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5.22 14:05최종 업데이트 24.05.22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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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31일 서울 중구 콘퍼런스하우스 달개비에서 제27차 의료현안협의체 회의가 열리고 있다. 정부는 의대정원 증원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의료현안협의체’를 구성하고 지속적으로 논의를 이어왔으나 회의록은 없다고 밝혔다 ⓒ 연합뉴스

   
의과대학 정원 증원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이 장기간 이어지는 가운데, 정책 결정 과정에 대한 '회의록'이 논란으로 떠올랐다. 의료계는 법원에 의대 증원 취소 및 집행정지 소송을 제기하면서, 정부가 의대 정원에 대해 논의한 보건의료정책 관련 회의록과 교육부에서 대학별로 정원 2000명을 배정한 배정위원회 회의록을 제출할 것을 요청했다.

집행정지 소송은 의대생의 학습권보다 필수의료, 지역의료 회복이라는 공익이 우선한다는 판결을 받으며 기각으로 일단락되었지만, 의료계는 여전히 결정 과정에 대한 불신과 정당성을 지적하며 집단행동을 이어갈 태세다.


의료계 입장과는 별개로, 정책에 영향을 받는 수많은 시민들이 정책 결정 과정과 회의 내용에 관심을 갖는 것은 타당하다. 판단의 근거를 제공함으로써 문제해결 과정에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고, 더 제대로 된 공론화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재 가장 큰 사회적 갈등과 비용을 소모하고 있는 해당 사안에 대해 그 결정 과정에 누가 참여했고, 입장과 근거는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어떤 이야기가 오갔는지는 언론과 시민들에게도 매우 중요한 정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보건복지부는 지난 4월 뉴스1 기자의 보건의료정책심의회·의사인력전문위 등의 회의록 정보공개청구에 대해 '회의록을 별도 관리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회의록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통지했다. 이는 보건복지부가 직무를 유기했다는 이야기거나, 기록이 있는데 폐기한 것이라면 공공기록물관리법 제19조의2, 공공기록물 은닉·멸실 등에 해당하는 범죄이기 때문에 큰 논란이 되었다.

정부는 작성 의무가 있는 회의록은 존재한다고 뒤늦게 해명하며 이를 법원에 제출하겠다고 밝혔지만, 존재하는 문서에 대해 허위로 답변한 것은 그 자체로 명백한 위법이며 바로 잡아야 할 행태이다.

정보공개를 회피하기 위해서든, 관리와 파악이 제대로 되지 않았든 행정기관에서 있는 기록을 '부존재'로 통지한 것은 기관이 허위로 정보를 유포하는 꼴이기 때문에 이는 허위공문서작성에 해당한다. 사실상 정보공개청구는 각 업무를 실제로 담당하는 일선 담당자들에게 배정되기 때문에, 기록에 대한 파악이 덜 되었다고 보기에 여러 의문점이 존재하고, 공개를 회피하기 위해 해당 기록을 '관리하지 않는' 내부 기록으로 치부했을 가능성이 상당하다.

최근 정부가 정보공개를 회피하기 위해 자료가 없다고 거짓 주장하는 사례가 속속 드러나고 있다. 검찰 특수활동비 정보공개 소송에서도 검찰은 1심 때 특수활동비 집행내역 자료가 없다고 주장했다가, 재판부의 제출명령에 뒤늦게 말을 바꿔 자료를 내놨던 바 있다.

시민들이 행정기관의 정보 관리나 여러 체계에 대해 속속들이 알 수 없다는 점을 악용해 일단 '없다'고 발뺌을 하는 것이다. 문제의 심각성을 일깨우고 행정기관의 행태를 바로잡기 위해 정보공개센터는 지난 13일 보건복지부를 '허위공문서 작성'으로 고발했다.

결과적으로 보건의료정책심의회(보정심) 회의록, 보정심 산하 의사인력전문위원회(전문위) 회의록이 법원에 제출되었다. 하지만 이는 회의록이 시민들에게 공개되었다는 의미가 아니며, 심지어 2개 회의마저도 의대증원 관련 정책이 구체적으로 도출되기까지의 여러 회의 중 일부분에 해당한다. 

