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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탄 보일러의 연탄을 갈 때에는 아래,위 연탄 구멍이 일치되도록 맞추어야 연탄불이 꺼지지 않는다.
▲ 연탄보일러 연탄 보일러의 연탄을 갈 때에는 아래,위 연탄 구멍이 일치되도록 맞추어야 연탄불이 꺼지지 않는다.
ⓒ 손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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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적 겨울이 다가오면 엄마는 항아리마다 김치를 담으셨습니다. 배추김치, 무김치, 동치미 그리고 단무지까지... 요새는 단무지를 담지 않지만 제가 어렸을 때는 커다란 항아리 가득 단무지를 담았었습니다. 이렇게 김장이 끝나면 광에 가득 차도록 연탄을 들여 놓으셨습니다. 그리고는 겨울 준비가 끝이 났다고 행복해 하셨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귀농인의 집에는 안채와 사랑채가 있습니다. 안채는 기름 보일러이기 때문에 기름값이 무서워 보일러가 7시간마다 한 번씩 돌아가게 해 놓고 있습니다. 그래서 안채에서는 겉옷에 조끼까지 입고 생활을 합니다. 반면 사랑채는 연탄 보일러입니다. 처음부터 보일러가 설치되어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사랑채는 사업대상이 아니라 리모델링에서 제외되어서 방만 덩그러니 있었습니다.

그러나 방에 보일러가 깔려 있어서 화덕만 연결하면 사용할 수 있는 상태였습니다. 하여 거금 20만 원을 들여 재료를 샀고 뒷집 '병묵'형님께서 손수 설치를 해 주셨습니다. 연탄 보일러가 설치되니 이제 연탄이 필요하였습니다. '요즘도 연탄 공장이 있나?'라는 의문을 가지고 있었는데 맥가이버 '병묵' 형님께서 한 장에 600원씩 연탄을 살 수 있도록 도와 주셨습니다. 보일러가 설치되고 연탄까지 200장을 들여 놓으니 겨울 준비가 끝난 것 같아 뿌듯했습니다. 엄마의 마음을 알 것 같았습니다.

2016년 11월 13일 완주군청에서 있었던 "나는 난로다"에서 만난 쪽구들.
고구려의 쪽구들이 이런 모양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 쪽구들 2016년 11월 13일 완주군청에서 있었던 "나는 난로다"에서 만난 쪽구들. 고구려의 쪽구들이 이런 모양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 손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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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름 보일러는 값이 비싸기는 하지만 특별히 제가 할 일이 없습니다. 그저 방안의 조절기만 사용하면 되지요. 반면 연탄 보일러는 값이 저렴하지만 저의 수고가 필요합니다. 일단 불을 피워야 하는데 이게 여간 귀찮은게 아닙니다. 번개탄에 불을 붙여서 연탄에 불이 살아날 때까지 신경을 써야 합니다. 그러나 일단 불이 붙으면 수월합니다. 아침저녁으로 두 번만 불을 갈아주면 됩니다. 저희집 화덕은 연탄이 3장이 들어갑니다. 저녁에 연탄을 갈아 놓으면 다음날 아침까지 12시간을 연소합니다. 연탄을 갈 때에는 맨위에 불이 있는 연탄을 맨 밑에 놓고 새로운 연탄 두 장을 올려 놓습니다. 이 때 아래, 위 연탄의 구멍들을 잘 맞추어야 불이 꺼지지 않습니다.

연탄 보일러를 사용하는 사랑채는 정말 따뜻합니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느껴지는 공기가 얼마나 따뜻한지 모릅니다. 바닥도 아랫목, 윗목 구분없이 골고루 따뜻합니다. 그래서 안채보다는 사랑채에서 주로 생활을 합니다. 굳이 찜질방에 가지 않아도 될 정도로 따끈합니다. 따끈한 사랑채에서 뒹굴뒹굴 책도 읽고 글도 쓰고 인터넷 서핑도 하면서 군고구마도 먹으면서 여유를 즐기면 참 좋습니다. 물론 시골 생활이 늘 이렇게 낭만적인 것은 아닙니다. 어떤 일이든 대가를 지불해야 하니까요.

