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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보강: 19일 오전 11시 54분]

제 마음 한 구석에는 1989년 5월 28일이 각인되어 있습니다. 바로 전교조가 창립된 날입니다. 정권의 탄압에 굴하지 않고 참교육을 이루기 위해 일신의 안위를 돌보지 않고 투쟁하시던 전교조 선생님들은 저의 영웅이셨습니다. 사춘기였던 저는 전교조 선생님들을 바라보며 가치관과 신념을 형성해 갔고, 저는 이른바 '전교조 키즈' 중의 한 명이라는 것을 늘 자랑스럽게 생각했습니다.

학교에서 매질을 해가며 좋은 대학 가서 성공하라 말하는 교사를 저는 단 한 번도 스승으로 여겨본 적이 없습니다. 제게 있어 진짜 '선생님'은 주말에 찾아간 전교조 사무실에서 다정하게 저희들을 맞아주시던 해직교사 선생님들이셨습니다. 그분들은 말이 아니라 스스로의 삶을 통해 정의가 무엇이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가르쳐 주신 스승이셨습니다.

저는 현재 대한민국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로 살고 있습니다. 돈 잘 벌고 풍요롭게 사는 정규직 친구들 앞에서 스스로 부끄러움 없이 당당할 수 있는 것은, 비록 가난하더라도 바른 길을 가며 지조를 꺾지 않고 사는 것이 참된 삶이라는 '빈천불능이'의 정신을 심어주신 전교조 선생님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전교조 키즈, 영어회화 강사입니다

어린이대공원 앞에서 석고대죄를 바라보는 시민들
 어린이대공원 앞에서 석고대죄를 바라보는 시민들
ⓒ 서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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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9년은 전교조가 창립된 지 20년이 된 해였습니다. 그 날의 함성이 아직도 귀에 생생하건만, 우리나라의 교육환경은 더 참담해졌습니다. 입시경쟁과 서열화는 심화되고 사교육은 창궐하며 청소년 자살률은 그 어느 때보다 높습니다.

야간 자율학습과 강제보충수업 그리고 폭력적 체벌과 비인간적 경쟁 속에서 분노하던 사춘기 소년의 마음이 아직도 내 심장 속에 뛰고 있는데, 나는 내 삶을 통해 과연 교육 개혁을 위해 무엇을 했나 하는 반성을 하였습니다. 작은 노력이나마 보태고자 일제고사 반대를 위해 여의도에서 광화문에서 종로에서 신촌에서 홀로 1인 시위를 했습니다. 일제고사를 반대하다 고초를 겪고 계신 선생님들을 지지하는 1인시위도 했습니다.

그 전에는 어느 보수 단체가 전교조 선생님을 몰아내라며 학교를 돌며 시위하던 현장 앞에서, 전교조 선생님을 지지하고 응원하는 피켓팅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2009년 5월 어린이날에는 어린이 대공원 앞에서 석고대죄를 하며, "바른 교육 하고자 애쓰시는 선생님들 알아보지 못하고 오히려 핍박하는 사회를 만든" 어른들의 죄를 어린이들 앞에서 빌었습니다. (관련기사 "어린이날, 어린이들 앞에서 석고대죄하다").

그때 바른 교육 하고자 애쓰시는 선생님들은 당연히 전교조 선생님들을 가리키는 것이었습니다. 경쟁교육을 반대하고, "차별을 가르칠 수 없다"며 비정규직 철폐를 위해 투쟁하는데 있어 저는 늘 전교조 선생님들을 존경하는 선배이자 든든한 동지로 여겨왔습니다.

그러나 이제, 제가 믿고 존경해온 전교조 선생님들께서 저를 척살하고 저와 같은 처지의 6000여 명의 비정규직 노동자를 척결하는 것이 공교육 정상화를 위한 길이라며 잘 벼려진 비수를 뽑아 드셨습니다. 네, 그렇습니다. 저는 영어회화 강사입니다.

전교조는 영어회화 전문강사 제도의 폐지를 주장합니다. 전교조 선생님들께서는 교육부에 집단적으로 민원을 넣는 것뿐 아니라, 영어회화 전문강사가 보는 앞에서 다른 정교사들에게 영전강 폐지를 위한 서명지를 돌리기도 합니다. 아무런 고용안정 대책 없이 이명박 정부에서 만들어진 잘못된 제도라며 폐지를 요구하는 것은 현재 학교에서 근무하고 있는 6천여 영전강들을 일거에 직장에서 몰아내려는 것과 하등 다를 바가 없습니다. 이명박 정부의 교육 정책을 비판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으나, 그 정책에 의해 고용된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척결하는 것이 해법이 될 수는 없습니다.

저는 비정규직 노동자로서 굴종의 삶을 떨쳐내고 부조리한 제도로 고통받는 영전강의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 싸우는 것이 진보인줄 알고 살아왔습니다. 저는 경쟁과 서열화를 부추기는 신자유주의 교육정책과 학벌지상주의와의 싸움에 있어 저와 전교조 선생님들이 동지인 줄 알고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이제, 전교조는 '영전강 척살령'을 내렸고, 바른 교육을 위해서는 저와 저의 동료들의 생로가 끊어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 내려주신 비수로 스스로를 찌르기라도 해야 하는 것일까요?

처우 개선을 요구해야 하는 비정규직들에게 '척결'이라니요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전교조 선생님들께 그렇게 배우지 않았습니다.

