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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레길이 바꿔놓은 제주도 여행 풍경

한때 언론사 편집국장을 지낸 서명숙씨(현 제주올레 이사장)가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은 후 돌아와 만든 제주도 올레길은 우리의 여행문화와 제주도의 관광문화에 혁신적이라 할 정도로 큰 변화를 가져왔다.

관광버스를 타고 단체로 몰려다니며 인파가 북적거리는 유명 관광지에 발도장을 찍고, 음식점에서 '건배'를 외치며 여행을 마무리하던 모습은 점점 사라졌다. 홀로 혹은 두셋 단위의 사람들이 직접 발로 걸으며 '길을 걷는' 행위 그 자체를 통해 자신을 뒤돌아보고 도시 생활에서 쌓인 감정의 찌꺼기를 녹여내는 트레일 문화가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것이다.

올레 6코스를 걷다보면 서귀포 이중섭 거리로 이어진다. 올레길이 생기기 전에는 불량청소년들이 모여들여 골치를 썩던 곳이라 한다.
 올레 6코스를 걷다보면 서귀포 이중섭 거리로 이어진다. 올레길이 생기기 전에는 불량청소년들이 모여들여 골치를 썩던 곳이라 한다.
ⓒ 이영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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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혀 연관성도 없는 동남아 관광지 등과 비교당하며('제주도 갈 바에는 동남아 가겠다'가 대표적이다) 구닥다리 관광지 이미지를 갖고 있던 제주도는 올레길과 함께 완전히 다시 태어났다.

지난 2015년 발표된 자료에 따르면 올레길을 걷기 위해 찾아오는 올레꾼 숫자만 연간 120만 명, 누적 방문자 수는 560만 명을 기록하는 등 제주 올레길은 그 자체로 대한민국 여행 트렌드를 대표하는 브랜드 중 하나로 자리를 잡았다(제주올레를 주도한 서명숙 이사장조차 국내에서 트레일 문화가 이렇게 빨리 확산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고 한다).

이런 올레길 걷기 열풍으로 인해 제주도에는 많은 변화가 찾아왔다. 기존에 성산일출봉이나 OO랜드, □□박물관만 구경하며 "제주에는 참 볼 것도 없고 음식값만 비싸구나"라며 외면했던 사람들이 올레길을 따라 걸으며 제주의 마을과 숲, 오름, 토속 음식 등과 같은 속살을 접하게 됐다. 이로 인해 제주도 사람들의 진짜 삶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게 된 것이다.

한편, 이러한 올레길 걷기 문화가 대중화돼가는 과정에서 그동안 없었던 또 다른 여행 문화가 파생돼 태어났다. 젊은 엄마와 아이들을 중심으로 시작된 '제주 한 달 살이'가 바로 그것이다.

올레길이 아니면 굳이 이런 마을 안까지 들어올 일 자체가 없었을 것이다
 올레길이 아니면 굳이 이런 마을 안까지 들어올 일 자체가 없었을 것이다
ⓒ 이영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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얻는 것이 아니라 버리기 위한 여행

사실 타지에서의 한 달을 산다는 건 낯설고 생소한 문화가 아니다. 자녀의 어학연수를 위해 방학기간 동안 엄마와 아이가 해외에서 한두 달을 보내는 경우라든지, 경제적 여유가 있는 직장인들이 안식휴가를 이용해 해외에서 집을 빌려 생활하는 모습 등 여러 가지 형태로 존재해왔다.

모래날림 방지를 위한 백사장 덮개 위에 백구가 홀로 서서 김녕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모래날림 방지를 위한 백사장 덮개 위에 백구가 홀로 서서 김녕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 이영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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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현재의 제주도 한 달 살이 바람은 그것과는 조금 다른 형태를 보인다.

