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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디교육연구소, 대안교육연대, 생태지평연구소, 전국교직원노동조합, 환경운동연합 등이 공동으로 주최하는 '청소년 강강수월래단'이 4월14일 한강하류 강서습지생태공원에서 출발해 낙동강 을숙도에 이르는 47박48일간의 대장정을 시작했다. 50여명으로 구성된 강강수월래단은 최근 사회 이슈가 되고 있는 경부운하 구간을 걸으면서 자연 생태와 환경, 역사 등에 대한 글을 8차례에 걸쳐 <오마이뉴스>에 보낼 예정이다. 이글은 변형석 노리단 작은학교 교사가 대표 집필한다. [편집자말]
여주의 남한강 줄기를 여강이라 한다. 여강의 천변에는 넓은 목초지가 자연 하천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여주에 보가 설치될 경우 3m 정도 수위가 높아지고 그 경우 사진에 보이는 지역은 물에 잠기게 된다.
▲ 여강의 천변 풍경 여주의 남한강 줄기를 여강이라 한다. 여강의 천변에는 넓은 목초지가 자연 하천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여주에 보가 설치될 경우 3m 정도 수위가 높아지고 그 경우 사진에 보이는 지역은 물에 잠기게 된다.
ⓒ 변형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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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을 따라 걷는 길 위에는 하루살이가 가득이다. 처음에는 하루살이를 피해 돌아가려는 시도도 해보았지만 부질없는 짓이란 것을 금세 알게 되었다. 하루살이가 어느 곳에나 있었기 때문에 꼭 하루살이 한 무리가 우리를 쫓아다니는 것 같다는 착각이 들기도 했다. 한 친구는 일기에서 "머리카락 속에 하루살이가 사는 것 같다"고 썼다. 여주 신륵사에서 진행한 문화제에서는 조명 빛에 몰려든 하루살이가 가수들의 노래를 중단시킬 뻔하기도 했다.

<세상에 나쁜 벌레는 없다>라는 책이 있다. 세상에 나쁜 벌레가 어디 있겠나. 그들은 자신의 생존을 위해 살 뿐이다. 바퀴벌레도, 개미도, 모기도, 빈대도 모두 자신의 생존을 위해 살고 있을 뿐이지 나쁜 벌레란 것은 인간의 발상에 불과하다.

2008년 4월 20일 여주 신륵사에서 열린 강변 문화제. 강변인 탓에 하루살이와 벌레들이 조명에 잔뜩 몰려들어 있다.
▲ 여주 신륵사 강변 문화제 2008년 4월 20일 여주 신륵사에서 열린 강변 문화제. 강변인 탓에 하루살이와 벌레들이 조명에 잔뜩 몰려들어 있다.
ⓒ 변형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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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바퀴벌레가 나쁜 것은 아니다'라는 생각은 하지만 바퀴벌레를 보고 혐오감이 들지 않는 것은 아니다.

내가 교사로 있는 '노리단 작은 학교'의 덕구라는 친구는 어느 때부터인가 벌레를 죽이지 않는다고 했다. "그럼 모기도 안잡아?"라고 물었더니, 모기도 안 잡는다고 했다. 모기가 팔에 붙으면 "훠이~"해서 날려보낸다고 했다. 덩치가 제법 큰 그 친구의 말이 너무 우습기도 했지만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실천은 그렇게 하는 것이다.

하루살이 이야기를 한 것은 하루살이가 '생태계'의 중요한 일부라는 사실 때문이다. 하루살이는 하루만 사는 것은 아닌데, 유충 상태로 길게는 1년 넘게 생활을 하다 성충으로 변태한 후에는 짧게는 4시간에서 1~2주 정도를 산다. 2000종에 가까운 하루살이는 수질을 측정하는 지표생물이다.

'동양하루살이'가 살고 있는 하천은 2급수에 해당한다. 우리가 한강을 따라 걷는 내내 하루살이를 확인하였으니 한강 하류지역은 기본적으로 2급수는 유지하고 있는 셈이다. 실제로 신발 벗고 강을 건너며 물을 보았을 때에도, 물이 탁해 보이기는 했지만 냄새는 거의 나지 않아 2급수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였다.

