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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 연동마을에도 따스한 봄이 찾아오고 있었다
ⓒ 김도수
"잘 계싯소. 여기 곡성이요."
"아, 예 다시 농사지을라고 오셨네요."
"예, 논은 누구 지어 먹어라고 묵갈림 줘불먼 되는디 밭은 내 이날 평상 지어묵었는디 아무리 생각히도 묵후덜 못히서 걍 와부렀소. 눈 감기 전에는 좋은 전답들 어찌 내 손으로 묵히불것소. 자식들이 집으로 절대 가지 말라고 힜는디 걍 와부렀고만이라우. 근디 몇 달간 집을 비워놔부렀도만 집도 이상허고 마을도 넘덜 마을 같고 어찌 좀 요상스럽소."

"그럴 거에요. 집을 몇 달간 비워 놓고 있다가 오랜만에 가니 모든 게 낯설고 좀 이상할 거에요. 근디 또 몇 일 계시면 괜찮아질 거에요. 그나저나 오랜만에 오셔서 좀 심란허겄네요. 기름 애끼지 말고 보일러 연속으로 틀어놓고 따뜻허게 주무세요."
"예, 방은 항시 뜨건뜨건 해놓고 잠자요. 글고 언제 우리 집에 한번 놀로 오싯쇼. 저번에 애기 엄마가 간장 좀 갔다 묵는다고 힜는디 인자 내가 왔응게 언제든지 와서 갔다 드싯쇼."
"예, 다음주에나 한번 갈께요."

겨울철 농한기를 맞이한 연동마을 어머니는 부산에 사는 자식들 집에서 겨우내 지내시다가 부드러운 바람이 얼굴에 스치기 시작한 2월 하순 경, 곡성 연동마을로 다시 돌아 오셔서 내게 전화를 건 것이다.

나이 드셔서 홀로 농사 짓기 힘드니 절대로 농사 짓지 말고 편하게 살라는 자식들 요청을 뿌리치고 손발 구부리며 힘 닿는 데까지는 농사를 짓겠다며 다시 고향 마을로 오신 것이다. 묵정밭으로 변하는 것은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었던 모양이다.

고향 임실에서 농사를 짓고 사셨던 내 어머니도 살아생전, 겨울철 농한기를 벗어나 봄이 찾아오면 다가올 농사일에 대해 늘 걱정을 하곤 했다.
"아이고, 핀헌 겨울철 다 보냈다. 올 한해도 어찌 농사 지을랑가 걱정이다. 무거운 등짐은 누가 헐 것이며 또 논밭은 누가 다 갈아 줄 것이며…."

▲ 겸면 어머니 집으로 가기 위해 연동 어머니 집을 나서고 있다
ⓒ 김도수
봄이 찾아오면 나이 드신 부모님들은 한 해가 다르게 농사일이 힘에 부치니 올 한해도 어떻게 농사 지을 것인지 무척 심란해 한다.
부산 자식들 집에서 겨울을 보내고 계시던 연동마을 어머니도 봄이 찾아오자 농사를 그만 지을 것인지, 아님 조금만 지을 것인지, 밭에는 나무를 심어버릴 것인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끝에 결국 평생 흙을 만지며 살던 고향 땅을 버리지 못하고 다시 농사 지으러 연동마을로 돌아오셔서 하룻밤 주무시고 적적했던지 다음날 아침 내게 안부전화를 건 것이다.

겨우내 편히 자식들 집에서 쉬다가 오랜만에 고향 집에 돌아와 외롭게 지내고 계실 연동마을 어머니를 찾아 뵙기 위해 지난 2월 마지막 주 일요일 날 저녁, 아내와 함께 갔다.

"나한테도 사위가 되어 달라"는 앞 집 겸면 어머니께서 설 날 굴비 한 두름을 주어서 잘 먹었는데 마땅히 사다 드릴 것이 없어서 연동 어머니와 똑같은 몸뻬바지를 하나 사고 연동 어머니 집에 흐릿한 형광등을 갈아주려고 트윈 형광등 4개를 사가지고 갔다.

해가 뒷산에 기울고 있는 저녁 무렵쯤 연동마을에 도착을 하니 어머니는 벌써 저녁밥을 준비해 놓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머니는 내가 사가지고 간 형광등을 보며 깜짝 놀라신다.

