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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안내방송입니다. 여러분, 지금 우리 제주에 중국 관광객들이 많이 방문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시장에서도 상인 여러분을 위한 특별 중국어 강좌를 마련했습니다. 강좌 시간은…."

제주시에서 가장 큰 장터라는 민속 5일장의 안내방송이다. 처음, 중국 관광객들이 제주를 휩쓸고 다닌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뭔가 가슴 뭉클한 것이 있었다. 아, 우리 땅 제주가 이렇게 인정받고 있구나 하는 자부심이랄까, 제주의 가치를 잘 알지 못했던 것에 대한 반성이랄까, 그런 것이었다.

그러나 관광객 1천만 돌파라는 어마어마한 숫자 앞에서는 고개를 갸웃하게 되었다. 중국관광객은 물론 단체 수학 여행단, 가족 여행 등 너도 나도 제주로 몰려가고는 있는데, 그에 맞는 자연환경 보존과 문화 시설 확충, 생태학적 배려가 이루어지고 있을까. 혹시라도 예전의 막가파식 개발시대가 제주에 도래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요즘 들어 무작정 내려오는 사람들이 많다고 하더라. 게스트 하우스나 민박 같은 데서 장기 체류하는 사람들이 많다는데, 여행하거나, 쉬거나, 아니면 아예 눌러 살려고 준비하거나…. 입도 인구가 계속 늘고 있어. 근데 모든 게 다 포화상태야. 숙박시설도 그렇고 음식점도 그렇고. 막상 여기 사람들은 그닥 변한 게 없어. 관광지에서 장사 잘 해 가지고 돈 좀 벌었다는 사람들 이야기도 듣긴 들었지만…. 사실 제주도는 일반 직장 임금이 되게 싸고 작업 환경이 열악한 데도 많아."

제주 출신으로, 이 놈의 섬을 반드시 탈출하겠다는 굳은 의지로 공부하여 마침내 서울에 있는 대학에 진학하고, 그 뒤 다시 고향으로 내려가 지금은 제주시에 뿌리를 박고 사는 신랑 친구의 이야기였다. 중국인들에 대한 기대도 차츰 우려로 바뀌고 있다고 했다. 안 그래도 중국 자본이 만드는 신화 역사 공원에 대한 각종 폐해가 연일 제주 뉴스를 장식하고 있었다.

언제나 생기 가득한 제주를 바란다.
▲ 숙소 뒷산, 생명의 향연 언제나 생기 가득한 제주를 바란다.
ⓒ 장윤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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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랑의 친구와 이런저런 담소를 나누고 다시 게스트 하우스로 돌아오니 한밤중이었다. 새벽까지 먹고 마시는 여행객들로 숙소는 소란스러웠다. 마당 한가운데는 전날부터 쌓여 있던 쓰레기들이 여전히 치워지지 않고 남아 있었다.

관광지의 특성상 일회용품을 많이 쓸 수밖에 없는 현실이지만, 작은 숙소들에서는 분리수거가 잘 되지 않았다. 플라스틱에 스티로폼에 나무젓가락과 먹다 남은 음식이 산을 이루는 쓰레기 더미를 보고 있으려니 걱정스러운 마음이 앞선다. 이 천혜의 자연이, 독특한 문화가 오염되고 망가지는 일은 없을 것이지만… 없어야 하겠지만… 이런 걱정이 그저 노파심으로 끝난다면 오죽 좋으랴.

이어도의 꿈

이엿사나 이여도사나 이엿사나 이여도사나
우리 배는 잘도 간다 솔솔 가는 건 솔남의 배여
잘잘 가는 건 잡남의 배여 어서 가자 어서 어서
목적지에 들여 나가자 우리 인생 한번 죽어지면
다시 전생 못하나니라

오래전부터 내려오는 이어도의 전설은 널리 알려져 있다. 제주민들의 이상향, 제주의 무릉도원이라는 이어도. 그 섬에 가면, 그곳은 노동하지 않아도 먹고살 수 있으며 사람들 사이에 다툼도 분쟁도 없다고 한다. 입에 풀칠하기 어려웠던 시절, 멀리까지 물질을 나가던 해녀들이 불렀던 노래다. 이제 그 낙원, 이어도의 자리에 '돈'이 들어설까.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 되는 것이라면 물불 안 가리고 뛰어드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이니, 미루어 짐작하건데 제주는 앞으로도 한동안 개발의 광풍 속을 헤매지 않을까 한다.

"긴긴 세월 동안 섬은 늘 거기 있어 왔다. 그러나 섬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섬을 본 사람은 모두가 섬으로 가버렸기 때문이다. 아무도 다시 섬을 떠나 돌아온 사람은 없었다."

이청준의 소설에서, 이어도는 살아서는 돌아올 수 없는 곳이었다. 저 먼 곳에 신기루처럼,  존재하는 혹은 존재하지 않는 곳이었다. 서민들에게는 돈이라는 것이 늘 그렇다. 이렇게 하면 저렇게 하면 부자가 된다는데, 돈 좀 만진다는 데, 그렇게 해서 성공한 사람들도 있다는데…. 제주에 땅을 사 놓았으면 벌써 돈 좀 벌었겠노라고 한탄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몇 있고,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알아봐야겠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오랜세월 변함없는 한라산의 아름다움처럼, 변치 않는 자연을 간직한 제주가 되길.
▲ 자연과 인간이 함께 걷는 길 오랜세월 변함없는 한라산의 아름다움처럼, 변치 않는 자연을 간직한 제주가 되길.
ⓒ 장윤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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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렇게 제주의 몸값을 올려주는 주역인 자연의 문제는 별로 언급되지 않는다. 제주의 시민단체 사람들이 쓴 글이나 '아이엠피터' 같은 블로거의 글을 보면 자못 걱정스런 마음이 앞선다. 중국 자본의 개발로 베어져 나간 수많은 한라산 나무들과, 도대체 왜 있는 지 모를, 기묘한 주제의 사설 박물관들과, 또 난립하는 호텔과 게스트 하우스와, 쓰레기로 몸살을 앓는 해변에 대해서도 더 많은 말들이 나와야 할 것 같아서 말이다.

오랫동안, 제주인들은 자신들이 마땅히 누려야 할 것들을 외지인을 위해 바치며 살아왔다. 이제 유네스코 세계 문화 유산을 세 개나 가진 보물섬 제주가 역사상 가장 화려한 비상을 하고 있다. 나는 제주인들이 부자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외지 사람들보다도 오랫동안 그 땅에서 살아온 사람들이 골고루 혜택받고 남부럽지 않은 복지 부자 섬 주민이 된다면 정말 좋을 것이다. 제주가 그 환상적인 아름다움을 오래오래, 아니 영원히 간직하고 삶과 자연이 함께 어울려 사는 평등하고 행복한 21세기 이어도가 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덧붙이는 글 | 제주 여행은 4월 20일부터 26일까지 했습니다.



태그:#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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