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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탠로드, 넌버벌 퍼포먼스, 비치, 케이워트.

자치단체나 공공기관이 이름을 붙였거나 입구·건물 외벽 등에 붙여 놓았던 글이다. 과연 이 글을 제대로 알아듣는 사람이 얼마나 될가. 아마도 바로 아는 사람보다 그렇지 않은 사람이 더 많을 것이다. 그러면 아래처럼 바꿔 보면 어떨까. 한글을  아는 사람이라면 모두 알 것이다.

달맞이길, 몸짓 공연, 해수욕장, 한국수자원공사.

9일은 한글날이다. 세종대왕께 '문탠로드'가 뭐냐고 물어보았다면 어떻게 대답할까. 공공기관들이 우리말을 더 어렵게 만들고, 귀하게 여기지 않는 듯하다.

부산 해운대 달맞이길 입구에 있는 '문탠로드' 표지석.
 부산 해운대 달맞이길 입구에 있는 '문탠로드' 표지석.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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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해운대 달맞이길 입구에 있는 '문탠로드' 안내판.
 부산 해운대 달맞이길 입구에 있는 '문탠로드' 안내판.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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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탠로드(Moontan Road)'는 해운대 '달맞이길' 입구에 있는 안내판이다. 부산시가 몇 해 전부터 이렇게 바꿔 부르고 있다.

'문탠로드 안내도'에는 "대한팔경의 하나인 달맞이 '월출'이 여러분들의 벗이 되어, 마음의 여유와 생활의 활력을 불어 넣어 줄 것입니다"라고 해놓았다. 이 안내문 속에도 나와 있는 '아름다운 달맞이길'이 사라진 것 같아 안타깝다.

'넌버벌 퍼포먼스'는 2013년 경남도청 건물 외벽에 걸려 있었던 펼침막의 한 글귀다. 태권도를 알리기 위해 <탈>이라는 제목의 공연을 열었는데, 그 공연에 대해 '넌버벌 퍼포먼스'라 소개한 것이다.

넌버벌 퍼포먼스는 '말이 없는 공연' 내지 '춤으로만 표현하는 공연', 아니면 '몸짓 공연'이라 하면 된다. 당시 경남도청 담당자한테 "320만 경남도민 가운데 이 단어를 알아듣는 사람이 과연 몇 명이 되겠느냐"고 물었더니 "공연 제목에 붙어 있어 어쩔 수 없다"고 했다.

'상주은모래Beach'. 남해 상주면 소재지에 있는 안내판이다. 그 밑에 영문(Sangju silver sand Beach)도 붙여 놓았다. 남해군은 상주해수욕장의 이름을 '상주은모래해수욕장'으로 바꾸었다.

경남 남해 상주면 소재지에 걸려 있는 '상주 은모래 해수욕장' 안내판인데 '상주은모래비치'라고 해놓았다.
 경남 남해 상주면 소재지에 걸려 있는 '상주 은모래 해수욕장' 안내판인데 '상주은모래비치'라고 해놓았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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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모래'는 은빛이 나는 흰모래를 말한다. 그냥 '상주 은모래 해수욕장'이라고 하면 될 걸 굳이 '비치'를 붙여 놓았다. 해수욕장이라는 우리말이 있는데도 말이다.

'케이워트'(k-water)와 관련한 일화도 있다. 4대강 사업과 관련한 기사를 쓰면서 '한국수자원공사'(수공)라고 했더니, 수공 관계자가 기자한테 전화를 걸어 '케이워트'로 바꿔달라고 요청했던 적이 있었다.

"공공기관은 쉬운 우리말 써야"

한글학회 진주지회장인 임규홍 경상대 교수(국어문화원장)는 "관공서부터 우리말을 바로 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2005년 국어기본법이 만들어진 뒤, 공문서도 한글로 쓰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

공공기관의 표기가 논란이 된 사례는 많다. '하이 서울', '필(feel)경남', '라이징 사천(Rising Sacheon)' 등이 대표적이다. 경남도는 간판뿐만 아니라 행사명 앞에 '필경남'이라고 붙여 혼동을 주고 있다.

최근 경남 사천시는 상징적인 구호로 '라이징 사천'이라 했다. 그런데 첫 단어가 일본의 '욱일기(Rising Sun Flag)'와 같아 외국인들이 오해할 소지가 있다는 지적을 받은 뒤 바꾸기로 했다.

임규홍 교수는 이밖에 '로컬푸드'니 '그린스타트운동', '엘에이치(한국토지주택공사) 등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공공기관은 국민이 알 수 있는 글을 쓰야 한다"라며 "국민이 알 수 없는 글을 쓰면 한글 창제에 반대했던 사람과 같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세종대왕은 글을 모르는 사람을 위해 한글을 만들어 의사소통했던 것이고, 쉬운 우리말과 글을 쓰는 게 정보독점을 막는 의사소통의 민주화다"라며 "기업의 경우 외국을 상대로 하기에 영어 등 외국어 표기를 할 수도 있지만 공공기관까지 그렇게 할 이유는 없다"고 밝혔다.

경남도청 건물 외벽에 걸려 있었던 "넌버벌 퍼포먼스 탈" 공연 안내 펼침막이다.
 경남도청 건물 외벽에 걸려 있었던 "넌버벌 퍼포먼스 탈" 공연 안내 펼침막이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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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의 사례도 소개했다. 임 교수는 "1970년대 영국에서 전기요금 납부 고지서를 어려운 영문으로 표기해, 영어를 잘 모르는 사람이 무슨 내용인지 몰라 요금을 내지 않고 있다가 전기가 끊어지는 바람에 사람가지 죽는 사건이 벌어졌다"며 "그 뒤에 영국 정부는 공문서며 고지서를 쉽게 쓰도록 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 백성을 위한 안내판이나 펼침막이라면 굳이 영어를 쓸 이유가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대기실'을 '맞이방' '승하차장'을 '갈아타는 곳', 고속도로의 '졸음쉼터' 등은 매우 좋은 사례라 소개했다.

임 교수는 "고속도로나 고속철도의 몇몇 표지판을 보면 누구나 알기 쉽게 표기를 해놓은 사례가 있다"며 "마찬가지로 공공기관은 백성이라면 누구나 알아볼 수 있는 글을 사용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태그:#한글날, #달맞이길, #해수욕장, #경상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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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취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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