"하루살이도 살 수 없는 생태계"

4월 19일, 여주군 내양리 가는 길 강변에서, 목욕탕 무료 이용권을 놓고 오행시 짓기가 열렸다. 주제어는 '한반도운하'와 우리 팀 이름으로 쓰이는 '강강수월래' 중 하나. 산하는 '한반도운하'를 가지고 오행시를 지었다.

한 - 한송이 꽃을 밀어버리고
반 - 반듯하게 시멘트를 깔아
도 - 도로처럼 물길을 만들어서
운 - 운하를 만들면
하 - 하루살이도 살 수 없는 생태계가 되지 않을까? - 이산하

하루살이도 살 수 없는 생태계는 2급수에도 못미치는 물이 흐르는 생태계일 수도 있고, 서식환경이 망가진 생태계일 수도 있다. 실제로 운하가 만들어질 경우 이 두 가지 모두가 포함될 것으로 예상되는데, 보를 쌓아 물이 고이게 되면서 수질악화가 우려되고, 강변의 습지가 수몰되어 하루살이가 서식하는 환경이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그것을 느끼고 있는 셈이다. 이 긴 여행의 목표는 그 본능적이며 직관적인 깨달음을 얻자는 것에 있다.

48일간의 무모한 도전

여주 남한강의 지류인 양화천을 건너는 모습. 이곳의 물은 탁한 편이었지만 냄새는 거의 나지 않았다.
▲ 여주군 양화천을 건너는 모습 여주 남한강의 지류인 양화천을 건너는 모습. 이곳의 물은 탁한 편이었지만 냄새는 거의 나지 않았다.
ⓒ 변형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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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을 걸으며, 강을 느끼며, 청소년 스스로 고민할 수 있게 하자는 취지의 48일간의 도보여행 '청소년, 강을 노래하다'는 대안학교인 간디학교를 중심으로 시작되었다. 물론 이분들뿐만 아니라 대안교육계의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생각을 동시에 했던 것 같다. 서울시 대안교육센터 강원재 부센터장도 비슷한 제안을 비슷한 시기에 꺼내놓았었다.

이 제안에 대안교육연대·전교조·환경운동연합 등 수많은 단체들이 도움을 주었고, 불고(한석주 간디교육연구소 소장)와 문창식 전 대구환경운동연합 운영위원장이 전적으로 투신하면서 일이 가능하게 되었다.

'강강수월래단'이라는 이름은 한'강'과 낙동'강'의 '물(水)'을 '원래'대로 보자는 취지를 담은 이름인데, 과히 십대의 감성이 느껴진다고 보기는 힘든 것이, 이 분들이 사석에서 이야기를 하다 만들어진 이름인 탓으로 보인다. 이 이름은 '수월래단'과 '순례단'이 뒤섞여서, 지금은 '술래단'이라는 요상한 통칭으로 멤버들 사이에서 불리고 있다. '순례'는 너무 무겁고, '수월래'는 너무 고전적인데, '술래'는 또 다른 느낌이 나는 것이 십대들 나름의 의도적 변용인 것 같다.

이 여행은 실로 무모한 도전이었다. 48일간 30여명 규모를 계획했던 것이 점차 커져 1일 평균 70여명 규모(연인원 3000명)가 되었고, 총 예산 5000만원을 예상하였으나 출발 5일 전까지 돈은 700만원 밖에 준비되지 않았었다. 안 되면 일단 1000만원 빚을 내기로 했다는 말과 함께였다.

성인으로 구성된 지원단 역시 10명은 있어야 한다고 지원단장님은 늘상 이야기하였으나 출발 1주일 전까지 지원단 확정자는 2명밖에 없었고 지금도 하루 평균 5인을 넘지 않고 있다. 이 5인이 식사·답사·차량지원·안전요원·기록취재·섭외 등을 해야한다.

식사를 위해 트럭을 빌리려 하였으나 누가 두 달 가까운 기간 동안 트럭을 빌려주겠는가. 결국은 지원단장님의 지인들이 180만원을 기부하여, 아마도 두 달 뒤에는 폐차를 해야하지 않을까 싶은 트럭과, 트럭 값에 맞먹는 세팅비용을 간신히 충당하여 출발 하루 전에서야 몰고 오실 수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지원단장님은 첫날 자전거 사고로 탈골 부상을 입으셨다.

