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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차, 벌써 시간이 이렇게...'

오늘도 어김없이 지각입니다. 집에서 일찍 나왔건만 뽕나무 오디의 달콤함에 취해 시간 가는 줄 몰랐네요. 요즘 한강 자출길(자전거 출근길)에는 오디가 지천입니다. 까맣게 잘 익은 것만 골라 몇 개를 따서 입에 넣어 봅니다. 카메라를 꺼내 사진도 찍습니다. 아침 운동 나온 사람이 그게 뭐냐고 묻습니다. 오디라고 알려 주니 먹을 수 있는 거냐고 또 묻습니다. 서울에서 태어나 자란 서울내기가 틀림없습니다.  

자전거로 출퇴근한 지 10여 년이 넘습니다. 한겨울 가장 추울 때를 제외하고는 사시사철 자전거를 탑니다. 서울 뚝섬에서 원효대교 북단으로 이어지는 한강 자전거 도로. 편도 14Km 정도 됩니다.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길은 합쳐서 왕복 28Km입니다.

오늘같이 한눈만 팔지 않으면 45분 정도면 회사에 갈 수 있습니다. 집 앞 전철역에서 나와 걷고 두 번 정도 갈아타야 하는 출근길을 생각해 보면 오히려 덜 걸리는 편입니다. 한강의 아름다운 나만의 자출길. 자랑해 보고자 합니다.

"오디 따 먹다가 지각했어요"

서울에서 이렇게 맑은 하늘을 보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비갠 아침에 찍은 사진입니다.
 서울에서 이렇게 맑은 하늘을 보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비갠 아침에 찍은 사진입니다.
ⓒ 안호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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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철새가 떠난 자리를 독차지한 가마우지 무리. 한강 동호대교 아래다.
▲ 한강의 가마우지 겨울 철새가 떠난 자리를 독차지한 가마우지 무리. 한강 동호대교 아래다.
ⓒ 안호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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뚝섬 나들목까지 오면 마주하는 풍경입니다. 오른쪽으로 쭉 뻗는 도로가 뚝섬에서 성수대교 쪽으로 난 자전거 도로입니다. 마주 보는 야트막한 산은 개나리 군락으로 유명한 응봉산입니다.

그 뒤 아파트촌은 예전에 서울 판자촌 밀집지역이었던 옥수동과 한남동입니다. 전망대가 위치한 곳은 남산입니다. 성수대교 뒤편에서는 한강과 중랑천이 만납니다. 서울에서 철새가 가장 많이 몰려드는 곳 중 한 곳입니다.

한강에 가마우지 무리가 보입니다. 겨울 철새인 비오리, 청둥오리가 떠난 중랑천 한강 합수부의 철새보호구역은 가마우지가 차지했습니다. 가마우지는 아침 햇살에 일렁이는 한강 물결 위에 내려앉아 먹이를 잡습니다. 카메라를 메고 따라다녀도 마음에 드는 사진을 얻기가 쉽지 않습니다. 사진 내공의 아쉬움이 들면서 카메라 지름신이 오는 순간입니다.

검붉은 오디가 한창이다. 새들이 좋은 먹이다. 새들이 가지가 부러질 정도로 내려 앉는다.
▲ 한강의 자생 뽕나무 검붉은 오디가 한창이다. 새들이 좋은 먹이다. 새들이 가지가 부러질 정도로 내려 앉는다.
ⓒ 안호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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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뽕나무 아래에서 주워 본 오디. 달콤하다.
 한강 뽕나무 아래에서 주워 본 오디. 달콤하다.
ⓒ 안호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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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포대교 아래를 지나 이촌 지구에 들어서니 갖가지 나무가 보입니다. 계획에 따라 식재된 나무들도 있고, 바람결에 씨앗이 날려와서 뿌리내리고 살아가는 나무도 있습니다.

찾아보면 산딸기 넝쿨도 있습니다. 이제 흰 꽃이 지고 열매가 맺혔으니 보름 정도면 빨갛게 익은 산딸기가 모습을 드러내겠지요. 새들의 먹이가 될지, 아니면 아침 운동 나온 사람들의 간식이 될지는 모르지만 자출길 아침마다 마주하는 산딸기 군락. 눈은 매일 호사를 누립니다.

뽕나무는 계획해서 심은 것 같지 않습니다. 나무 크기도 서로 다릅니다. 요사이 여기에 달린 검은 오디를 먹기 위해 새들이 가지가 찢어지도록 내려앉습니다. 나도 매번 여기서 자전거를 세웁니다.

