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미친 등록금, 미친 알바에 대한 단기 보고서 연재를 시작하며]

한진중공업 사태가 막판 타결을 향해 치달을 때 이 시대를 고민하는 사진가들이 모여 프로젝트 기획 <85의 85>를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김진숙 지도위원이 있는 85호 크레인에서 희망을 찾고자 '85'라는 숫자의 상징이 드러내는 절망과 희망을 사진과 글로 보여주자는 기획이었습니다. '85'라는 숫자가 가시적으로 드러나는 사진과 글이 주로 모이는 가운데, 저는 숫자의 가시적 상징성을 떠나 그 비가시적 의미를 대학의 현실에서 찾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이름 하여 [미친 등록금, 미친 알바]를 시작하려 합니다. 벼랑 끝에서 버티는 희망, 그 고단하고 슬픈 이야기가 85개가 모일 때까지 해보기로 했습니다.

이 작업은 사진과 함께 보는 구술사입니다. 정제되지 않는 날 것이 주는 스토리텔링의 힘을 보여주고 싶은 것이지요. 최근 역사학에서도 자주 제기된 문제이기도 하지만, 우리가 사는 세상의 목소리는 일부 특정 집단의 것임에도 마치 그것이 전체의 것인양 인식되고 있습니다. 대학의 경우, 대개 공부 잘하고, 똑똑하고, 부잣집 아이들이고, 자신감 있고, 계획적이고, 자기 소신 뚜렷한 학생들의 목소리만 있습니다. 물론 그 중 대학을 거부하는 학생도 있긴 합니다.

어떤 사정에 의해 어쩔 수 없이 대학을 다녀야 하고, 소질에 안 맞지만 4년제 대학을 다녀야 하고, 집이 가난해서 공부하고 싶어도 알바 때문에 공부할 시간이 없고, 집안은 충분히 잘 살지만 놀고 싶은 청춘이라 알바하느라 공부를 못하고, 남자로서 '수컷의 본능'을 갖고 싶어 알바를 하고, 등록금에 대해 불만도 별로 없고, 그냥 생각 없이 살고, 왜 학교에 다녀야 하는지 모르겠고, 등록금이 너무 비싸 학교가 하는 짓이 도저히 마음에 안 들지만 그냥 아무 말도 못 하고, 그냥 알바만 하고…. 이런 잡다하고 이질적인 목소리는 존재하지 않는 양 사그라지고, 죽어 들리지 않습니다.

이 작업을 통해 그 목소리들이 비록 못난 인생으로, 열등한 삶으로 치부된다 할지라도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그 작고 못난 삶의 목소리도, 그 자체로서 존재의 가치를 인정받아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그들의 다양하고 이질적이며 서로 모순되기까지 한목소리들은 여과 없이 세상에 보여야 하는 겁니다. 그저 그것뿐입니다. 저는 특별히 무언가를 주장하고 싶은 것이 없습니다. 미친 등록금에 미친 알바의 삶을 사는 그들의 모호하고, 이질적이고, 하나로 치환할 수 없는 목소리를 보여주고 싶을 뿐입니다.

구술자의 사진과 함께 글을 담는 것은 역사 서술이(스토리텔링이) 시 혹은 예술의 방식으로도 이뤄질 수 있다는 것을 보이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그동안 역사 서술에서 주류를 이뤄 온 이성적이고 체계적인 계몽주의적인 형식을 배제하고자 하는 시도라는 이야기입니다. 예술로 쓰는 역사, 감성으로 쓰는 역사, 그런 개념이지요. 일반화할 수 없는 특수한 경우일 수 있지만, 그렇다고 그것의 가치가 폄하될 수는 없습니다. 객관적이지 못하다 해서 가치를 잃을 수도 없습니다. 담론이나 주장도 중요하지만, '날 것으로서의 이야기' 역시 중요합니다. 저는 이 작업을 통해 보이되 보이지 않고, 존재하되 존재하지 않는 존재들의 목소리를 세상에 들려주고 싶을 뿐입니다. - <기자 말>

한진중공업 앞에서 용역 알바... 괴로웠습니다

아무리 돈이 필요하다지만, 나는 노조 편이고, 김진숙 씨를 지지하는 편인데, 이런 짓을 하고 있다는 게 많이 부끄러웠습니다.
 아무리 돈이 필요하다지만, 나는 노조 편이고, 김진숙 씨를 지지하는 편인데, 이런 짓을 하고 있다는 게 많이 부끄러웠습니다.
ⓒ 이광수

관련사진보기


지금은 다행히 내려왔지만, 지난 여름 김진숙씨가 85호 크레인에 올라가 있을 때 저는 한진중공업 앞에서 용역 알바를 했습니다. 부끄럽지만요. 아버지가 안 계셔서 집에 돈 벌 사람은 저밖에 없습니다. 군 전역 후 고졸로 어떤 무역회사에 취직했는데, 배운 게 없다 보니 그냥 단순한 노가다 일만 했습니다. 장래가 보이지 않더군요.