연탄 보일러를 즐기는 대가는 연탄재입니다. 어릴적 연탄재는 눈오는 날 미끄럼 방지용으로 신작로에 깨뜨렸습니다. 눈이 와 기쁨과 설렘으로 미끄럼을 즐길라치면 어른들이 연탄재를 가지고 오셔서 젤 반들반들한 곳에 깨뜨리셔서 즐거움을 빼앗곤 하셨지요. 저희집에도 연탄재가 쌓이고 있습니다. 연탄재 처리법을 여쭈었더니 뒷집 '병묵' 형님께서 그냥 쌓아 놓으면 알아서 치워주시겠다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게 편치가 않습니다. 쌓이는 연탄재를 보는 게 불편하고 원하는 때에 치울 수 없다는 게 불편하고 형님께 송구하고 그렇습니다.

우리 나라의 전통적인 난방은 온돌입니다.

"온돌은 한국 고유의 난방법으로 아궁이에서 불을 때면 불기운이 방 밑을 지나 방바닥 전체의 온도를 높여 주고 마지막에 굴뚝으로 빠지게 만들어 놓은 난방 장치. 온돌의 원리는 열의 전도와 복사, 대류를 동시에 이용하는 방법으로 방바닥에 깔린 돌에 온도가 전달되는 것은 열의 전도 원리이고, 바닥의 온도로 방 전체에 복사열을 전달하는 것은 복사 현상이다. 즉 공기가 대류되는 현상을 통해 따뜻한 온도를 유지하는 난방 방법이다. " [네이버 지식백과] 온돌 [溫突] (Basic 중학생을 위한 기술·가정 용어사전, 2007. 8. 10., (주)신원문화사) 라고 정의 되어있습니다.

온돌이 사용되기 시작한 곳은 고구려였습니다. 고구려는 워낙 날씨가 춥기 때문에 난방이 발달하였던 것이지요. 그러나 방 전체에 온돌이 깔렸던 것은 아니고 잠자는 곳에만 구들을 놓은 쪽구들이었습니다. 이 쪽구들은 발해에서 고려로 전해져 조선시대에 방 전체에 구들을 놓는 온돌이 정착되었습니다.

온돌은 아궁이에서 불을 떼면 불기운이 구들 밑의 공간을 지나 굴뚝으로 연기가 빠져나가게 되어 있습니다. 이 때 뜨거운 불 기운으로 방바닥이 따뜻해지고 방바닥이 따뜻해지면 방바닥 근처의 공기가 따뜻해져 위로 올라가고 위에 있던 차가운 공기가 아래로 내려와 따뜻해집니다. 위로 올라간 따뜻한 공기가 식으면 바닥으로 내려오고, 바닥으로 내려온 공기는 따뜻해져 위로 올라가는 대류에 의해 방안의 공기가 따뜻해지고 방안 전체가 따뜻해집니다.

온돌은 방만 따뜻하게 하는게 아니라 아궁이의 불 위에 솥을 얹어 밥도 하고 국도 끓이고 물도 끓입니다. 아궁이 군불로 가마솥에 밥을 하면 얼마나 맛있는지 아시는 분은 아실 겁니다. 어릴적 저희 엄마는 저녁에 씻으면서 꼭 양말을 빨아서 아궁이 솥단지 위에 올려 놓으라 시키셨습니다. 아침이 되면 양말이 말라 그 양말을 신고 학교에 갔습니다. 이처럼 온돌은 난방과 취사가 동시에 가능한 조상의 지혜가 담겨 있는 합리적인 난방법입니다.

제 어릴적 연탄 보일러는 이 온돌 난방법을 그대로 이용하였습니다. 다만, 아궁이를 연탄화덕으로 바꾸었을 뿐이지요. 연탄의 연소로 뜨거워진 불기운이 구들 밑을 지나며 방을 덥혔습니다. 그래서 혹시 방안의 구들에 틈이 있다면 연탄의 연소로 발생한 일산화탄소가 방안으로 스며들어 연탄가스 중독 사고가 종종 있었습니다.

