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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노래가 따로 있나요? 가을에 부르면 가을 노래죠. 벌써 몇 년이 훌쩍 지났습니다. 다시 입에 올리기도 아픈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 시절 끔찍이도 많이 불렀던 노래는 패티김·조영남이 부른 '우리 사랑'입니다. 굳이 가사로 따지자면 여름 노래요, 겨울 노래입니다. 그때 생각만 하면 지금도 울컥울컥하는 무거리들이 목 줄기를 타고 올라오는 것만 같습니다.

 

세상에 믿을 것, 믿을 사람, 하나 없다는 걸 온몸으로 온 가족이 느끼고 받아들일 때였습니다. 아직 큰아이는 대학을 졸업하기 전이었고 작은아이는 외국에서 공부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졸지에 교회에서 나와 할일과 살 집을 동시에 잃은(대부분 목사는 교회가 제공하는 집에서 사니까요) 우리 부부가 마냥 차를 타고 달려간 곳입니다.

 

힘들 때 찾았던 곳

 

 

물론 그때 무작정 밖으로 뛰쳐나간 곳이 여러 군데 있습니다. 집에 있으면 폭발할 것 같아서, 터질 것 같아서, 산화할 것 같아서, 미칠 것 같아서…. 그래도 강산이 두 번 반 변하도록 살을 붙이며 산 부부밖에는 없다고 여겼을 때 피난하듯, 도망하듯 찾은 곳들은 대부분 하나님의 솜씨가 빚은 자연이었습니다.

 

눈물 마르지 않았던 우릴 눈물 흘리며 안아 준 진눈깨비 내리던 김포 들녘의 어느 논둑길, 엄나무 가시만큼이나 까칠한 우릴 살포시 안아주었던 엄나무로 가득한 이름 모를 어느 산, 외적을 막느라 성을 쌓았을 그들의 노고보다 더 고단한 나날을 보내던 우릴 말없이 맞아 준 문수산 산성 길.

 

동료목사에게 다치고 성도에게 버림받고 친척에게조차 위로받지 못할 때 찾았던 고픈 배 채우던 싸구려 돼지고기 집, 그리고 문경새재. 문경새재는 허기진 가슴을 채울 수 있는 곳이었으며, 쓰린 맘을 가다듬을 수 있는 곳이었으며, 미쳐가고 있던 우리부부의 머리를 제정신 들게 한 곳입니다.

 

인간의 말, 인간의 위로, 인간의 문명은 아무런 도움이 안 되더라고요. 물론 그것은 우리가 신앙인이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다른 사람 같으면 술이나 또 다른 데 위로가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 가족에게는 오직 자연과 그 자연을 만드신 분밖에는 없었습니다.

 

충청도에서 목회할 때 자주 들러 사과를 사고 오롯한 길을 걷던 추억이 스민 문경새재, 우리 부부는 그곳으로 차를 몰았습니다. 바로 이맘때입니다. 나무들이 여름내 입었던 옷가지들을 벗어 이리저리 던지던 어느 가을날 오후였습니다. 그리곤 한없이 끝없이 '우리사랑'을 불러댔죠.

 

가진 것은 오직 하나, 사랑뿐
 

 

"내가 빗속을 걷고 싶다면 당신은 소나기 되었고. 당신이 눈길을 걷고 싶다면 나는 눈보라 되었네. 내가 해변을 걷고 싶다면 당신은 수평선 되었고. 당신이 별들을 보고 싶다면 나는 밤하늘 되었네. 지금 우리 (지금 우리) 가진 것도 없는 연인. 지금 우리 (지금 우리) 아무것도 없는 연인, (아무것도 없는 연인) 그러나 한 가지 우리에겐 사랑이 있어 소나기 같은 사랑 눈보라 같은 사랑, 사랑 사랑 우리 사랑 사랑"(우리 사랑/ 패티김․조영남)

 

겹치는 부분들을 자르고 적으면 대강 이런 내용입니다. 지금은 문경새재를 가려면 조령을 넘지 않아도 됩니다. 그러나 그때만 해도 조령을 넘어야 했는데 차로 조령을 넘으며 이 노랠 얼마나 불렀는지 모릅니다. 울긋불긋 차려놓은 꽃 대궐의 한가운데서 이 노래를 불렀던 그때가 새록새록 생각이 납니다.

