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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는 우리 사회의 각종 현안에 대해 좀더 깊이 있는 분석과 대안을 독자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매주 2차례에 걸쳐 [대안칼럼]을 내보내고 있습니다. '대안연대회의' 소속 국내외 학계와 연구소 전문가 17명이 칼럼진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전북대 정태석(사회교육학부) 교수는 최근 일부에서 일고 있는 평준화 폐지 여론에 대해 교육을 통한 계급세습을 심화시킬 것이라고 강하게 반박하고 있습니다. 이어 한국사회에서의 뜨거운 감자인 교육문제에 대해 그 대안을 두차례에 걸쳐 모색합니다...<편집자 주>


요즈음 우리 사회에서는 학력저하, 공교육 붕괴, 교육을 통한 계층세습 등 교육문제가 점점 더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다. 그래서 며칠 전 교육부에서는 평준화의 틀을 유지하면서도 공교육 정상화와 사교육비 경감 등을 가져오기 위한 대책을 내놓았다. 나름대로 의미 있는 안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한편에서는 이런 교육 문제들을 평준화 폐지와 연결시키려고 여론조작을 하는 부류들이 있다. 이들은 모든 문제가 평준화로 인한 것이며, 평준화가 폐지되고 교육에 경쟁논리가 도입되기만 하면 마치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떠들어댄다.

그런데 이런 논리가 일견 매력적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그 이면에는 돈 있는 사람들의 자기이익이 숨어있다. 사교육비를 더 많이 들일수록 더 좋은 성적을 내어 더 좋은 대학교를 갈 수 있는 입시제도 하에서, 그들은 사교육에 투자할 충분한 돈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또 어떤 사람들은 평준화가 학생들의 선택권을 침해하고 다양성 교육을 억압하며 학력을 저하시킨다고 말한다. 물론 현대 교육이 ‘기회의 평등’이라는 이념조차 없다면, 평준화를 유지해야 할 아무런 근거도 없고 심지어 정부가 교육문제에 나서야할 명분도 없다.

하지만 적어도 ‘교육기회의 평등’이라는 이념에 동의한다면, 선택권이나 다양성이 기회의 평등과 조화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 그렇지 않고 무조건 ‘자유로운 선택’이니 ‘자유경쟁’이니 하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내심 ‘자유’의 이름으로 ‘교육기회의 평등’을 해체해 버리고자 하는 생각을 품고 있는 것이다.

평준화 폐지는 교육통한 계급세습을 심화시킬 것

한번 진지하게 물어보자. 오늘날 도대체 무엇이 학생들의 선택권을 침해하고 있는가? 그것은 바로 돈이며, 사교육이며, 학군이며, 특수목적고이며, 입시지옥이다. 도대체 무엇이 다양성 교육을 억압하고 있는가? 그것은 바로 ‘전과목 달성’을 목표로 하는 현행 입시제도이다. 도대체 무엇이 학생들의 학력을 저하시키는가? 그것은 바로 객관식 시험이며, 선행학습이며, 단순반복적, 암기식 학습이다.

이런 문제들이 어떻게 평준화의 폐지를 통해 달성될 수 있단 말인가? 더구나 평준화의 폐지는 교육을 통한 계급 세습을 심화시킬 것이 뻔한 데 말이다. 그러므로 교육기회의 평등을 위해서는 평준화를 유지해야 하며, 사교육비의 사회적 낭비를 막기 위해서는 더욱 그러하다.

진정으로 청소년들의 미래를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평준화 폐지를 주장하기에 앞서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 할 일들이 있다. 먼저 우리 학생들은 지금 건강하게 자라고 있는가? 성적 경쟁을 위한 과외와 선행학습으로 마음 놓고 뛰어놀 시간도 없이 스트레스를 받으며 살아가고 있다.

친구들 간의 이기주의적 성적 경쟁은 인간관계를 황폐화시키고 있다. 성적 스트레스로 초등학생마저 자살하고 있는 현실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학생들에게는 행복추구권과 건강권은 사라진지 오래다. 이제 노동자들의 ‘주 40시간 노동제’를 얘기하듯이 학생들의 ‘주 40시간 학습제’를 생각해 보아야 할 때다.

그렇다면 이렇게 공부한 우리 학생들은 과연 공부에 투자한 시간만큼 학력의 향상을 이루었는가? 호기심을 충족시키고 창의력을 키울 수 있는 재미있는 공부가 아니라 성적을 위해 책을 암기하는 공부를 하고 있는 현실에서 학력향상은 기대하기 어렵다.

학력이 단순히 객관식 문제풀이를 의미한다면 아마 학력 향상이 이루어졌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스스로 문제를 찾고 해답을 찾아가는 창의적인 학습능력을 기준으로 본다면 학력 저하는 당연한 일이다. 수능시험을 위해 객관식, 암기식 공부, 선행학습과 반복학습에 익숙한 학생들에게 학력 저하 운운 하는 것은 기성세대로서 참으로 무책임한 태도가 아닌가?

과연 경쟁만이 진정한 학력 향상을 이루는가

여기서 우리는 이제 오늘날의 중등교육, 아니 교육 전반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 학생들은 도대체 무엇을 위해 경쟁하는가? 그들은 왜 과도한 경쟁에 매달리지 않으면 안 되는가? 그들은 과연 공정한 경쟁을 하고 있는가? 그들은 과연 경쟁을 통해서 진정한 학력 향상을 이루고 있는가?

학생들의 입시경쟁의 뿌리에는 사회의 경쟁이 있다. 입시경쟁이 치열해지는 것은 사회가 학력, 직업, 계급에 따라 소득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니 부모라면 누구나 자녀가 돈 잘 버는 직업을 가지기를 원할 것이며 이를 위해 입시교육에 투자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렇게 사회적 경쟁의 결과가 불공정하다 보니 부모들로서는 자녀의 입시교육에 모든 운명을 거는 것이 불가피해진 것이다. 특수목적고가 소위 ‘일류대 입시목적고’가 되고 있는 실상은 바로 이러한 현실을 잘 보여준다.

▲ 정태석 교수
ⓒ 오마이뉴스
그러니 궁극적으로는 학력간, 직업간, 계급간 소득 불평등이 완화되고 능력과 기여에 따라 공정하게 분배받는 사회제도가 갖춰지지 않는다면 과열 경쟁이 완화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므로 공정한 분배제도, 강력한 복지제도, 다양한 일자리 창출을 마련하는 것이야말로 학생들을 입시지옥에서 해방시키는 최선의 대안이라고 할 수 있겠다.

덧붙이는 글 | <오마이뉴스> 대안칼럼의 필진은 한신대 이해영 교수(국제정치), 한밭대 조복현 교수(금융), 켐브리지대 장하준 교수(개발경제), 성공회대 유철규 교수(한국경제), 국민대 조원희 교수(경제체제), 고려대 김균 교수(정책이념), 대안정책연대 정책위원 정승일 박사(재벌 및 기술경제), 인천대 이찬근 교수(국제금융), 계명대 김영철 교수(경제), 일본 교토소세대 이정희 교수(동북아경제), 여성개발원 정진주 박사(보건,여성), 전북대 정태석 교수(사회), 성공회대 차명제 교수(정치, 환경), 전북대 송기도 교수(중남미), 중앙대 신광영 교수(사회), 서울대 송태수 박사(한국정치연구소), 숙명여대 여건종 교수(문화) 등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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