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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도네시아 전도
ⓒ 김소연

'지'자만 보면 몸서리를 치던 한 여고생이 있었다. 지리, 지도, 지구본, 지학... '지'자만 들어가면 왜 그리도 끔찍하던지.. 그러던 그녀가 대학을 가게 되었다. 한국의 학생들이 대개 그러했듯, 성적과 내신에 따라 물망에 오른 과들 중에 선생님께서 인도네시아어과를 들이미셨다.

열대 우림과 사바나를 생각했던 그녀는 적도가 지나가는 아프리카어과를 가겠다고 박박 우겼다. 그때 선생님 왈 "그럼 잘 됐네, 인도네시아에 딱 적도가 지나간다. 그리고, 아프리카라고 다 아프리카어(-스와힐리어) 쓰는 것도 아냐." 그 순간 지리에 대한 자신의 무식을 익히 잘 아는 그녀는 더 이상 아무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날 그녀는 조용히 지리 선생님을 찾아갔다.
"선생님, 인도네시아에 적도가 지나간다는 게 사실인가요?"
"그렇지."
"아프리카에는 적도가 안 지나가나요?"
"아프리카에도 지나가지만.... 모든 나라가 적도에 접해 있는 게 아니고.... (긴 설명)... 적도가 지나가는 나라에 가장 부합하는 건 인도네시아지."
"예."
그날로 그녀의 운명은 인도네시아로 결정나고 말았다.

타잔과 동물의 왕국, 그리고 따가운 햇살, 어깨를 드러낸 옷을 입은 사람들이 사는 기나긴 풀숲과 낭만의 아프리카에서 사자와 함께 뒹굴어 보겠다던 그녀의 야심은 무참히 깨졌다. 그리고 어디 붙어 있는 지도 제대로 모르는 인도네시아어과에 입학했다. 그날부터 그녀는 인도네시아에 대한 자신의 무지를 깨쳐 나가면서, 지금까지 인도네시아 그 실제에 다가서는 작업을 인생의 업으로 삼게 되었다. 인도네시아어 스피치 대회에 나가서도 뻔뻔스럽게 이 이야기를 해서, 장내를 웃음바다로 만들었던 그녀는 바로 이 글을 쓰는 나 자신이다.

이런 나의 이야기로 인니에 대한 서문을 시작한 것은 고등학생이던 "내"가 가지고 있는 인도네시아에 대한 인식상태가 바로 대다수 한국인들의 경우이기 때문이다. 인니가 동남아 어디에 있는 나라로서 적도를 지나며, 인구가 2억 이상이고, 국민의 대다수가 이슬람이라는 등등의 얘기는 검색엔진에서 인도네시아를 입력하면 대번에 알 수 있는 내용들이다.

인도네시아를 소개하면서 그런 딱딱한 정보들로 시작하기 보다는 인도네시아 전문가(?)랍시고 자칭 나선 나의 경우를 통해 일반 사람들의 앎의 정도에서부터 차근차근 시작해 인도네시아에 다가섰으면 한다. 인도네시아! 알고 보면 의외로 우리와 가깝게 있는 나라다.

인도네시아? 그거 인도하고 같은 나라 아냐? 아니면 그 일부에 있는 나라거나.. 음.. 나도 그렇게 생각했었다. 인도네시아라고 하면 당장에 떠오르는 게 없는 사람도 발리라면 무릎을 치게 마련이고, 빈탄, 바탐 정도는 지나가다 들어보기도 했을 것이다. 그리고, 수하르토? 수까르노? 어 그 사람들이 인도네시아 사람들인가? 반둥회의 정도는 중고등학교 시절에 한번 들어보기도 했을 것이다. 이제 조금 감이 오시는지? 그럼 인도네시아를 한번 들여다 보기로 하자.

1. 인도네시아란 나라

인도네시아는 인도하고는 전혀 다른 별개의 동남아 국가이다. 우리가 인지하고 있는 수준에 비해 엄청난 땅덩어리와 영해를 가지고 있는 군도 국가이다. 이 나라에 속하는 영토로는 관광지로 유명한 발리, 롬복, 빈탄, 바탐 등이 있고, 우리가 보르네오라고 부르는 깔리만탄 섬이 여기에 속하고, 몇년 전 시끄럽던 암본, 말루꾸가 포함되어 있으며, 세계적으로 유명한 동 티모르와도 상관이 있으며, 파푸아뉴기니의 옆에 그 땅의 나머지 절반인 파푸아(구-이리안 자야)가 포함되어 있는 나라다. 수도는 자카르타로 2002년 현재 유동인구를 포함해 1천만 이상이 북적대는 대도시이다.