그러나 요즘의 보일러는 불기운을 이용하는 게 아니라 구들 밑에 파이프를 깔아서 온수를 이용하여 난방을 합니다. 당연히 가스중독 사고도 없어졌습니다. 온수를 이용한 난방은 엄밀한 의미(사전적 의미)로는 온돌이라 부를 수 없습니다. 그러나 방바닥을 덥히는 난방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온돌이라 해도 크게 문제될게 없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외국에 살면서 가장 아쉬웠던 부분이 온돌이었습니다. 제가 살았던 튀니지나 브라질은 겨울에도 영하로 내려가지 않고 여름은 무척 덥습니다. 그래서인지 집들이 여름을 나기 쉽도록 지어졌습니다. 여름에는 집안에 있으면 굳이 에어컨을 켜지 않아도 서늘한 여름을 날 수 있지만 겨울에는 실내보다 밖이 더 따뜻합니다. 어른들이 "뼈 속까지 춥다"고 하시던 말씀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집을 얻을 때 가능하면 난방이 되는 집을 구하려 했습니다.

외국의 난방법은 2종류 입니다. 벽난로 난방법과 라디에이터를 이용한 난방법입니다. 벽난로를 이용하여 난방을 하게 되면 이점보다는 단점이 더 많습니다. 일단 벽난로에 넣을 석탄이나 나무를 구하기가 쉽지 않고 땔감이 연소하면서 산소를 소모 시키기에 반드시 환기를 시켜야 하는데 방을 따뜻하게 하기 위해 난방을 하지만 늘 창문을 열고 있어야 해서 그다지 따뜻함을 누릴 수 없습니다. 라디에이터를 이용하면 공기는 따뜻하지만 바닥은 차가운 대리석이라 라디에이터 앞만 따뜻할 뿐 집전체가 따뜻해지지 않습니다. 결국 전기장판을 사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외국에 처음 온돌이 알려진 것은 미국인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1867-1959)에 의해서입니다. 그는 1916년 일본의 제국호텔을 설계하기 위하여 일본에 머물렀는데 이 때 조선의 온돌을 체험하였고 미국에 돌아가 지신의 설계에 온돌을 적용하였습니다. 그가 일본에서 머물렀던 곳은 오쿠라 키하치로(1837-1928)의 '조선관'이었습니다. 오쿠라 키하치로는 오쿠라 컬렉션으로 유명한 문화재 수집가입니다. 오쿠라는 일제강점기 우리나라에서 수많은 문화재를 일본으로 반출하였습니다.

라이트가 머물렀던 '조선관'도 우리나라에서 반출해간 경복궁의 자선당 건물이었습니다. 자선당은 세자마마가 사용하시던 동궁이었습니다. 오쿠라는 감히 세자마마의 동궁을 일본으로 가져가 '조선관'이라 이름 붙이고 자신의 컬렉션을 전시하는 개인 박물관으로 사용하다가 관동대지진 때 화재로 소실되었습니다. 기초석들만 오쿠라 호텔 정원에 방치되어 있던 것을 목원대 김정동 교수가 찾았고 삼성문화재단에서 운반경비를 부담하여 다시 경복궁에 돌아왔습니다.

돌아온 자선당 유구는 이미 불에 타버려 복원에 사용할 수 없어 건청궁 옆 공터에 보관되고 있습니다. 자선당의 온돌에 감명받은 라이트는 미국에 돌아가 바닥에 파이프를 깔고 온수를 순환시키는 방식의 온돌을 자신의 설계에 적용하였습니다. 이 방식은 커다란 반향을 일으키며 미국 건축 틈새시장에 살아남아 지금도 적용되고 있습니다.

중국에서는 온돌이 자신들의 것이라 주장하고 있습니다. 고구려와 발해의 땅이 지금은 중국에 있기 때문에 자신들의 유적이라 주장하며 소유권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지요. 일본 사람들이 김치를 기무치라 부르며 자신들의 것이라 주장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지요. 그러나 영토는 우리의 것이 아니지만 온돌은 아직도 우리의 삶에 사용되고 있어 고구려나 발해를 계승한 민족은 바로 우리란 것을 증명하는 가장 확실한 증거가 되고 있습니다.

온돌은 우리 조상들의 삶의 지혜가 담긴 합리적인 난방법입니다. 이렇게 좋은 난방법이 많이 알려져서 세계 여러곳에서 사용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태그:#연탄보일러, #온돌, #전통난방법, #난방, #겨울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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