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1.05 07:07최종 업데이트 24.01.05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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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 28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제173회 국제박람회기구(BIE) 총회에서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가 압도적인 표를 받으며 최종 개최지로 선정되었습니다. 부산의 엑스포 유치 실패 원인을 두고 갑론을박이 벌어진 가운데, 이날 총회 최종 프리젠테이션(PT) 영상에 대해 혹평이 쏟아지기도 했습니다.

 

부산엑스포 최종 PT 영상에 대한 언론보도 ⓒ 구글 뉴스


싸이의 '강남 스타일'을 배경음악으로 한 33초 짜리 영상은 지휘자 정명훈, 소프라노 조수미, 가수 김준수와 싸이, 이정재 등 유명인과 연예인들이 등장해 부산의 투표 기호였던 숫자 1을 계속해서 강조하는 내용이었는데요, 영상이 공개되자마자 "부산 엑스포 유치 홍보 영상이면서 부산의 모습은 제대로 등장하지 않는다", "부산 엑스포인데 왜 아무 상관 없는 강남 스타일이 나오냐", "한국은 연예인 말고는 자랑할게 없는 나라냐", "뜬금 없이 숫자 1만 강조하는게 정말 촌스럽다" 는 등 영상의 처참한 퀄리티에 분노한 여론이 들끓었습니다. "세금을 어디다 썼냐", "업체에 사기당한 거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습니다.

☞ KTV의 BIE 총회 한국 프리젠테이션 중계 영상 
☞ 엑스포 최종 PT 홍보 영상

정보공개센터는 누가 어떻게 이런 영상을 만든 것인지 알아보기 위해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2030부산세계박람회유치지원단 측에 ▲ 최종 프리젠테이션 기획 내용이 포함된 문서(계획안, 회의자료 등) ▲ 프리젠테이션 내 영상 제작 계약 업체명 / 계약 금액 / 과업지시서 등을 정보공개 청구하였습니다.
 

2030부산세계박람회유치지원단에 정보공개 청구한 내용과 그 답변 ⓒ 정보공개센터


유치지원단 측에서는 최종 프리젠테이션을 작업한 업체가 에이치에스애드(HS애드)라고 밝혔고, 해당 업체가 6월 20일의 제4차 PT와 11월 28일의 최종 PT, 그리고 6월 21일에 열렸던 BIE 공식 리셉션 등을 모두 포함하여 53억 4700만 원에 계약했음을 알려왔습니다.

유치지원단이 공개한 문서에 따르면 HS애드는 단순히 영상을 제작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BIE 총회에 대응하여 PT 전략을 짜고, 메시지를 구성하고, 영상과 슬라이드, 스피치 내용을 개발하는 등 BIE 총회를 대상으로 하는 공식적인 PT 전반을 담당하였습니다. 
 

2030부산세계박람회유치지원단이 공개한 HS애드의 엑스포 PT 관련 과업내용 ⓒ 산업통상자원부


HS애드는 LG그룹 계열의 광고기획사들이 통합되어 탄생한 회사로 40년 넘는 사업경력을 자랑하는 대표적인 광고회사입니다. 엑스포 PT 영상이 논란이 되면서 "차라리 한국관광공사가 했던 '범 내려온다' 영상을 그대로 쓰지 그랬느냐"는 반응도 있었는데, 공교롭게도 이 Feel the Rhythm of KOREA 캠페인 역시 HS애드가 기획하고 제작한 영상입니다. 이미 한국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전달해 본 경험이 있는 광고기획사라는 뜻입니다.

HS애드는 보건복지부와 함께한 '노담 캠페인'이나 LG생활건강의 "엘라스틴 했어요", 배달의민족의 "우리가 어떤 민족입니까" 광고로도 잘 알려진 업체입니다. "업체에 사기당한 거 아니냐"라고 말하긴 어렵겠죠.

HS애드의 기획안과 실제 영상 비교해보니
 

2030부산세계박람회유치지원단이 공개한 '2030부산세계박람회 유치 5차 PT 영상 구성 및 연출 보고' 기획안(HS애드 제작) ⓒ 산업통상자원부


그렇다면 도대체 뭐가 문제였기에 이렇게 '충격과 공포'의 영상이 나왔을까요? 유치지원단이 함께 공개한 '2030 세계엑스포 최종 프리젠테이션 기획안'을 살펴보니 어느 정도 해답이 보입니다. 유치지원단은 HS애드가 기획안을 짰고, 해당 기획안을 바탕으로 회의를 진행하였다고 밝혔습니다. 기획안 표지를 보면 최종 PT를 한달 여 앞둔 10월 18일에 회의가 열렸음을 추정할 수 있습니다. 아마도 이 회의에서 결정된 내용을 반영하여 HS애드가 최종 PT 영상을 제작한 것으로 보입니다.

만약 회의록이 있다면 해당 기획안에 대해 어떤 피드백이 오갔는지, 기획안이 실제 최종PT로 이어지는 과정에 대해서 더 많은 정보를 알 수 있겠지만 아쉽게도 유치지원단 측은 회의록을 보유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습니다.
 