▲ 겸면 어머니와 아내는 저녁밥을 준비하고
ⓒ 김도수
"허허, 돈도 없는디 뭐더게 이런 형광등을 사와부렀데아. 응. 나참 큰일나부렀네. 이일을 어찌야 쓸까. 미안히서…."
"아니에요. 제가 사온 게 아니라 연동 어머니와 주고 받는 인연이 사다 준 것이에요. 제가 연동 어머니를 만나 어디다 글을 쬐께 썼는디 원고료가 나와서 그 돈으로 사온 것이니 절대부담감 가질 필요 없어요.'

연동 어머니는 저녁을 먹으며 앞 집 겸면 어머니께 전화를 걸고 있었다.
"시방 임실사위 왔고만. 얼릉 우리 집으로 와 잉."
겸면 어머니가 오시자 아내는 "입에서 살살 녹은 굴비 잘 먹었는데 무엇을 사다 드릴까 고민을 하다가 집에서 편하게 입으시라고 그냥 값싼 몸뻬바지 하나 사왔네요."
"뭐더게 사왔소. 차꼬 요런걸 사갔고 댕기먼 서로 부담감 느낀게 후제부터는 걍 빈골로 오싯쇼 잉. 주암 성님이 절반만 사위허라고 힜는디 인자 내 사위가 되아분 것 같아서 주암 성님께 겁나게 미안헌디…."

▲ 삼파장 램프로 불빛이 환한 트윈등
ⓒ 김도수
연동 어머니는 새로 사온 형광등을 가리키며 "아, 글씨 우리집 형광등을 갈아줄라고 저렇게 좋은 형광등을 사와부렀데아. 미안히서 인자 큰일났당게…."

옆에 계시던 겸면 어머니가 "아이고 참말로 뭣을 벌로 안 보고 댕기고만…. 어치게 형광등을 갈아줄라고 생각을 힜데아. 응. 참말로 착허기도 허제. 우리 집도 이날 이태껏 애기 아부지가 전기다마 한번 갈아 끼운 법이 없어서 내가 다 낑기고 살았당게. 저번에도 우리집 형광등 포도시 내가 어치게 어치게 해서 낑기 갈았는디 간짐에 우리 집 부엌방도 어둠 침침히서 답답헝게로 돈 줄텅게 다음에 오면서 좀 사다 갈아줏쇼 잉. 아들도 있고 사위도 있지만 전기는 잘 못 만진당게. 그나저나 우리 집에 사위가 와있응게 서로 인사나 나누고 살게 우리 집으로 갑시다."

겸면 어머니 집에 가니 포천에 살고 있는 사위가 처갓집에 놀러 와서 아버지와 함께 안방에서 TV를 보고 있었다. 우린 인연에 인연의 꼬리를 물고 큰 사위, 작은 사위로 만나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포천에 살고 있는 형님은 말도 잘하고 유머 감각도 있어서 우린 예전부터 알고 지내던 사람들처럼 근방 친해지며 즐거운 저녁 한 때를 보냈다.

편의상 앞으로 나를 부를 땐 '임실 김서방'으로 부르기로 하고 기회 닿으면 임실 고향 집에도 한번 가기로 했다. 또 큰 형님이 살고 있는 경기도 포천 집에도 한번 놀러 오라고 초청을 받았다.

▲ 오래되어 불빛이 희미했던 갓등과 실버등
ⓒ 김도수
"큰 사위가 보낸 굴비, 작은 사위가 잘 받아서 먹었다"며 내가 농담을 곁들여 고마움을 전하자 포천 형님은 너무 좋아라 하시며 "서로 정겹게 사는 모습이 얼매나 보기 좋은가. 앞으로 '큰 동서, 작은 동서' 하며 서로 잘 지내세 잉."

밤이 깊어지자 순천 집에 있는 애들이 몹시 기다릴 것 같아 연동마을을 나섰다. 집을 나서려 하자 연동 어머니는 간장 통을 들고 나오면서 다음에 또 놀러 오란다.
"형광등 달러 와서 꼭 하룻밤 자고 갈께요. 내내 건강하세요."
아내와 나는 컴컴한 연동마을을 빠져 나가고 있었다.

나는 지금까지 몇 편의 글을 오마이뉴스에 썼다. 그 대가로 많지는 않지만 원고료가 조금씩 쌓여 가고 있었다. 원고료를 어디에 쓸 것인가 생각을 하다가 지난번 연동마을 어머니 집에서 밤 늦게 돌아오던 날 밤, 천정에서 흐릿하게 빛나는 형광등을 갈아주기로 마음 먹고 있었다.

