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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 인트로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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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신자유주의 정책 신화가 흔들리고, 그를 맹추격하던 국내 경제는 끝도 모를 추락을 거듭하고 있다. 문제점이나 대안이 샤워기에서 나오는 물줄기처럼 쏟아지지만 정작 서민들의 형편은 나아질 줄을 모른다.

IMF 때보다 더하다는 한탄은 이미 현실이 되어버렸고, 끝도 없이 생산되는 구직자들은 실업 대란 속에서 갈피도 잡지 못한 채 주저 앉았다.

어제보다 오늘이 조금 더 안 좋았고, 내일은 오늘보다 더할지도 모른다. 유토피아니 이상향이니 하는 말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이제는 먹고 살 걱정만으로도 벅차다.

가쁜 숨 뒤로 잎은 붉게 물들고 가을이 왔다. 오긴 왔는데 날씨는 전혀 춥지 않고, 그럼에도 마음은 이미 영하 20℃ 이하로 떨어졌다.

진부하고 식상한 희망선언은 애당초 씨도 안 먹히고, 웃어보라는 말은 그저 조건 좋거나 돈 많은 이의 여유로만 보인다. 우린 기계가 되어 버렸는지도 모르겠다. 믿기진 않지만, '생산기한' 딱지가 붙은 몸뚱이들은 생산라인의 마지막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공장이 요구하는 힘을 다 소진한 몇몇은 쓰레기처리장으로 가기 위해 트럭에 몸을 옮겼고, 몇몇은 힘을 소진하기도 전에 이미 불량품 판정을 받았다. 더럽게 우울한 가을하늘은 천고마비라는 말 때문이 아니더라도 참 높다. 절대 닿을 리 없는 하늘을 바라보며 사람들은 매분매초와 싸우고, 새까만 터널은 당신을 끊임없이 등 떠민다. 

그래 난 패배자야, <일기처럼 선언처럼>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이하 달빛요정)이 만들어내는 노랫말은 시종일관 차갑게 타오르는 불빛이다. 그 안에는 골방미학 내지는 패배자 정서의 결정체라고 부를 만한 감성들이 빼곡하게 들어찼다. 1인밴드 달빛 요정은 2003년 자체 제작한 앨범을 들고 음악계에 등장했다. 그야말로 거창하고, 혜성같은 등장이었다.

"허구한 날 사랑타령/나잇값도 못하는 게/골방 속에 쳐박혀/뚱땅땅 빠바빠빠/나도 내가 그 누구보다 더/무능하고 비열한 놈이란 걸 잘 알아…(중략)…세상도 나를 원치 않아/세상이 왜 날 원하겠어/미친 게 아니라면/절룩거리네"
- <절룩거리네>, 2003년 첫 번째 앨범 인필드 플라이(Infield Fly), 중에서 

루상에 주자가 있을 때, 타석에 들어선 타자가 욕 많이 먹을 때는 삼진 당했을 때가 아니다. 타점이 가능한 희생플라이도 아니고, 내야 플라이를 쳐 한 점도 뽑지 못했을 경우 타자는 눈치를 받으며 돌아선다.

달빛요정의 첫 앨범 제목과 수록곡('절룩거리네' '361 타고 집에 간다' '스끼다시 내 인생' '행운아' 등등)에는 흔히 말하는 희망 따위는 쉽사리 엿보이지 않는다. 점수를 뽑지 못했다고, 내가 겨우 이거밖에 안 된다고 고백한다. 열등감과 패배의식으로 가득한 이 자학은 아주 묘하게 중독성이 있다.

그를 세상에 알린 곡 <절룩거리네>에는 바로 이런 매력이 잘 드러나 있다. 나잇값 못 하고 무능한 데다 비열하기까지 하다고 말하는데, 이상하게 리듬은 경쾌하고 멜로디와 가사는 귀에 쏙쏙 들어온다(노래를 들어보면 알겠지만 그의 발음은 상당히 정확하다).

게다가 시원하게 내지르는 창법은 듣는 이로 하여금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한다. '그래, 나 패배자'라고 말하는 게 전혀 부끄럽지 않은 이 당당한 노래는 은밀한 일기처럼, 명쾌한 선언처럼 사람들의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의 3집 앨범 <굿바이 알루미늄>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의 3집 앨범 <굿바이 알루미늄>
ⓒ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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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주목을 받으며 그는 텔레비전에 출연했고, 정식 레코드사와 계약해 앨범을 재발매하기도 했다. 달빛 요정의 앞에는 밝은 미래만 가득할 것 같았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를 너무 쉽게 잊었다. 뜨겁게 타오르는 관심은 그만큼 쉽게 꺼졌고, 연 1000만원을 간신히 오가는 전문음악인 달빛요정의 연봉은 확실히 낙제점이었다.

