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벼 베기가 시작되던 지난 가을, 곡성 연동마을 어머니께 전화를 걸었다. 벼를 언제 베는지 알아본 뒤 달력에 동그라미 표시를 해뒀다가 가보려 했는데 그만 몸이 아파 가보지 못했다. 연동 어머니는 <오마이뉴스>가 인연이 되어 2003년 10월부터 '어머니'로 모시고 있다.

관련
기사
"집이가 내 사위였으면 좋겄소"

그 뒤 몸이 아파 한동안 어머니께 전화를 드리지 못하다가 오랜만에 수화기를 들었다. 어머니는 전화가 연결되자 반가운 목소리로 나를 반겼다.

"아이고, 잘 계싯소. 그라니도 내가 전화를 한번 헐라고 힜소. 하도 전화가 없어서 인자 여기서 인연이 끊어져 부렀는갑다 걱정을 허고 있었는디 마침 전화가 옹게 겁나게 반갑소."

오랜만에 내 목소리를 듣고 반가워하시는 어머니께 프라이팬과 종이박스를 가지고 연동마을에 찾아갔다. 지난 여름, 아내는 어머니와 함께 저녁밥을 짓다가 낡은 프라이팬을 발견하고는 다음에 올 때 꼭 새것으로 하나 사다 드려야겠다고 마음 먹고 양면 프라이팬을 챙겨갔고 나는 추수 끝나면 여러 자식들에게 곡식 보낼 때 사용하시라고 종이 박스를 하나하나 모아뒀다가 가지고 갔다.

연동 어머니 집에 들어서니 마당에는 다듬다 만 풋고추들이 포대 위에 널려 있고 비닐봉투에는 다듬어 놓은 풋고추들이 가득 차 있다.

"풋고추 좀 따다가 늦어부렀소. 가을이 되면 어찌나 바쁜지 새벽부터 부리나케 뛰어댕김선 일을 히도 날마다 요로케 밤이 돼서야 집으로 돌아오요. 우리 집서 저녁 밥 잡수고 갓쇼 잉."

▲ 오후 늦게까지 따온 풋고추
ⓒ 김도수
"가실(추수) 일 하느라 수고 많았지요. 올 가을 나락 벨 때는 꼭 와볼라고 힜는디 못 오고 말아부렀네요. 마을에 놉 얻기도 힘들다는데 무거운 나락 가마니들 어치게 다 운반을 힜소."

"말씀만이라도 고맙소. 갈수록 겁나게 힘들고만이라우. 요즘 시골에는 뿔껑뿔껑 짐 들어올릴 힘쌘 청년들이 한 명도 안 살고 맨 늙은이들만 산게 가실이면 놉 구하기도 엄청 힘들어라우. 시방 맘 같아서는 내년까지만 농사 짓고 인자 안 질라고 허는디 모르겄소."

어머니는 저녁을 먹고 난 뒤 오후 늦게까지 딴 풋고추를 우리에게 더 담아주려고 부지런히 다듬고 있었다. 냉동실 칸에 넣어두면 오랫동안 두고 두고 먹을 수 있다며 비닐 봉지를 하나 더 챙겨 가득 넣고 시래기국에 넣어 먹으라며 들깨가루를 한 봉지 싸주셨다.

아내가 비닐봉지에 가득 담긴 풋고추를 싸매는 동안 어머니께서 나를 살짝 부르셨다.

"나 좀 잠깐 볼라요. 자식들이 많아서 많이는 못 준디…."

어머니는 안채 옆에 붙어 있는 조그마한 창고로 나를 데리고 갔다. 창고에는 어머니께서 올 한해 피땀 흘려 농사지은 쌀 가마니들이 차곡차곡 쟁여 있었다. 그 중 서너 말 정도 되는 쌀 가마니를 잡아당기며 나더러 어서 메고 나가라고 했다.

"에이, 안 헐라요, 모 심을 때고 벼 벨 때고 얼굴 한번 안 내밀었는디 어치게 쌀을 들고 간다요. 절대로 안 가지고 갈랑게 어서 나오세요. 저 그냥 갈랍니다."

"그러지 말고 얼릉 메고 나갓쇼. 자식들이 많은 게 조금씩 나눠 먹어야 헝게 요 놈 베끼는 못 줘서 미한허요."

"그게 아니어라우. 힘들게 농사 지은 쌀을 어치게 염치없게 갔다 묵는다요. 다른 건 주면 가지고 가도 쌀은 절대로 안 가지고 갈라요. 저는 먹은 걸로 헐랑게 자식들에게 조금씩 더 나눠주세요."

