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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재활사의 말 이야기'는 15년 넘게 언어재활사로 일하며 경험한 이야기들로, 언어치료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가닿길 바라는 마음으로 쓰는 글입니다. [기자말]
"입을 최대한 크게 움직이시는 겁니다. 제가 하는 말을 따라 하시면서 제 입모양을 보세요. 아, 에, 이, 오, 우..."
"거울로 본인 입의 움직임을 잘 보셔야 해요.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보다 더 잘 안 움직이고 있을 가능성이 높거든요."


마비 말 장애(Dysarthria)는 '중추 혹은 말초신경계의 손상으로 인해 신경계가 관장하는 말 산출 근육의 조절에 장애가 생겨서 문제를 보이는 말 운동장애'이다. 좀 더 쉽게 풀어보면, 말을 할 때 신경계 손상으로 발음이 부정확해지는 상태라고 보면 된다.  

이런 마비 말 장애의 경우에는 말을 할 때 사용되는 근육의 움직임 범위나 속도, 시간, 정확성, 근육 움직임 시기의 적절성까지 전방위적 문제로 발생되며, 음성의 크기와 높낮이, 공명 상태도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가령 술 취한 사람의 발음같이 혀 꼬부라지는 소리가 나거나 치과 진료 중 마취주사를 맞고 뒤에 마취가 풀리기 전에 말을 하면 침도 흐르면서 발음이 새는 것처럼 발음이 난다. 또 너무 작게 말하거나 너무 크게, 또는 상황에 고려 없이 말이 너무 빠르거나 음성 크기가 변이적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이는 다른 것보다 근육의 움직임의 문제에 기인하기 때문에 보통 발음기관(조음기관- 얼굴, 턱, 혀)의 움직임을 유도하는 활동을 많이 한다. 물론 단지 조음기관의 근육 외에도 호흡이나 발성, 공명을 함께 다루어야 하지만 가장 대표적으로 볼 수 있는 부분이 조음기관의 근육 움직임이기 때문에 치료 접근 시에 조음 근육이 움직일 수 있는 활동을 많이 한다. 

환자들에게 구강 에어로빅을 시키면 처음엔 하찮게 여기다가 '왜 안 되지?' 당황하는 눈빛을 마주하는 순간이 온다. 그래서 이걸 하는 거지요.
 
구강운동 방법
 구강운동 방법
ⓒ 황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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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강운동은 간단하지만 누구나에게 발화명료도를 증진하도록 도움이 되는 활동이다. 일부 동작들은 정확하게 반복하여야 하고, 일부 동작들은 10초부터 15초, 20초 점점 증진하며 힘을 기르도록 구성되어 있다. 치료시간에는 치료사가 1대1로 정확하게 힘을 기르도록 알려준다. 

경험적으로, 늘 말(speech)은 중증(범위)에서 제외되는 경우가 많고(아나운서가 아닌 이상 발음이 좀 새거나 떼떼거려도 괜찮다는 거 같다), 이것도 치료해야 해? 하는 경우도 곧잘 만난다. 그렇지만 동작들이 다 잘 되는 줄 알았다가 막상 해보고 안돼서 당황하는 경우들이 생각보다 많다. 

A씨는 딱 마비 말 장애만 있다.  젊고, 스스로 자각하기 때문에 동기도 있다. 다만 집에서까지 연습하는 정도는 아니었던 듯하다. 대신 치료 시간에 빠지지 않고 꾸준히 와서 연습하고 가더니 어느 날 안 된다던 동작이 툭 가능해진다. 그러고는 늘 왜곡(distortion) 되던 음소가 부드럽게 발음된다. 오~ 되네!

구강 운동을 하고는 "휴우~" 하고 힘들어 하시길래 "동작들이 생각보다 힘들죠? 너무 쉬운 건데 왜 시키나 생각하시면서 제가 잔소리 한다고 기분 상해 마세요~" 했더니 A씨는 "하면..., 하고나면 확실히 바뀌는 게 느껴져서 이 시간만 기다리는 걸요~" 하신다. 말씀에 내 기분이 좋아진다.

마비 말 장애는 늘 이와 비슷한 수순을 거친다. 환자분들이 젊을수록 말-발음에 대한 중요성을 더 생각하는 것 같고, 연세가 있으신 분들은 스스로 구강운동하는 것보다는 치료사가 만져주는 것을 더 좋아하신다. 적절하게 섞어 치료할 때 반영해야 한다.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누구나 하고 나면 달라진다는 것도 이 치료의 매력이다. 

실어증 환자보다는 비교적 경한(?) 마비 말 장애 환자들은 표현 언어와 직결되는 발음이 문제가 되지만, 실어증에 비해 완치에 가까워지는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치료에서는 늘 순위가 밀리는 일이 잦다. 왜 그럴까. 

아마도 체감적으로 덜 불편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직장 생활을 하거나 일상 복귀 후 말하기를 지속해야 하는 경우에서야 신경을 쓰게 된다. 분명 목숨이 오가는 중한 정도는 아닌 경우가 많지만 우선순위에서 밀리면 때로는 안타깝다. 

그래도 언제 발음이 이상했냐는 듯 좋아지셔서 말씀 잘하시는 분들을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 세상에 조금 도움 되는 일을 한 생각이 들어서다. 나는 이렇게 좋아지시면 기분 좋게 종결을 권한다. 

치료에서 종결은 상당한 의미를 가진다. 기분 좋게, 시원하게 마무리를 할 수 있는 경우가 많지는 않지만 나의 노력이 환자들에게 작으나마 도움이 된다는 것은 내게 기쁜 일이다. 그러고 보니 나는 직업을 참 잘 택한 거 같다. 이렇게 기분 좋은 일을 하는 직업이라니 말이다.

덧붙이는 글 | 윗글은 제 블로그에도 함께 실릴 예정입니다.


태그:#언어치료, #마비말장애, #구어명료도증진, #구강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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