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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이 되면 졸업 예정 4학년들은 걱정이다. 요즘 대학교 4학년들은 항상 수많은 걱정거리들을 안고 살아가는 실정이지만, 5월이 되면 졸업앨범에 들어갈 사진을 촬영해야 하기에 걱정거리가 하나 더 생기는 것이다. 그냥 평소 모습대로 가서 찍을 수 있으면 좋으련만, 대학교 졸업앨범인 데다가 정장을 입지 않고 가면 사진을 찍어주지 않는다는 '괴담'까지 들려오니 여긴 신경 쓰이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정장 한 벌 사자니 그것도 영 내키지 않는다. 4학년이라지만 졸업을 할지 안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입지도 않을 옷을 사기도 여의치 않을 뿐만 아니라 정장은 보통 수십만 원을 호가하기에 넉넉지 않은 주머니 사정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답답한 심정을 십분 이해하는 것일까. 서울의 한 백화점에서 졸업사진 촬영 시즌을 맞이하여 정장을 빌려주는 행사를 진행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경제가 어렵다 어렵다 하더니, 이런 행사도 생기는가 싶다. 착잡한 마음과 반가운 마음을 동시에 품고 관련 기사에 나온 인터넷 카페를 찾아가보았다.

여성을 위한 행사의 이름은 '캠퍼스 신데렐라 프로젝트'. 5월 11일부터 행사가 시작된다고 했는데, 내가 카페에 가입한 날이 11일이었으니 예약이 어렵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이게 웬걸, 11일부터 30일까지 거의 모든 날짜에 예약이 완료되어 있었고, 기사와는 다르게 하루에 20여 명만이 예약할 수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보이고 예약이 폭증하자 주최 측에서 행사의 질을 위해 수용 인원을 줄인 것 같다.

예약이 더 이상 불가능하다는 공지에도 불구하고 각 날짜마다 10여 명 이상의 사람들이 혹시 모르니 예약 대기자명단에 추가해달라는 덧글을 달았다. '역시, 요즘 사람들 정보력은 당할 수 없구나' 하는 생각과 '이렇게 사람이 몰리는 것을 보니, 정말 정장 사는 것이 일이긴 하구나'라는 생각이 동시에 드는 순간이다.

서울 현대백화점 '신데렐라 프로젝트' 행사장 입구
 서울 현대백화점 '신데렐라 프로젝트' 행사장 입구
ⓒ 최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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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나 싶어 남성을 위한 '프린스 차밍' 인터넷 카페에 들어갔다. 친구라도 정장을 빌리면 좋지 않겠나 싶은 마음에서다. 또 한 번 놀란다. '캠퍼스 신데렐라 프로젝트'에 비하면 저조한 예약률이다! 남성의 경우, 정장을 한 벌 사면 계속 입기 때문에 보통 한두 벌 정도는 사는 경향이 있다고 하던데 그 때문인 듯싶다. 가능한 날짜로 예약을 요청하니 얼마 지나지 않아 예약이 가능하다는 관리자의 답변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예약 당일, 백화점 5층의 대여 장소로 갔다. 아담한 공간에 남성 정장 60여 벌이 걸려있고, 담당자가 한 명 상주하고 있다. 이름을 말하니 직원이 명단에서 이를 확인한 뒤 정장 선택을 도와주기 시작했다. 정장을 많이 입어보지 않은 대학생의 입장에서는 '어떤 것을 입어도 다 이상하게'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이를 아는 듯, 백화점 직원은 친절하게 어떤 색을 많이 선호하는지, 어떤 스타일이 요즘의 트렌드인지를 설명해주었다.

혹시나 철 지난 옷이나 하자가 있는 옷은 아닌가 싶어 자세히 살펴보았으나 특별히 문제를 찾아볼 수는 없었다. 직원에게 물어보니 9개 브랜드가 각각 옷을 내놓았고, 현재 매장에서 판매하고 있는 것과 이월상품이 섞여있다 한다. 무난하고 보편적인 수준의 옷들이 진열되어 있어 적절한 색깔과 디자인을 선택할 수 있고, 사이즈도 비교적 다양하게 구비해놓아 선택에 어려움이 없었다. 백화점에서 판매하는 보통 브랜드들의 옷들이니, 실제로 구매했다면 40~60만 원 정도는 각오해야 했을 터다. 처음엔 걱정이 반이었는데 직접 체험해보니 '이것 참, 이용할 만하다.'

서울 현대 백화점의 '프린스 차밍' 행사장
 서울 현대 백화점의 '프린스 차밍' 행사장
ⓒ 최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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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장 선택중. 현대백화점 '프린스 차밍' 행사장
 정장 선택중. 현대백화점 '프린스 차밍' 행사장
ⓒ 최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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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 드는 옷을 선택하고 나면 보증금 5만 원과 대여 서약서, 신분증을 제출한다. 바지 밑단의 길이를 조절하여 테이프로 고정시키고 나면 모든 대여 절차가 끝난다. 곱게 포장한 정장을 들고 백화점을 나서니 마음이 홀가분하다. 정장을 입을 친구도 이 행사가 만족스럽다는 의견을 내비췄다. 좋은 옷 한 벌을 사는 일도 나쁘지는 않겠으나, 하루 동안의 사진촬영을 위해 그 후 오랜 시간동안 장롱에 묵혀두어야 할 옷을 사는 것은 탐탁지 않은 일이 아닌가. 백화점은 행사를 통해 긍정적인 이미지를 남기고, 나는 덕분에 마음에 드는 옷을 빌려 입고. 결국은 '윈-윈(Win-win)'인 셈이다.

대여한 옷은 이틀 뒤에 반납해야 한다. 반납 시에는 보증금 5만 원을 돌려받는데, 여기에서 세탁비 6000원은 제외하고 받을 수 있다. 정장 구매에 드는 기십만 원을 6000원으로 줄인 기분, 꽤나 괜찮다.

봄바람 살랑살랑 부는 5월, 가장 아름다운 이때에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사진을 찍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같다. 하지만 점점 졸업사진을 찍는 사람이나 졸업앨범을 사는 사람이 줄어들고 있는 것을 보면 사진촬영을 준비하는 일이 생각보다 녹록치 않음을 알 수 있다. 요즘 같아서야 어디 녹록한 일이 있겠는가만은, 졸업사진 촬영에 입고 갈 옷 한 벌 구하는 일이라도 좀 쉬워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이런 '개념찬' 행사, 전국적으로 확대해주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태그:#프린세스 프로젝트, #프린스 차밍, #정장 대여, #졸업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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