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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초, 서울시 교육청이 2012학년도 학생 봉사활동을 대폭 축소하기로 했다는 뉴스를 보고 나는 충격을 받았다. 확대도 아니고 현행 유지도 아닌 대폭 축소라니……. 나는 청소년들로 이루어진 작은 봉사 모임을 꾸려오고 있었기에 걱정이 앞섰다. 올해부터 주5일제 수업이 전면시행 되면서 학생들의 여가시간이 늘어날 것이기에, 우리 모임이 더 활성화될 수 있을 것이라 기대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학생 봉사활동 시간 축소 소식은 이런 기대에 찬물을 끼얹는 것이었다.

서울시 교육청의 2012학년도 학생 봉사활동 운영에 관한 지침을 살펴보면 고등학생의 경우, 봉사 권장시수가 25시간에서 20시간으로 줄었다. 특히 교외 개인 봉사활동 시간을 축소하여 학교 바깥에서 봉사일감을 찾는 부담을 줄인다는 내용이다. 우리의 봉사 모임은 개인 봉사활동에 해당하는 것이고 기존의 8시간도 많은 시간이 아니고 1년에 두 번만 참여하면 채울 수 있는 시간인데, 그 마저 줄어들다니 한숨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답답한 마음에 나는 시 교육청을 찾아가 담당 장학사에게 설명을 요구했다. 봉사시간 축소 이유는 두 가지였다. 학교 교육과정에 의한 봉사활동의 경우 기존의 권장 시수인 17시간을 일선 학교에서 감당하기 어렵고, 개인 봉사활동의 경우 봉사일감을 구하기 어렵다는 학생과 학부모들의 민원이 빗발쳤다는 것이다.

담당 장학사는 서울시에 수 많은 학생들이 있는데 봉사활동 일감이 매우 부족한 실정이라 학생과 학부모들이 그에 관해 많은 민원을 내고 있는데 이것이 대체 누가 책임져야 할 일인지 나에게 물었다. 나는 그에 대한 정답을 알고 있다. 자원봉사활동기본법 제4조에 따르면 자원봉사에 관한 시책을 강구하고 국민의 자원봉사활동을 지원할 책무는 국가와 지자체에 있다. 

청소년 농촌 봉사활동
 청소년 농촌 봉사활동
ⓒ 이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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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청소년들을 인솔해서 농촌 봉사활동을 해 오고 있다. 학생 봉사활동이 축소되었다는 소식에 충격을 받았지만 올해에도 활발하게 활동하기 위해 서울 근교에서 농활을 할 수 있는 농가를 더 찾아 여기 저기 전화를 하고 인터넷을 뒤졌다. 그렇게 일감을 물색하기 시작한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아, 나는 천 명의 학생들이 몰려온다고 해도 우리 모임에서 충분히 봉사인증을 해 줄 수 있을 만큼 봉사일감을 구했다고 자신한다. 이것은 과장이 아니라 그냥 단순한 사실이다. 혹시 서울, 경기 근교에서 농활을 하고 싶은 개인이나 단체가 있으면 내게 연락해 주길 바란다. 자원봉사자가 없어서 문제이지 일감이 부족한 것이 아니다.    

그런데 나 혼자서 몇 주 정도 알아봐도 그 정도의 일감을 마련할 수 있는데, 거대한 행정력과 재원을 가지고 있으며 자원봉사를 지원할 책무를 가지고 있는 국가와 지자체는 마치 개그콘서트의 비상대책위원회를 생각나게 한다. "안돼! 이건 이래서 안 되고 저건 저래서 안 되고 그 많은 봉사일감을 어떻게 마련해!"  

또 내 경험에 비추어 볼 때 봉사일감이 부족하다는 학부모들의 민원도 100% 신뢰할 수 없다고 본다. 내가 학생들한테 가장 많이 듣는 말은, 봉사활동에 오고는 싶지만 엄마가 학원 가야 된다고 못 가게 한다는 말이다. 봉사거리가 부족하다는 말은 사실 학원 다 다니고 보충수업 다 받고 남는 시간에 할 수 있는 일감이 없다는 말은 아닐까?

자원봉사활동은 착한 일 하는 것이 아니다

자원봉사는 근본적으로 현대사회의 위기에 대한 인간의 대처이다. 시장의 원리에 의해 부가 불평등하게 분배되는 체제 속에서, 어떤 일들은 필요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이윤이 창출되지 않기 때문에 경제원리로는 해결할 수가 없다. 그래서 금전적 보수 없이도 인간의 지혜를 발현하여 다른 공동체 구성원들을 위해 일하는 것이 자원봉사활동이다. 반면에 선행은 이타성, 자비, 박애와 같은 윤리적 가치를 구현하는 행동이다.

자원봉사 시간을 의무적으로 부과하는 것은 비용을 들이지 않고도 제도적인 장치를 이용하여 봉사활동에 참여하도록 지혜를 발휘하는 것이다. 의무적으로 하는 행위가 '진정한' 봉사활동은 아닐 것이며, 윤리적으로 칭송 받을 만한 선행은 아니다. 그러나 자원봉사활동으로서의 가치는 충분하다. 수해복구에 참여한 사람들의 동기가 순수한 이타성인지 다른 목적이 있는지를 따지는 것에 관심을 가지는 것보다는 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해서 피해가 최소화되도록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진정한지 아닌지를 따지느라 자원봉사활동이 확대되는 것을 가로막는다면 그것은 오히려 공동체의 이익에 반하는 것이다.

