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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내 엄마는 완벽주의자

내 엄마는 좀 별난 편이셨다. 아무리 사소한 일에도 뭔가가 완벽하지 않으면 잠을 안 주무셨다. 몸이 아파 하루쯤 학교 가는 걸 쉬고 싶어 해도 곧바로 날벼락이 떨어졌다. 처녀 시절에는 친구들이랑 여행 한 번 가보는 게 소원이었지만 차마 입이 안 떨어져 스스로 그만두어 버리곤 했다. 자식들이 장성한 나이가 되었을 땐 행여 동네에 연애한다는 소문이라도 날세라 늘 노심초사 하셨다. 그런 성정을 갖고 사시다 보니 자식들과의 사이도 다정이라는 말과는 거리가 멀었다.

어쩌다 친구 집에 놀러 갔다가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엄마의 허리를 안고 웃고 있는 모녀의 모습을 보게 되는 날이면 그 친구의 엄마가 내 엄마였으면 싶었다. 엄마와 딸 사이의 그 말해질 수 없는 거리감이 나는 늘 아쉽고 허전했다. 뭐랄까, 철이 들 무렵부터 자연스럽게 굳어져 버린 데면데면한 모녀 관계는 세월이 흐를수록 더 서먹해져 버리는 결과를 낳았다. 그러다보니 결혼한 후에도 엄마가 내 집에 오시겠다는 전갈이라도 받을라치면 그날부터 잠이 오지 않았다. 무슨 반찬을 만들어서 엄마의 입에 맞는 음식을 해드리나 근심이 산처럼 쌓였다.

유난히도 발령이 잦은 남편의 직장을 따라 이사를 많이 하고 살았다. 그 덕분에 집을 사 놓고서도 들어가 살지 못하고 십여 년을 객지로 떠돌았다. 전화번호가 눈에 익을 만하면 바뀐다고 친구들한테 핀잔도 참 많이 들었다. 그러다가 아이들이 자라서 중, 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되자 더 이상은 이사를 못하고 주저앉게 되었다. 남에게 전세를 놓았던 새집은 그사이 헌집이 되어 있었다. 말끔하게 새 단장을 하면 좋으련만 겨우 도배장판만 마친 집으로 이사를 하고 두 달쯤 지나 엄마가 오신다는 연락을 받았다. 결혼한 지 십년이 훌쩍 넘었건만 신혼시절에 두어 번 오시고 세 번째 걸음이셨다.

엄마가 온댄다, 내 집에

워낙 데면데면한 모녀 사이인지라 엄마가 오신다는 소식에 반갑기보다는 마음이 먼저 무겁게 내려앉았다. 늘 알탕갈탕 살아가는 딸년 모습이 달갑지 않은 엄마는 늘 남의 집 딸들 잘 사는 모습만 부러워 하셨다. 하기는 엄마만 그러는 건 아니었다. 내 쪽에서도 엄마가 보고 싶어서 전화를 하기보다는 어떤 의무감으로 어쩌다 한 번씩 안부전화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무슨 일에건 칭찬보다는 꾸지람을 먼저 하시는 분인지라 구석구석 먼지투성이인 살림살이가 여간 마음이 쓰였다.

날 잡아서 하루는 냉장고 청소를, 또 하루는 된장이며 고추장 항아리 단속을 했다. 해가 묵을 대로 묵어서 밑바닥에 허연 소금기만 품고 있는 간장독도 씻어 엎고, 언젠가 살림바람이 나서 얼떨결에 담가놓고 손도 대지 않은 묵은 깻잎 장아찌도 내다 버리는 등 살림 단속을 했다. 이만하면 됐겠다 싶어 한숨 놓을 때쯤 엄마가 오셨다. 그런데 문제는 이사를 하면서 터무니없이 큰 것을 장만한 냉장고였다. 아니나 다를까, 오시자마자 냉장고 문부터 열어 보시더니 대뜸 한마디 하셨다.