2030부산세계박람회유치지원단이 공개한 기획안의 PT 구성안 ⓒ 산업통상자원부

 
이 기획안은 총 49장에 달하는 슬라이드 형식으로 11월 28일 열린 최종 PT의 오프닝 영상부터 스피치, 캠페인, 스토리 영상, 엔딩 영상까지 20분가량의 프리젠테이션 전체에 대해 그 방향과 메시지, 구체적인 스피치 내용과 영상 콘티까지 자세하게 담고 있습니다. 2030 세계엑스포 최종 프리젠테이션 기획안 링크로 접속하면 전체 내용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기획안을 살펴보면 스피치와 캠페인 내용은 큰 변화 없이 HS애드 측에서 처음 기획안을 작성했던 방향대로 진행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박형준 부산시장의 오프닝 스피치 때 마스코트 부기와 함께 한국 거주 외국인 청년들이 무대에 등장하여 발언한 정도를 제외하면 연출상의 변화가 두드러지는 부분은 없습니다. 
 

최종 PT 브릿지 영상 콘티 기획안 ⓒ 산업통상자원부


영상의 경우 구체적인 콘티와 레퍼런스 자료가 첨부되어 있습니다. 최종 PT에서는 총 세 개의 영상이 등장했는데, 그중에서 유엔군 참전 용사의 이야기를 담은 브릿지 영상의 콘티 기획안을 살펴보면 영상의 콘셉트와 장면별 내용이 굉장히 구체적으로 구성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엔딩 영상의 콘셉트 ⓒ 산업통상자원부

 
논란이 된 엔딩 영상 역시 영상의 콘셉트 설명과 구체적인 콘티가 첨부되어 있습니다. 내용을 살펴보면 유명 인사와 연예인이 출연하여, 부산의 기호인 숫자 1을 강조하는 전체적인 내용은 콘티 단계에서부터 그대로였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기획안에 따르면 대중문화와 첨단 기술, 스포츠 분야 등에서 미래를 선도하는 한국과 부산의 이미지와 함께 보팅 넘버 1을 소개하여 잔상 효과를 남기겠다는 취지인데, 투표가 한 번에 끝나지 않고 2차, 3차까지 가게 되었을 경우를 염두에 둔 'N차 투표 번호 인식' 전략이라고 설명합니다.


실제로는 N차 투표 없이 한 번에 후보지가 결정되었기도 하고, 경쟁 후보지였던 리야드가 전혀 다른 방식의 영상을 제작했던 것과 비교하면 과연 HS애드의 전략이 효과적이었는지 부터 의문이 듭니다.

콘티에 없던 '강남스타일'과 케이팝 스타

더욱 문제인 것은 실제 공개 영상은 콘티보다 더욱 엉망이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콘티와 비교하여 어떤 차이가 발생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엔딩 영상 기획안 ⓒ 산업통상자원부

 

엔딩 영상 기획안 ⓒ 산업통상자원부

 
먼저 콘티의 흐름을 살펴보면 먼저 미래 도시 부산의 모습을 CG로 보여주고, 순차적으로 인물들이 등장하면서 영상의 슬로건인 'YOUR CHOICE YOUR FUTURE, BUSAN IS READY'를 자막으로 띄우는 형태입니다. 인물과 인물이 교차하는 과정에 지휘봉이나 무대의 스포트라이트, 부산의 야경과 건축물 등을 숫자 1로 형상화하면서, 마지막으로 부산 곳곳의 모습을 비춰주다가 부산 불꽃 축제를 배경으로 배우 이정재가 등장해 손가락으로 1을 들어 올리는 것으로 영상이 마무리 됩니다.

엔딩 영상 음악으로 흘러나온 '강남 스타일'은 콘티 단계에서는 보이지 않습니다. 배경 음악에 대한 설명이 따로 적혀 있지 않은데, 기획안의 '실행 전술' 부분을 참고하면 본래는 아바(ABBA)처럼 1970~80년대 음악 중 세계적으로 유행해 익숙한 멜로디의 팝송을 활용할 계획이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도대체 회의에서 어떤 논의가 있었길래 부산 엑스포 홍보 영상에 '강남 스타일'이 흘러나오게 되었는지 더욱 궁금해지는 부분입니다.

콘티와 실제 영상의 가장 주된 차이는 케이팝 스타들이 대거 추가되었다는 점입니다. 본래 콘티 단계에서 등장하는 인물들은 소프라노 조수미, 지휘자 정명훈, 가수 김준수와 싸이, 여성 셀럽 1인, 그리고 배우 이정재입니다.

그런데 실제 영상에서는 여기에 더하여 제로베이스원, 드림캐쳐, 몬스타엑스, 태민 등 케이팝 아이돌들이 연달아 등장하면서 '부산'을 외치는 장면이 추가되었습니다. 이렇게 나오는 인물의 숫자가 확 늘어나다 보니 영상의 구성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연예인과 숫자 1, 부산의 풍경이 자연스럽게 교차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적으로 산만하고 초점을 잃은 영상이 되었습니다.
 

