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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수정: 12월 1일 오후 10시 55분]

<미친 등록금, 미친 알바>는 사진과 함께 보는 구술사입니다. 저는 이 연재를 통해 미친 등록금에 미친 알바의 삶을 사는 그들의 모호하고, 이질적이고, 하나로 치환할 수 없는 목소리를 보여주려고 합니다. - 기자말

힘든 건 상관없으니 돈이나 많이 쳐 주세요

주유소에서 일은 주말에 합니다. 주말에 가서 밤 8시부터 다음 날 아침 8시까지 일 하는 겁니다. 그러면 일당 4만원 받습니다. 물론 법정 금액 아래지요. 그렇지만 고발 같은 건 못합니다. 저희들이 약자인데, 어떻게 합니까?
 주유소에서 일은 주말에 합니다. 주말에 가서 밤 8시부터 다음 날 아침 8시까지 일 하는 겁니다. 그러면 일당 4만원 받습니다. 물론 법정 금액 아래지요. 그렇지만 고발 같은 건 못합니다. 저희들이 약자인데, 어떻게 합니까?
ⓒ 이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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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내려왔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한심한 일이지만, 중학교 다닐 적에 동네를 어슬렁거리고 돌아다니다가 공부할 때를 놓쳤습니다. 전역하고 늦게 대학에 들어와 나이 어린 동생들과 경쟁하려니 참 힘들더군요.

저도 그렇지만, 대부분 곤란한 집 아이들은 처음 입학할 때 장학금을 노리는 것 같아요. 그런데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조금씩 불안해집니다. 저도 그랬어요. 알바를 하지 않고, 장학금을 노리다 실패해서 가진 돈은 모두 거덜 나고 굶기 직전까지 간 적이 있었습니다. 지금 같은 장학금 수혜율로는 저처럼 가난한 학생들이 알바도 안 하면서 장학금만 노리는 무리수를 두지 못합니다. 그래서 하루하루 먹고살기 힘드니까 일단 알바를 구하는 겁니다. 그러다보면 공부는 자연스럽게 소홀하게 되지요. 악순환의 연속입니다.

제가 어렸을 때, 저희 집은 식당, 개소주집, 수족관, 슈퍼 등 자영업이란 자영업은 다 해본 것 같아요. 그런데 그 자영업이라는 게 그리 쉽지 않습니다. 아버지는 개업 후 장사가 안돼서 업종을 바꾸다가 결국 그만두시더라고요. 결국, 지금은 주차장 관리를 하십니다. 한 달에 120만 원 정도 버십니다. 결국 제가 방학 때 돈을 벌어 집안 살림을 돕는 수밖에 없습니다. 누나는 자기 밥벌이를 간신히 하니 별 도움이 안 되고요.

전 방학 때 알바를 두 개씩 뛰기도 합니다.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서울 용산전자상가에서 배송 알바를 뜁니다. 아시잖아요. 가게마다 필요한 컴퓨터 부품을 전화로 주문하면 골목골목 비집고 다니면서 갖다 주는 일이요. 그거 합니다. 하루에 삼사백 번 뛰어다니는 것은 기본입니다. 그 알바가 끝나면 홍대 앞 호프집에서 밤 12시까지 홀서빙을 해요. 주 5일제이긴 하지만, 주말에 연락 오면 바로 나가야 합니다. 그렇게 뛰면 한 달에 한 200만 원 정도 벌어요.

그렇게 벌어서 70만 원 정도는 부모님께 드리고, 50만 원 정도는 학자금 대출을 갚아요. 나머지는 아껴 뒀다가 다음 학기 생활비로 쓰지요. 물론 그 돈으로 부족하니 학자금 대출 받을 때 생활비 대출도 받습니다. 처음에는 100만 원을 융자받았는데, 빚이 너무 많아져 이제는 60만 원 정도 빌립니다. 최대한 안 쓰고 살아요. 그러다 돈이 떨어지면 학기 중에 주말 알바를 합니다. 주로 용역 일을 하지요.

주말에 주유소에서 알바합니다. 토요일 밤 8시부터 다음 날 아침 8시까지 일해요. 그러면 일당 4만 원 받죠. 물론 법정 금액보다 적지요. 그렇지만 고발 같은 건 절대 못합니다. 저희들이 약자인데, 어떻게 합니까? 잠이 쏟아지고 힘들지 않냐구요? 주유기 옆에 세워진 가건물 안에 들어가 잠깐잠깐 눈도 부치고, 시험 철에는 공부도 해요. 이젠 익숙해져서 괜찮습니다.