부모님 돌아가시기 전, 고향 집에서 흐릿하게 빛나던 형광등 불빛을 생각해 내고는 고기 몇 근 사다 드리는 것보다는 방안을 환하게 해드린 것이 훨씬 좋을 듯싶어 원고료 6만원을 신청하여 그 돈으로 형광등을 사가지고 갔던 것이다.

▲ 연동마을 겸면 어머니 집(앞쪽)과 연동 어머니 집
ⓒ 김도수
사실, 우리집도 네 명의 자식과 한 분의 매형이 있지만 부모님이 사셨던 고향 집에 형광등을 갈아 끼우는 일에는 매우 관심이 적어 수명이 다 된 형광등을 갈아 주거나 낡은 등을 바꿔주는 일에는 무관심 하게 살아왔다. 어느 때 보면 형광등 불빛이 흐릿해 져서 답답할 때가 있었는데 부모님은 형광등을 쉽게 교체할 수도 없고 해서 그냥 그럭저럭 지내는 경우가 많았다.

지난번 연동마을에서 늦은 밤까지 놀다오던 밤, 나는 방마다 들어가 형광등 스위치를 켜보았다. 큰 방, 작은 방, 부엌 방, 마루에 달린 형광등이 모두 오래 되어서 다 갈아주려고 오마이뉴스에 적립된 원고료를 찾아 어머니 집에 달려있는 갓등 보다 불빛이 훨씬 밝은 트윈 형광등을 사가지고 갔던 것이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들과 딸내미는 내가 오마이뉴스의 '기자회원 방'에 들어간 어느 날, 컴퓨터 화면에 뜬 원고료 총액을 보고 "아빠, 저 원고료 타면 우리 가족들 저녁 외식이나 한번 하지요." 원고료 금액이 올라갈 때마다 아이들은 졸라대고 있었다.

"그래, 우리 가족들 외식하면 참 좋지. 하지만 이 돈은 아빠가 아주 보람되고 유익한 곳에 쓰고 싶은데…. 우리 가족들끼리 외식하는 즐거움도 좋지만 우리가 한번 외식 안 하고 즐겁고 보람된 일에 쓰면 안 될까?"

애들은 레스토랑에 가서 칼질하는 즐거움을 뒤로 하고 "그럼, 아빠가 쓰고 싶은 대로 쓰세요" 한다. 아내 역시도 보람된 일에 쓴다고 하니 기꺼이 그렇게 하라고 한다.
원고료를 찾아서 내가 어디에 쓸 것인지 궁금해 하던 가족들은 어느 날 내가 저녁 밥상에서 "원고료 찾아서 연동마을 어머니 집에 형광등을 갈아 줄려고 하는데…."
내 이야기가 끝나자 아내와 아이들은 괜찮은 곳에 쓴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 물동이 이고 가는 아낙네 모습은 볼 수 없지만 아직도 시원한 물맛은 변함이 없다
ⓒ 김도수
아내와 애들에게 고맙기만 했다. 어린 마음에 가족들 외식하는 즐거움이 사라지는데 어찌 아빠에게 불만이 없겠는가. 하지만 아빠가 원고료 찾아서 연동 어머니 집에 낡은 형광등을 갈아 주는데 쓴다니 모두다 즐거운지 입가에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외식을 못하는 대신 애들에게 연동마을에 가서 형광등 달아주고 하룻밤 자고 돌아오는 날, 자장면을 시켜주기로 약속을 했다.

형광등을 연동마을 어머니 집에 사다 놓고 갈지 못해 애태우고 있던 나는 지난주 토요일 저녁, 연동마을에 가족들과 함께 갔다. 오래된 전깃줄과 형광등을 떼어 내고 새로운 형광등을 달려고 하니 형광등을 고정시켜주는 나사못을 가지고 오지 않았다. 연동마을에 오기 전부터 나사못을 미리 챙겨야겠다고 마음 먹고 있었는데 그만 깜박 잊고 와버린 것이다.