최종 PT 엔딩 영상 갈무리 ⓒ KTV


영상 초반부에 여러 인물을 몰아서 배치하다 보니, 인물의 배경으로 함께 비춰줘야 할 부산의 모습이 사라졌습니다. 예를 들어 가수 김준수가 나오는 장면은 콘티에서 "빠른 속도로 카메라가 전진하며 부산의 모습을 보여주고 하늘로 줌인 되며 시아준수 your future 컷 등장"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실제 영상에서 김준수는 부산의 모습을 보여주는 장면 없이 CG 배경으로 등장합니다.
 

최종 PT 기획안 엔딩 영상 콘티 ⓒ 산업통상자원부


콘티에서는 분명 숫자 1이 부산의 건축물과 자연 풍경, 야경과 도심 뷰와 함께 보여지도록 되어 있는데, 막상 영상에는 숫자 1의 배경도 CG로 대체되어 있습니다. 도시의 야경 속에서 등장해야 할 싸이나, 불꽃 축제를 배경으로 등장해 손가락을 들어올려야 할 이정재 역시 정작 실제 영상에서는 모두 배경을 날린 상태로 나타납니다. "33초 영상에 부산은 9초 밖에 없다"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부산 시민 빠지고 대통령 연설 넣은 오프닝 영상

재밌는 것은 전반적으로 콘티의 내용을 그대로 따라 제작된 오프닝 영상에서도 딱 한 가지 콘티와 다른 내용이 존재하는데, 공교롭게도 윤석열 대통령의 연설 장면이라는 점입니다. 
 

최종 PT 기획안의 오프닝 영상 콘티 ⓒ 산업통상자원부

  

2030 세계박람회 부산 유치 활동 지원을 위해 프랑스를 방문 중인 윤석열 대통령이 6월 20일(현지시간) 파리 이시레몰리노에서 열린 제172차 국제박람회기구(BIE) 총회에서 4차 경쟁 프레젠테이션(PT)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콘티에서 "다양한 언어로 부산으로 초대하는 부산 시민들의 모습"으로 설명된 장면이 실제 영상에서는 빠져 있습니다. 그 대신에 들어간 장면이 윤석열 대통령이 부산 엑스포를 홍보하는 4초 분량의 영상입니다.

"사용 소스는 검토 후 선정하였으나, 유치지원단의 최종 의견 부탁드립니다"라는 문구로 짐작해 보았을 때, 결국 최종 PT 영상의 내용을 정하는 회의에서 특정한 영상 소스를 넣고 빼라는 유치지원단 측의 의견 개진이 있었고 이에 따라 전체적인 영상의 내용들이 결정되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사실 홍보 전문가가 아닌 이상 HS애드의 기획안이 엑스포 유치전이라는 목적에 걸맞게 짜여진 내용이었는지 판단하긴 어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적어도 콘티의 내용과 실제 영상 중 어느 쪽이 더 짜임새가 있는지, 부산의 매력을 잘 전달하고 있는지 비교할 수는 있을 것입니다. 광고사에서 제시한 콘티 보다, 유치위원회 측의 피드백이 반영된 결과물 쪽의 퀄리티가 낮다는 것은 결국 유치위원회의 실력이 부족했음을 보여줍니다.

5000억 원 넘는 예산을 쓰면서 엑스포 유치에 사활을 걸었다는 정부가 기본적인 프리젠테이션 영상마저도 제대로 만들어내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애초에 엑스포를 개최할 만한 능력이 있는 정부였는지 되묻는 시민들이 적지 않습니다. '잼버리 참사'를 생각해 보면 엑스포 유치에 실패한 것을 오히려 다행으로 여겨야 한다는 비아냥에, 한국 정부 스스로가 한국에 대해 관심이 없으니 맨날 케이팝 스타들에게만 의존하는 것 아니겠느냐는 비판도 이어졌습니다.

여론이 들끓자 엑스포 유치를 위한 활동 전반을 수행했던 2030부산세계박람회유치위원회는 공식 홈페이지(www.expo2030busan.kr)와 SNS 등을 황급히 폐쇄하였습니다. 유치위원회가 국무총리 산하의 민관 합동 기구로, 산업부 소속의 유치지원단을 꾸려 예산을 배정받아 활동한 공식기구였음에도 엑스포 유치에 실패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웹사이트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입니다. 일단 시민들의 비판을 피하고 보자는 태도를 보인 것입니다.

'잼버리 참사'와 '엑스포 사태'는 그동안 메가 이벤트에 목매던 정부의 전략이 얼마나 대책 없는 것이었는지를 드러내는 사건이었습니다. 그러나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아야 한다는 반성의 목소리보다, 흔적을 지우고 책임을 회피하려는 움직임이 더 눈에 띄는 것을 보니 앞으로도 국민들이 부끄러워할 일이 반복될지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마저 듭니다.
덧붙이는 글 투명사회를위한정보공개센터 홈페이지에 함께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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