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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는 우리 사회의 각종 현안에 대해 좀더 깊이 있는 분석과 대안을 독자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매주 2차례에 걸쳐 [대안칼럼]을 내보내고 있습니다. '대안연대회의' 소속 국내외 학계와 연구소 전문가 17명이 칼럼진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한밭대 조복현(경제학)교수는 지난해 말부터 불어닥친 LG카드 사태 등 불안한 금융시장의 해법을 고민하는 글을 보내왔습니다. 특히 일부 금융기관이 국내 금융시장의 혼란을 우려하기보다는 자사 이익에 따라 행동하는 것에 대해 금융감독당국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습니다...<편집자 주>


지난 2월 11일 경제부총리에 취임한 이헌재 장관은 취임사를 통해 “시장은 달면 삼키고 쓰면 뱉고, 내키면 하고 싫으면 안하는 철없는 어린 아이들의 놀이터가 아니다. 시장이 깨지든 말든 내 이익만 챙기면 된다는 억지나 불장난이 용납되어서는 안된다”라고 말했다. 이 말은 특히 은행 등 금융기관들을 겨냥하고 한 말로 알려졌다.

이와 같은 부총리의 말은 시장경제원리의 기초를 제공한 애덤 스미스의 말이나 올해 초부터 전경련을 비롯한 경제 5단체들이 앞을 다투어 실시하고 있는 경제교육의 내용과는 크게 대립된다.

애덤 스미스는 시장에서 각 개인들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행동하는 것이 시장전체의 이익을 가져다 주고 더 나아가 보이지 않는 손에 이끌려 사회전체의 이익을 증진시킨다고 말하고 있다. 또 경제 5단체들도 기업의 이기적 행동을 적대시하며 기부나 고용보장과 같은 사회적 책임을 더 강조하고 있는 지금의 경제인식을 바로잡겠다고 교육목표를 제시하고 있다.

과연 시장경제는 어떻게 운용되어야 하는 것일까? 또 시장에서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경제행위를 부총리의 말처럼 철없는 어린애의 짓으로 보아야 하는가, 아니면 애덤 스미스의 말처럼 사회전체의 이익을 증진시킬 경제인의 행동원리로 보아야 할 것인가? 또 만약 부총리의 말이 옳다면 철없는 불장난을 어떻게 억제해야만 할까?

시장은 완전한가 : 특히 금융시장은?

완전하고 이상적인 시장, 즉 경쟁적이고 정보가 완전하며 하부제도가 충분히 갖추어진 시장을 전제로 한다면 애덤 스미스의 말대로 개인의 이기적 행동이 사회전체의 이익을 증진시킬 것이다. 그러나 만약, 시장이 경쟁적이지 않고 정보도 불충분하며 제도도 미비한 상태라면 개인의 이기적 행동은 자칫 시장을 불안정과 혼란에 빠트리기 쉽다.

일반 상품들이 즉석에서 곧바로 거래되는 재화시장의 경우도 대부분의 경우는 완전하고 이상적인 시장과는 거리가 멀다. 많은 경우는 독점적이고 또 정보는 왜곡되어 있기 일쑤이다. 각 나라에서 독점을 금지하고 공산품의 내역을 표시하도록 강제하고 있다고는 하더라도, 독점적 행동과 과장광고의 극성으로 인해 개별 경제주체의 이기적 행동이 결국은 사회전체 이익의 희생을 초래하는 결과를 자주 낳는다.

이러한 시장의 불완전성과 그로 인한 개인 이익과 사회전체 이익의 상충은 금융시장의 경우에 이르면 한층 더 심각해진다. 금융시장은 이중적으로 불완전하다. 하나는 채권자가 채무자의 상태를 채무자만큼 잘 알지 못하며 또 채무자는 자주 채권자의 이익을 희생해 자신의 이익을 증대시키려는 위험한 일을 꾸민다는 것이다. 이는 이미 널리 알려진 정보의 비대칭성 문제이다.

또 다른 하나는, 이것은 필자가 특히 강조하는 것으로, 금융시장에서의 거래는 거래가 즉석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미래의 상환시점까지 연결되어 있고 이 미래의 상환가능성에 대해 어느 누구도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는 점이다. 이것은 바로 미래의 불확실성 문제이다.

이러한 정보 비대칭성이나 미래 불확실성 문제로 인해, 금융시장에서는 특히 애덤 스미스의 말처럼 개인의 이기적 행동이 사회전체의 이익을 가져다 주지 못한다. 오히려 반대로 이헌재 장관의 말처럼 개인의 이기적 행동은 사회전체를 혼란에 빠트릴 어린애의 불장난으로 끝날 가능성이 크다.

금융기관의 이기적 행동을 어떻게 봐야하나

불장난으로 끝날 이기적 행동의 하나는 잘 알려진 금융기관의 도덕적 해이이다. 정보의 비대칭성으로 인해 나타나는 도덕적 해이는 은행이나 투자신탁회사가 예금자나 위탁자의 이익에 반해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보다 높은 위험을 감행하는 것을 가리킨다.

이 도덕적 해이는 결국 자신은 물론, 금융시장 전체를 위태롭게 만들어 사회적 이익을 크게 해치기 쉽다. 따라서 모든 나라의 금융당국은 감독과 규제의 초점을 이 도덕적 해이의 방지에 맞추고 있다. 건전성 감독은 대표적인 예이다.

또 다른 하나는 덜 알려졌을 뿐만 아니라, 불장난이 아닌 시장경제원리의 기본으로 이해되기조차 하는 유동성 추구행위이다. 금융기관들은 미래의 불확실성으로부터 자신을 안전하게 하기 위해서 유동성을 추구한다.