어떤 일이든 사전에 미리 준비를 해서 행해야 하건만 생각만 하고 있다가 그만 현실에 부딪쳐서야 다시 생각이 나니 무척 후회스럽기만 하다. 그렇잖아도 오후 늦게 도착을 해서 해가 저물기 전에 형광등을 모두다 교체할 수 있을 것인지 걱정을 하고 있었는데 어쩔 수 없이 다시 왔던 길을 가야만 했다. 석곡 면사무소가 있는 철물점으로 달려가 나사못을 사가지고 와서 형광등을 교체하기 시작했다.

▲ 연동 어머니 집에서 책을 펴고 공부하는 딸내미와 아들
ⓒ 김도수
서둘러 큰방, 작은 방, 부엌 방, 마루에 달린 등을 달고 나니 큰방 윗방에 전등이 하나 모자란다. 아랫집 겸면 어머니 부엌 방에 두 개, 마루에 한 개를 더 달아야 하는데 형광등이 하나 모자란 것이다. 나중에 큰방 윗방 쪽은 달아도 괜찮을 듯싶어 겸면 어머니 집에 세 개를 모두 달아드리기로 하고 혹시 등에 이상이 생기면 즉시 갈아 끼우라고 연동 어머니께 앞 뒷집에 한 개씩 여유분의 등을 드리며 형광등 바꾸는 작업을 모두 끝냈다.

날이 어두워져서 손전등을 들고 나를 도와주던 아내와 형광등을 교체하고 있는 아빠의 모습을 지켜보고 서 있던 아이들. 날이 어두우니 그만 하고 내일 아침에 다시 하라며 애가 타시는 연동 어머니. 모두들 형광등을 달고 있는 내 모습을 지켜보면서 기쁜 표정으로 내 주위에 서성거리고 있다. 부엌 방에 있는 형광등을 마지막으로 달고 나서 내려져 있던 두꺼비집 스위치를 올렸다. 순간, 온 방이 환하게 켜지며 모두들 환한 미소로 박수를 치며 좋아한다.
연동 어머니는 "세상이 다 훤허게 보여부요. 인자 바늘 구멍도 훤히 다 보여불겄소."

요즘 TV만 켜면 노무현 대통령 탄핵 관련소식으로 세상이 시끄러운데 오늘밤 연동마을 어머니 집처럼 방마다 환하게 불이 켜지며 박수치는 소리가 대한민국 방방곡곡에 울려 퍼지길 간절히 희망해 본다. 정치하는 모든 사람들이 서로가 서로를 보듬고 상대방에게 희망을 주고 따스한 불빛을 새어나가게 해주는 그런 날들이 우리나라에는 언제나 가능한 일일까? 정말 현실은 답답하기만 하다.

▲ 새벽이 되자 꿀뚝에서 연기가 펑펑 솟아 오르고
ⓒ 김도수
형광등을 달고 나니 연동마을 어머니는 "오늘 저녁은 앞 집 겸면떡이 밥을 헌다고 히서 내가 안 했소. 앞집으로 가서 묵읍시다. 오늘 앞 집에 쥐구멍 막는다고 놉을 얻어 쌔맨(시멘트) 일을 해서 나도 샛꺼리부터 시작히서 하루 종일 앞집서 묵어부렀더니 앞집서 꼭 오늘 내 생일을 새준 것 같으요."

앞 집 겸면 어머니 집에서 정성껏 차린 저녁을 먹고 뒷집 연동 어머니 집에서 하룻밤 자고 가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연동 어머니는 내가 하룻밤 자고 간다고 하니 너무 좋아라 하시며 우리 가족들 덮고 잘 이불을 안방에 깔아 놓고 따뜻하게 보일러를 틀어놓고 있었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도 안방에 오랜만에 불을 넣어서 그런지 방바닥이 따뜻하지를 않고 미지근하기만 하다. 아무래도 보일러에 이상이 생긴 것 같아 손전등을 들고 보일러 실에 들어가 보일러를 점검 하는데 순환모터에 이상이 생겨 작동이 잘 되지 않고 있었다.

오늘 밤, 연동 어머니와 함께 한방에서 자라고 그 동안 잘 돌아가던 보일러가 고장을 일으킨 것 같았다. 봄이 되자 부산에서 고향 연동마을로 돌아오셔서 그 동안 혼자 적적하게 주무셨기에 오늘 밤은 우리 가족과 함께 오순도순 한방에서 이야기 하며 자라고 보일러가 일부러 고장을 낸 것은 아니었을까.