 

차는 고개를 넘느라고 밭은 숨을 쉬는데 우린 노래를 부르면서 사랑의 힘으로 인생 고개를 넘어가고 있었습니다. 연애시절의 애틋함을 잊지 말자고 노래로 다짐을 했던 거죠. 힘들고 절망적일 때는 우선 부부가 사랑으로 하나가 되지 않으면 안 되겠더라고요.

 

그래서 그 사랑 회복하고 어떤 일이 있어도 서로 위해주자는 의도로 이 노래를 그리 불러댔던 것 같습니다. 누가 먼저 부르자고 했는지도 모릅니다. "지금 우리 (지금 우리) 가진 것도 없는 연인. 지금 우리 (지금 우리) 아무것도 없는 연인, (아무것도 없는 연인) 그러나 한 가지 우리에겐 사랑이 있어", 이 구절이 얼마나 힘이 되던지.

 

정말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될 때였거든요. 50 중반에 집도 없지, 먹을 것도 없지, 모아놓은 돈도 없지, 직업도 없지, 모든 게 다 없는 것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랑 하나만은 확실히 있었거든요. 제가 믿는 하나님에 대한 사랑, 제 아내에 대한 사랑, 자녀들에 대한 사랑.

 

다시 찾은 문경새재

 

 

문경새재 길은 간단히 걸을 수 있는 길이 아닙니다. 적어도 두세 시간을 내야 통과할 수 있죠. 하긴 지금의 잘 뚫린 도로로 말입니다. 과거보러 가던 옛날 새재 길로 간다면 더 걸리겠죠. 그 까마득했던 지난날들의 아픔을 기억하며 지난 21일 문경새재를 찾았습니다.

 

우리부부는 낙엽이 자유롭게 춤을 추는 문경새재 길을 걸었습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길이었습니다. 그때도 가을이었기에 이렇게 아름다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때는 눈물로 노랠 불렀을 뿐 이리 아름다운 경치는 감상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사과축제로 사람물결이 일렁이는 길을 걸으며 속으로는 몇 번이나 아내에게 '우리 사랑'을 같이 부르자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의 아픈 무거리들이 일어날까 봐 차마 밖으로는 꺼내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혼자 속으로 울며 불렀습니다.

 

"당신이 빗속을 걷고 싶다면 소나기 되겠소. 당신이 눈길을 걷고 싶다면 눈보라 되겠소. 해변을 걷고 싶다면 수평선 되겠소. 밤길을 걷고 싶다면 밤하늘 되겠소. 아무것도 없는 부부지만 사랑이 있지 않소."

 

노래 가사 외우지 못하기로 둘째가라며 서러울 접니다. 그때 아내가 부르는 가사를 대강 따라 불렀었습니다. 그러니 지금이라고 제대로 부를 수 있습니까. 근사하게 개사하고 거기에 개작까지 해 속으로 불렀습니다. 제 노랠 들은 것인지 아내가 살며시 다가와 제 팔을 잡고 팔짱을 끼더군요.

 

"참 멋있습니다."

"사진 한 장 찍어 드릴게요."

 

우리 뒤에서 걷던 가족이 굳이 싫다는 우릴 세우더니 제 디카를 뺐다시피 가져가 우릴 사진에 담습니다. 그러면서 그러더군요. "참 두 분이 많이 닮으셨습니다", 가끔 남들이 그런 소릴 하지만 우리부부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닮은 게 있다면 노래의 가사처럼 아무것도 없는 처지지만 사랑 하나는 잃지 말자고 생각한다는 점입니다. 이 닮은 점은 부인하지도 버리지도 않으렵니다.

 

"그러나 한 가지 우리에겐 사랑이 있어 소나기 같은 사랑 눈보라 같은 사랑, 사랑 사랑 우리 사랑 사랑."

 

 

덧붙이는 글 | '나의 가을 노래' 응모 글입니다.


태그:#가을노래, #우리사랑, #문경새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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