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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오면 학교 교정에는 새하얀 목련이 제일 먼저 고개를 들이민다. 겨우내 학교 도서관에서 몸과 머리 모두를 살찌우던 차에 광합성이라도 해볼까 싶어 교정에 나가면 목련 나무에 보이는 희끗한 목련의 낌새는 어찌나 반가운 것이던가. 아직은 쌀쌀하다 싶어도 일찌감치 피어나는 모습을 보면 '녀석, 참 강하구나' 싶어 조금은 위축되기도 했더랬다.

 

그에 비해 벚꽃은 지난한 기다림을 주었다. 날씨가 어느 정도 따뜻하지 않으면 피지도 않는데다가 봄비라도 오는 날엔 가녀린 꽃잎이 죄다 떨어져 가지만 남기 십상이다. '벚꽃놀이' 노래를 부르며 봄나들이를 기다린다 한들, 4월 중순에 만개하는 벚꽃과 같은 시기에 밀려오는 중간고사는 나를 끔찍한 선택의 기로에 세워두는 것이었다.

 

어차피 꽃 종류를 섬세하게 기억해내지 못하는 나로서는 목련이든 벚꽃이든 그저 보기에 수월한 것이 좋은 꽃이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강인한 목련에 순간 마음을 빼앗기는 일은 당연했다. 그의 끝 모습을 보기 전까지는 말이다.

 

목련의 꽃잎은 동일 종 중에서 비교적 큰 편이다. 꽃잎 두께도 상당한 편인지라 쉬이 떨어지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쉬이 쓸려가지도 않는다. 때문에 꽃이 떨어지는 4월 말이 되면 그 아름답던 목련나무 주위에는 갈변한 꽃잎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다. 비가 와도 쓸려가지 못하고, 빗자루의 채근에도 신경쓰지 않으며 그 자리에서 추한 뒷모습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다. '아름다운 사람은 떠난 자리도 아름답다'던데, 목련 꽃이 떠난 자리에는 갈색 조직만이 널브러져 있다.

 

이렇다 보니 4월이 되면, 봄꽃이 스러져가는 모습을 보면 종전의 굳세던 목련보다는 하늘거리는 벚꽃이 더 사랑스러울 수밖에 없다. 벚꽃을 제대로 만나기란 힘든 일일지언정, 얇고 작은 꽃잎은 바람과 함께 휘날려 추한 뒷모습을 보이지도, 진부한 이별장면을 연출하지도 않고 유유히 사라지기 때문이다 .시작이 조금 애타면 어떤가. 나에게 가장 생생한 모습은 꽃의 첫 얼굴보다는 마지막 뒷모습일텐데 말이다.

 

사람이 정말 꽃을 닮을 수 있다면, 쓸쓸한 목련의 뒷모습보다는 '쿨한' 벚꽃의 뒷모습을 닮았으면 한다. 특히 권력을 누릴 때야 누구보다도 위풍당당했겠으나 세월이 흘러 뒤안길에 접어들었을 때 지저분한 뒷모습을 보여주는 비리 위정자들에게 벚꽃의 뒷모습을 권한다.

 

표적수사, 편파적 수사를 외치며 흥분하는 민주당의 옛 실세들. 수사가 공정하지 못함은 마땅히 문제 삼을 일이나 그들이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의 돈을 받은 사실은 거짓이 아닌데 할 말이 어디 있단 말인가.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 했던가. 어차피 져야만 하는 꽃이라면 뒷모습이라도 깨끗해야 할 일이다.


태그:#봄꽃, #벚꽃, #목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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