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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니어에는 '우리'라는 뜻에 해당하는 단어가 두 개 있다. 하나는 'kita(끼따)'이고 또 다른 하나는 'kami(까미)'이다. 이 두 단어의 차이는 존대어냐, 일반어냐의 차이가 아니라 명백한 개념의 차이에 있다.

'끼따'는 지금 내 글을 읽는 독자를 포함한 우리 모두, 즉 말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나 다 포함한 우리 모두이다. '까미'는 내 말을 듣고 있는 상대방을 제외한 채 내 편에 서 있는 사람들만을 지칭한다. 즉 대한민국 국민 우리 모두는 '끼따'이고, 우리 가족에서 우리는 '까미'이다.

너와 나를 명백히 가르는 이 단어, 까미. 너의 집단과 나의 집단이 구분될 때, 까미는 형성된다.

자, 이제 이 글의 주제인 길거리 재판이라는 본론에 들어가기 전에 두가지 상황의 예를 제시하겠다.

1. 두 남자가 길에 세워져 있던 오토바이를 훔치다가 사람들에게 들켰다. 그들이 도둑이란 걸 안 사람들이 그들을 쫓아 몰려온다. 달아나던 그들은 폭우가 쏟아져 범람지경에 이른 강가에 도달하자, 사람들에게 잡히느니 강으로 뛰어드는 쪽을 선택했다. 결국 두 사람 중 하나는 익사한 채 발견되고, 나머지 하나는 실종 되었다.

2. 한 남자가 차를 몰고 변두리 교외의 마을을 지나가다가 길가에 나와 놀던 세살배기 소년을 치어 숨지게 했다. 그 주변에 있던 주민들은 차에 타고 있던 남자를 끌어내렸다. 그리고, 한 집의 방에 가둔 다음, 일 나간 마을 주민들을 부르러 갔다. 그 동안 이 남자는 창문으로 달아나 제 발로 경찰서를 찾아갔다.

이 두 사건은 모두 인도네시아의 수도 자카르타에서 발생한 일이었다. 자카르타는 유동인구 포함해 인구 1천만을 넘는 대도시이다. 그리고 대형빌딩, 쇼핑몰이 들어서 있는 현대화된 외향의 도시다.

왜 이 두 사건에서 세 남자는 주민들의 손을 피하려고 우리 한국인들의 상식으로는 이해가 안되는 선택들을 했을까? 답은 죽을 것이 무서웠기 때문이다.

각종 사건 사고의 범죄자들을 주민들이 직접 응징에 나서는 것을 인도네시아에서는, 거리 재판 - hukum jalan 또는 hakim jalan 이라고 한다. 여기서 주민들은 자체 처벌-main hakim sendiri를 행사한다.

보통 길거리 재판이 발생하는 경우는 범죄 현장에서 들켜서, 명백히 범인임이 드러났을 때이다. 주로 소매치기나 절도의 경우가 이에 해당하며, 피해자가 도움을 요청하면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손에 잡히는 대로 무기를 하나씩 들고 쫓아오기 마련이다.

그래서, 범인이 사람들 손에 잡히면, 그는 맞아 죽는다. 맞아 죽을 만큼이 아니라, 정말로 죽는다. 그러니, 잡혀서는 죽을 게 뻔한 범인들은 어떻게든 달아나려는 것이다.

폭우가 범람한 강에 뛰어들면 죽을 위험이 도사리는데도 주민들에게 맞아죽는 것보다는 살아남을 확률이 높다. 그리고 교통사고를 낸 남자의 경우는 어린 아이를 치어 죽였기 때문에, 가만히 방에서 기다렸다간 돌아온 주민들에게 죽임을 당할 것이 분명한 것이다.

방에 갇혔을 때, 이미 그는 주민등록증이나 자신이 누구인지 알 수 있는 것들을 압수당했을 것이다. 설령 달아나 집으로 간다고 해도 결국에는 찾아와서 자신에게 해꼬지를 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니 알아서 경찰서로 도망가는 게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이다.

이런 거리 재판에 관한 기사가 거의 매일 한 건 이상 신문에 실린다. 많은 사례 중에서 거리재판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상징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사례로 앞의 두 경우를 든 것이다. 그나마 자카르타의 경우는 그래도 주민들의 단죄행위를 경찰이 통제할 수 있는 편이다.