절룩거린다며 울부짖고, 스끼다시를 넘어 사시미(생선회의 일본말)가 되고 싶다던 달빛요정은 아직도 그 지긋지긋한 골방을 벗어나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 '어차피 난 이것 밖에 안 된다'고 말하는 그는 기타를 팔았고, 생활고 때문에 닭 배달을 하기도 한 모양이다. 도토리 대신 고기반찬 달라는 귀여운 외침은 애처로울 지경이다. 최근 9월에 발매된 그의 새 앨범 <굿바이 알루미늄>에는 그 속내가 절절하게 담겨있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고 배웠지만/현실은 그렇지 않더군/난 부끄러워 키 작고 배 나온 닭 배달 아저씨…(중략)…내 인생의 영토는 여기까지/주공 1단지 그대의 치킨 런(치킨 런) 신문에도 나오고 TV에도 나왔다네/가문의 영광이라 할 만해/원했던 원치 않았던 노래를 팔아서 먹고 살아야 할 텐데/신비주의 전략을 포기해서 그런 걸까/얼굴이 알려져서 망했어(도토리)"

세상에는 카프카나 보르헤스·마르케스를 흉내내는 노래들도 있고, 세계 경제나 기아 문제를 걱정하는 노래도 있다. 그것들도 물론 상당한 감동과 문제점을 제시한다. 또한 대단히 중요한 논점이고, 반드시 전개되어야 할 방향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그 노래들에 먹물 냄새가 배어 있다는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일 터.

달빛 요정의 노래에는 그런 것이 없다. 그는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이해할 수 있다, 다 이해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는 맨 밑바닥에서 우리와 같은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이야기한다. 일주일에 한 번 고기 반찬 달라고 호소하고, 동네 버스를 향해 자신이 갈 길이 어딘지 가르쳐달라고도 한다. 그 절절한 노랫말에는 헝겊뿐 아니라 따가운 살갗까지도 느껴진다.

"좌절해도 돼, 마음껏 울고 또 울어." 지긋지긋한 교훈과 메시지를 집어던지고 달빛요정은 청자들에게 한 발 더 다가선다.

그렇기 때문일까. 그의 노래를 들은 뒤, 울었다거나 진심으로 감동했다는 반응들이 적지 않다. 그들은 어쩌면 슬퍼도 웃고 괴로워도 웃으라는 가식적인 메시지보다는, 울고 싶을 때는 마음껏 울라는 위로를 받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행복하기 위해서 사는 세상에서 그러질 못하니까 당연히 그렇게 해도 된다는 말을 듣고 싶은 것인지도.

덤벼라 세상아

몸은 그렇지 않지만 마음만은 유난히 쌀쌀한 가을이다. '청년실업' '백수 몇십만'이란 소리가 습관처럼 보도되는 현실은 사람들을 점점 더 구석으로 내몬다. 해결책도 보이지 않고 살벌한 무한경쟁 외에는 해답도 없는 상황에서, 그럼에도 왜 젊게 행동하지 않느냐고 나무라는 치들이 있다. 좀 더 힘차게 세상을 향해 뛰어 너희들의 발자국을 남겨야 한다고도 말한다.

그러나 암흑의 적막한 거리에 홀로 서면 아무것도 할 수 없듯, 그들은 지금 몸을 움츠린 채 잠시 지친 몸을 녹이고 있다. 아직은 좀 더 울고 싶다고, 그러나 무기가 있으니 난 언제든 자신 있다고 말이다. 달빛요정에게 무기는 노래다. 그는 그 무기를 들고 당당하게 외치고 있다.

"덤벼라, 세상아! 나에게는 나의 노래가 있다." (나의 노래)

포털사이트에 유명인의 이름을 치면 검색어 순위가 뜬다. 가수부문 상위권에는 비·동방신기·빅뱅 등 유명가수들이 포진되어 있다.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은 680위 사이를 오락가락한다. 그래도 한때는 나름 유명했던 그는 아직도 밑바닥에 있고, 스스로를 패배자라고 부른다. 그가 꿈꾸는 것은 허황된 유토피아나 이상향은 아닐 것이다.

좋아하는 노래를 부르며 먹고 살기만 하면 좋겠다, 연 1200만원만 벌면 소원이 없다는 그의 말은 상당히 현실적으로 들린다. 우리 또한 그렇지 않겠는가. 경제대란·실업대란 속에서 우리가 스스로에게 부여된 소소한 일상과 행복을 아주 약간이나마 붙잡을 수 있다면 그게 바로 행복 아닐까.

그러니 달빛요정의 노래는 바로 그 사소함의 가치를 깨닫게 해주는 이 쌀쌀한 가을의 힘찬 무기이자 든든한 위로다. 어서 붙잡으라는 듯 내미는 그의 손을 잡아도 좋다. 그 정도 사치는 사치도 아니다.

덧붙이는 글 | '나의 가을노래' 응모글입니다.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 공식 홈페이지, http://www.rockwillneverdie.com에서 회원가입만 하면 음악을 들을 수 있습니다. 회원가입은 아주 간단합니다.



태그:#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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