1인당 하루 숙식비 9000원

내양리 강변에 10인용 텐트를 치고 있다. 이 텐트는 무척 무겁고 펴기가 쉽지 않지만 여학생들이 남학생들보다 훨씬 빠르게 텐트를 치고 있다.
▲ 내양리 강변에 친 10인용 텐트 내양리 강변에 10인용 텐트를 치고 있다. 이 텐트는 무척 무겁고 펴기가 쉽지 않지만 여학생들이 남학생들보다 훨씬 빠르게 텐트를 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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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인당 하루 식사·간식·물 등으로 지출할 수 있는 돈은 9000원. 불고는 지원단 회의에서 일인당 9000원 햔도에서 '재량껏' 지출하라고 했다. 3일에 한 번은 고기를 먹을 수 있게 하자 하시면서.

70명이 사용할 수 있는 화장실은 한 개 있으면 다행이고, 씻을 수 있는 물도 별로 없다. 오죽하면 목욕탕 이용권이라는 말에 모두가 오행시 만들기에 참여했을까 생각해보면 알 수 있다.

설거지도 하기 어렵기 때문에 처음 일주일은 세숫대야 3개에 물을 받아 설거지를 했지만 그것도 '발우공양' 형식으로 바꾸었다. '발우공양'이란 스님들의 식사의례로, 그 중 우리가 따르는 방식은, 그릇에 먹을 만큼만 담아 다 비우고, 그릇은 먹을 물을 부어 닦아 설거지를 대신하는 것이다. 먹고난 후 남는 것이 하나도 없는 형태다.

일정 중 2/3 가량은 행사 때 쓰는 10인용 텐트를 치고 자야한다. 다행히 처음 일주일 간은 많이 추운 날은 없었고, 낮에는 오히려 30℃에 육박하는 한여름 날씨였지만 백두대간을 넘는 산지에서는 최저기온이 0℃에 가까운 기온까지 내려가는 새벽도 예상된다.

다행히 많은 분들이 도움을 주고 계신다. 강천1리와 내양1리 노인회관을 비롯하여 마을의 자원을 흔쾌히 빌려주시던 분들과 참꽃학교, 하남 꽃피는 학교의 도움, 주말이면 내려와서 밥 한 끼 하는 것이라도 도와주셨던 학부모들, 푸른교육공동체, 환경운동연합, 전교조 등의 지원이 어려운 상황을 해결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신륵사 주지인 세영 스님은 단원들의 목욕을 위해 휴일인데도 목욕을 할 수 있도록 목욕시설과 차량까지 구해 주기도 하셨다.

탈학교 학생에게만 가능한 일?

밥차에서 만든 저녁 식사. 느티나무와 개똥쌤이 큰 역할을 하시고 다른 선생님이나 학부모님들이 함께 밥을 만든다. '발우공양'을 해야한다.
▲ 밥차에서 열심히 만들어주신 저녁 식사 밥차에서 만든 저녁 식사. 느티나무와 개똥쌤이 큰 역할을 하시고 다른 선생님이나 학부모님들이 함께 밥을 만든다. '발우공양'을 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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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단계에서, 전 일정 참가자가 과연 20명을 넘을 수 있을까 고민이 많았었다. 사전 캠프와 사후 일정 등을 합치면 꼬박 두 달이 소요될 이 프로젝트에 선뜻 참여할 수 있는 '학생'이 과연 있겠는가 하는 우려였다. 그러나 우려는 기우였고, 20명을 넘겨 26명이나 전일정 참가를 신청했다.

모두 홈스쿨러(가정 혹은 소규모 그룹을 통해 학교 교육을 대신하는 탈학교 아이들)이거나 대안학교 학생들이었다. 공교육으로부터 자발적으로 나왔다는 점에서 모두 탈학교생이다.