정부는 의대 정원 증원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대한의사협회와 '의료현안협의체'를 구성하고 지속적으로 논의를 이어왔지만, 이 회의에 대해서는 회의록을 작성하지 않고, 합의된 내용만을 보도자료로 기록해 공개했다고 밝혔다. 교육부에서 진행한 의대정원배정위원회 회의 역시 법적으로 회의록을 생산할 의무가 없기 때문에 회의록을 작성하지 않았다고 밝혔고, 결과를 요약한 '결과 보고' 문서만을 제출했다.

'기록 안 남겨도 되는 회의'는 누가 결정하나
 

한덕수 국무총리가 16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의대정원 관련 대국민담화를 발표하고 있다. ⓒ 연합뉴스

 
동일한 사안에 대한 정책 결정 과정을 담은 회의임에도 어떤 회의록은 남기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요약하자면 주요 직책자들이 참석하지 않는 한, '주요한 회의'가 무엇인지를 행정에서 자의적으로 판단해 기록을 하지 않더라도 빠져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현행 공공기록물관리법에 따르면 아래 9가지 회의에 대해 '회의록'을 작성해야 하며, 회의록에는 회의의 명칭, 개최기관, 일시 및 장소, 참석자 및 배석자 명단, 진행 순서, 상정 안건, 발언 요지, 결정 사항 및 표결 내용에 관한 사항을 기록하여야 한다.
 
1. 대통령이 참석하는 회의
2. 국무총리가 참석하는 회의
3. 주요 정책의 심의 또는 의견조정을 목적으로 차관급 이상의 주요 직위자를 구성원으로 하여 운영하는 회의
4. 정당과의 업무협의를 목적으로 차관급 이상의 주요 직위자가 참석하는 회의
5. 개별법 또는 특별법에 따라 구성된 위원회 또는 심의회 등이 운영하는 회의
6. 지방자치단체장, 교육감 및 「지방교육자치에 관한 법률」 제34조에 따른 교육장이 참석하는 회의
7. 공공기관(지방공기업 및 출자기관 포함)의 장 및  「고등교육법」에 따라 설립된 학교의 장이 참석하는 회의
8. 제17조제1항 각 호(법률 및 조례 제/개정, 행정절차법에 따라 행정예고를 하여야 하는 사항, 국제기구 또는 외국정부와 체결하는 조약ㆍ협약ㆍ협정ㆍ의정서, 대규모 개발사업, 기타 국가기록원 등에서 내용 및 결과를 기록물로 생산할 필요가 있다고 인정하는 사항) 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사항에 관한 심의 또는 의견조정을 목적으로 관계기관의 국장급 이상 공무원 3인 이상이 참석하는 회의
9. 그 밖에 회의록의 작성이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주요 회의

현재와 같은 법체계에서는, '의료인력 확대'라는 사회적으로 너무나도 중요한 정책에 대해, 가장 주요한 이해관계자인 의협과 '의료현안협의체'를 구성해 회의를 진행한다고 하더라도, 행정기관에서 기록이 필요한 '주요 회의'가 아니라고 주장하면 명백한 위법이 되기 어렵다. 그래서 협의체에 참여한 지난 의협 집행부에서는 내부 보고를 위한 전체 회의 기록을 남겨두었지만, 오히려 공공기록으로서는 아무런 기록이 존재하지 않는 황당한 일이 발생해도 어쩔 수가 없는 것이다.
 

2023년 5월 기준 국가기록원이 지정한 속기록 의무생산 회의 83개 목록 ⓒ 국가기록원


한편 행정이 편의대로 회의록 자체를 남기지 않을 수 있는 것에 더해, 회의에서 발언 요지를 얼마나 상세히 기록하는지 역시 공무원의 자의적인 판단에 맡겨진다. 
공공기록물관리법 제17조에 따라 영구기록물관리기관의 장이 지정하는 회의는 속기록이나 녹취록을 의무적으로 작성하도록 하고 있지만, 2023년 8월 기준 83개에 불과하다.

속기록을 남겨야 하는 지정 회의는 너무 적다. 매년 최저임금과 중위소득액을 정하는 최저임금위원회, 중앙생활보장위원회 등 관심이 집중되는 민생 회의조차 포함되지 않는다. 아무리 사회적으로 중요하고 시민들의 삶에 중요한 결정이 이뤄지는 회의라 하더라도 회의 내용에는 '이견 없음', '○○으로 의결함' 등 아무런 정보가 없는 회의록이 부지기수인 이유다.

