선이 한국 시민사회에 남긴 것

이렇게 헌정사상 초유의 사건들이 전개되면서 한국의 시민사회는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지, 또한 새롭게 변화된 현실에 어떻게 대응해 나갈 것인지 자문하고 그에 대한 바른 대안을 찾아야 하며, 동시에 이를 과감히 살천 할 수 있어야 한다.

필자가 보기엔 이렇게 변화된 한국의 정치 판도는 필연적으로 시민운동의 형식과 방식의 변화를 요구하게 될 것이며, 이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한다면 한국의 시민운동은 급속한 사회적 영향력의 상실은 물론이고운동의 급격한 퇴조를 맞을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이번 총선의 의미를 시민사회가 냉철하게 분석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첫째, 이번 총선에서도 한국의 시민사회는 지난 총선과 마찬가지로 부적격 정치인들의 낙천․낙선을 위한 “총선연대 시민운동”을 전개했었다. 그러나 지난 16대 총선과는 달리 분야별로도 낙천․낙선자 명단이 발표되었는가 하면, 바른 정치인들을 당선시키기 위한 “물갈이 연대” 등과 같은 활동도 있었다. 또한 이 운동에 진보 성향의 운동단체 뿐만 아니라 보수 성향의 운동단체들도 적극 참여하였다.

시민운동 진영이 이렇게 분산되고 경쟁적으로 난립했기 때문에 과거에 비해 사회적 파급효과도 미미했고, 시민들의 관심과 참여도 저조한 편이었다.

물론 선거를 앞두고 발생한 탄핵 정국으로 인해 시민단체에 의해 전개되었던 모든 운동이 일시 중단되기도 했고, 정국이 반탄핵과 찬탄핵 진영의 양극단으로 나눠져 사회적 분열 현상이 고조된 와중에서 시민운동이 제기한 이러한 이슈가 여론을 동원하고 정치적 압력으로 제대로 작용할 수 없었던 것도 자명한 현실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은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고, 시민사회의 역량 여하에 따라 오히려 상당한 호기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시민단체들, 새로운 이슈 발굴하고 정책 대안 제시해야

둘째, 17대 국회는 사실 지금까지 시민사회가 꾸준히 요구해 온 정치 개혁의 가능성을 예고하고 있다. 여성의원의 비율이 과거에 비해 무려 두 배 이상 증가했고, 진보정당인 민주노동당이 원내 제3당의 위치를 굳혔으며, 수구 보수 정당이었던 한나라당이 제2당으로 전락하면서 수구의 이미지를 벗고 합리적 보수로 거듭날 가능성도 높아졌다.

또한 지금까지 사사건건 발목을 잡혀왔던 정부 여당이 과반수 이상의 의석을 획득함으로써 청와대, 행정부와 함께 삼각 동맹을 형성하여 계류되고 유보되었던 개혁정책들을 강도 높게 추진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되었다.

이러한 의회의 판도변화는 다음과 같은 정치적 전망을 가능케 한다.

첫째, 시민사회가 요구해 왔던 다양한 개혁 이슈들이 국회에서 신속히 제도화되어 추진될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에 시민단체들은 이제 새로운 이슈를 발굴하고 정책대안들을 꾸준히 제시해야 한다. 물론 시민운동이 정책 대안 제시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지금까지 한국 시민운동의 주요 과제였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둘째, 각 정당이 정책 정당화로의 전환을 모색하게 될 것이다. 우선 민노당이 정책 정당의 위상을 선점할 가능성이 가장 많으며, 한나라당 역시 합리적 보수로의 전환을 모색하면서 보수진영을 결집시키고 지지를 이끌어 내기 위해 수구 이미지를 탈색시키려고 노력할 것이다.

그러므로 이에 대한 유일한 탈출구는 과거의 지지기반이었던 지역주의와 가치로서의 반공이데올로기를 청산하고 보수적인 관점에서 합리적 정책들을 생산하여 국민들로부터 지지를 이끌어내려 노력할 것이다.

시민사회, 자신 능력 비해 과대평가되고 확장된 측면 있어

열린우리당 역시 진보적 개혁세력으로의 자리매김을 위해 다양한 개혁적 정책들을 양산해 낼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모든 정당들은 시민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경쟁적으로 정책생산에 몰두하게 될 것이다.

탄핵정국을 통해 한나라당은 그들의 수구 보수적 이미지로는 더 이상 설 자리가 없다는 현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며, 그들의 이러한 변신의 시도는 국회에서도 정책정당인 민노당에 대응하기 위한 생존 전략일 수밖에 없다.

이러한 한국 정치의 변화로 말미암아 이제 정당이 시민단체의 강력한 경쟁자로 등장하게 된 것이다. 지금가지 시민단체들은 준정당적 역할을 해오면서 실질적으로 한국 사회에서 정신적 기득권 집단의 지위를 누려왔다. 반면에 한국의 정당들은 정책생산을 방기하고 민생문제를 철저하게 외면하면서 그들만의 게임규칙에 따라 각종 특혜와 기득권 재생산에 몰두해 왔고, 이러한 정치는 국민들의 공적 1호로 지목 받기에 이르렀다.