일단 뚜렷한 목적성이 없다. 젊은 엄마들이 아이를 데리고 제주도에 와서 바라는 것은 무언가를 얻고자 하는 것이 아닌 듯하다. 오히려 그 동안 너무 많은 것을 배우고 습득하길 강요당해왔던 아이들이 이곳에서 지내는 동안이라도 편안하고 즐거웠으면 좋겠다고 입을 모은다. 버리기 위한 여행인 셈이다.

엄마와 아이뿐만 아니다. 도시 생활에 염증을 느낀 20대와 30대, 어느덧 퇴직 후 삶을 걱정할 나이가 된 40대와 50대의 사람들이 홀로 혹은 배우자와 함께 제주도 한 달 살이를 시작한다. 이들 역시 한 달 살이를 통해 얻고자 하는 건 아무것도 없다. 도시에서 쌓아온 여러 가지 물질적·정신적 자산 중 자신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정리하고 골라내는 작업을 하기 위해 이 곳을 찾는다.

제주도 한달살이를 시도하는 사람들은 도시가 아닌 시골, 그중에서도 제주도에서의 전원생활을 꿈꾼다. 하지만 도시이기에 누릴 수 있는 많은 혜택과 도시에서 싸워나가야 지킬 수 있는 많은 것들을 함부로 버릴 수 있는 사람은 흔치 않기에 꿈의 단편을 잠시나마 체험하는 것으로 만족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현재 제주도에 불고 있는 한 달 살이 열풍의 원인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저 언덕 너머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 지는 아무도 모른다. 우리네 인생이 그러하듯이.
 저 언덕 너머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 지는 아무도 모른다. 우리네 인생이 그러하듯이.
ⓒ 이영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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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서의 우리는 어떤 모습일까?

제주도에서의 '한 달 살이'를 경험한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은 그 숫자만큼이나 다양하겠지만 이들이 공통적으로 입을 모아 말하는 것은 "나 혹은 우리 가족의 진짜 모습을 알게 됐다"는 점이다.

언제나 내성적이고 말이 없어 걱정이던 아이가 시골 아이들과 금세 친구가 돼 온 동네를 헤집고 다니는 모습에 감동한 엄마의 이야기부터 운동하고는 담을 쌓고 언제나 TV 앞에서 떠날 줄 모르던 남편이 제주의 자연 속에서 아웃도어형 인간으로 변신하는 모습에 놀란 부인의 이야기, 남편과 아이에게 쉴새 없이 잔소리만 반복하던 신경질적인 아내가 제주 한 달 살이를 통해 침착하고 부드럽던 신혼 때 모습으로 돌아가 감사하다는 남편의 이야기까지.

쉴 틈 없이 돌아가는 도시의 생활리듬에 휘말려 진짜 내 모습을 모르고 살아가던 사람들이 제주의 느린 호흡 속에서 점차 자아를 회복해나가는 모습이야말로 제주 한 달 살이를 시도하는 사람들이 원했던 것이 아닐까.

단순히 색채의 아름다움으로만 따지면 우도의 서빈백사 해변이 으뜸이다. 새하얀 산호 백사장에서 이어지는 바다는 수심에 따라 빛깔이 달라진다.
 단순히 색채의 아름다움으로만 따지면 우도의 서빈백사 해변이 으뜸이다. 새하얀 산호 백사장에서 이어지는 바다는 수심에 따라 빛깔이 달라진다.
ⓒ 이영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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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이 육지로 떠나 비어버린 집을 한 달 살이 집으로 운영하시는 동네 어르신부터, 퇴직 후 제주 이주를 위해 준비해놓은 집을 단기 임대하고 있는 육지분들 그리고 이곳을 거쳐간 수많은 제주 한 달 살이 가족들까지.

다음 글에서는 제주 한달살이의 주체인 분들의 경험담과 실제 제주 한 달 살이에 참고할만한 이야기를 모아 정리해보려 한다. 언제고 제주 한 달 살이를 준비하고 있는 분들에게 작은 도움이나마 되길 기원해본다.


태그:#제주이주, #한달살이, #한달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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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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