하지만 속기록 의무 생산 회의를 더 많이 지정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현행법에 따르면 이렇게 의무적으로 남기는 속기록에 대해서는 요건에 따라 최대 15년까지 공개하지 않을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행정에서 이러한 조항을 악용할 경우 결정 과정에 대한 접근을 심각하게 저해하는 문제가 발생할 위험이 있다. 

패러다임 전환 필요한 '정책 회의' 기록과 공개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 회의록 등 의대 증원의 근거자료를 두고 정부와 의료계가 연일 공방을 이어가는 가운데 13일 오전 서울 시내 한 대형병원 로비에서 한 환자가 대기하고 있다. ⓒ 연합뉴스


사실 행정에서 다루는 어떤 회의든 '주요 회의'가 아닌 것은 없다. 쓰레기통을 어디 설치할지 논의하는 것만 해도 행정에서의 결정은 수십에서 수천만 명의 일상과 삶에 영향을 줄 수 있다. 때문에 주요회의를 가려서 회의록과 속기록을 남기는 것이 아니라, 행정에서의 모든 회의는 기록하는 것이 원칙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 행정에서의 모든 회의는 공공기관의 모든 정보가 공개 원칙인 것과 마찬가지로 공개를 원칙으로 두는 것이 필요하다. 

현행 기록관리와 정보공개 운영 체계에서는 행정이 결정 과정에 대한 공개를 꺼리는 관료주의 문화 때문에 회의 기록도 부실하게 작성되는 경우가 많다. 이에 비해 방송통신위원회, 방송심의위원회, 원자력안전위원회 등 소관 법률에서 공개 회의 운영을 규정하고, 회의 방청 등의 제도를 운영하고 있는 회의체의 경우에는 의사회의록과 속기록 역시 상세하고 체계적으로 기록되고 수일 내에 홈페이지에 공개되어 결정 과정을 누구나 알 수 있다. 

미국에서는 1972년 워터게이트 사건 이후 모든 주와 연방에서 '회의공개법'을 도입하고 행정기관의 모든 회의를 공개토록 하고 있다. 만약 회의를 비공개하여야 할 경우, 위원 전체에 공개/비공개 표결을 부친 뒤 그 결과를 공개해야 한다. 이후 법률자문관이 해당 회의가 비공개 예외 조항에 해당하는 사안인지 공적으로 검토하여 남겨야 하며, 녹음이나 발언 내용 등 회의록을 필수적으로 기록하도록 하고 있다. 

워싱턴주 '회의공개법' 입법취지에서는 주에 있는 공공위원회, 이사회, 협의회 및 기타 공공기관이 국민의 사업 수행을 돕기 위해 존재하며, 따라서 공개적으로 기관의 행정과 심의는 공개적으로 수행되어야 한다고 명시한다.
 
"이 주의 주민들은 자신을 위해 복무하는 기관에 주권을 양도하지 않는다. 주민들은 권한을 위임할 때 공직자에게 주민들이 알아야 할 것과 알아서는 안 될 것을 결정할 권리를 부여하지 않는다. 주민들은 자신들이 만든 기구들에 대한 통제권을 유지하기 위해 정보를 지속적으로 얻고 공직자에게 자신의 견해를 알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 워싱턴주법 42.30.010 : 입법 선언

의사를 증원해야 한다는 사회적 논의에서 필수의료, 지역의료의 실현이 정말 필요한 국민들은 왜 '관전하는 사람'이 될 수밖에 없는지 우리는 따져 물을 필요가 있다. 일부 의료계와 정부의 입장만 있고, 시민들이 인상비평 외에 의견이나 판단을 가지기 어려운 지금의 상황은 의료정책과 의사 확대를 둘러싼 논의의 과정이 제대로 공개되지 않고, 공공기관이 설명의 책임을 충실히 하지 않았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사실 회의록에 대한 여러 법적 논란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바로 이 지점이다. 우리에게는 결정 과정에 대한 '알 권리'가 있고, 이것이 행정의 편의에 우선해야 한다는 원칙이 필요하다. 공공 정책을 논의하는 회의에서 어떤 입장이 나왔는지, 그 근거가 구체적으로 무엇이며, 누가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 함께 알 수 있을 때 구성원으로서의 주권과 더 나은 의사 형성이 보장될 수 있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정보공개센터 홈페이지에도 게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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