전체 인구는 2억이 이미 넘은 상태이고 전국민의 80% 이상이 무슬림인 나라이지만, 국교는 이슬람이 아니다. 대신 인도네시아 헌정의 최고위에 있는 "빤짜실라-Pancasila" 이념은 모든 국민에게 의무적으로 종교를 가질 것과 신(각자의 종교에 해당하는 신)에 대한 충성을 의무화하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국어로 "바하사 인도네시아 - Bahasa Indonesia"(바하사=언어)를 사용하고 있다.

말레이어에서 유래한 인도네시아어는 알파벳을 사용하며 철자대로 발음되고, 배우기에 그리 어렵지 않은 언어라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다양한 종족과 개별언어를 가진 인도네시아인들의 구성에도 불구하고 인도네시아 전 지역 어디에서나 무난하게 통용될 수 있는 언어다. 그래도 인도네시아가 어디인지 감이 안 오시는 분은 세계전도를 펴서 한 중간을 보시면 된다.

2. 정치

인도네시아 군도지역은 해상 실크로드로 유명한 향료산지이자 해상왕국들로 과거사를 빛낸 나라이다. 이후 네덜란드의 식민지로 340여년 간을 지내다가 2차 대전 이후 식민통치에서 벗어나 독립한 국가이다. 2차 대전의 와중에는 일본 식민시기를 4년 정도 겪었다.

독립 후 초대 대통령으로 수까르노가 당선되었고, 그는 1967년 하야할 때까지 독립운동가와 세계적인 제 3세계 지도자로서 명망을 가지고 인도네시아를 통치했다. 그러나 국내 정치에 대한 내실보다는 선동적이고 대외정치에 치중한 수까르노는 그가 가까이 하던 인도네시아 공산당이 1965년 9월 30일 군 고위 장성들을 납치 살해하는 9.30 사태를 일으키자 이와 연루된 의혹으로 결국 하야하게 되었다.

인니 공산당의 9.30 사태 실패는 이를 진압한 군부세력의 등장과 그 대표인물로서 수하르토 장군이 대통령으로 부상하는 계기가 되었다. 9.30 사태의 진압과정 중에 대략 50만에서 100만의 공산주의자 내지는 그 관련자들이 목숨을 잃었다고 알려져 있다.

더불어 인도네시아는 반 공산주의를 표방하는 국가가 되었고, 수까르노의 친 중국, 북경과의 밀월 관계가 9.30 사태의 배후에 있었다는 의혹과 더불어 인니내 경제를 섭렵했던 화교에 대한 반감이 더욱 확산되었다. 이후 수하르토와 군부 세력은 경제위기이후 1998년 수하르토가 하야할 때까지 인니를 통치해 왔다.

1998년 인니의 5월 항쟁은 수하르토를 하야시키고, 개혁시대를 열었다. 인니 국민의 개혁 염원을 지지기반으로 1999년 총선에서 메가와티의 투쟁민주당이 의석 점유율 1위를 차지했으나, 이어진 대선에서는 이슬람 계열 당들은 물론 구 여당 계열인 골카르까지 합세한 보수 대연합의 담합에 의해 압둘라흐만 와히드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의회내 의석수가 많지 않았던 와히드 대통령은 독선적이고도 급진적으로 장애 세력들을 몰아내고 나머지 정치세력들과 대립하다가 결국 반 와히드 연합전선에 의해 하야하게 된다. 현재 부통령이던 메가와티가 대통령이 되었으나, 메가와티의 행보가 반 개혁적으로 가고 있다는 비난의 소리가 나오고 있으며, 각 정치세력은 2004년 대선을 향해 세 키우기 및 지분 다툼에 골몰하고 있는 양상이다.

3. 경제

인도네시아는 산유국 중의 하나이며, 세계 최대의 천연가스 생산국이다. 한국에서 사용하는 천연가스의 대부분은 인도네시아 산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경제 위기 이후로 통치력이 느슨해진 가운데, 아쩨 지역에서 이제까지의 폭압에 대한 저항이 거세지면서 가스공급의 안정성이 보장되지 못해, 한국은 천연가스 수입선의 비율을 말레이시아로 확대하고 있다. 인니는 석유, 천연가스 뿐만이 아니라 산림자원과 광산물도 풍부한 나라이다.

또한 거대 군도국가로서 넓은 영해를 보유하고 있으나, 조업기술의 낙후로 큰 이익은 못 얻고 있다. 1997년의 경제 위기 이후 달러당 2천 루피아대의 환율이 최고 2만 루피아까지 치솟았으며, 1만 루피아 대를 전후로 등락세를 보이다가 2002년 7월 현재 8천 5백 루피아대에서 환율이 머물고 있다. 인도네시아 경제는 아직도 경제위기의 여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영토가 넓고 천연자원이 풍부할 뿐만 아니라 2억 인구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무시할 수 없는 국가임은 분명하다.