"시상에나, 먼 노매 냉장고가 이리도 가난허다냐."

끌끌 혀를 차셨다.

내 딴엔 엄마가 오신다고 팍팍한 살림에 소꼬리도 고아 놓고, 과일도 사다 채워 넣고, 쇠고기도 서너 근 끊어다 넣은 참이었는데, 대뜸 가난하다 하시니 한순간에 마음이 싸해졌다. 한동안을 청소검열이라도 나온 사람처럼 구석구석 돌아보시더니 불쑥 한마디 내던지셨다.

"요즘 시상에 김치 냉장고도 읍시 사냐?"

못마땅한 얼굴로 쳐다보시는 눈빛에 그새 서늘한 기운이 서려 있었다.

"뭐 별 필요도 없어서."

우물거리는 사이 엄마는 벌써 지갑을 챙기고 계셨다.

"앞장서라."

엄마의 일갈 "김치냉장고도 없이 사냐?"

영문을 몰라 멀뚱히 서있는 내게 전자제품 가게가 어디 있냐고 다그치셨다. 언제부턴가 나는 엄마가 내게 무엇인가를 사주려고 하는 게 마땅치가 않았다. 그냥 안 받고 말겠다는 뭐 그런 마음이 더 컸다. 그렇지만 한번 내뱉은 말은 어떤 식으로든 취소라는 걸 모르는 엄마를 따라가 김치냉장고를 사들고 왔다. 사실 갖고 싶은 거였지만 그렇게 마음이 편하거나 좋은 마음이 일어나 주질 않았다.

뒷베란다 한구석을 오롯이 차지하고 앉아 있는 김치 냉장고를 보고 엄마는 좋은 내색을 하셨지만 난 그냥 가만히 있었다. 그렇게 열흘쯤을 살림 간섭을 하시던 엄마가 집으로 돌아가신 후 난 사흘낮밤을 꼬박 앓고 일어났다. 얼마나 마음을 썼는지 기진맥진 지쳐 있었다. 그렇게 사들인 김치 냉장고는 십여 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제법 나이가 든 탓인지 이따금씩 가래 끓는 소리를 낸다. 이제 그만 쉬고 싶다는 신음소리 같아서 앓는 소리를 낼 때마다 미안해진다. 그러고 보니 엄마와 내 관계도 저 냉장고를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모녀 관계로 연을 맺어 지금까지 살아왔지만 언제 한번이라도 뜨거웠던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적어도 내가 느끼기엔 그랬었다. 언제나 그만큼의 거리를 유지한 채 어리광 한번, 응석 한번 부려 본 기억 없이 서늘한 냉장고의 온도 정도를 유지한 채 오늘까지 살아 왔지 싶다. 냉장고 하나도 제대로 채워 넣지 못하고 사는 딸에게 김치 냉장고를 안겨 주고 가신 후, 엄마는 지금껏 내 집에 발걸음을 안 하셨다. 어쩌면 못마땅하게 사는 꼴을 보느니 차라리 안 보고 사는 게 맘 편하셨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미덥지 못하게 살아 엄마의 걸음도 뜸하게 만들었던 내 집에도 이제 봄이 와 있다. 주말농장을 가느라고 운전을 하고 있는데 서울 사는 동생이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엄마가 많이 아팠다네. 지금은 괜찮대."

그런 문자를 받은 지도 사나흘이 지났건만 전화를 해야지 해야지, 우물거리고만 있다가 오늘에서야 수화기를 들었다.

"여보시오."
"엄마, 나 광주."

엄마가 변했다

언제부턴가 내 이름은 광주가 되어 있다. 얼마 만에 걸게 된 전화인지 기억이 없다. 그렇게 짱짱하게 매사에 빈틈이 없었던 엄마가 내 목소리를 듣고 대뜸 울음소리부터 내신다. 그냥 아무렇지도 않은 양 안부나 묻고 끊을 요량이었는데 엄마의 얘기는 끝도 없이 이어진다.