영전강 제도에 아무리 잘못된 점이 있다 하더라도, 그 제도를 만든 것은 이명박 정부와 그 책임자들입니다. 아무리 잘못된 건물이 지어졌다 하더라도, 그 건물에 사람이 살고 있다면 사람을 구하고 건물을 헐어야 합니다. 잘못된 건물을 없애기 위한 대의를 위해 그 안에 살고 있던 사람들이 깔려죽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은 "인간화 교육"을 외치는 사람이 차마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초등교육의 특성을 무시한 채 영전강 제도가 성급히 도입되었다 하더라도 그 과오를 영전강에게 묻게 하는 것은 심히 불공정하고 비인간적인 일입니다.

정부는 이러저러한 요건을 가진 사람들에게 일정한 시험을 치르게 하고 채용절차를 거쳐 영전강을 고용했습니다. 정부는 영어회화 교육을 위한 인력 수급을 위해 교사 자격증이 없는 강사들도 영전강으로 채용했습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교사 자격증 소지자만으로는 영어회화교육을 담당할 수 있는 인력을 구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TESOL 석사학위 소지자와 영어 관련 학위 소지자 중 회화실력이 뛰어난 인재들도 법률에 정해진 채용 기준과 절차에 따라 적법하게 영전강으로 고용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러한 분들이 영전강으로 근무하게 된 것이지, 자격이 없는데 부정한 방법으로 채용된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제 와서 교사 자격증이 없는 무능하고 전문성이 결여된 집단으로 영전강을 매도하는 것은 심히 굴욕적인 처사입니다. 영전강 중 교사 자격증이 없는 30% 정도의 강사들에게 연수 기회 확대와 재교육을 통해 문제를 개선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심지어 교원평가와 학부모 만족도 등 업무 수행에 있어 좋은 결과를 내는 강사들에게조차 기회를 주지 않고 모든 영전강을 일거에 학교 현장에서 몰아내려고 하는 것은 실로 가혹한 처사입니다.

영전강과 정규직 교사들이 정녕 대립해야 할 대상일까요?

초등학교 정교사들이 초등교육에 있어 영전강보다 더 많은 전문성을 가지고 있는 것을 부인하는 것이 아닙니다. 교육대학을 다니며 아동교육의 특성에 대해 더 많은 훈련과 교육을 받은 점을 부인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기에 영전강은 정교사 선생님들의 관리 감독 아래에 있는 것이고 학교에서 영어회화 분야의 업무를 담당하는 매우 제한적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또한 정교사는 교육 공무원으로서 복지, 연금, 성과급, 수당 등에 있어서 영전강보다 더 많은 것을 누리고 있습니다. 영전강이 정규직화된다고 해서 정교사들의 그러한 기득권이 빼앗기는 것이 아니며, 정교사의 권한이 축소되는 것이 아닙니다. 교사 자격증은 교사로서의 전문성을 인정하는 자격증이지 정규직 자격증이 아닙니다. 정규직화는 고용불안과 저임금에 시달리는 모든 노동자가 마땅히 쟁취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이지 학벌이나 자격증 유무와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영전강과 정교사들은 서로 연대하고 단결해야지 결코 서로 대립하고 투쟁해서는 안 됩니다. '아이들을 가르치기 위한 최소한의 요건은 교사 자격증'이라며 '그것이 없는 너희들은 학교를 떠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무엇이 최소한의 요건인지 누가 어떻게 정한다는 말인가요? 교원평가에서 일정한 점수를 얻는 것이 아이들을 가르치기 위한 최소한의 요건이라며 무능한 교사들을 퇴출하려 하는 정부에 전교조는 어떻게 대처하셨습니까? 영어 교사라면 일정한 영어 실력을 갖추는 것이 최소한의 요건이라며 정해진 공인 영어점수를 받지 못하는 교사들을 퇴출하려 한다면 전교조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명분은 그럴 듯할지 모르지만 능력의 서열을 내세우며 사람을 퇴출하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그렇게 노동자 계급을 분열시키는 것이 전형적인 신자유주의의 행태입니다.

더욱이 법치국가인 대한민국에서, 그 "최소한의 요건"을 정하는 것은 전교조도 정교사도 영전강도 그 어떤 특정 집단도 아닙니다. 그것은 민주공화국인 대한민국에서 국민의 대표자들로 구성된 의사결정기관인 국회에서 법률을 통해 정해지는 것이고, 영전강은 국회에서 제정된 법률에 의거하여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는 합법적 권한을 부여받았습니다. 그런데 이제와서 느닷없이 영전강에게 아이들을 가르칠 자격이 없다고 한다면 이것은 법적 정의와 안정성에 부합하지 않습니다.

서로가 얼마나 무능한지 비방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습니다. 실력이 부족하고 초등교육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영전강이 많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대한민국에서 학교를 다닌 상당수의 국민들은 실망스러운 담임 선생님·무능한 정교사에 대한 불만과 트라우마를 안고 있습니다. 또한 대부분의 학부모는 공교육 체계의 교사보다 학원 강사의 실력을 더 신뢰하며 비싼 돈을 들여 그들에게 자녀를 맡기고 있는 게 현실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학교에서 함께 일하고 있는 정교사와 영전강이 단결해 협력하고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며 경쟁 교육의 광풍과 함께 싸워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교육 현장에 있는 6000여 명의 영전강을 적으로 돌리지 말고 동지로 품으십시오. 부디 영전강 정규직화를 위한 싸움을 지지해 주십시오. 정규직과 비정규직, 정교사와 영전강 모두의 눈물과 뜻 모아 참교육의 강물을 이뤄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단결과 연대야말로 진정한 교육 개혁을 위한 힘과 초석이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태그:#영어회화전문강사, #전교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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