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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정문 사이로 본관이 보인다.
 고려대학교 정문 사이로 본관이 보인다.
ⓒ 김한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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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학 실험에 사용되는 물품이 절대적으로 부족해서 조교가 자신이 속한 실험실에서 기기를 가지고 오는 실정이에요. 실험에 필요한 세균이 없어서 E.coli(생물학 실험에서 가장 기본적인 세균)로 모든 실험을 해결하고 있어요."

고려대학교 생명과학부 3학년에 재학 중인 김태희(가명)씨는 '실험·실습' 이야기가 나오자 목소리를 높였다. 사실 김씨는 2학년 때까지 등록금에 실험·실습비가 포함되는지 몰랐다. 별도로 금액이 책정된 것치고는, 시설이 너무나도 열악했기 때문. 그가 이 사실을 알게 된 것은 학생회 및 등록금 투쟁에 참여하면서부터다. 김씨는 실험 환경에 비해 등록금 수준이 "부당하다"고 말했다. 

고려대학교 이공계열 실험실습실 복도
 고려대학교 이공계열 실험실습실 복도
ⓒ 최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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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 09학번으로 고려대학교 환경생태공학부에 입학한 김지은(여·가명)씨도 실험·실습 환경에 대해 쓴소리를 했다. 김씨는 "실험이 고등학교 수준만도 못한 것 같다"며 "등록금 낸 만큼 지원을 못 받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한미영(가명·신소재공학부 4학년)씨가 속해 있는 공과대학도 앞서 언급된 학과들과 상황이 그리 다르지 않았다. 공과대학의 경우 각 학과마다 해당 실험과목을 수강하게 돼 있는데, 실험 여건이 좋지 않아 모든 학생이 실습을 해볼 수 없다는 것.

한씨는 "연구실에 가서 실험과정을 살펴봐야 하는데 사람은 많고 실험기기는 하나라 다들 지켜보기만 해야 한다"며 "실험·실습이 반드시 필요하긴 하지만 현재 상황은 별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공계열의 경우 고가의 실험기기가 필요하기 때문에 인문계보다 등록금이 높을 수 있다는 건 인정한다"며 "그러나 (그만큼) 지금보다 누릴 수 있는 것이 더 많아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낡고 오래된 실험기기... 대학교 실험실 맞아?

이공계열 학생들의 가장 큰 불만은 높은 등록금에 비해 환경이 아주 열악하다는 것. 등록금에 별도의 실험실습비가 포함돼 있는데도 제대로 된 실험을 해볼 수 없다는 게 대체적인 의견이다. 올해 고려대학교 이공계열에 입학한 신입생의 1학기 등록금은 470만원가량. 이 중 10여만원이 실험실습비 명목으로 편성됐다.

하지만 취재를 위해 찾은 실험실습실 환경은 학생들 말대로 상당히 열악했다. 대부분의 실험 기구가 녹슬고 지저분했을 뿐만 아니라 그마저도 고장이 나 사용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았다. 또 실험기구들이 낡고 오래돼 대학 수업에 걸맞은 난이도의 실험은 불가능했고 기본적인 실험만 '수박 겉핥기'식으로 진행되는 실정이었다.

고려대학교 이공계열 실험실. 낙후된 실험장비들이 실험실에 방치되어있다.
 고려대학교 이공계열 실험실. 낙후된 실험장비들이 실험실에 방치되어있다.
ⓒ 최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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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실습비 10여만원을 제외하더라도 등록금은 여전히 비싸다. 각 계열별 2009학년도 1학기 등록금을 비교해보면, 문과대 학생들은 345만원을 냈고 정경대는 369만원, 생명과학대학과 보건과학대학은 420만원, 공과대 학생들은 480만원을 납부한 것으로 나타났다.

