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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방문할 때마다 엄마와 여동생에게 비슷한 잔소리를 듣는다. '왜 그렇게 촌스럽고 추레하게 하고 다니냐'는 타박이다. 겉으로 내색하진 않았지만 나는 내심 충격이다. 한국 온다고 나름 꾸미고 왔기 때문이다. 내가 캐나다에서 산 기간은 길어봤자 십 년 남짓이다. 아무렴 고국에서 나고 자란 '짬밥'이 있지, 한국식으로 멋 내는 방법을 모를 리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며칠 지내다 보면 엄마와 동생의 지적이 합당하다는 점을 깨닫는다. 한국의 길거리를 지나다니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멀끔하고 세련돼 보인다. 나는 꼭 시골에서 상경한 촌뜨기 같다. 모든 일이 그렇듯 멋 내기도 꾸준히 해야 감을 잃지 않는 법이다. 캐나다에서는 전혀 꾸미지 않으니, 감은 점차 떨어질 수밖에 없다. 
 
옷(자료사진).
 옷(자료사진).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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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제일 먼저 달려가는 곳은 다름 아닌 미용실과 피부과다. 시차적응은 둘째치고 일단 해외살이의 꾀죄죄함을 벗는 게 중요하다. 어느 정도 때를 벗어야 친구든 지인이든 만날 자신감이 생긴다. 
   
캐나다와 한국, 가장 다른 문화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단연코 '꾸밈'을 들 수 있겠다. 꾸밈의 기준값이 완전히 다르다고나 할까?

캐나다에서 즐겨 입는 옷은 한국에서는 입지 않고 마찬가지로 한국에서 입는 옷은 캐나다에서 입지 않는다. 비단 옷뿐만이 아니다. 가방, 신발, 액세서리도 마찬가지다. 한국에서 이런 패션 아이템은 활용도가 높지만 캐나다에서는 그다지 쓸모가 없다. 한국에서의 '일상적' 꾸밈이 캐나다에서는 전혀 일상적이지 않다. 나는 안 꾸미는데?라는 생각이 든다면 다음 질문에 답해보라. 겨울에 코트를 입는가? 그렇다면 꾸미는 것이다. 캐나다의 시각에서 본다면 말이다    

코트, 흔히 입는 옷이지만... 기후 다른 캐나다에선 

코트는 한국에서는 흔히 입는 옷이지만 캐나다에서는 일 년에 한두 번 정도, 입는 일이 손에 꼽는다. 일단 날씨의 영향이 크다. 내가 살고 있는 캐나다 서부 지역은 겨울 동안은 우기다. 11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종일 비만 내린다. 다른 지역의 날씨는 훨씬 혹독하여 상상 못 할 정도로 춥고 비 대신 눈이 내린다. 비나 눈이 오는 날씨에 코트를 입고 다니기는 무리가 있다.

더구나 이 나라는 우산을 절대 쓰지 않는다. 웬만한 폭우가 아닌 다음에야 내리는 비를 죄다 맞고 다닌다. 코트보다는 방수나 방한 기능이 있는 아웃도어 점퍼를 즐겨 입는다. 반면 한국에서 그런 종류의 옷은 등산이나 스키장을 갈 때 아니고서는 잘 입지 않는다. 비가 오면 무조건 우산을 쓰기 때문에, 방수기능도 필수적이진 않다. 코트도 꽤 일상적으로 걸친다.

캐나다에서 코트는 결혼식이나 장례식에 참석하는 등의 격식을 갖춰야 할 때만 입는다. 그런 자리가 잦지는 않으니 몇 년간 아예 입지 않고 지나갈 때도 있다. 언젠가부터 코트는 아예 본가에 두고 캐나다에 들고 오지 않는다. 캐나다에서 잘 입는 방수 점퍼도 한국에 갈 때 가져가지 않는다.
 
캐나다와 한국은 꾸밈의 기준이 다르다.
 캐나다와 한국은 꾸밈의 기준이 다르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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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식 꾸미기의 대표적인 방식은 '꾸안꾸'다. 말 그대로 '꾸민 듯 안 꾸민 듯' 과하지 않은 선에서 자연스러운 멋을 추구하는 것이다. 한국사람들은 외출의 목적이 무엇이 되었건 간에 기본적으로 이 '꾸안꾸'는 하고 나간다. 이게 너무 당연하다 보니 특별하게 여기지 않는다. 대놓고 티 나게 꾸미기에 비하면 이 정도는 꾸민 것도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캐나다는 어떤가 하면 한국의 '꾸안꾸' 정도만 하고 나가도 온갖 칭찬이 쏟아진다.

재밌는 사실은, 한국과 달리 캐나다는 남이 어떻게 하고 다니는지 전혀 관심이 없다는 것. 예컨대 한국처럼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도 않아서 몸매와 상관없이 노출이 심한 옷이나 괴상망측(?)해 보이는 옷도 스스럼없이 입고 다닌다. 이렇게만 들으면 앞뒤 주장에 모순이 있는 듯하다. 남 옷차림에 아무 관심은 없는데, 잘 꾸미고 나가면 관심을 받는다?

