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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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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첫날, 날씨 맑음. 2011년 3월 10일.

지난 10일, 남들은 흐드러지게 피어난 매화꽃 보러 남녘으로 내려간다는데 나는 강원도로 향했다. 목적지는 양양, 일정은 3박4일. 강남고속버스터미널에 도착한 시간은 8시 55분. 매표창구에서 양양, 이라고 외쳤더니 9시 40분에 출발하는 표를 준다. 9시에 떠나는 버스는 없느냐고 물었더니, 안 떠났으면 그걸 타란다. 눈썹이 휘날리도록 뛰어갔더니 버스가 막 출발하려고 문을 닫는 중이었다. 버스표를 내미니, 9시 40분 거네요, 한다. 좌석은 절반 이상이 비어 있었으니, 버스에 올라탄다. 아싸, 40분 벌었다.

서울에서 속초까지 딱 2시간 반 걸렸다. 고속버스는 지도로 보아서는 양양보다 위쪽에 자리잡고 있는 속초에 먼저 들렀다가 양양으로 간다. 그걸 몰랐다. 당연히 양양에 들렀다가 속초로 가는 줄 알았다. 버스가 속초고속버스터미널에 도착하자 나만 빼고 승객이 죄다 내린다. 순간 어리둥절했다. 혹시 내가 속초행 버스를 잘못 탄 건 아닐까? 버스에 탈 때 분명히 양양이라고 행선지가 쓰여 있는 걸 봤는데, 잘못 봤나?

버스에서 내려 버스짐칸에서 승객들 짐을 내려주는 버스기사에게 물었다.

"이거 양양 가는 거 맞지요?"
"네, 양양 갑니다."

양양까지 가는 승객은 달랑 나 하나. 혼자 버스를 타고 가니, 해안도로를 따라 드라이브 하는 기분이다. 버스는 속초해수욕장을 지나고, 물치항을 지나 낙산 바다까지 지난 뒤, 7번 국도 옆 간이 버스정류장에 섰다. 여기가 양양 고속버스터미널이다.

진전사
 진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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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 무장(?)을 하고 양양 읍내로 걸어 들어갈 생각이었다. 배낭을 열고 모자를 찾았는데 아뿔싸, 없다! 아침에 배낭을 마지막으로 꾸리면서 빼놓은 것이 분명하다. 이런 낭패가. 혹시나 싶어서 배낭 안을 꼼꼼히 살폈지만, 역시나 없다. 하여간에 여행을 나서면 꼭 한두 가지는 빼놓고 온다. 스패츠를 빼놓은 적도 있고, 카메라 배터리 충전기를 놓고 온 적도 있다. 없으면 없는 대로 개겨야지, 별 수 있나.

양양 읍내에 들어가서 적당한 가게가 있으면 챙이 달린 모자를 하나 사야지, 했지만 결국 사지 못했다. 모자 하나 사자고 양양 읍내를 돌아다닐 수도 없으니, 그냥 없이 지내기로 했던 것이다. 이런 생각 이면에는 꿍꿍이가 있었다. 금요일 밤에 남편이 야간버스를 타고 양양으로 올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올 때 모자를 챙겨 오라고 해야지. 그러니 이틀만 모자 없이 지내면 된다. 모자가 없으면 햇볕을 많이 받겠지만 그렇다고 걷지 못하는 건 아니니까.

오늘 목적지는 진전사. 통일신라시대에 창건된 절로 역사가 오래되었지만, 아쉽게도 폐사가 되어 사라졌다는 절, 진전사. 삼층석탑과 부도가 남아 있다. 이 절터에서 좀 떨어진 곳에 조계종에서 2005년에 복원한 진전사가 있다. 일단 그곳까지 걸어갈 작정이다. 양양읍에서 진전사까지의 직선거리는 9km. 걸어간다면 최소한 12km는 될 것으로 예상했다.

날씨 맑음. 바람 거의 없음. 햇볕까지 따뜻해 걷기 좋은 날이다. 이런 날이라면 걸어서 하늘까지라도 갈 수 있을 것 같다. 남녘땅에는 꽃이 핀다는데, 역시 강원도에 봄이 오려면 아직 멀었나 보다. 멀리 보이는 능선들이 겹쳐진 산은 여전히 눈으로 덮여 있고, 길옆에도 잔설이 군데군데 남아 있다.

양양 향교
 양양 향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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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양 향교 마당에는 눈이 쌓여 있고, 응달에는 눈이 녹았다가 다시 얼어붙은 흔적이 남았다. 동재(東齋) 툇마루 아래에 고무신 한 켤레가 놓여 있다. 그래서 누가 있나, 하면서 주변을 기웃거렸지만 인기척은 없었다. 누군가 벗어놓고 갔나 보다. 어쩐지 깨끗하지 않고 지저분해 뵈더라니.

고려 충숙왕 때 창건되었다는 양양 향교. 조선 숙종 때 지금 자리로 건물을 옮겼으나, 그 때 건물은 아니다. 한국전쟁 때 대부분 불에 타서 없어진 것을 '지역유지와 유림'이 다시 지은 것이라고 했다.