등록금 액수만 놓고 따져봤을 때 인문계열 학생과 이공계열 학생 사이에 적게는 70여만 원에서 많게는 130여만 원 정도의 차이가 존재한다. 단순히 학점을 놓고 비교해봤을 때 두 학생이 수강할 수 있는 학점은 19학점. 대략 6~7과목 정도로 동일하고 실험·실습을 제외하고 나면 '강의'라는 점에서는 하등의 차이점이 없기 때문에, 인문계와 이공계간 등록금이 차등 책정되는 것은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

겨울이면 '얼음조각' 해야 한다는 괴담까지

비단 이런 열악한 학습 환경은 이공계열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최근 언론에 몇몇 대학 예술계 학생들의 열악한 학습 환경이 보도되면서 많은 논란이 일었다. 고려대학교 조형학부 사정도 타 대학 예술계 학생들 상황과 그리 다르지 않았다. 등록금은 의과대학 다음으로 많이 내지만 그들의 작업공간은 납부한 금액의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

고려대학교 조형학부 건물은 냉난방시설이 갖춰지지 않은 조립식이다. 학부생들 사이에선 '겨울이 되면 그림 그리려고 떠다 놓은 물이 얼어서 얼음조각을 한다'는 괴담이 떠돌 정도로 열악함 그 자체다.

조형학부에서 조형미술을 전공하는 최성수(가명)씨는 "고액의 등록금을 내는데도 재료비는 개인의 몫이고, 교수 인원이 상당히 부족한 상태"라며 "조각 작업에 필요한 장비가 너무 낡아서 위험하다"고 우려했다.

이와 관련, 학교측 한 관계자는 "실험실습 환경을 개선할 계획은 세워져 있고 조금씩 바뀌어 나가고 있다"면서 "조형학부 같은 경우 단과대학으로 승격될 계획이 있고 계속 진행 중이다"라고 밝혔다.

고려대학교 조형학부 건물 전경
 고려대학교 조형학부 건물 전경
ⓒ 최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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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학생회 "학교측, 협상 테이블도 안 만들어"

등록금은 날이 갈수록 천정부지로 치솟지만, 그에 합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는 게 요즘 학생들이 처한 상황이다. 고려대학교 총학생회는 지난 3월~4월, 이런 학생들의 목소리를 모아 학교측과 등록금 관련 협상에 들어갔다. 이 과정에서 60~70여 개의 요구안을 학생처에 전달했다. 하지만 학생들의 요구안은 대부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학교 관계자는 "요구안을 받자마자 총학생회에 회신을 줬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고려대학교 총학생회에서 등록금 투쟁을 담당하고 있는 유지영(정경대 4학년)씨는 "(학생처의 답변은) 내용이 없는 답변이었다"며 "두 차례에 걸쳐 답변을 받았는데, 대부분 '잘 모르겠다', '할 수 없다'란 내용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요구안 중) 들어주겠다고 한 게 하나도 없다"며 "학교측은 협상 테이블도 만들지 않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총학생회측은 "학교 홈페이지에 공개된 예·결산공고를 조사, 추정해본 결과 최근 몇 해 동안 고려대학교에서는 해마다 200억원 이상의 등록이월금이 발생했다"며 "누적된 총 등록이월금은 13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학교측 관계자는 "학생들이 '등록 이월금'에 대해 잘못 알고 있는 것"이라며 "등록 이월금은 등록금이 이월된 것이 아니라 외부에서 들어오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대부분 건축기금이나 장학기금으로 이용되고 올해 집행되지 못한 것들을 '이월금'이라고 한다"고 설명했다. 또 "총학생회와는 계속 협상 중"이라고 덧붙였다.

고려대학교 조형학부 건물의 안내 표지판
 고려대학교 조형학부 건물의 안내 표지판
ⓒ 최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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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몇몇 언론에 '고려대 1300억원 펀드투자 의혹'이란 제목의 기사가 떴고, 이것의 진위 여부를 놓고 논란이 많이 일었다. 이와 관련, 고려대학교 총학생회는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학교측에 명확한 답변을 요구했지만, 학교측은 '관련된 부분은 경영상 비밀이라 밝힐 수 없다'고 답변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지영씨는 "현재의 등록금 정책은 학생들의 배울 권리를 인정하지 않고 가진 자만 배울 수 있게 하고 있다"며 "학교도 문제지만 교육철학이 제대로 없는 현재의 정부에도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누구를 위한 정부인가? 등록금 때문에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는데…"라고 일갈했다.


태그:#등록금, #등록금투쟁, #교육권, #고려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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