경찰이 오기 전에 이미 사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긴 하지만, 그래도 목숨이 붙어 있다면 경찰의 보호를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지방으로 내려가면 주민들의 단체행동이 워낙 거세 경찰이 채 손을 쓸 수가 없는 경우도 발생한다.

2002년 4월 6일자 인니 일간지 메디아 인도네시아(Media Indonesia)에 따르면 중부 자바의 시와락(Siwarak)이란 마을에서 초등학교 여학생 강간사건 용의자인 22세의 얀토 수타르노(Yanto Sutarno)가 수백명의 마을주민들에 의해 산 채로 화형되었다.

기사에 따르면 그는 4월 3일, 한 초등학교 4학년 여학생이 과외수업을 받고 돌아오는 것을 납치해 인근 마을 묘지로 데려가 강간했다. 밤늦도록 딸이 돌아오지 않자 부모는 이웃주민들과 딸을 찾아나섰다. 얼마 후 부모는 쇼크 상태에 빠진 그녀를 발견하고 병원에 데려갔다. 소녀는 부모에게 얀토가 자신을 강간했다고 말했고, 부모는 경찰서에 이 사실을 고발했다. 이에 경찰은 즉시 용의자를 잡아들였다.

거리 재판이 벌어진 것은 다음날인 4월 4일이다. 오후 2시경 경찰서에 몰려온 수백명의 주민들은 얀토를 내놓으라고 시위를 벌였다. 경찰측은 얀토를 내줄 수 없다며, 대화로 해결하자고 말했다. 그러나 주민들은 경찰서 감방을 때려 부수고 들어가 얀토를 끌어냈다. 그리고 그를 줄로 묶어 대로에서 4km 정도 끌고 다니며 매질을 한 후 사건발생 장소에서 산 채로 화형시켰다.

해당 경찰서는 지방경찰청에 긴급 도움을 요청해, 300명의 경찰이 급파되었지만, 이미 용의자는 사망한 후였다. 이 사건과 관련해 43명의 주민이 체포되어 이중 18명이 피의자로 고소되었다. 해당 지방경찰청장은 관공서 파괴행위와 임의 처벌행위와 관련해 피의자들이 고소된 상태라며, "이런 사건이 반복해서 발생하고 있기 때문에, 이번 만큼은 그냥 넘어갈 수 없다"고 말했다.

이러한 거리 재판은 일종의 관습법이다. 국가 법체계 내에서는 인정되지 않지만, 실제로는 사회에서 통용되는 법으로 엄연히 존재하고 있어서 처벌이 쉽지가 않다. 거리 재판이 발생할 때마다 인간성이 말살된 범죄행위라는 비판의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법질서 확립이 필요하다며 경찰과 정부, 지식인들이 앞다투어 논평을 내놓지만, 실제 국민들 사이에서는 별 실효성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인니의 문화적 배경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잠깐 딴소리를 하겠다. 인니는 군도 국가이다. 고대에 이 땅에는 대륙의 국가개념에서 등장하는 명확한 국경 개념이 없었다. 셀 수 없는 많은 섬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중앙집권적 통제력이 확실하게 미치기 어려운 지리환경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거대 해상왕국이 발달했을 때도 국가의 개념은 통치권 하에 있다기보다는 영향권 하에 있는 여러 개별 소국가, 소지역체들의 합산이었다. 그러므로, 개별 지역체들은 거의 독립적인 자치권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네덜란드가 식민지배자로 들어와 340년간을 머물렀지만, 그들의 식민개념은 주로 경제적인 면에 치중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풍습이나 문화에 관해서는 무리한 충돌이 일어나지 않도록 자율권을 보장하는 편이었다.

그런 특징은 현대에 들어서까지도 이어져, 다종족, 다언어, 다문화를 가진 인도네시아는 다양성 속의 통일이란 이름으로 개별 지역의 문화나 관습에 대해 인정하는 편이었다. 인정은 하되 통합에 저해된다고 판단되면 확실한 억압이 뒤에 버티고 있는 시스템이었다.

그러므로, 자위권 발동이라 볼 수 있는 이러한 거리 재판의 관습법도 어느 정도는 인정되어졌던 것으로 보인다. 공식적으로는 인정하지 않지만, 사건이 발생하면 약간의 처벌만을 받은 뒤 풀려나는 경우가 일반적이었다.

이 거리 재판 속에는 범죄에 대한 공동 대응이라는 특징이 나타난다. 거리 재판에 나서는 사람들은 사실 그 범죄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 초등학생 강간 사건이나 교통사고의 경우는 같은 마을 주민들이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더 유대감이 강했다고 하더라도, 오토바이 절도사건에서는 피해자와 표면상 아무 상관도 없는 지나가던 사람들이 거리 재판에 나섰다.