그래서 다시 복학했습니다. 요새는 작은 누나가 '내가 교사 임용 고시 준비하는 동안 네가 돈 버느라 공부할 시기를 놓쳤다'고 미안해하며 '이제 자기가 도와줄 테니 알바 하지 말고 공부를 해라'고 합니다. 하지만, 저는 그럴 수 없습니다. 수업이 끝나면 바로 호프집으로 가는 게 일상이 돼 버렸습니다. 방과 후에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게 이런 것밖에 없어요. 시급 4500원, 법정 기준 4320원에 180원 더 주지요. 그래 봤자 한 달에 60만 원도 못 법니다. 간신히 제 용돈 쓰고, 조금 저축하지요. 등록금이요? 이렇게 벌어 등록금은 턱도 없습니다. 등록금은 방학 때 아침부터 온종일 바짝 일해서 마련합니다.

그래서 지난 여름 한진중공업 앞에서 용역 알바를 한 겁니다. 아침 7시까지 가서 준비하고, 8시부터 저녁 8시까지 온종일 알바를 뛰면 7만 원 줍니다. 일당을 군소리 안 하고 꼬박꼬박 잘 주니까 정말 좋았습니다. 열흘 일하고 70만 원 벌었습니다.

제가 열흘만 일하고 그만둔 이유는 너무 부끄러워서였습니다. 사실, 저희는 담벼락 밑과 정문 앞에 서서 누가 담을 넘어가는지 감시하고 보고하는 일 정도만 할 뿐, 싸우거나 사람들을 진압하는 일을 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부끄러울 건 없다고 생각해서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시작하고 사흘 정도 지나고 나니까 후회가 되더라고요.

사흘째 되던 날이었을 겁니다. 아침에 늦어서 급히 택시를 탔습니다. 제가 사는 동네가 한진중공업하고 가까워 기본요금만 내면 되거든요. 늦으면 일거리가 없으니까 택시라도 타야지요. 아무튼, 그때 택시 기사가 용역들을 보고 '생각이 없는 놈들'이라고 욕을 하더라고요.

한진중공업 사측이 지난 6월 10일 용역경비 450여 명을 투입해 11일 85호 크레인 아래에서 열리는 희망버스 행사 원천봉쇄에 나섰다. 사진은 정문을 뚫고 진입하는 용역경비원들.
 한진중공업 사측이 지난 6월 10일 용역경비 450여 명을 투입해 11일 85호 크레인 아래에서 열리는 희망버스 행사 원천봉쇄에 나섰다. 사진은 정문을 뚫고 진입하는 용역경비원들.
ⓒ 박민혁

관련사진보기


너무나 부끄러웠습니다. 그래 다른 노가다를 구하려 백방으로 알아 봤고, 구해지자마자 그만 뒀습니다. 하루 종일 서 있는 동안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아무리 돈이 필요하다지만, 나는 노조 편이고, 김진숙씨를 지지하는 편인데, 이런 짓을 하고 있다는 게 많이 부끄러웠습니다. 주변 사람들이 지나가면서 제게 눈을 흘기는 것도 괴로웠습니다. 그런데 '니들이 무슨 죄냐' '돈이 죄지'라고 위로를 해주는 어르신들도 있었습니다. 정말 눈물나게 고마웠습니다.

용역들 가운데는 '정의감'에 열심히 하는 친구들도 있었습니다. 폼으로 봐서는 깍두기 비슷한 사람 같던데, 어떤 용역 회사 관계자는 '니들은 경찰하고 같이 일을 하는 것이니 사람들을 때려도 괜찮다'라는 어처구니 없는 말을 하더군요. 그런 말을 곧이 곧대로 믿고 세뇌당해 노동자들을 증오하는 녀석들도 있었습니다.

