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세월호 가족 활동 모습 사진
 세월호 가족 활동 모습 사진
ⓒ 4.16연대

관련사진보기

 
사단법인 4.16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을 위한 피해자 가족협의회. 긴 단체명을 줄이지도 않고 또박또박 발음하는 가족들을 볼 때마다 사명감과 비장함이 느껴졌다. 이제는 그 이름만큼 긴 세월이 흘렀지만,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는 오늘도 초심을 되새긴다.

사무처장을 맡은 윤희 엄마 김순길씨를 만나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의 지난날을 돌아보고 앞으로의 고민을 들어봤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가 침몰하던 현장에서 국민을 구조하지 않는 국가를 목격한 가족들이 뭉쳤다.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외쳤다.

처음엔 '안산 단원고등학교 유가족대책위원회'로 모인 가족들은 2014년 5월 7일과 8일 총회를 열고 '세월호 사고 희생자·실종자·생존자 가족대책위원회'를 구성했다. 싸움이 길어지며 임의단체로서의 한계를 느꼈다. 법의 테두리 안에서 제대로 활동하기 위해서는 사단법인이라는 틀이 필요했다.

그러나 그 길 역시 쉽지 않았다. 2015년 1월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가 사단법인으로 인정받기까지 1년이 걸렸다. 해양수산부와 안산시 모두 사단법인 등록을 거절했다. 가족들은 서울시에 가서야 등록 허가를 받을 수 있었다. 가족들의 활동 거점은 그렇게 법적인 지위를 얻었다.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는 독특한 조직 구조를 가지고 있다. 단원고 희생 학생들이 속했던 1반부터 10반을 부모들이 이어받았다. 생존 학생 가족들은 11반이 됐다. 각 반 대표 11명이 운영위원회를 구성한다. 집행부에는 진상규명부서, 추모사업부서, 회원조직부서, 대외협력부서와 이들을 지원하는 사무처가 있다. 집행부에서 논의된 안건이 운영위원회를 거치면, 최종 의사결정은 집행부와 운영위원회를 합친 확대운영위원회에서 이뤄진다.

민주적인 의사결정 구조를 만들려고 노력했지만, 언제나 순탄치만은 않았다. 한날한시에 아이를 잃었다는 공통점으로 모였을 뿐, 이전에는 얼굴도 잘 모르는 사이였던 부모들은 공통점만큼 차이점도 많았다. 초창기에는 회의 석상에서 욕설과 고성이 오가기도 했다. 희생 학생 부모들과 생존 학생 부모들 사이에는 미묘한 긴장이 흘렀다.

힘든 시간이었지만, 요즘은 그때의 뜨거움이 못내 그립기도 하다. 부모들이 너나없이 전국을 누비던 예전과 달리, 지금은 나와서 활동하는 가족들이 임원들을 포함해 30여 명 정도다. 몸이 아파서, 생활이 어려워서, 저마다의 사정으로 마음만 보태는 가족들이 늘어갔다.

남아서 활동하는 가족들도 힘겨운 순간이 늘어갔다. 가족들이 돌아가며 팽목기억관을 지키는 당번을 서는데, 갈 사람이 없어 비는 날이 생기면 속상한 마음은 어쩔 수 없다. 한 달에 두 번 가는 서울 광화문광장과 용산 피케팅도 때로는 버거울 때가 있다. 쉬지 않고 달려온 가족들은 조금은 지쳐있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다. 진실이 알고 싶은 가족들은 오늘도 불을 밝힌다. 그동안 모아만 둔 자료들을 정리하는 작업을 진상규명부서에서 하고 있다. 지금까지 조사 과정에서 미흡했던 점과 보완할 점을 짚고자 한다. 추모사업부서에서는 '4.16생명안전공원'(안산시 화랑유원지에 들어설 세월호참사 추모공원)이 하루빨리 첫 삽이라도 뜰 수 있도록 감시를 늦추지 않을 계획이다.

피보다 진한 공감과 연대

이렇게 가족들이 힘을 내는 이유는 제일이 아이들이지만, 함께하는 가족들의 영향도 크다. 가족들의 회비로 운영되는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는 현재 145가정 정도가 회비를 내고 있다. 앞서서 활동하는 가족들에게 미안하다며 회비라도 더 내겠다는 사람도 있다. 그 마음들이 고마워서 가족들은 여전히 멈출 수 없다.

무엇보다 가족들과 같이 있으면 편안하다. 아이를 잃고 친척이나 가족조차 아픔에 공감해주지 않을 때, 위로가 돼준 건 세월호 가족들이었다. 웃음이 나면 웃고, 눈물이 나면 울고, 화가 나면 화내도 뭐라 하지 않는 곳이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다. 가족들과 10년의 세월을 통과한 김순길씨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피로 이어진 가족은 아니지만 그 가족보다 더 끈끈해졌어요. 이제 정말 가족이 됐어요."

매일 투쟁만 했으면 견디기 어려웠을 시간이었다. 합창단, 극단, 공방 등 다양한 동아리들은 일상을 버티게 해주는 활력소였다. 진상규명도 책임자 처벌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현실에서 소진돼가는 가족들을 다잡은 건 결국 가족들이었다.

10주기를 맞는 가족들은 '10년 했으면 됐지'라는 말이 가장 두렵다. 그만할 수 없는 가족들은 이제 다시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의 시간은 세월호 참사의 진상을 규명하고 안전사회로 가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다시 약속하는 과정으로 삼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시민들의 연대가 절실히 필요하다.

서울시의회 앞과 팽목항의 기억관 존치 문제, 세월호 선체 거치 문제 등 아직도 산적한 과제는 많다. 김순길씨는 시민들에게 이렇게 부탁했다.

지금까지 저희 옆에서 함께 걸어주신 시민분들, 감사해요. 또 죄송해요. 10년을 이렇게 해오셨는데 앞으로도 저희와 함께해달라는 부탁밖에 못 드릴 것 같아요."

재난참사운동사에서 유례가 없는 길을 걸어온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는 반복되는 참사 앞에 그 역할이 더 커지고 있다. 가족을 잃음으로써 가족이 된 사람들이 이어갈 이야기에 걱정 대신 기대를 보낸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이슬하는 세월호 참사 당시 고등학교 3학년이었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이 그리울 수 있다는 걸 세월호로 배웠다.


태그:#세월호
댓글

4월16일의약속국민연대(약칭 4.16연대)는 세월호참사의 진실을 밝히고 생명이 존중받는 안전사회 건설을 위해 세월호 피해자와 시민들이 함께 만든 단체입니다. 홈페이지 : https://416act.net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