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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가 내리는 처분 중 '기소유예'라는 게 있다. 죄는 인정되지만, 여러 정황을 참작하여 재판에 넘기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주로 경미한 사건일 경우 내려진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수사 결과, 죄는 있다'는 것. 그런데 헌법재판소는 검찰의 기소유예처분을 매년 수십 건씩 취소하고 있다. 그만큼 억울하게 범죄자로 몰린 피해자가 많다는 의미다. 검경 수사권 조정 이후 전체 불기소사건 가운데 기소유예처분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 <오마이뉴스>는 검찰의 기소유예처분 남발을 진단하고 그 대안을 모색해본다.[편집자말]
- [억울한 사람 만드는 검찰① - "목격자로 둔갑한 폭행공범, 검사는 한 게 없다"]에서 이어집니다.
 
2013~2022년 10년 동안 2405건의 기소유예처분 취소 헌법소원심판이 청구됐는데, 취소 결정이 이뤄진 사건은 401건이다. 인용률 16%.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사진은 서울중앙지방검찰청 로비에 걸려있는 검사선서문이다.
 2013~2022년 10년 동안 2405건의 기소유예처분 취소 헌법소원심판이 청구됐는데, 취소 결정이 이뤄진 사건은 401건이다. 인용률 16%.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사진은 서울중앙지방검찰청 로비에 걸려있는 검사선서문이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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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월 22일 오전 문아무개씨는 남편과 말다툼을 벌였다. 남편이 밤새 술을 마시고 게임을 하고 있었던 탓이다. 옥신각신하다가 남편이 문씨의 배를 차는 등 폭행했다. 이 과정에서 문씨의 허리가 책상에 부딪혔고, 4주 치료가 필요한 요추 골절상을 입었다. 남편 오른팔에는 문씨의 손톱에 긁힌 것으로 보이는 경미한 상처가 생겼다.

수사 결과는 쌍방 폭행. 검찰은 정상을 참작해 재판에 넘기지 않는 기소유예처분을 내렸다. 문씨는 자신의 폭행 혐의가 인정된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고, 헌법재판소에 자신의 기소유예처분을 취소해달라는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헌재는 지난해 8월 검찰이 문씨에게 내린 기소유예처분을 취소한다고 결정했다. 헌재는 문씨의 행위를 두고 정당방위에 해당할 여지가 충분하다고 밝혔다. 문씨는 중한 상해를 입었지만 이에 대항하여 행사한 유형력의 행사는 비교적 경미하고, 여성인 문씨가 남편에게 일방적으로 발로 차이고 잡혀 끌려가자 저항하는 과정에서 남편의 팔을 할퀸 것은 폭행을 회피하기 위한 최소한의 방어수단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헌재는 "청구인(문씨)의 행위는 남편의 선제적이고 일방적인 위법한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함과 동시에 이를 벗어나기 위한 소극적인 유형력 행사로서 사회적 상당성이 있는 정당행위 또는 정당방위에 해당할 여지가 충분하다"라고 판단했다.

이어 "검사는 당시의 상황을 보다 면밀히 살펴 청구인의 행위가 정당행위나 정당방위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밝혀보았어야 함에도 이에 대한 별다른 고려 없이 바로 청구인(문씨)에게 폭행 혐의를 인정한 잘못이 있다"면서 "따라서 이 사건 기소유예처분은 그 결정에 영향을 미친 중대한 수사미진과 법리오해의 잘못이 있었다고 볼 수밖에 없고, 그로 인하여 청구인의 평등권과 행복추구권이 침해되었다고 할 것"이라고 밝혔다.

문씨처럼 헌재가 기소유예처분을 취소하는 일은 이례적인 게 아니다. 많은 이들이 헌재 결정으로 범죄자 누명을 벗는다.

헌재의 기소유예처분 취소 결정, 6건 중 1건꼴... 그중 78%는 "수사미진"

조미지 경찰대학 치안정책연구소 연구관과 김면기 경찰대학 법학과 교수가 2023년에 쓴 논문 <헌법재판소의 기소유예처분 취소 결정에 대한 실증적 연구>에 따르면, 2013~2022년 10년 동안 2405건의 기소유예처분 취소 헌법소원심판이 청구됐는데, 취소 결정이 이뤄진 사건은 401건이다. 인용률 16%. 약 6건 중 1건이 억울한 사건인 셈이다.

헌재에서 기소유예처분이 취소된 401건에서 가장 많은 취소 사유는 '수사미진'과 '법리 오해'다. ▲ 수사미진은 취소 사건 전체의 77.6%인 311건에서 지적됐고 ▲ 법리 오해 지적도 63.3%(254건)에 달했다. ▲ 증거판단의 잘못은 27.7%(111건) ▲ 사실오인 7.5%(30건)였다.

수사미진과 증거판단의 잘못이 함께 지적된 사례가 많았다. 2022년 1월 김아무개씨는 제주의 한 카페에서 다른 사람이 두고 간 휴대전화 충전기를 자신의 것으로 오인해서 가져갔다. 검찰은 김씨가 경찰에 출석하기 전까지 25일 동안 충전기를 반환하지 않았다는 이유 등을 들어 절도죄가 인정된다는 전제로, 같은 해 3월 기소유예처분을 내렸다.

하지만 헌재는 충전기가 저가이고 분실하는 경우도 흔하므로 충전기를 25일 동안 반환하지 않은 것을 두고 절도의 고의를 인정할 만한 중요한 정황으로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검찰은 헌재 변론 과정에서 김씨의 휴대전화 충전단자와 문제의 충전기 충전단자가 다르다는 주장을 처음 펼쳤다. 하지만 검찰이나 경찰이 이 내용을 수사했다는 기록은 존재하지 않았다.