툇마루에 잠시 걸터앉았다. 햇볕이 따사로운 게 이대로 한숨 졸고 싶어진다. 이렇게 마당이 넉넉한 한옥에서 사는 것도 운치 있고 좋겠다. 겨울에는 좀 춥겠지만. 좋은 게 있으면 불편한 게 있기 마련일 테니까. 마당 한쪽에 세워진 깃대 위에서 태극기가 세차게 펄럭인다. 바람이 없는 것 같은데 불고 있구나. 하늘은 눈이 시리도록 푸르다.

멀리 보이는 산에 눈이 남아 있거나 말거나 사람들은 봄을 맞이할 채비를 하고 있었다. 길옆 밭에서 호미를 들고 땅을 고르는 아낙들을 보았다. 씨를 뿌리는 건가? 지난 해 봄에는 한파가 늦게까지 몰아쳐 냉해를 입었다는데, 올봄은 어떨라나. 봄이 순조롭게 와서 온 세상에 봄기운이 퍼졌으면 좋겠다.

거마리 버스정류장
 거마리 버스정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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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지금 걷고 있는 길은 거마로(車馬路). 거마천을 따라 이어진 길이다. 길은 마을을 따라 혹은 마을 지나면서 이어지고, 이따금 버스정류장도 지나간다. 걸어서 여행을 하다보면 지역마다 버스정류장 모양새가 다른 것이 눈에 띈다. 놓인 의자도 다르다. 집에서 쓰던 소파나 의자를 가져다 놓은 곳도 있다.

거마리 버스정류장이 그랬다. 제법 고급스러워 보이지만 낡은 티가 나는 의자와 플라스틱 아동용 의자가 놓여 있었다. 큰 의자에는 배낭을 내려놓고, 작은 의자에 걸터앉아 물을 마셨다. 버스정류장은 걷다가 지칠 때 쉬어가기 딱 좋은 곳이다. 간식을 먹기도 하고, 물을 마시기도 하고, 비를 피하기도 한다. 사람들이 자주 이용하는 곳은 의자가 반들거리지만 사람의 발길이 뜸한 곳은 의자에 먼지가 뽀얗게 내려앉아 있다.

지저분한 버스정류장은 나도 왠지 쉬었다가기가 꺼려진다. 그래서 그냥 지나치기 십상이다. 아하, 다른 사람들도 나처럼 그냥 지나치거나, 버스를 기다리더라도 의자에 엉덩이를 걸치지 않는구나.

양양은 골이 깊은 곳이었다. 2차선도로를 양옆과 앞뒤를 둘러싸고 있는 것은 산과 산이었다. 산과 산, 고개와 고개 사이를 뚫거나 에둘러서 길을 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금도 이런데 예전에는 어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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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마리를 지나고, 화일리도 지난 뒤, 마주친 풍경은 눈밭이었다. 너른 벌판을 뒤덮고 있는 것은 사람이 지난 흔적이 전혀 없는 눈이었다. 벌판이 눈으로 덮여 눈밭이 되었다. 길이 아니니 사람이 일없이 들어가 발자국을 남길 이유가 없었으리라. 3월인데, 남쪽에는 매화가 피었다는데 양양은 벌판이 눈으로 덮여 있구나.

그 풍경에 홀려 한동안 멈춰 서 있었다. 그 눈밭에 발자국을 남기고 싶다는 생각을 잠시 했는데, 그곳에 들어가서 발자국을 남기는 짓이 어째 심술을 떠는 것 같아 참았다. 그냥 구경만 하자, 했다.

오후 3시가 조금 넘어 물갑리로 들어섰다. 그곳 식당에서 메밀칼국수로 늦은 점심식사를 했다. 시장기를 느낀 것은 아니었으나, 메밀막국수를 판다는 식당 간판을 보니 문득 막국수가 땡긴다. 하지만 그 식당에서 막국수를 먹지 못했다. 식당 쥔이 한 사람이라 물을 끓여서 국수를 삶기가 좀 그렇다, 면서 메밀칼국수를 먹으란다. 이럴 때 혼자 여행하는 게 불편하다.

메밀칼국수
 메밀칼국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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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밀칼국수는 처음 먹는데, 국물이 따끈한 것이 괜찮았다. 추운 겨울날 먹으면 속이 확 풀리면서 몸이 금세 따뜻해질 것 같다. 식당 안에 손님은 달랑 나 하나. 식사시간이 지나서인지, 원래 손님이 없는 식당인지 모르겠다. 식당 쥔은 배낭을 내려놓고 칼국수를 먹는 나를 보고 중얼거리듯 말한다.

"나도 저렇게 여행을 다니고 싶은데, 식당을 하다 보니 아무데도 못 가네요. 좋겠어요, 다닐 수 있어서."

나는 그냥 빙그레 웃었다. 걸어서 진전사까지 간다니 눈이 동그랗게 변한다. 그리고 덧붙인다. 거기까지... 는 걸어갈 만하지요. 칼국수를 다 먹은 뒤 배낭을 메고 밖으로 나오니 식당 쥔이 문밖까지 따라 나와 진전사로 가는 길을 알려준다. 마을을 지나서 가는 길이 있고, 큰길로 가는 길도 있다면서. 마을로 들어가는 길을 택했다.