▲ 구들장 뜨건뜨건하게 해줄 바싹마른 장작
ⓒ 김도수
평소 어머니께서 주무시던 작은 방은 연탄 보일러와 기름보일러가 동시에 놓여져 있어 방이 따뜻하니 작은 방에서 함께 자기로 하고 이불을 편다. 아이들은 오랜만에 낯선 마을에서 하룻밤 자려 하니 쉽게 잠이 오지 않았던지 책을 펴놓고 독서를 하기도 하고, TV를 보기도 하고 또 아내와 어머니 그리고 내가 오순도순 도란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잠을 청하지 않는다.

어머니는 TV를 보다가 몸뻬바지 속에서 꼬깃꼬깃한 돈을 꺼내고 있었다.
"요즘 할머니들, 손자들에게 인기가 있을라먼 용돈을 주어야 한다"며 만 원짜리 지폐를 꺼내 아이들에게 각각 한 장씩 준다. 나는 "용돈을 줄라면 천 원짜리 한 장씩만 주라"고 하자 어머니는 기어이 만 원짜리 지폐를 아이들 손에 쥐어 주고 있었다. 시계는 밤 12시를 넘기며 01:00에 접근을 하자 다음 날을 위해 대낮처럼 환하게 밝혀진 형광등을 끄고 우린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 앞 집 겸면 어머니 집에 가서 낡은 형광등을 떼어 내고 새로운 형광등으로 교체를 하고 있자 겸면 아버지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내 곁에 다가와 일하는 모습을 계속 지켜보고 계셨다.
"어찌까. 고개를 쳐들고 계속 일을 히서. 참말로 젊은 사람이 좋은 일 허고만…. 우리 집까지 해준게 얼매나 고마운지 모르겄어. 오늘 아침은 뒷집서 밥을 헌당에 일허는 사람 식사 대접도 못해 주겄고만 잉."

아침 밥을 드시자마자 겸면 어머니는 새참을 머리에 이고 아버지는 비료를 지게에 짊어지고 뒷산 감나무 밭에 거름을 주러 나가고 있었다.
감나무 밭에 가신 겸면 어머니는 우리들이 언제 떠날지 몰라 그랬는지 집으로 다시 오셔서 형광등을 사가지고 온 돈을 내게 주기 위해 돈 봉투를 건네려 하고 있었다.

"돈 받으려면 제가 형광등 사오지도 안 했어요. 이러시면 다시는 연동마을에 오지 않을 테니 제발 호주머니에 돈 봉투 집어 넣으세요."
나는 돈 봉투를 겸면 어머니 호주머니에 강제로 집어 넣고 있었다.

집으로 가신 겸면 어머니는 여름 내내 피땀 흘려 가꾼 참기름 한 병을 가지고 오셔서 아내에게 건네주고 있었다.
"우리 집 작은 딸이라 생각허고 자주 놀러오소 잉. 딸내미 좀 줄라고 엊그제 짰는디 중국산이 아니고 내가 직접 농사 지은 것잉게 꼬숩고 맛있을 것이여."
겸면 어머니는 또 아이들에게 다가가 "가다가 과자나 사먹으라"며 오 천원씩 손에 쥐어 주고 있었다.

여름 날, 뙤약볕에서 피땀 흘려 힘들게 농사 지어 우리 가족들에게 선물로 준 참기름 한 병. 핏줄 닿지 않은 사람에게 정을 베풀며 꼭 친딸이나 사위처럼 여기며 우리 가족들을 대해주시는 연동 어머니와 겸면 어머니가 고맙기만 하다. 시집간 딸내미들한테도 잘 주지 않는다는 참기름을 연동마을 앞 뒷집에서 차례로 받았으니 나는 이 고소한 행복을 누구와 함께 나눠 가질꼬?

시린 겨울을 지나 봄을 맞이하며 겸면 어머니가 아내에게 건네준 참기름 한 병이 대한민국 방방곡곡에 봄바람을 타고 고소하게 퍼져 나갔으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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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정겹고 즐거워 가입 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염증나는 정치 소식부터 시골에 염소새끼 몇 마리 낳았다는 소소한 이야기까지 모두 다뤄줘 어떤 매체보다 매력이 철철 넘칩니다. 살아가는 제 주변 사람들 이야기 쓰려고 가입하게 되었고 앞으로 가슴 적시는 따스한 기사 띄우도록 노력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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