결국 헌재는 2022년 9월 "이 사건 기소유예처분에는 그 결정에 영향을 미친 중대한 수사미진 또는 증거판단의 잘못이 있고, 그로 인하여 청구인의 평등권과 행복추구권이 침해되었다"면서 기소유예처분을 취소했다.

논문 저자들은 "헌법재판소 결정문을 분석한 결과, 혐의에 대한 인정이 제대로 되지 않은 상태에서 기소유예처분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적지 않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면서 "특히 경찰 송치 후 추가 보완수사 없이 경찰수사만을 토대로 한 기소유예처분이 '수사미진' 등을 사유로 취소되었다는 점은 검찰의 보완수사가 제대로 이행되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라고 밝혔다.

또한 "2021년 형사소송법 개정을 통한 검·경 수사권 조정 이후 책임수사를 표방하고 있는 경찰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면서 "경찰의 책임수사 확립을 위해서는 경찰 기소의견 송치→검찰 기소유예처분→헌재 처분 취소 사건을 대상으로 정기적인 사후점검절차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라고 강조했다.

검경 수사권 조정 이후 기소유예처분 비율 '껑충'... 왜?
 
2012년부터 2020년까지 검찰의 불기소처분 사건 가운데 기소유예처분 사건의 비율은 21.3 ~ 30.9%였지만 2021년에는 그 비율이 49.5%, 2022년에는 44.2%로 뛰어올랐다. 검찰 출신 변호사는 "검찰은 경찰이 송치한 경미한 사건도 꼼꼼히 볼 수 있도록 형사부 역량을 더욱 투입하고 강화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사진은 전국 최대 검찰청인 서초동 서울중앙지방검찰청사 모습이다.
 2012년부터 2020년까지 검찰의 불기소처분 사건 가운데 기소유예처분 사건의 비율은 21.3 ~ 30.9%였지만 2021년에는 그 비율이 49.5%, 2022년에는 44.2%로 뛰어올랐다. 검찰 출신 변호사는 "검찰은 경찰이 송치한 경미한 사건도 꼼꼼히 볼 수 있도록 형사부 역량을 더욱 투입하고 강화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사진은 전국 최대 검찰청인 서초동 서울중앙지방검찰청사 모습이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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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의 잘못된 기소유예처분으로 억울한 누명을 쓴 피해자들은 실제로는 더 많은 것으로 추측된다.

기소유예처분을 받은 이들 가운데 헌재 문을 두드리는 비율은 매우 낮다. 2021년에는 19만7405명이 기소유예처분을 받았는데, 헌재에 기소유예처분 취소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한 이는 310명으로 0.16%에 불과하다. 청구 이후 결정이 나오기까지 평균 1년 5개월이 소요되고, 헌재가 변호인강제주의를 적용하는 등의 이유로 억울한 피해자들이 쉽게 불복 절차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

또한 검경 수사권 조정 이후 검찰의 불기소처분 가운데 기소유예처분 비율이 크게 늘었다. 검찰이 기소유예처분을 남발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검찰연감에 따르면, 2012년부터 2020년까지 검찰의 불기소처분 사건 가운데 기소유예처분 사건의 비율은 21.3%~30.9%였다. 하지만 2021년에는 그 비율이 49.5%로 뛰어올랐다. 그 다음해인 2022년에도 전체 불기소처분 사건 49만 8582건 가운데 기소유예처분은 22만 235건으로 44.2%에 달했다.

"검사들의 엄밀한 법적 판단 회피 수단"

헌법재판소 국선대리인으로 활동하는 정희찬 변호사(안국법률사무소)는 "기소유예가 정책적 판단이다 보니 판단을 그르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면서 "검사가 엄밀한 법적 판단을 회피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기소유예가 남발된다면, 형사사법제도의 근간이 무너지는 것이다. 검찰 내부의 통제장치가 필요할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검찰의 입장은 어떨까. 검찰 출신 오선희 변호사는 "경찰은 기소의견으로 보냈고 당사자는 무혐의를 다투는 사건의 경우, 경찰 의견을 뒤집고 무혐의 판단을 내리기 위해서는 수사량이 많아진다"면서 "경미한 사건이라도 기소인지 무혐의인지를 따지는 건 의미가 있는데, 기소유예인지 무혐의인지를 따져야 하는 사건은 후순위로 밀려날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오 변호사는 "당사자에게는 무혐의와 기소유예가 큰 차이일 수 있으나 검사들은 똑같은 불기소이고 큰 불이익이 없으니까 괜찮은 것 아니냐는 생각으로 안일하게 사건을 처리하는 경우가 있다. 이에 대한 반성은 필요하다"라고 밝혔다.

그는 "결국 경찰은 검찰의 기소유예처분이 오류로 이어지지 않도록 초동 수사를 잘해야 하고, 검찰은 경찰이 송치한 경미한 사건도 꼼꼼히 볼 수 있도록 형사부에 역량을 더욱 투입하고 강화하는 게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태그:#기소유예처분취소, #검사, #검찰, #헌법재판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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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법조팀 기자입니다. 제가 쓰는 한 문장 한 문장이 우리 사회를 행복하게 만드는 데에 필요한 소중한 밑거름이 되기를 바랍니다. 댓글이나 페이스북 등으로 소통하고자 합니다. 언제든지 연락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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