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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년 3월10일 오전 강원도 원주시 1군사령부 정문앞. 차가운 아스팔트 바닥 위에 원주시 문막읍 동화1,3리 주민 100여명이 쌀쌀한 꽃샘추위에 움크리고 앉아 1군수지원사령부 이전계획 철회를 요구하며 연신 페트병을 두들겨댔다.

 

 

이들 중 좀 젊어 보이는 한 여성이 나와 마이크를 잡았다. 인근 부론면에 사는 권영자(39)씨였다. "울오빠 ..." 그렇게 몇 번이나 오빠를 되뇌이며 한참동안 말을 잇지 못하던 권씨는 설움에 북받쳐 끝내 울음을 터트렸다. 앉아 있던 할머니 아주머니들의 눈시울도 덩달아 붉어졌다.

 

 

사연은 이랬다. 권씨는 6년전 문막읍 동화1리에서 인근 부론면으로 출가했다. 친정 어머니 정상열(당시 78세)씨는 지난해 2월에 세상을 떠나고, 막노동으로 먹고 사는 오빠 영만(50)씨는 지난5일 일을 하다 사고를 당했다. 권씨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가뜩이나 먹고 살기 어려운 세상, 근근이 생계를 이어가던 친정오빠마저 사고로 병원에 입원한 마당에 마을마져 사라지고 나면, 갈 곳 없는 친정오빠의 삶이 막막해질 수 밖에 없는 절박한 현실. 그 헤쳐나가기 힘든 절박감이 권씨를 난생 처음으로 대중앞에서 서게 하고 끝내 눈물을 터뜨리게 했던 것이다.

 

얼핏 생각하면 이들의 반대시위는 공공이익은 뒷전이고 오로지 자신들의 이익만을 좇는 '님비'현상중 하나에 불과하다. 이날 시위를 바라보는 행인들의 표정도 그래 보였다. 그러나 이들은 비닐하우스 움막에서 벌이고 있는 이 힘들고 지리한 싸움은 벌써 3년째로 접어들었다.

 

 

  왜일까.  요즘은 보상도 그런대로 후하다던데... 이들의 외침과 호소문 성명서를 이런 저런 각도에서 생각해보았다.

 

  시각 1. '일단 반대부터 하고 결국은 보상금을 더 많이 타내야겠다는 생각으로 그러는 것은 아닐까'

 

  그런데 취재 결과 아니었다. 이들은 이미 심신이 지칠대로 지쳐있었지만 포기할 의사는 전혀 없어보였다. 이들은 이미 많은 것을 내주고 있었다. 2001~2005년 사이 동화농공단지가 들어서면서 이 마을 주민들은 26만㎡에 이르는 삶의 터전을 내줬다.  그런데 군부대 이전으로 다시 한번 120만㎡에 달하는 삶의 터전을 내줘야하는 처지에 몰린 것이다.

 

오순도순 모여살던 마을이 통째로 사라지는 것이다. 심지어 주민대책위원회 공동대표 박춘식(40)씨를 비롯한 몇몇 주민은 동화농공단지 조성사업으로 지금 사는 곳으로 이주한 지 5년만에 이젠 아예 다른 곳으로 '쫓겨나게' 생겼다는 것이다. "억만금을 준다고 해도 싫다"는 이들의 심정이 이해가 갔다.

 

시각 2. '이들 주장의 핵심은 무엇이며 현실성과 합리성 설득력은 있는가

 

  그동안의 호소문과 성명서를 근거로 핵심을 요약해 보면 ▶원주시 발전과 문막읍의 역할을 감안할 때 군부대 이전은 합당하지 않으며▶이전계획이 국방부 원주시 토지공사 3자간의 밀실계획이며▶계획수립과정에서 시민들의 의견이 배제됐다는 것이다.

 

 실제로 문막은 경기도 여주군과의 접경지역으로 원주시내에 비해 수도권으로부터 가까워 이미 3개의 공업단지가 들어서 있으며, 원주시가 첨단의료기기복합단지 조성을 추진중일 만큼 원주 중심부와 함께 원주시 발전의 양대축이다.

 

  원주시와 국방부 토지공사의 3자 합의사항에 대해서도 한결같이 '군사기밀'을 내세우고 있지만 주민들은 계획수립과정의 투명성을 요구하고 있을 뿐 말 그대로 '군사기밀' 공개를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주민들은 또 ▶동화1,3리로의 이전계획을 즉각 철회하고▶지금이라도 공모를 통해 이전 지역을 다시 결정할 것이며▶군사기밀이라며 공개를 거부하고 있는 3자 합의내용을 즉각 공개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이 대목에서도 주민들의 주장이 억지이며 '님비'라고 반박하기 어렵다. 실제로 공모제를 통해 공수부대를 이전한 경기도 이천시의 경우처럼 많은 지자체들이 공모제를 통해 각종 이전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구나 마을을 지키려는 농촌주민들의 절박한 심정을 이런 저런 이유로 외면하는 것도 무책임해 보인다.

 

이날 주민들이 (정말 나오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았지만) 1군사령관 면담을 요구하자 군 관계자들은 주민대표들을 군사령부 후문 면회실로 안내했다. 한 지역신문 사진기자가 기자들 취재는 거부됐다고 전했다. 주민대표들에 따르면 이자리에는 책임있는 답변을 할 사람은 물론 주민들의 절박한 심정을 달랠 만한 위치에 있는 사람도 나오질 않았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주민대표 한명이 "2020국방계획에 1군사령부와 3군사령부가 통합한다던 데 그것은 인정 할 수 있느냐"고 묻자 인정을 하면서도 이에따른 1군수지원사령부의 축소관련 물음에는 침묵으로 일관했다고 전했다.

 

또, "(동화리로의 이전여부를 떠나) 그러면 군부대 이전에 따른 주민 이주대책은 있느냐"는 질문에는 "원주시와 토지공사가 고민하고 있는 걸로 안다"면서 세부안은 추후 서면으로 답변하겠다고 해 할 수 없이 물러났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면담 장소도 면회실이고, 시위 현장에 토지공사는 물론이고 원주시에서도 담당 국장은 차치하고라도 최소한 담장과장은 나왔어야 하는 것 아니냐"며 "시골 노인들이 폭력시위할 것도 아닌 데 경찰들만 잔뜩 나왔다"며 허탈한 웃음을 흘렸다.

 

그렇다면 과연

 

  시각 3. '동화리로의 이전이 최선이며 유일한 선택인가'

  시각 4. '이전계획은 올바른 과정을 통해 수립됐느가'

  시각 5. '그렇다면 3자 합의내용은 과연 무엇인가'

  시각 6. '합의점은 없는가'

 

  궁금할 수 밖에 없다. 이에 대한 답변과 책임은 온전히 원주시와 국방부, 토지공사의 몫이다. '님비현상'이라거나 '발전을 위해 겪을 수 밖에 없는 성장통' 정도로 치부하면서 이들의 주장을 묵살하지 말고 귀담아 들어야 한다. 또한 그동안 추진과정을 투명하게 밝히고, 진정성있는 고민을 통해 객관적으로 납득할 수 있는 명쾌한 해결책을 제시해야한다. 

 

  길거리에 걸려있는 반대 현수막과 허수아비를 보면서 '의례 있는 반대시위겠지', '나와는 무관한 일'이라며 무심코 지나쳤던 내 자신이 부끄러웠다. '부모형제의 일' '나의 일'일 수 있다는 생각으로 관심을 갖고 함께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태그:#농촌여성, #친정오빠, #군부대이전, #문막읍, #동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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