어제 저녁에는 오랜만에 막내년 전화를 받고 밤새 울었다느니, 며칠 전엔 이놈의 시상 하도 살기가 귀찮아서 12층 베란다 아래를 내려다 봤더니 먼 놈의 아파트 화단에 나무들은 그리 많은지 뛰어 내리다가 죽지도 않고 나무에 걸쳐져 있으면 먼 망신이겠냐는 둥,  니 외할머니가 살아생전에 냉수 떠 놓고 만날 천날 그 놈의 목숨줄만 길게 해 달라고 빌어쌌더만 이렇게도 질기게 살아 있다는 둥, 한도 끝도 없이 이어지는 전화기를 들고 나는 멍하니 베란다에 서서 엄마 집을 가 본지가 몇 년쯤 되었을까 헤아려 보고 있는데 "너도 거 작두집알지야?" 그러신다.

"마흔 몇 살 땐가 추석 쇤다고 없는 돈으로 옷가지 몇 개를 사들고 정신없이 걸어오는디 거, 작두집 담벼락 밑에 동네 할매들이 오게오게 모여서는 걱정도 없이 앉았더란 말이다. 하도 부러워서 나는 언제 그렇게 늙어서 짐 덜고 앉아 있어 볼꺼나고 했더니 그러더라, 그리도 시방이 좋다고. 늙으면 암짝에도 쓸데가 없다고. 그러더니 그 말이 하나도 틀린 말이 아니였시야.  너도 지금이 좋은 줄 알고 살어. 알았지야? 아이고 참 나, 오늘 독거노인들 밥 준다고혀서 거기 가야 쓴디. 시방 몇 시냐?"

그러시더니 대뜸

"고맙다 잉? 전화해줘서 정말로 고마워, 고맙다."

엄마의 연신 고맙다는 말에 그만 맥이 풀려서 아무 말도 못하고 있는데

"인자 내가 참말로 늙었는가비야."

그러신다.

"그럼 엄마가 지금껏은 안 늙었다고 생각했어?"
"히히 그렁게, 인자 참말로 늙었는가비야."

연신 고맙다는 엄마...말문이 막힌다

그러고 보니 올해로 팔십여섯 우리 엄마, 이제야 정말로 늙으신 것 같다. 자식들에게 허름한 구석 한번 안 내 비치던 양반이 전화 한 통에 저리도 연신 고맙다고 하시는 걸 보면. 그나저나 나이가 든다는 건 정말 쓸쓸한 일임에 분명한 것 같다. 혀 밑에 가시라도 품은 사람처럼 늘 독한 말을 쏟아 내시는 통에 늘 마음 한 구석이 욱신욱신 아프기만 했었는데. 그런 상처 때문에 어른이 된 후에도 누군가 내게 마음에도 없는 억지소리를 하면, '어서 저이와 헤어져야지.' 초조한 마음을 품곤 했었는데.

"그런데 그냥 집에서 밥 먹지 그런 델 왜 가?"

기어이 또 볼멘소리를 했다.

"야야, 내가 밥이 없어서 그러냐? 사람 귀경할라고 그라제. 또 전화 혀라 잉?"

갑자기 목소리에 힘이 들어 간 엄마가 몇 번씩이나 또 전화 혀라 잉? 당부를 하시는데 난 그만 할 말을 못하고 우물거리다가 전화를 끊었다.  노상 전화기 앞에 앉아서 살아가면서도 어쩌다가 엄마에게 전화 한 번을 선선하게 못하는 딸이 되어 버렸을까.

덧붙이는 글 | 제가 제일 불효자 입니다 응모글



태그:#엄마, #전화 , #늙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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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주부이자 직장인 입니다. 주변의 이야기나 일하면서 느끼는 일들을 써 볼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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