힘든 것은 관계없어요. 그저 돈이나 많이 줬으면 좋겠어요. 근데 대학 주변에는 저같은 알바들한테 법정 금액에 맞춰 돈을 주는 곳이 별로 없습니다. 게다가 부산 자체가 대학생 인건비를 정말 싸게 칩니다. 그래서 학생들이 다들 서울로 알바 뛰러 가겠지요.

일단 취업부터 해야 해요... 막다른 골목에 있습니다

이제부턴 취업 전선으로 뛰어 들어가는 겁니다. 하루 종일 공부만 할 겁니다. 지금까지 학자금 대출 받은 빚 1000만 원 갚으려면 취업 해야 하니까요. 막다른 골목입니다.
 이제부턴 취업 전선으로 뛰어 들어가는 겁니다. 하루 종일 공부만 할 겁니다. 지금까지 학자금 대출 받은 빚 1000만 원 갚으려면 취업 해야 하니까요. 막다른 골목입니다.
ⓒ 이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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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하는 게 공부에는 방해되는 건 맞아요. 그렇다고 해서 알바가 무조건 쓸모없는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알바를 장기간 했다는 것도 취업할 때 상당한 무기가 될 수도 있을 겁니다. 전 누구나 다 아는 힘든 알바를 오랫동안 성실하게 했거든요.

고등학교 1학년 때 부모님께 '대학 가면 돈 한 푼도 주시지 마라', '제가 돈 벌어서 학교 다니겠다'고 객기를 부렸습니다. 자존심이기도 했죠. 수컷으로서의 존재 이유였습니다. 그래서 단 한 번도 알바를 하지 않고 대학 생활을 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공부를 못 했죠. 공부가 늦어졌지만 그것도 인생의 한 페이지 아니겠어요? 엄마가 괜찮다. 우리 아들, 기다리마'라고 말씀해주시니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교수님도 아시다시피 제가 오랫동안 초밥집에서 일했잖아요. 이번 학기 시작하고 그만뒀는데, 솔직히 제가 정식 조리사들보다 더 기술이 좋았습니다. 그건 제 알바 철학 때문에 그래요. 처음에 들어가서 '시급도 중요하지만, 우선 일부터 제대로 가르쳐 달라'고 했습니다. 다른 알바 할 때도 마찬가지였어요. 대개 처음 들어오면 일이 익숙하지 않아 더디잖아요. 근데 사장들은 농땡이 친다고 혼내죠. 전 그런 게 싫고, 자존심 상해서 일부터 확실하게 배우려고 했어요.

초밥집은 다른 알바에 비해 벌이가 조금은 괜찮고, 안정적이라 좋긴 했습니다. 하지만 사실 기술에 비하면 돈은 그리 많이 주진 않는 편이에요. 일 시키는 것도 그래요. 밤 10시 이후에 일하면 시급을 1.5배 더 줘야 한다는 법규가 있다면서요? 초밥집 사장은 그거 더 안 주려고 딱 경계선까지만 일을 시켜요. 잔인한 사람들이지요. 2년 정도 일했는데, 달인 비슷한 경지까지 올랐습니다. 초밥집에서 정직원으로 일하자고 제안할 정도였으니까요. 근데, 저는 거절했습니다.

직장이라는 게 뭔가 발전이 있어야 하잖아요. 근데 그게 안 보이더라고요. 지금은 독서실에서 알바해요. 뭐, 일이랄 게 있나요? 오전에만 하는데…. 책상에 앉아 제 공부하는 거지요. 이번 가을부터 본격적으로 공부하려고 휴학까지 하면서 잡은 알바 자리입니다. 이런 알바 자리는 경쟁이 치열해요. 근데 이젠 이것도 그만두려고요. 독서실 관리 알바하는 시간도 아까워서 이젠 공부만 할 거예요. 엄마가 생활비를 조금 주신다고 하세요. 돈을 거의 안 쓰면 되죠.

이제부턴 취업 전선으로 뛰어들 준비만 할 겁니다. 종일 공부만 하려고요. 지금까지 학자금 대출로 생긴 빚 1000만 원을 갚으려면 우선 취업부터 해야 하니까요. 저는 지금 막다른 골목에 있습니다.


태그:#미친 등록금, #알바, #대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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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사 전공의 역사학자. 역사를 분석하는 역사학자로서의 삶도 중요하지만, 역사에 참여하여 역사를 서술하는 역사가로서의 삶이 더 중요하다고 믿는다. 현재 부산외국어대학교 교수이자 해고자생계비지원을 위한 만원의연대 운영위원장 및 5.18기념재단 이사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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