은행은 가능한 한 단기대출을 선호하는 한편 장기대출을 거린다. 증권투자자들은 언제든 이익이 크게 나거나 손해가 크게 될 것이라고 판단되면 즉각 증권을 팔고 빠져나오려 한다. 이것은 금융거래의 속성이기조차 하다.

이러한 유동성 추구의 보장이 때로는 기업의 장기 설비투자에 필요한 주식발행을 보다 원활하게 하기도 한다. 유동성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불확실성으로 가득찬 미래를 대상으로 하는 투자를 어떻게 손쉽게 할 수가 있겠는가?

그러나 유동성의 추구와 보장은 더 큰 해로움을 가져다주는 경우가 많다. 특히 개인이나 개별 금융기관의 유동성 추구는 기업의 장기투자를 저해하기도 하고 또 금융시장 전체를 큰 혼란에 빠트리기도 한다.

경기가 좋지 않거나 시장상황이 불안정해지면 개별 금융기관의 이기적인 유동성 추구는 더욱 확대되는데, 이렇게 되면 기업은 자금을 구할 수 없게 되어 부도로 몰리게 되고 금융시장은 가격폭락 등과 같은 더 큰 혼란에 빠지게 된다.

금융기관의 불장난을 막을 방법은 없나?

다행히도 도덕적 해이는 건전성 감독을 통해 상당 정도 감독과 규제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불행히도 유동성 추구는 금융자유화라는 명목 하에 방치되고 있고 더욱이 시장원리에 부합하는 선진적 금융기법이라고 권장되고 있기조차 하다.

우리 금융활동에서 나타난 유동성 추구행위의 몇 가지 큰 예를 보면 대다수 은행들의 기업금융 기피와 단기 가계대출로의 집중 현상, LG카드사 처리 문제에 대한 국민은행과 외국계은행들의 비협조, 주식시장에서의 단기거래의 성행 등이다.

제일은행이 앞장서고 다른 은행들도 뒤따랐던 기업금융기피와 가계금융 확대전략은 높은 수익성을 낳는 새로운 선진 금융기법으로 권장되었고, LG카드사 처리과정에서 정부방침에 반대한 국민은행과 외국계은행들은 관치금융에 맞선 시장수호자처럼 이해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이기적 유동성 추구행위가 낳은 결과는 무엇인가? 가계금융 확대는 기업의 투자부진과 부동산 거품 및 가계대출 부실의 확대로 되돌아 왔고, LG카드사 처리 비협조는 금융시장의 혼란 지연으로 나타났다.

물론, 유동성 추구행위를 규제할 마땅한 방법은 없다. 자금배분에 일일이 정부가 간섭하는 예전의 관치금융으로 되돌아가는 것은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 그렇다고 하여 개별 금융기관들의 이기적인 유동성 추구행위를 선진적 금융기법이라거나 시장수호 행위로 받아들이는 것도 시장을 위기에 빠져들도록 방치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금융기관에 대한 자금배분 건전성 감독 절실

필자는 오래 전부터 지나친 유동성 추구행위가 초래하는 금융시장의 혼란을 막기 위해서는 정부로부터 독립된 신용관리위원회와 같은 사회적 합의제도가 느슨한 형태로라도 자금배분의 가이드라인을 정하고 그를 감독해야 한다는 주장을 전개해 왔다.

현재와 같은 자본건전성 감독만으로는 개별 금융기관의 도덕적 해이를 막을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지나친 유동성 추구행위에 따르는 금융시장 전체의 위험을 막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현재 모든 나라들이 금융시장 전체의 적정 자금량을 조절하기 위해 통화정책을 수립,시행하고 있고, 또 개별 금융기관의 파산에 따르는 시장전체의 혼란을 막기 위해 건전성 감독도 수행하고 있다.

▲ 한밭대 조복현 교수
ⓒ 오마이뉴스
그러나 자금배분이 적절하게 이루어져 성장도 돕고 금융시장도 안정시킬 정책이나 감독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이는 시장에 맡겨야 한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앞에서 본 것처럼 지나친 유동성 추구행위는 도덕적 해이 이상으로 금융시장은 물론 경제전체에 위험을 가져다 준다.

새로운 기구가 아니더라도 기존의 금융통화위원회나 금융감독위원회가, 도덕적 해이를 막기 위한 ‘자본건전성 감독’처럼 지나친 유동성 추구를 막기 위한 ‘자금배분건전성 감독’을 수행해야만 한다.

그래야만 지나친 유동성 추구라는 또 다른 불장난을 억제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불장난을 감독하는 일이야말로 시장이 보다 더 정상적으로 잘 작동되도록 만드는 하부구조인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오마이뉴스> 대안칼럼의 필진은 한신대 이해영 교수(국제정치), 한밭대 조복현 교수(금융), 켐브리지대 장하준 교수(개발경제), 성공회대 유철규 교수(한국경제), 국민대 조원희 교수(경제체제), 고려대 김균 교수(정책이념), 대안정책연대 정책위원 정승일 박사(재벌 및 기술경제), 인천대 이찬근 교수(국제금융), 계명대 김영철 교수(경제), 일본 교토소세대 이정희 교수(동북아경제), 여성개발원 정진주 박사(보건,여성), 전북대 정태석 교수(사회), 성공회대 차명제 교수(정치, 환경), 전북대 송기도 교수(중남미), 중앙대 신광영 교수(사회), 서울대 송태수 박사(한국정치연구소), 숙명여대 여건종 교수(문화) 등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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