공교육 학교에 재학중인 학생은 당연히 단 한명도 없었다. 양수리에서 초등학교를 다니는 친구들이 방문을 온 적이 있었는데 그 아이들 네 명이 딱 하루의 체험학습 신청을 했지만 그 중 한 명만이 허락을 받았다고 했다. 강 옆에 사는 아이들이 강을 따라 걷는 체험학습을 하겠다는데 그런 것은 사유가 될 수 없었다고 한다. 초등학생도 이 정도니 중·고등학교에 재학중인 학생이 48일간 여행을 가겠다고 하면 아마 미쳤냐는 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뉴욕에서 '올해의 교사상'을 수차례나 받았던 미국의 유명한 교육운동가인 존 테일러 개토는 <바보 만들기>란 책에서 공적 교육체제로서의 학교를 "같은 사회계층에 속한 같은 나이 또래 아이들끼리 묶어서 감금 상태에 두는 체제"라고 비꼬았다. 공교육제도를 신랄하게 비판했던 이반 일리치와 에버레트 라이머는 70년대에 일찍이 그 점을 비판하며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실제로 한국에서도 '낮의 세계'에서 8세에서 19세 사이의 아이들은 모두 추방당했다. '낮의 세계'에 나타나는 아이들은 '비행청소년'이거나 '땡땡이'를 쳤거나 개교기념일인 아이들 뿐이다. 은행 업무부터 시작해서 대부분의 상거래 활동과 정치사회적 행위들, 하물며 공공기관의 모든 업무가 일어나는 이 시간에 아이들은 없다. 그 모든 활동이 정지되는 때에 아이들은 학교로부터 '풀려난다'. 살아있고 풍성한 '실제 세계'인 '낮의 세계'로부터 추방된 채로 '실제 세계'에 살기 위한 '공부'를 한다는 것은 얼마나 터무니없는 일인가.

공교육 학교에서, 강을 체험하며 강을 따라 걷는 따위의 일은, 너무 현실적이어서 비현실적인 일이 된다. 반대로 대안교육의 신념은 교육의 현장이 현실세계와 일치할수록 의미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대안학교들이 자연과 가까이 있는 이유, 여행을 강조하는 이유, '체험학습'을 강화하는 이유는 그것이다. 여행 중에서도 특히 모든 것을 스스로가 경험해야하는 '도보여행'은 대안학교의 특성화된 프로그램 중 하나다. 이 무모한 도전이 가능했던 이유는 대안교육의 이런 전통에 대한 신뢰가 바탕에 있었다.

매점은 언제 사용할 수 있는가?

오마이스쿨에서 열린 사전캠프에서 참가자들이 자기소개를 위한 페이퍼를 만들고 있다.
▲ 청소년 강을 노래하다. 오마이스쿨 사전 캠프 오마이스쿨에서 열린 사전캠프에서 참가자들이 자기소개를 위한 페이퍼를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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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학교를 한 친구들, 대안교육의 자율성에 대한 신념을 공유하는 친구들이기 때문에 자율과 평등, 권위주의에 대한 감수성은 대단히 민감하다. 4월 12일에서 13일까지 강화도 오마이스쿨에서 열린 사전캠프에서 매일 새벽까지 줄창 회의를 했다. 그래도 많은 논의가 마무리되지 못했다.

그 논의의 주제는 "회의는 누가, 언제, 어떻게 진행하고 결정할 것인가?"라는 민주주의의 본질적인 고민에서부터 "여행 중 매점은 언제 사용할 수 있는가?"하는 문제까지 다채롭기 그지없었다. 호칭에 대한 고민, 존대말과 반말에 대한 고민, 약속에 있어서 교사와 학생 사이의 예외는 없다는 것 등도 중요한 내용이었다.

서로간에 지켜야할 예의와, 안전에 대한 무조건적인 협력, 공동체가 유지되기 위한 규칙이 정해졌다. 무려 열 시간 가까운 회의의 결과다.

▲ 처음 만났을 때는 서로 존대말을 사용한다. 이후 서로 합의해서 호칭과 존대말, 반말 등을 사용한다.
▲ 도보 중 전자기기 사용은 절대 금한다.
▲ 도보 중에는 안전요원의 지시를 반드시 따른다.
▲ 회의 결정 방법 : 만장일치를 기본으로 하되 만장일치가 이루어지지 않을 시 80%의 찬성으로 결정을 내린다. 일주일 후 추가 문제제기를 할 수 있도록 한다.
▲ 자기가 만든 쓰레기는 자신이 책임진다.
▲ 강물을 더럽히지 않는다.
▲ 매점 사용은 도보 중에는 하지 않고 숙소 근처에서만 한다.
▲ 아침식사를 꼭 하자. 하지 못할 경우 전날 저녁에 미리 말한다.