다시 말하면, 캐나다는 멋을 안 내고 다니는 게 기본값이다. 까치머리를 하고 잠옷바지 차림으로 쇼핑몰을 가도 아무 상관이 없고 오히려 그와 비슷하거나 훨씬 넝마 같은 차림새를 한 사람들을 수시로 마주치기까지 한다.

그에 비해 꾸민 사람들은 극히 소수에 불과하다. 한국은 멋을 내는 게 기본이다. 본질적으로 타인의 시선을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에 남에게 비치는 겉모습에 신경을 많이 쓴다. 양국의 꾸밈에 대한 인식은 기본값의 설정이 정반대다.

꾸미지 않는 문화의 장점 

물론 캐나다 사람들이 꾸민 사람을 죄다 이상한 시선으로 본다는 소리는 아니다. 다만 자연스레 눈에 띈다. 어둡고 칙칙한 털을 가진 새 무리 사이 알록달록한 새 한 마리가 섞여 있을 때 단연코 눈에 띄는 현상과 비슷한 논리다. 꽤 멋쩍고 성가신 반응을 마주할 마음의 준비도 필요하다. 스몰톡(small talk)이라는 문화 때문에 그렇다.

평상시에는 상관없지만, 꾸미고 나가면 단연 차림새가 화제에 오른다. 낯선 사람이 스스럼없이 말을 걸어 옷과 머리 스타일을 칭찬한다. 긍정적인 시각에서 보면 상대를 칭찬하는 것이니 나쁘다 할 수 없다. 그럴지라도 일단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관심을 받는 상황 자체가 불편하고 쑥스러운 게 사실이다.

캐나다의 꾸미지 않는 문화는 장점이 많다. 일단 가계에 도움이 된다. 쇼핑에 드는 지출이 현저히 줄어든다. 시간도 절약된다. 출근을 준비하는 데 드는 시간은 십분 남짓이다. 콘택트렌즈도 끼지 않고 안경을 쓴다. 머리는 하나로 질끈 묶고 화장은 전혀 하지 않는다. 그나마 여름에는 선크림을 바르지만 해를 전혀 볼 수 없는 겨울 동안은 그것조차 바르지 않는다.

옷장을 열면 주로 일주일 간 직장 갈 때 돌려 입을 옷 몇 벌이 전면에 걸려있다. 겨울이면 기모 안감이 달린 후드티, 맨투맨티와 츄리닝 바지, 레깅스를 매치해 입는다. 여름에는 더 간단하다. 반팔 티셔츠와 반바지 몇 장이면 된다. 옷장 앞에서 뭘 입을까 고민할 필요가 없다.
     
사실 옷 쇼핑하기는 한국보다 캐나다가 좋다. 일단 세일을 엄청 자주 한다. 할인 폭도 꽤 크다. 세일을 잘 활용하면 알만한 브랜드나 고가의 제품을 괜찮은 가격에 득템 할 수 있다. 사이즈 폭도 다양하여 살이 쪄도 몸에 맞는 옷을 어렵지 않게 살 수 있다. 예쁜 옷을 세일가로 판매하고 있는 것을 보면 당장에라도 사고 싶다. 매번 망설이는 이유는 한국이라면 모를까 당장 여기서는 입지 않을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순전히 한국에 갔을 때 입을 요량으로 옷이나 구두를 산 적이 있었다. 하지만 매번 후회했다. 가뜩이나 옷장도 좁은데 한두 번 입겠다고 쟁여두는 게 영 마땅치 않은 데다 한국 방문시기도 들쭉날쭉하여 사놓은 옷과 계절이 맞지 않아 한 번도 못 입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이렇게나 쇼핑하기 좋은 환경인데 활용할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깝다. 오히려 꾸밀 일이 없는 상황이 갑갑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전혀 가꾸지 않은 모습이 스스로 견딜 수 없을 때도 있다. 한국에서 유지되는 외모와 이곳에서의 상태가 너무 동떨어져 그 격차를 받아들이는데 혼란이 있다. 어쨌거나 나는 내가 예뻤으면 한다. 오랜만에 한국에 갔을 때 '왜 이렇게 망가졌니?' 따위의 소리는 듣고 싶지 않다.

비록 몸은 캐나다에 있을지언정 한국 수준에 뒤떨어지고 싶지 않아 한동안은 반짝 다이어트를 하고 얼굴에 마스크 팩도 수시로 붙이고 외출할 때도 옷을 차려입고 나가기도 한다. 하지만 목적성이 뚜렷하지 않으므로, 이런 노력은 금방 흐지부지 되기 일쑤다. 동기부여가 될 만한 요소가 그다지 없는 것이다. 이런 조건에서 꾸미는 노력을 지속하기란 어렵다. 결국 예전으로 돌아가고 만다. 

덧붙이는 글 | 브런치에도 비슷한 글이 올라갑니다.


태그:#캐나다문화, #캐나다생활, #꾸안꾸, #한국스타일, #캐나다스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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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에서 살고 있습니다. 브런치 작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소소한 일상에서 마주하는 것들의 소중함에 대해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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