또한 자원봉사활동을 공동체의 선을 위해 아무런 대가나 사회적 인정없이 순수하게 자신을 희생하는 행위로 정의할 수 없다. 가만히 생각해 보라. 그것은 다름아닌 전체주의의 원리이지 않은가? 현대 민주주의 사회의 자원봉사활동은 개인에게 일방적 희생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청소년 자원봉사활동은 교육활동이다

청소년 자원봉사활동의 제1의 가치는 교육적 가치이다. 그것이 청소년 봉사활동의 가장 중요한 특성이다. 교육이라는 행위는 필연적으로 타율성을 내포한다. 순수한 자발성을 가지고 교육에 참여하지 않는다고 해서 진정한 교육이 아니라고 말을 하지는 않는다. 학생 봉사활동을 의무화하는 것은 시민사회의 중요한 분야인 자원봉사활동을 의무 교육에 포함시키는 것이다. 수업 시간에 모든 학생들이 집중해서 공부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교육을 무가치하다고 말하지 않듯이, 모든 학생들이 진정성을 가지고 봉사활동에 참여하지 않고 많은 수가 대충 시간 때우기식의 활동을 한다고 해서 제도로서의 봉사활동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학교에서 단체로 박물관에 견학을 가도 역사와 문화에 관심을 가지는 학생들은 소수일 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박물관 견학이 쓸데없는 일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주민자치센터에서 대충대충 청소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하더라도 학생들이 주민자치센터가 어디에 있고 사람들이 무슨 일을 하고 있고, 무슨 서류가 비치되어 있는지를 경험한 것만으로도 중요한 교육활동의 일부이다. 수학공식과 영어단어를 외우는 것만이 교육은 아닌 것이다. 이렇게 행정기관, 복지시설, 사회단체 등에서 학생들로 하여금 견문과 경험을 쌓게 하는 것은 사회적으로 중요한 교육활동이다.

농촌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청소년들
 농촌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청소년들
ⓒ 이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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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과 공동체를 위하는 순수한 마음에서 우러나는 진정한 자원봉사는 분명 자발성과 무대가성을 지향한다. 그런데 봉사활동은 순수한 마음에서 우러나야 한다는 도덕군자 같은 말을 하는 많은 어른들 자신도 사실은 그런 윤리적 수준에 도달하지 못한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자발성과 무대가성에 기초한 수준높고 진정성있는 자원봉사활동을 청소년들에게 어떻게 요구할 수 있으며 그들이 그런 도덕적 수준에 도대체 어떻게 갑자기 도달하기를 기대한다는 말인가? 청소년기에 봉사활동 경험을 쌓게 해 주고 그 과정을 통해 느끼고 생각한 것이 바탕이 되어 성인이 되었을 때 자발적인 봉사활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청소년 봉사활동의 중요한 가치인 것이다.

봉사시간을 입시에 반영하는 것도 나는 매우 좋은 제도라고 생각한다. 봉사활동 시간의 입시 반영은 착한 일 많이 했다고 칭찬해 주는 차원에서 반영하는 것이 전혀 아니다. 자원봉사활동을 점수화하는 것이 말이 안된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인간의 도덕성이 자원봉사활동 시간이라는 숫자로 계량화될 수 없다는 측면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강조하건데 봉사활동 시간은 도덕성이나 착한 정도를 측정하는 것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것은 자원봉사활동이라는 교육시간을 이수했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대학에서 졸업하기 위해서는 정해진 학점의 교양과목을 이수해야 한다. 하지만 교양과목의 이수가 한 인간의 진정한 교양의 정도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대학교육을 받지 않은 사람도 얼마든지 교양이 있을 수 있고, 좋은 대학을 나와도 교양없는 품성을 가진 사람이 있을 수 있다. 그래도 나는 대학에서 일정 시간 교양 과목을 교육시키는 것이 괜찮은 제도라고 생각한다.

마찬가지로 국어나 수학뿐 아니라 자원봉사활동도 의무교육과정에서 일정 시간 이수를 해야하는 중요한 시민정신 교육의 일부이고, 그것이 상급학교 진학에 반영되는 것이 나는 매우 훌륭한 제도라고 생각한다.

청소년 인성교육으로서의 자원봉사활동

봉사시간은 청소년들이 교실과 학원에서 벗어나 사람들을 만나고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도록 숨통을 틔워주는 시간이다. 봉사활동이 의무화되어 있기에 그나마 몇 시간이라도 활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학부모와 학교가 허락을 해 주는 것이지 그마저 없다면 학원수업과 보충수업을 강요 받는 것이 청소년들의 현실이다. 방과 후에 학생들이 시간을 보내는 곳은 보충수업과 학원수업 아니면 피씨방이며, 가정에서도 청소년들이 여가를 보내는 방법은 TV 아니면 컴퓨터뿐이다.

이런 식으로 입시만 강요하고 보람 있고 건전한 여가를 박탈할수록 청소년은 게임 등의 자극적 쾌락만 추구하게 되어 서로 소통하고 배려하며 교감하는 능력을 상실하고 있다. 청소년들을 폭력성향과 분노, 우울과 울분으로 가득 찬 존재로 만들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어른들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참혹한 현실로 드러나고 있다. 청소년들을 우울증과 폭력과 죽음으로 몰아가면서도, 요즘 청소년들이 문제가 많다며 말로 떠드는 것 외에는 사회와 어른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문제 청소년들을 처벌하고 때리는 것으로 인성 교육을 할 수는 없다. 고리타분한 교사들의 훈화도 아이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는 없다. 이런 상황에서 인성 교육의 중요한 수단인 자원봉사활동은 교육적 대안으로 떠오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축소되고 있다. 과연 이것이 바람직한 일일까?  


태그:#청소년 봉사활동, #자원봉사, #농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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