한 구절 한 구절마다 많은 이야기가 오갔는데 다 설명하기는 힘들겠고, 재미있는 것은 매점사용에 관한 것이다. 성인들이었다면 매점 사용이야 하든 안하든 크게 상관이 없겠지만 청소년들에게 이 문제는 아주 민감했다.

매점은 자유롭게 사용하면 좋겠다'는 것에서부터, '그럴 경우에 혼자 남겨지는 등의 사고가 발생할 수도 있다' '간식을 먹으면 밥을 잘 안 먹을 것이다' '배가 고픈데 못 먹게 하면 어떻게 하나' 등등 수많은 이야기가 오고간 끝에 저녁 숙소에서만 매점을 사용하자는 것으로 의견을 모았다. 결국 이 친구들은 숙소에서 걸어서 20~30분이 걸리는 곳에 있는 매점에 오가는 것도 마다하지 않고 저녁마다 열심히 매점을 이용했다.

여주 목욕탕 사건과 또또의 귀가

목욕탕에서 남학생들이 여학생들을 훔쳐보았다는 제보에 따라 소집된 긴급회의. 이날 일정을 오후로 미루고 오전까지 회의가 이어졌다.
▲ 목욕탕 사건 긴급회의 목욕탕에서 남학생들이 여학생들을 훔쳐보았다는 제보에 따라 소집된 긴급회의. 이날 일정을 오후로 미루고 오전까지 회의가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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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예 사건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PC방을 갔다거나 하는 정도의 일만 있다가 조금 큰 일이 터졌다. 여주 신륵사에서의 일인데, 앞서 말한 주지스님의 배려로 간 목욕탕에서 일어난 일이다. 요는, "남자 아이들이 여자 목욕탕을 훔쳐봤다"는 것이었다. 그 때문에 밤 11시에 긴급회의가 소집되어 2시까지 회의를 했고, 다음날 오전 일정도 포기한 채 회의가 연장되기도 했다.

나중에 본인들과 주변인들이 한 진술에 따르면 훔쳐본 것은 아니었고 복도에서 장난으로 "볼까? 볼까?" 떠들었던 것이 그리 되었던 것이라고 한다. 여자들은 그 말을 왜 진작 하지 않았나부터 그 말을 믿지 못하겠다는 말로 따졌고, 물의를 일으킨 남자아이들은 너무 미안하고 머릿속이 하얘져서 아무 얘기도 못했다고 했다.

그 이야기가 민감하게 받아들여지고 논의되는 것은 좋았지만 해결은 희미했다. 만장일치라는 제도의 약점은 그렇게 드러나기도 한다. 모두가 결정의 주체가 되는 것은 훌륭한 일이지만 결국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구조가 만들어지기도 한다.

그날 또또가 짐을 싸서 집으로 돌아갔다. 또또는 줄기차게 청소년의 인권에 대한 이야기를 이슈로 가져가려 했었고, 목욕탕 사건은 중요한 것이었다. 또또는 '어른'에 대한 불신이 무척 강해서 과도하리만치 권위주의에 대한 경계심을 보였다. 한 번은 초대한 선생님이 강의중에 반말을 사용하자 "반말 쓰시면 안 되는데요"라고 말해서 '물의'를 빚기도 했다. 틀린 말이어서가 아니라 초대와 배려와 존중에 대한 경험이 부족해서였다. 또또는 종종 불고와도 그런 점들을 두고 심각한 이야기를 주고받기도 했었다.

나는 또또가 현실에서 자신의 신념을 적용하는 방법을 많이 배울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었다. 옳고 그름의 문제는 정작 현실에서 그리 단순한 꼴로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바른 말은 쉽게 할 수 있지만 바르게 살기는 무척 어려운 것과 같은 이유다. 그런데 그 괴리가 참기 힘들었던 모양이다. 몸이 힘든 것도 한 가지 이유라고 말했지만, 어떤 한계를 느낀 것 같았다. 이 집단의 한계일 수도 있겠고 자신의 한계일 수도 있겠다. 좀 쉬다가 꼭 다시 오라고 말했다. 그러나 아마 오지 않을 것 같다.