저는 그런 것이 너무 괴로워 그만 뒀습니다. 큰 죄를 저지른 건 아니지만, 부끄럽습니다. 그렇지만 돌아서면 다시 등록금 벽에 숨이 막힙니다. 대한민국 최고급 대학생 인력이 시간 당 4320원을 벌어 등록금 300만 원을 내야하는 현실…. 마치 거대한 빙벽을 마주하고 있는 기분입니다.

한 마디로 부모님 간섭받기 싫어서 일해요

그냥 한 마디로 부모님 간섭 받기가 싫어서요. 부모님 딸 사랑은 알겠는데, 그래도 부담스럽고 자유스럽지 못해서 싫어요. 그런 상황인데 용돈까지 받아쓰면 어떻겠어요?
 그냥 한 마디로 부모님 간섭 받기가 싫어서요. 부모님 딸 사랑은 알겠는데, 그래도 부담스럽고 자유스럽지 못해서 싫어요. 그런 상황인데 용돈까지 받아쓰면 어떻겠어요?
ⓒ 이광수

관련사진보기


저는 휴학을 두 번에 걸쳐 2년이나 했습니다. 돈이 없어서라거나 등록금이나 용돈을 벌려고 한 것은 아니고요. 그냥 한 마디로 부모님 간섭받기가 싫어서요. 저희 집은 부자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삽니다. 그런데 세상에…. 저희 집에는 지금도 통금 시간이 있어요. 정말 창피해요. 부모님의 딸 사랑은 알겠는데, 그래도 부담스럽고 자유스럽지 못해서 싫어요. 이런 상황인데 부모님께 용돈까지 받아 쓰면 어떻겠어요? 용돈에 코가 꿰면 저는 꼼짝도 못하잖아요?

그래서 고등학교 졸업 후 '경제적으로 독립해야겠다' 싶어, 바로 햄버거 가게 알바를 시작했습니다. 4대 보험도 들어주고, 건강검진도 해주고, 나름 신사적으로 대접해 주니 학생이면서도 어른 대접 비슷하게 받는 것 같아 기분이 좋습니다. 벌써 3년 넘게 하다 보니 이제는 매니저 직급까지 올라갔습니다. 상당한 권한도 있고, 책임도 있습니다. 그래서 졸업 후에도 제가 원하기만 하면 이곳을 평생직장으로 삼을 수도 있습니다. 물론 급여가 박해서 현재까지는 그럴 생각은 없지만요.

저도 수업 중에 많이 졸았습니다. 그런데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존다는 게 꼭 그 전날 알바가 힘들어서만은 아닐 겁니다. 물론 그런 학생들도 있겠지만요…. 알바도 문제지만, 공부를 싫어하는 것도 분명히 있어요. 아마 교수님은 잘 구별 못하실 겁니다. 적어도 저 같은 경우에는 피곤해서가 아니라 점심 먹고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생리 현상 때문에 졸기도 합니다. 공부에 별 취미도 없고 해서 그러겠지요.

물론 부모님이 등록금 다 대주시니, 자기가 돈 벌어 등록금 내는 친구들과 같은 심정은 아니지만, 등록금이 너무 비싸다는 생각은 자주 합니다. 특히 이렇게 휴학을 마치고 복학할 때면 더욱 그런 것을 느낍니다. 2년 전이나, 지금이나 뭐 하나 바뀐 것도 없잖아요. 아니, 차라리 노후화해서 공부하는 환경은 더 열악해졌어요. 세상에 기름값 비싸다고 셔틀버스 노선을 폐지하는 대학이 어디 있나요? 등록금은 300만 원 넘게, 해마다 올릴 건 다 올려놓고….

왜 알바만 하냐고 묻지 마세요... 눈물 납니다

저는 돈을 벌어야 학교에 다니니 어쩔 수 없이 알바에 가야 하는데, 그런 사정을 모르는 친구들이 왜 자꾸 그런 걸 하면서 같이 안 노느냐고 할 때면 서러움에 북받쳐 눈물이 왈칵 쏟아집니다.
 저는 돈을 벌어야 학교에 다니니 어쩔 수 없이 알바에 가야 하는데, 그런 사정을 모르는 친구들이 왜 자꾸 그런 걸 하면서 같이 안 노느냐고 할 때면 서러움에 북받쳐 눈물이 왈칵 쏟아집니다.
ⓒ 이광수