이 마을은 석교리. 석교리, 라는 지명은 어느 지방에나 있다. 내 본적지가 석교리였다. 외가와 친가가 대여섯 걸음 거리쯤 떨어져 있던 곳. 외가 대문 앞에서 바로 보이는 담이 친가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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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렸을 때 어머니는 그곳을 석교 대신 '돌다리'라고 불렀다. 즉 석교(石橋). 돌로 만든 다리가 있는 곳이란 의미였을 텐데 이상하게 돌다리에 대한 기억은 나지 않는다. 세월이 너무 많이 흘러 기억이 희미해진 탓인지도 모르겠다. 외가든 친가든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모두 돌아가셨고, 그 집들도 헐린 지 오래되었다. 세월은 그렇게 흐른다.

어렸을 때야 석교라는 지명이 그곳 하나뿐인 줄 알았다. 나이가 들어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 보니 '석교'란 지명이 흔하디 흔하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지금 지나는 석교리에도 돌다리가 놓여 있으니, 그런 이름이 붙었겠지.

둔전리로 접어들었다. 둔전이 있던 동네는 둔전리라는 이름으로 불린다고 하던가. 둔전은 군량을 충당하기 위해 변경지대나 군사요충지에 설치했던 토지를 이른다. 이 마을에 둔전이 있었으니 그런 이름이 남았겠지, 한다. 이곳에 진전사가 있다. 물론 신라시대의 절이 아닌 2005년에 새로 지은 절이다. 그곳으로 가는 길목에서 진전사 삼층석탑을 만났다.

군데군데 잔설이 남은 돌계단을 올라가니 삼층석탑이 모습을 드러낸다. 탑 주변은 온통 눈으로 덮여 있었다. 진전사는 통일신라시대에 창건된 절이나 언제 세워졌는지 정확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고, 16세기경에 폐사되었다고 한다. 도의선사가 당나라에서 귀국한 뒤 이곳에서 은거했으며, 삼국유사를 지은 일연선사 역시 이곳에 기거했다는 기록이 전해지고 있다.

진전사삼층석탑
 진전사삼층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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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층석탑 주변을 한 바퀴 돌았다. 눈으로 덮여 걷기가 나쁘다. 석탑 주변에는 그 시대의 흔적이 남아 있지 않았다. 대신 누군가 이곳을 다녀간 듯 발자국이 눈 위에 어지럽게 남아 있었다.

진전사로 올라가는 길 입구에 산불감시초소가 있었다. 길은 양 갈래. 한 쪽은 진전사로 가는 길, 다른 한 쪽은 설악산 화채봉으로 가는 길이라고 했다. 입산금지 기간이라 들어갈 수 없다고 했다. 이번 겨울에 온 눈이 여전히 잔뜩 쌓여 있어서 못 들어간단다. 아마도 허리께까지 찰 거라고 했다.

감시초소 옆은 저수지였다. 둔전저수지. 저수지 역시 눈으로 덮여있고 가장자리만 살짝 녹았다. 저수지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으려니 감시초소에서 누군가 나온다. 산불감시원이었다. 이 분, 참으로 친절하다. 초소 안으로 들어와서 커피라도 한 잔 마시고 가란다. 절에 올라갔다가 내려올 때 다시 들르겠다, 고 했다.

진전사는 새로 지은 티가 팍팍 나는 절이었다. 너른 절 마당이 마음에 든다. 마당이 눈으로 덮여 있는데 일부는 따사로운 햇볕 때문에 녹아서 땅이 질척거리기도 했다. 진전사의 부도는 절에서 뚝 떨어진 소나무 숲에 자리 잡고 있었다. 도의선사 부도로 추정되고 있다.

진전사 부도
 진전사 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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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전사 스님은 출타 중이었다. 스님이 계시면 차라도 한 잔 얻어 마실까, 했는데 아쉽다. 적광보전에 홀로 들어가 삼배를 하고, 부처님 앞에 마주 앉았다. 저물녘이어서 법당 안에는 불이 꺼져 있었고, 향냄새만 여운처럼 가볍게 감돈다. 기온이 뚝 떨어진 듯 법당 안은 서늘했다. 가만히 앉아 있으려니 바람소리가 들려온다. 처음에는 바람소리가 아닌 줄 알았다. 자동차가 질주할 때 나는 소리처럼 들려 절 마당에 차가 들어오는 걸로 착각했는데, 바람소리였다. 낮에 잠잠하던 바람이 저물녘이 되자 세차게 몰아치기 시작한 것이다.

이십여 분쯤 법당 안에 앉아 있었다. 일어나야 하는데, 날이 더 저물기 전에 일어나야 하는데 일어나기가 싫었다. 시간은 오후 다섯 시가 넘어가는 중이었다. 진전사에서 물치항까지는 6km 남짓. 천천히 걸어가면 한 시간 반쯤 걸으면 물치항에 갈 수 있으리라. 오늘은 그곳에서 자야지.


태그:#도보여행, #강원도, #양양, #진전사, #양양 향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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