이에 반해 시민단체들은 정치개혁과 민주주의 발전을 위한 헌신적 노력을 기울였으며 해당 분야의 전문가 집단의 참여를 이끌어 내어 사회발전을 위한 각종 정책 대안들을 생산해 왔고, 동시에 그들의 정치적 중립성과 도덕적 순수성을 견지해 왔다.

시민사회의 이러한 면모에 대해 정치에 식상하고 불만이 컸던 국민들은 전폭적인 지지와 성원을 보냈고, 그 결과 한국의 시민사회는 전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짧은 기간 동안 급속히 성장할 수 있었다.

달리 표현하자면 한국의 시민사회는 국민들의 정치 불신에 대한 반사이익을 톡톡히 누려온 셈이다. 이러한 배경에서 한국의 시민사회는 자신의 능력에 비해 과대평가되고 비정상적으로 확장되어 온 측면도 없지 않았던 것이다.

시민사회단체, 전문성 확보와 백화점식 운동방식 지양해야

그러나 이제 역설적으로 제17대 국회를 통해 정치가 정상화될 가능성이 높아진 만큼 한국 시민사회도 정상화될 가능성이 농후해졌다. 각 정당들은 용역의 형태로 시민단체와의 협력관계를 구축하여 그들이 필요로 하는 정책을 얻으려 할 것이며, 더 나아가 각 분야의 전문가들과의 협력이나 영입을 적극 추진할 것이다.

또한 전문가들도 정당들이 그들의 추구하는 이념과 가치를 명확히 하고 이에 합당한 정책적 대안을 제사하려 노력한다면 적극적으로 정당 활동에 참여할 수도 있을 것이다.

정당들이 제도화된 틀 안에서 그들에게 주어진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정당성 확보와 국민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노력할 때, 전문가들도 지금까지 정당에 대한 유보적 자세에서 탈피하여 오히려 정당을 이용하여 그들의 목적을 실현하려 할 수도 있다.

이렇게 변화된 현실을 시민단체들은 정확히 이해하고 이에 대한 다음과 같은 대응방안을 모색할 수도 있을 것이다. 첫째, 고도의 전문성 확보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 백화점식 운동방식은 지양되어야만 할 것이다.

어떤 의미서 시민단체들은 지난 10여 년간의 활동 경험을 축적하고 있어 사회 어느 집단도 갖지 못한 그들만의 전문성을 확보하고 있다. 그러나 이를 더욱 심화시킬 필요가 있다.

사안별로 정당들과 경쟁을 할 수도 있고 정부 정책의 정확한 모니터링과 평가를 수행할 수 있어야만 일반 시민들로부터의 지지를 얻을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시민들의 지지와 후원은 바로 시민단체의 존립 근거가 되기 때문에 반드시 필요한 전제조건인 것이다.

둘째, 특정 정당과의 정책개발을 위한 선택적 공조가 가능할 것이다. 이를 통해 시민단체는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정당으로부터 단체 운영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17대총선은 시민운동의 위기이자 기회

셋째, 시민단체 일부가 정당화할 필요도 있을 것이다. 시민단체는 그들의 주장을 정당에게 위탁하고 위임하기 보다는 실제 제도권 정치에 참여하여 실현하려는 계기를 마련할 수도 있다. 세계 80여 개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녹색당이 좋은 예이다.

넷째, 주민들과 밀착되어 그들과 함께 하는 시민운동의 확대가 필요하다. 지금까지 한국의 시민운동은 준정당적 역할을 수행해 오면서 지난 90년대 한국의 민주주의 발전에 지대한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이제 - 물론 가정이지만 - 정치가 정상화된다면 지금까지 한국의 시민운동이 상대적으로 등한시해왔던 주민운동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특히 지방의 시민운동은 허약하기 그지없고, 시민사회의 기반도 매우 취약하다. 그러므로 지방에서의 시민운동의 활성화를 위해 중앙조직 축소와 지방조직 강화, 지방 시민운동단체와의 연대 강화를 모색할 필요가 있다.

▲ 성공회대 차명제 교수
ⓒ 오마이뉴스 자료사진
다섯째, 시민운동영역의 확장이 필요하다. 시민운동단체에서 상대적으로 등한시 해왔던 사회서비스 분야, 민간재단 설립, 국제협력과 개발 분야, 문화와 교육 분야 등 정부나 정당이 간여할 수 없거나 생산성이 뒤떨어지는 분야로의 사업 확장이 필요하다. 즉 코포라티즘적인 형태의 시민운동을 통해 정당이나 정부와의 역할분담을 고려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제17대 총선은 시민운동의 위기이자 기회인 셈이라 하겠다. 따라서 이러한 시대적 변화 요구를 정확히 이해하고 이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다면 한국의 시민사회는 미래에도 시민들의 지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며, 사회적 영향력도 더욱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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