관련사진보기


휴학한 지 1년 하고 3개월 정도가 지났네요. 제가 내년 2학기에 복학하면 2학년 2학기입니다. 작년 1년 동안 지금 일하는 커피숍에 정직원으로 일했습니다. 하루 11시간 일하는 것을 조건으로 정직원이 되지요. 보너스도 나오고, 1년 뒤 그만둘 때 퇴직금도 받지만, 엄밀히 따지면 알바보다 시급을 덜 쳐줍니다. 하루 11시간씩 일주일에 여섯 번 일하고 120만 원을 법니다. 그 중 70만 원 정도는 적금을 붓습니다. 지금은 하루에 7시간씩 일주일에 여섯 번 일하는데, 추가로 필요할 때 불려 나가 일할 때도 있습니다.

지금까지 등록금을 세 번 냈는데, 모두 대출을 받아 냈습니다. '빚쟁이'라는 부담이 정말 싫어서 빨리 갚으려고 휴학한 겁니다. 다달이 50만 원 정도 대출금을 갚는 데 쓰입니다. 나머지는 제 생활비로 쓰지요. 휴대전화비 내고요. 요새 스마트폰 쓰면서 돈이 너무 많이 들어갑니다. 한 달에 7만~8만 원 들어가니까요. 그렇다고, 젊은데 휴대전화를 안 쓸 수는 없잖아요.

고등학교 때까지는 아버지가 수산물 납품 일을 하셔서 그런대로 잘 살았어요. 그런데 제가 고3 때 아버지 사업이 부도났어요. 그래서 지금 아버지는 거래처 직원으로 일하고 계세요. 가슴이 아프지만 어쩔 수 없으셨겠지요. 저는 동생이 두 명이에요. 아버지가 버는 돈으로는 저와 동생 둘 교육비를 댈 수 없어서 제 몫은 제가 다 해결합니다.

바로 아래 동생은 간호학과 다녀요. 그래서 시간이 나질 않아 알바를 못 하고, 아버지 수입에 의존하지요. 그런데 동생은 저도 아버지한테 돈을 받아 쓰는 줄 알아요. 아무리 철이 없어서 모른다고는 하지만, 동생을 위해서 제가 고생하는 걸 몰라줄 때는…. 정말 섭섭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에요. 어쩌다 쉬는 날이면 동생들은 텔레비전 보면서 희희덕거리고 놀고, 저는 돈 벌러 나가야 하는데…. 솔직히 짜증이 나지요.

저는 아버지 얼굴을 볼 시간이 없습니다. 아버지는 새벽 3시에 출근하시는데, 제 알바 끝나고, 밤에 학원에 가서 영어 공부하고 집에 돌아오면 아버지는 이미 주무시고 계시니까요. 학원비가 20만 원이나 하는데, 정말 숨 막힐 정도로 비싸요. 학원에서 비싼 돈 내고 듣는 강의를 등록금 300만 원이나 가져가는 대학에서 해주면 얼마나 좋을까요.

알바를 하면서 특별히 힘든 건 없습니다. 다만, 인간에 대해 환멸을 느낄 때가 있어요. 사람을 평가할 때 꼭 그 지위에 따라 차별 대우를 하더라고요. 같은 커피숍에 같은 직원들이잖아요. 근데 제가 정직원으로 일할 때는 함부로 하지 않더니만, 알바로 전환해 일하니 그렇게 무시하고 막 대할 수가 없어요. 알바생이라면 누구나가 경험해 본 차별의 서러움일 거예요.

그렇지만 알바의 서러움은 뭐니뭐니해도 친구 간에 생기는 것이더군요. 저는 돈을 벌어야 학교에 다니니 어쩔 수 없이 알바에 가야 하는데, 그런 사정을 모르는 친구가 '왜 자꾸 그런 걸 해서 우리랑 같이 안 노느냐'고 할 때면 서러움에 북받쳐 눈물이 왈칵 쏟아집니다.

덧붙이는 글 | * 이 기사를 쓴 이광수 기자는 부산외국어대학교 러시아인도통상학부 교수입니다.



태그:#미친 등록금, #알바, #대학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5,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인도사 전공의 역사학자. 역사를 분석하는 역사학자로서의 삶도 중요하지만, 역사에 참여하여 역사를 서술하는 역사가로서의 삶이 더 중요하다고 믿는다. 현재 부산외국어대학교 교수이자 해고자생계비지원을 위한 만원의연대 운영위원장 및 5.18기념재단 이사를 맡고 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