이들을 거리 재판으로 묶어내는 것이 무엇인가? 그것이 "까미"라고 임의로 이름을 붙여본 공동체 의식이다. 범죄를 저지른 "나쁜" 사람과 그로 인해 고통받고 있는 "선량한" 나를 보면서, 선량한 나로서 소속집단의 공동대응에 참여해 "까미(우리)"를 지켜야 한다는 것이 일반화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거리 재판에 나선 사람들은 죄의식을 별로 가지지 못한다. 희생자는 응당 처벌을 받아야할 나쁜 사람이었고, 자신들은 같은 선량한 사람들을 지켜낸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과연 그 죄라는 것이 죽을 만한 것인가? 여기서 심각한 고민이 발생한다. 사람을 죽여도 좋을 만한 죄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가? 굳이 죄의 경중을 따져서 보자면, 사소한 도둑질과 미성년자를 강간한 것은 엄청난 차이가 있다.

물론 그래서 강간범은 더 처참하게 죽음을 맞았는지는 몰라도 결국 두 죄 모두에 귀결되는 것은 죽음이다. 여기에 대해 인니인들의 태도를 관찰해 보자면, 처벌의 결과가 죽음이라는 것에 지나치다는 생각들은 하면서도 한편 용인할 수 있는 일이라고 받아들이는 것 같다.

이런 시각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지만, 인니인들은 비인간적이다라는 판단은 쉽게 나오질 않는다. 범죄장면을 봐도 나에게 피해가 끼칠까봐 외면하고 가는 게 일반적인 우리 사회의 경향도 그다지 인간적이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인니의 거리재판에서 또 다른 문제는 국가 법질서 체계가 무너진다는 점이다. 이러한 임의 처벌행위를 용인하다 보면 자의적인 판단을 가지고 함부로 행동할 수 있는 여지를 주게 된다. 그래서 경찰당국은 수시로 거리 재판에 대해 강력 처벌을 하겠다고 천명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말처럼 쉽지가 않다.

거리 재판에 나서는 사람들의 숫자가 워낙 많다보니 어느 누구에게 죄를 물을 것인지가 분명하지 않고, 책임소재를 명확히 지울 사람을 찾기도 어렵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동참했다는 것은 거리 재판의 당위성을 사람들이 인정한 것이기에 지나친 처벌을 하면 반발도 만만치 않다.

수하르토가 하야한 이후 최근 몇 년간 거리 재판의 빈도가 증가하고 있다는 실정은 더욱 안타깝다. 거리재판이 증가하는 이유에 대해 분석가들은, 법집행기관이 힘과 돈, 권력을 가진 자에게 유리한 판정을 하기 때문에 공정한 처벌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이 주민들을 거리 재판으로 내몬다고 보고 있다. 즉 합법적인 법 체계 안에서 공정한 재판과 처벌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정치 엘리트들부터 나서서 국가의 법을 자기 편한 해석으로 휘두르고, 부패가 만연한 국가기관들을 볼 때 공식적인 방법으로는 정의실현이 불가능하다는 주민들의 판단도 틀린 것은 아니다. 다만, 범죄 피해자를 돕기 위한 공동대응은 상부상조의 미덕으로 보아줄 수도 있지만, 그 귀결이 항상 범죄자의 사망으로 이어진다는 것이 거리 재판의 문제점이다.

거리 재판이 사라지려면, 범죄자는 죽여야 한다는 구습의 의식을 버리고, 인명을 우선시하는 국민의식 성장이 필요하다. 또한 이와 더불어 인니 정부가 국민에게 국가에 대한 신뢰와 권위를 심어주어야 한다.

국가의 법이 국민의 권익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하고, 정치 엘리트부터 나서서 자신의 이해득실만을 따져 법을 맘대로 해석하는 풍토니, 어느 국민이 그 정부의 법을 곧이 곧대로 따르고, 그 권위를 인정하겠는가?(참조 기사:선거운동 위해 부통령직 휴직하겠다) 인니의 발전된 미래는 정부든 국민이든 구태의 습관을 버리는 데서부터 시작될 것이다.

