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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체제 하의 시장경제는 참으로 잔인하다. 장하준이 밝히듯 강자는 약자의 성장을 막기 위해 '사다리를 걷어차'고, 아담 스미스가 말하는 '부'는 불특정 소수에게 집중될 뿐이다. 하지만 이보다 더 잔인한 부분은 시장경제와 자유무역주의가 '팔아서는 안될 것', '상품으로 판매될 수 없는 것'까지도 상품으로 여긴다는 점이다. 거칠게 말하자면, 우리의 생존권이 교환되고 있다.

 

저명한 환경주의 사상가 반다나 시바의 책 <물전쟁>(반다나 시바, 생각의 나무, 2002)은 물 부족 사태를 소재로 하여 인간의 생존권이 위협당하는 현실을 고발한다. 물과 관련해서 발생하는 문제들에는 정치, 사회, 경제적 이해관계가 여러 층위로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단편적인 설명은 온당치 못하다. 하지만 반다나 시바는 이에 성공했다.

 

모든 문제를 해결해줄 것 같았던 과학기술은 점차 그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우물을 팠더니 우물이 마르다'와 같은 소제목은 폭력적인 생태관으로 무장한 과학기술의 횡포를 여실히 보여준다. 뿐만인가, 무분별한 댐의 건설이 안정적 물공급은 고사하고 인근 지역의 심각한 환경문제만을 야기했음을 명확한 근거로서 설명한다.

 

자본주의의 한계, '모든 것의 상품화'역시 이 책에서 반다나 시바가 지적하는 중요한 지점이다. 물은 대체상품이 없다. 물 대신 마실 수 있는 것? 설마 콜라? 어떠한 대체물도 불가능한 물은 시장논리로 설명될 수 없는, 즉 사유재가 될 수 없는 명백한 공공재이다. 하지만 이를 상품화하는 오늘날의 시장주의 이데올로기를 그녀는 한심하게 노려보고 있다.

 

기아 문제가 그렇듯, 물 문제 역시 사람들이 당장에 피부로 느끼지 못한다는 점 때문에 그 심각성이 크게 대두되지 못한다. 하지만 반다나 시바의 책을 통해 한국의 상황을 조명해보자. 물론 우리나라가 물 부족국가이다 아니다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지만, 매해 터져나오는 팔당댐 상수원의 오염문제나 과도한 생수개발로 인한 제주도의 지반 침해현상을 생각해보면 물로 인한 재난이 멀지 않았음을 쉽게 알 수 있다. 뿐만인가, 4대강 정비와 경인운하는 생태계 교란과 이로 인한 인근 주민의 피해, 더불어 수익창출의 실패까지 예상되고 있다. 게다가 이런 문제들은 한 두명에게 피해를 주고 끝날 일이 아니다. 따라서 물과 관련된 담론들은 지금 당장 불편하고 아니고의 문제를 넘어선 거시적 관점이 필요하다. 내일 당장 수돗물이 끊기고 강이 마른다면, 사람들은 무엇을 마시고 살 것인가.

 

반다나 시바의 책에서 '물을 어떻게 올바른 방향으로 다룰 것인가'에 대해서는 이렇다 할 명쾌한 결론을 얻지 못했다. 이는 너무나도 당연한 결과이다. 물과 같이 인류 모두에게 막대한 영향을 미칠 요소에 대해 그녀가 결론을 내려줄 것이라는 기대는 가당치 않다. 하지만 그녀의 말에서 약간의 대안을 찾았다.

 

"사람들이 초래한 물 부족 사태와 도처에서 발생하고 있는 물 관련 갈등은 물을 공동체의 자원으로 인정할 때 최소화시킬 수 있다. 물 절약운동이 보여주는 것은 물위기에 대한 진정한 해결책은 주민들의 에너지, 근로, 시간, 보살핌 그리고 단결로부터 나온다는 것이다. 물의 독점에 대한 가장 효과적인 대안은 민주적인 물 관리이다."(215)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시민사회의 민주적 개입과 단결이다. 개인적 차원의 노력이 먼저냐 사회적 차원의 노력이 먼저냐는 가릴 수 없다. 반다나 시바는 책을 통해서 모든 노력은 동시에, 전 지구적으로 시작되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물전쟁

반다나 시바 지음, 이상훈 옮김, 생각의나무(2003)


태그:#반다나 시바, #물전쟁, #물 부족, #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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