잘 익은 오디 하나가 온갖 옛 생각을 불러냅니다. 지저귀는 새소리와 뚝뚝 떨어지는 오디. 강변북로에 출근하는 차량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서로 가겠다고 빵빵거려도 나는 혼자서 여유롭습니다. 출근해야 한다는 사실조차도 잊어 버리기 딱 좋은 시간입니다.

"안녕하세요?" 낯 모르는 아저씨와 매일 인사합니다

코스모스가 피는 가을에 되기까지 금계국은 피고 지기를 멈추지 않는다. 멀리 63빌딩이 보인다.
 코스모스가 피는 가을에 되기까지 금계국은 피고 지기를 멈추지 않는다. 멀리 63빌딩이 보인다.
ⓒ 안호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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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출의 마지막 코스는 이렇게 화려하다. 앞이 원효대교다.
▲ 개량 양귀비꽃 자출의 마지막 코스는 이렇게 화려하다. 앞이 원효대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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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가장 높은 63빌딩이 보입니다. 이제 자출길도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자전거도로에 금계국이 바람에 흔들립니다. 가을 코스모스가 피기 전까지 그 자리에서 마냥 피고 지는 꽃입니다.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매일 아침, 이곳에서 마주치는 사람이 있습니다. 자전거 앞에 태극기를 달고 모자에도 바람개비를 달았습니다. 그의 자전거에는 그 외에 것들이 아기자기하게 달려 있습니다. 수년째 마주하면서 인사만 할 뿐, 손 한 번 잡아 보지 못했습니다. 아니 선글라스에 마스크까지 썼기 때문에 아직 그의 얼굴도 본 적이 없습니다. 그래도 며칠 보이지 않으면 무슨 일이 있나 궁금해 합니다.

양귀비꽃이 바람에 흔들립니다. 보면 볼수록 매혹적인 꽃입니다. 어느 때에는 석양 지는 퇴근길에 어두워지는 줄도 모르고 양귀비꽃을 찍었습니다. 원효대교 밑을 지나 '로봇 태권V'가 나온다는 국회의 돔형 지붕이 보일 때면 저의 한강 자출길도 끝이 납니다. 이제 한강을 벗어나 5분 정도만 더 달리면 사무실에 도착합니다.

계속 오르는 교통비 때문에 저항하는 마음으로 시작한 자전거 출퇴근이었습니다. 10여 년이 넘었고, 자전거도 이제 많이 낡았습니다. 한 번은 퇴근길 옥수역 아래에서 펑크가 나서 집까지 30여 분을 끌고 걸어간 적도 있습니다. 소나기를 만나 온몸이 흠뻑 젖어서 퇴근한 적도 있습니다.

그러나 갑갑한 지하철로 출퇴근하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습니다. 지하철로 다닐 적에는 한 달 교통비가 5만~6만 원 들었습니다. 요즘은 사정이 생겨 자출을 못할 경우에만 지하철을 타기 때문에 한 달에 만 원 정도 듭니다. 평균 4만 원 정도 아끼는 꼴이니 자전거 유지 비용을 제외하더라도 본전은 뽑은 셈이죠.

배낭 가방에는 항상 카메라가 있습니다. 종종 출퇴근하는 길에 자전거를 세우고 사진을 찍습니다. 좋은 풍경을 찍을 때도 있고, 고쳐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하는 곳을 찍기도 합니다. 한강 10년의 역사가 고스란히 나의 카메라에 담겨 있습니다. 한강 르네상스 개발의 아픈 상처. 쓰레기로 몸살을 앓는 여름밤 한강 모습도 있습니다. 이는 10여 년 자출에서 얻는 나만의 기록이고 자산입니다.

이렇게 호사로운 출근길 보셨나요? 사계절의 변화를 온몸으로 체험합니다. 하루 2시간, 이 시간만큼은 팍팍하고 번잡한 서울생활을 탈출할 수가 있습니다. 어렵지 않습니다. 저도 자출하기 전까지는 서울 한강이 이렇게 좋은 줄 미처 몰랐습니다. 사람들에 치이고, 밀고 밀리는 지하철 출근길. 도로에서 허송세월하는 자가용 출근길. 바꾸고 싶다면 자전거 출퇴근을 추천합니다.

덧붙이는 글 | 기사 공모 <출퇴근길의 추억> 응모글입니다.



태그:#자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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