거리재판뿐만 아니라, 인니에서 발생하는 각종 분쟁을 들여다보면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것이 아주 강력한 집단 결속력이다. 내 일도 아닌 사촌의 일에, 혹은 남의 일에 목숨을 내거는 것도 불사하고 다 같이 뛰어드는 것을 보면 정말 놀랍고도 이해가 안된다. 이런 강한 공동체 의식을 선명하게 보여주는 용어는 없을까 찾다가 생각난 단어가 "까미"라는 단어다.

우리라는 말에 두 가지 단어가 그것도 뜻이 전혀 다른 용도로 사용된다는 것 때문에, 한국어의 언어습관에 익숙한 나는 무척 애를 먹었다. 나뿐만이 아니라 인니어를 배우는 외국인들이 공통적으로 애를 먹는 단어들 속에 끼따와 까미가 포함된다.

일반적으로 명확한 언급을 회피하는 인니인들의 언어습관을 생각할 때, 매번 정확하게 끼따와 까미를 구분해 사용하는 걸 보면 참으로 신기하다. 그런 그들의 무의식 속에는 명백히 너와 나를 가르는 선들이 구분지어져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수하르토 하야 후 급격하게 무너져 가고 있는 중앙정부의 통제력, 그를 통해 그저 억압으로 억눌려져만 왔던 주민들이 다양한 이해관계를 들고 나와 분열하는 것이 지금의 인도네시아다. 전체의 80% 이상이 무슬림이면서도 국교가 이슬람이 아닌 나라, 타 종교를 포용하는 관용을 미덕으로 내세웠던 이 나라가 지금 내분의 고통을 겪고 있다.

지난날 인니는 다양한 종족과 언어와 문화가 풍요한 자원이라며, 각자의 색깔을 갖춘 통일성을 지향해왔다. 그러나 지금 이 나라는 모든 국민들이 서로를 아우르는 "끼따"가 되지 못하고, 개개 집단을 나누는 "까미"들이 되어 혼란을 거듭하고 있다. 그 속에는 공평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실현하지 못하고, 국민의 소리에는 억압으로 일관해왔던 독재자의 그림자가 깊게 깔려 있다.

인니의 '까미 문화' 그 첫번째를 마치면서, 앞으로 인니 전역에서 발생하고 있는 각 집단들의 대립을 계속해서 살펴보려 한다.

덧붙이는 글 | Kami-그 속에 투영된 너와 나를 명백히 가르는 분리의 의미

자카르타 어느 빈민촌에서 발생한 두 마을간의 전쟁을 방불케 하는 대립에 관한 글을 쓴 적이 있었습니다. 그저 경제적 이유, 환경적 이유만 들어 그들의 대립을 살펴보면서 도시 빈민의 안타까운 자화상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극단의 대립을 이후 인니의 여러 분쟁 사태에서 발견했습니다. 아무리 온갖 분쟁의 발생 근거를 들이밀어도 사람을 죽이고 전쟁상태로 치닫는 상황을 이해하기는 어려웠습니다. 그걸 이해하려는 한 시도가 문화적 행태 접근이었습니다. 상호간의 대립에 대한 인니인들의 반응양식을 깨닫기 시작했을 때, 분쟁의 양상이 이해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 분쟁이 확대되는 방향도 예측할 수가 있었습니다. 앞으로 인니의 "까미"문화 연재를 통해 세계의 이목을 집중 시켰던, 깔리만탄 사태, 암본, 말루꾸 사태 등도 살펴보려 합니다. 

까미 문화란 말은 학술서에 공식적으로 등장한 전문 용어는 아닙니다. 어떻게 인니인들의 아주 강력한 집단의식을 표현할 말이 없을까 생각하다가 제가 임의로 붙인 명칭입니다. 죽음도 불사하는 그들의 집단의식을 바라보면서 불나방 문화라는 생각도 했지만, 불나방이라는 말에는 부정적인 의미가 너무 강했습니다. 인니인들의 집단의식의 시작은 상부상조(gotong royong)이라는 긍정적인 차원에서 시작합니다. 그리고 "나쁜 사람"에 대한 공동대응은 자위권 발동이지요. 하지만, 그 집단의식이 인명살상이라는 비인간적인 결말을 가져오고, 나아가 자기 자신조차도 그 희생자가 될 때, 상부상조의 공동체 의식은 빛을 잃고 맙니다. 이러한 인니인들의 집단의식에 관해 이해의 시각으로, 동시에 비판의 시각으로 다가서려고 합니다.

이 기사는 인터넷 '한겨레 하니리포터'에도 등록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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