여행은 항상 복합적인 질문을 던진다. 그것은 마치 준비라도 했던 것처럼 온갖 종류의 문제를 폭발시켜 눈앞에 풀어헤쳐 놓는다. 10년지기가 단 한 번의 여행 후 원수처럼 서먹해지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되는데, 미숙한 관계일수록 문제는 어렵게 꼬이기도 한다.

우리는 강을 따라 여행하지만 여행의 목표는 강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사실 우리가 강에 대해 묻는 것도 같은 이유이지만, 우리의 목표는 삶을 배우는 것에 있기 때문이다. 강을 따라 걷는 이유는 강이 삶의 터전으로써 우리에게 밀접하게 연관된 곳이기 때문이다. 결국, 운하가 문제가 되는 이유는 그것이 우리의 삶과 직결된 '강'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일주일을 거슬러 올라간 한강

잠실 수중보의 모습. 오른편에 있는 것이 어도. 물고기가 지나갈 수 있게 만들었다는데 20분동안 지켜보았지만 물고기는 보지 못했다. 보와 댐은 생태계의 단절을 심각하게 일으키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 잠실 수중보 잠실 수중보의 모습. 오른편에 있는 것이 어도. 물고기가 지나갈 수 있게 만들었다는데 20분동안 지켜보았지만 물고기는 보지 못했다. 보와 댐은 생태계의 단절을 심각하게 일으키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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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을 거슬러 올라가니 한강은 본래의 모습을 한껏 드러내고 있었다. 사실 한강 하구에서 팔당댐 유역까지는 인공적인 호수에 가깝다. 팔당댐은 이미 1973년에 완공되었고 그 일대는 팔당호라 부른다. 또 1982년에 시작된 한강종합개발에 따라 신곡과 잠실에는 수중보가 만들어졌다.

수중보는 수량을 유지하기 위해 물 아래에 물을 막는 턱을 설치한 것을 말한다. 때문에 물이 늘 차있어, 첫회에 이야기했던 당정섬과 인근 생태공원 같은 습지는 한강 하류지역에서 거의 볼 수가 없다. 그러나 팔당댐 상류지역으로 가면 갈수록 수심은 얕아지고 주변 습지는 광범위하게 펼쳐져있다. 여주대교의 수심은 1m밖에 되지 않았고, 여주로 가는 많은 구간에서 사람들이 강 한가운데에서 낚시를 하고 있을 정도였다. 우리도 몇몇 지천들을 바지를 걷고 걸어서 넘어가기도 했다.

바로 그 자연하천이 하천 생태계의 다양한 서식환경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얕은 물, 모래와 자갈, 풀과 습지 등이 물고기뿐만 아니라 수십 종의 철새 서식지가 되기도 하고 하루살이에서부터 거미와 모기에 이르는 곤충들의 터전이 되기도 한다. 물 속에 풍부한 조류와 작은 풀조각들은 하루살이의 먹이가 되고, 하루살이는 거미의 먹이가 되고, 거미는 개구리의 먹이가 되고, 개구리는 새들의 먹이가 되는 식이다. 때문에 새가 살고 있다는 것은 그곳의 생태계가 건강하게 유지되고 있음을 강하게 반증한다. 여주로 가는 길에서는 쉽게 물새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또 새들 중에도 얕은 물가에 서서 다니며 먹이를 찾는 것들과 깊은 물 위를 떠다니며 고기를 잡는 것까지 각각의 환경에 맞는 다양한 종들이 있다.

팔당댐에서는 오로지 하늘 위를 높이 날아다니는 새들을 가끔 볼 수 있을 뿐이다. 팔당호의 수질이 아무리 좋아도 그곳에 살 수 있는 종은 한정되어 있다. 하루살이도 구경하기 힘들뿐더러 도로도 비탈을 깎아 만든 탓에 무척 비좁아 사람이 어찌어찌 걸어볼 만큼의 갓길도 확보되지 않았다.