4. 사회와 문화

인도네시아 사회는 다종족, 다언어를 가진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다. 하지만, 실생활에서 크게 반목과 질시를 찾아보기는 어렵다. 최근 몇년 동안 발생했던 깔리만탄이나 암본, 말루꾸 에서의 종족 분쟁, 종교 분쟁으로 인해 인도네시아 사회가 종족간이나 종교간 분쟁이 심각한 것으로 국제사회는 인식하고 있는데, 각 분쟁의 원인을 찾아 들어가다 보면, 단순한 이분법적 대립으로만 파악하기에는 다소 아쉬운 점이 있다.

오히려 분쟁의 근간에는 오랜동안 수하르토 독재정권 하에서 폭압정치를 겪어왔으며, 무리한 이주정책과 공정성을 잃은 정책 실행으로 인한 경제적, 문화적 차이에서 더 큰 원인이 발견된다. 경제적 불평등과 반목, 서로의 문화에 대한 이해부족 등이 주 원인이 되어 발생했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하다. 그 경계의 선이 종족 간으로 그어질 때는 종족 분쟁이 되고, 종교로 나뉘어 질 때는 종교간 대립으로 발생한다. 물론 이러한 대립이 극단에 치달아 진행되다 보면 그 자체의 파괴력과 대립이 심해져 종족간, 종교간 대립 관계가 고착되어진다.

또한 이런 분쟁의 경향에 대해 야만적이라고만 판단하는 것도 문화적 선입관이 될 수 있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한국의 개고기 논쟁이 서구에서 야만적이라는 시각을 주로 받는데, 이에 반해 야만의 잣대가 문화적 편견에서 나온다고 주장하는 쪽도 있다. 이런 논점에서 볼 때 인니의 분쟁행태를 야만이라고만 보기에는 안타까운 점이 없지 않아 있다. 물론 사람을 살해하는 경우가 자주 등장하는 것을 이해하기가 쉽지는 않다.

하지만, 인도네시아의 분쟁을 들여다보면, 분쟁을 촉발시킨 원인만이 문제가 아니라, 그 갈등양상을 표현하는 사람들의 분쟁행태로 인해 더 불길이 확산되는 것을 관찰할 수 있다. 애초의 문제에 관련된 당사자들 뿐만이 아니라 당사자들이 속한 집단까지 분쟁에 말려드는 것이다. 이들은 분쟁에 참여하는 것을 구성원으로서의 연대의무라고 생각하는 것으로 보인다. 남의 집 불구경하듯 한다는 우리나라 사람들과는 달리, 불 속에 다같이 뛰어들어가는 게 이들의 행태이다. 불나방 문화라고나 할까?

한 나라나 민족의 사회나 문화야 말로 정말 간단히 말하기 어려운 문제이다. 특히 문화는 언어를 지배하고, 정치, 경제, 사회에서 나타나는 행태의 근원이 되는 요소이다. 문화를 이해하면, 그 민족과 국가를 절반 이상은 이해한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연재의 첫 기사거리를 생각하면서 가장 기초적인 질문이 인도네시아란 어떤 나라인가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보통의 사람들에게 편안하게 다가서면서 인니에 관한 핵심적인 사항을 전달해야겠다는 취지로 이 글을 썼다. 나름대로 간략하게 정리한다고 노력했지만, 부족한 점과 제기되는 의문점 및 더 궁금한 사항은 앞으로 계속 글을 올리면서 이해를 도울 생각이다.

또한 인도네시아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와 같은 다소 딱딱한 읽을 거리 뿐만이 아니라, 교민들의 생활 이야기나 인도네시아에 와서 다닐 만한 여행지 소개, 먹거리 문화, 실생활과 연결되어 있는 행정에 관한 안내 등 다양한 사안들에 대한 글을 올려 인도네시아에 대해 어떤 이유로라도 관심을 가지게 된 분들께 도움이 되게 할 생각이다.

많은 관심을 바라면서 알고 싶은 것, 제안 등에 관해서도 항상 귀를 열고 들을 것을 약속드린다.

이제 인도네시아의 창을 열고 들여다 보는 첫 발걸음을 내딛는다.

덧붙이는 글 | 인도네시아에 대한 정보가 많지 않은 관계로 이 연재문의 시작글을 다소 가감하여 정보공유를 위해 인터넷 한겨레 하니리포터에도 등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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