"아따, 얼릉 메고 나가랑게 그러요. 애기엄마 밖에서 기다리겄고만. 내 손 꼬무락거려 지은 농사 내 맘대로 헝게 자식들 눈치볼 것 하나도 없어라우. 아, 엊그저께 부산 큰며느리랑 통화힜는디 '어머니, 임실양반에게도 쌀 좀 주시지 그래요'허더랑게. 아, 내가 농사진 쌀인게 가지고 가서 잡솨 봐. 자식 같은 게 주제 아무한테나 쌀을 주겄소."

"예, 그럼 염치불구하고 가지고 가서 잘 먹겠습니다."

▲ 연동 어머니께서 주신 햅쌀
ⓒ 김도수
지난 여름, 연동마을에 갔는데 빨간 고추를 수확하던 어머니는 얼굴에 줄줄 흐르는 땀방울을 계속 수건으로 닦다가 그만 입가에 상처가 나고 말았다. 상처를 발견한 나는 평소 상처 난 곳에 바르면 금방 아무는 연고 하나를 사다 드렸다.

그런데 어머니는 그게 너무 고마웠는지 쌀을 어깨에 둘러메고 마당을 가로질러 가는데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저번 때 사다 준 연고 참말로 고마웠소. 꼬치 땀선 어찌나 땀을 많이 흘려불더니 상처난 데가 겁나게 쓰리고 아팠는디 집이가 사다 준 연고를 몇 번 바릉게 근방 낫아불데요. 참말로 정도 많은 양반여."

쌀을 어깨에 둘러메고 대문을 나서는 데 20년여 전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이 났다.

도시에 나가 자취하며 학교 다니던 나는 휴일이면 쌀과 반찬을 가지러 고향 집에 달려왔다. 일요일 오후면 어머니는 머리에 반찬을 이고 나는 어깨에 쌀을 둘러메고 버스 정류장까지 20여 분을 걸어가는데 어머니는 내게 이런 말을 했다.

▲ 지난 가을 주신 단감
ⓒ 김도수
"막둥이 너까지 결혼시키고 죽어야 헐 턴디 그 때까지 내가 살랑가 모르겄다. 가실 끝나면 쌀이랑 고추랑 깨랑 이것저것 조마니조마니 싸주고 죽어야 헐턴디…. 부모들은 자식들 나눠주는 그 재미로 농사를 짓는디 너 결혼허는 모습을 보고 죽어야 헐턴디 걱정이다. 자기 짝 찾아 솥 단지 걸고 사는거 보고 죽으면 내 임무는 그 것으로 끝난디…."

가을걷이 끝나면 결혼한 막둥이 자식까지 보따리보따리 싸주고 싶다던 어머니의 희망은 불과 몇 년 후 꿈처럼 사라져 버리고 기름진 논과 밭들은 남의 손에 넘어가고 말았다.

그러다가 어머니 땀 냄새가 배어 있는 쌀을 20여년만에 연동 어머니께서 내 어깨에 둘러메게 했으니 얼마나 행복한 순간이던가.

가게에서 사온 쌀들을 다 먹고 난 뒤 연동 어머니께서 주신 햅쌀로 저녁을 해먹던 날, 오랜만에 윤기 자르르 흐르는 햅쌀밥을 바라보니 지난 여름 연동 어머니께서 흘렸을 땀방울들이 송이송이 맺혀 나는 차마 밥 숟가락을 들지 못했다.

농사지어 가을이면 막둥이 자식까지 보따리보따리 싸서 버스 정류장까지 이고 가는 게 꿈이라던 어머니 얼굴과 나를 친자식처럼 생각하고 쌀을 주신 연동 어머니 얼굴이 떠올라 그만 목이 메어 밥 숟가락을 쉬이 들지 못했다.

"아빠, 빨리 식사 하세요. 배고파 죽겄어요. 오늘따라 저녁밥이 무척 맛있게 보이네요."

딸내미는 배가 고픈지 나더러 어서 숟가락을 들라며 재촉을 했다.

아들녀석은 윤기 자르르 흐르는 햅쌀밥이 맛있는지 후닥닥 한 그릇 비운 뒤 더 달란다.

"엄마, 연동 할머니께서 주신 쌀로 밥 헝게 엄청 맛있네요. 밥 좀 더 먹어도 돼요?"
"그려 많이 묵어라. 밥이 참 맛있제?"

부모님이 농사지어서 보내준 쌀로 밥을 먹어본 자식들은 안다. 밥에서 윤기 자르르 흐르는, 모락모락 피어 오르는 뜨거운 김이 부모님께서 흘리신 땀방울이라는 것을. 뜨거운 핏방울이라는 것을.

태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마이뉴스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정겹고 즐거워 가입 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염증나는 정치 소식부터 시골에 염소새끼 몇 마리 낳았다는 소소한 이야기까지 모두 다뤄줘 어떤 매체보다 매력이 철철 넘칩니다. 살아가는 제 주변 사람들 이야기 쓰려고 가입하게 되었고 앞으로 가슴 적시는 따스한 기사 띄우도록 노력 하겠습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