다행히 평일에는 차가 많지 않아 다행이지 주말에는 걸어가는 것이 무척 위험해 보일 정도였다. 팔당호 옆을 차로 지나가는 드라이브 코스로는 꽤 괜찮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것은 '차를 타고 가는 사람'의 시각에서 볼 때만 그런 것이다. 사람도, 동물도, 식물도 차를 타고 다니도록 만들어진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생태계의 복잡성

수중보가 설치될 예정지로 꼽히는 여주 내양리. 보름달이 떠 있는 풍경이 여느 절경에 버금간다.
▲ 여주 내양리 앞 남한강 수중보가 설치될 예정지로 꼽히는 여주 내양리. 보름달이 떠 있는 풍경이 여느 절경에 버금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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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계란 표현은 비교적 최근에 만들어진 말이다. 하물며 생태학이라는 개념도 백여 년 밖에 되지 않았다. 그 이전의 사람들은 동물학과 식물학의 형태로 각각의 종을 연구했을 뿐이다. 생태학은 생물의 개체에 덧붙여 그 개체가 서식하고 있는 환경, 그리고 종과 종 사이이의 또 종과 환경 사이의 영향을 함께 고려한다. 때문에 생태학의 범위는 대기와 지표까지를 포함하는 생물과 비생물의 광범위한 영역으로 확대되었다. 이런 것쯤은 이제 상식이 되었으니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그러나 사람들이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생태계의 복잡성이라는 것이다. 지구의 생태계는 수십억 년을 거쳐 지금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들 모두는 복잡한 상호관계 안에 놓여있다. 우리는 그 상호관계를 '사슬'이라고도 하고 '그물'이라고도 한다. 모든 존재는 그 복잡한 상호관계의 일부분이다. "세상에 나쁜 벌레는 없"는 이유가 그것이다. 비록 다른 존재의 피를 빨아먹고 다른 존재에 기생해 사는 존재라 할지라도 그렇다. 인간의 치아에만 300종의 세균이 살며 인간과 공존하고 있다. 그것은 수십 억년 간의 생물학적 진화의 결과다.

이 말을 조금 바꾸면 생태계내의 모든 존재는 존재해야만 하는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불모의 땅 남극도 펭귄에게는 없어서는 안되는 서식처가 된다. 뿐만 아니라 남극은 대기 대순환의 한 파트너이며, 대기의 대순환이 사라지면 지구에 일어날 재앙은 상상을 초월한다.

1970년대 영국 과학자 제임스 러브록은 이 매혹적인 상호관계에 지구 전체가 마치 생명체처럼 스스로 조절하고 균형을 맞추어간다는 점에 주목했다. 그는 대지의 여신 이름을 따 이 지구 전체를 '가이아'라 불렀다. 지구 전체가 생명체라는 사실은 좀 기묘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많은 부분에서 자기조절 장치를 작동하는 생명기계처럼 보인다는 사실은 명확하다. 인간은 이 작동원리의 아주 일부분을 알아가고 있을 뿐이다.

하루살이가 살 수 있는 곳

산하가 쓴 한반도운하 오행시는 생태계의 복잡성에 대한 직관에서 나온 것이다. 머리카락 사이로 파고들 정도로 달려드는 귀찮은 그 하루살이도 그 나름의 존재이유가 있으며 때문에 살아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살기 위해서는 애초에 그것이 살고 있는 환경이 유지될 필요가 있다는 것에 대한 직관인 것이다.

1991년 일군의 과학자들은 서노런 사막에 자급자족적인 제2의 생물권을 만드는 실험을 진행한 바 있다. 1헥타르 면적의 온실에 동식물들의 주거지가 있고 대기는 소형 바다를 통해 습기를 보충하도록 하는 등 인간이 예측가능한 모든 것을 인공적으로 구성하려고 노력했지만 결국 해충과 이산화탄소의 증가로 실험은 실패로 돌아갔다.

우리도 이미 시화호와 새만금이라는 대규모 실패를 경험한 바 있다. 실패는 있을 수 있다. 문제는 실패에서 배울 수 있는가이다. 나는 십대들의 배움을 믿는다. 또또는 비록 이번 여행에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 경험을 자신의 것으로 가지고 갈 것이라 믿는다. 배우지 못하는 것은 항상, '어른'들이었다.


태그:#대운하, #청소년, #한강, #여주, #대안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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