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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식 고용노동부장관(앞에서 두 번째), 박상우 국토교통부장관(앞에서 첫 번째), 오영주 중소벤처기업부장관이 지난 24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추가 유예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정식 고용노동부장관(앞에서 두 번째), 박상우 국토교통부장관(앞에서 첫 번째), 오영주 중소벤처기업부장관이 지난 24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추가 유예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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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감이 없던 윤석열 정부의 장관들이 셋이나 모여서 호소문을 읽는 모습을 보니 헛헛한 웃음이 난다. 정부가 시행하고 감독하고 지원해야 할 법안을 미뤄달라고 호소하다니 누구를 향한 호소인가 싶고, 어떤 힘이 저들을 저렇게 절실한 모습으로 카메라 앞에 세운 것인가, 큰 그림이 있는 것인가도 따져봐야겠다 싶다.

2024년 1월 27일부터 노동자 5인 이상을 고용하는 모든 산업·사업체에 중대재해처벌법 전면 적용을 앞두고 이정식 고용노동부장관이 1월 24일 다른 장관 둘을 양 옆에 세우고 '간곡히' '머리 숙여' 800만 명 노동자의 고용과 일자리를 위해 법시행을 미루자고 했다. 노동 담당 장관이 국토교통부,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을 들러리로 세우다니 낯설었다. 노동을 빙자한 기업 걱정이었기에 그런 그림이 나올 수 있었나 보다.

보수 언론과 경제신문들 역시 객관적 자료에 눈감은 채 자신들이 원하는 한쪽 방향으로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50인(억) 미만의 사업체 가운데 위험하고 노동자 사망이 많은 사업들은 거의 정해져 있다. 50인(억) 미만 사업장에서 일어나는 사망사고도 전체 사망사고와 같이 건설업·제조업에서 가장 많다. 떨어지고, 끼이고, 부딪치고, 물체에 맞아서 노동자가 죽어 왔다. 건설과 제조업 이외의 기타 업종에서의 사망도 비슷하다. 화재와 폭발로 인한 사망 외에는 떨어지고 부딪치고 끼인다. 이렇듯 주로 구조물, 기계장비, 설비 때문에 그 안에서의 작업 때문에 노동자가 사망해 왔다.

나는 영세기업들은 충분히 보호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산재 사망이 드물게 일어나는 산업이라고 해도 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대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입장을 미리 밝히며 보수 언론과 경제지들의 기이한 보도를 따라가 보도록 하겠다.

재탕 논리와 겁박
 
지난 1월 26일 <동아일보> 1면에 실린 '직원 5명 식당도 내일부터 중대재해 처벌’ 기사.
 지난 1월 26일 <동아일보> 1면에 실린 '직원 5명 식당도 내일부터 중대재해 처벌’ 기사.
ⓒ 동아일보 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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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월 26일치 <서울신문>에 의하면 '중대재해처벌법이 영세사업체 사업주 83만 명을 예비범법자로 만들었다'고 하는데 그 논리대로라면 형법에 의해 처벌을 받을 가능성이 있는 모든 국민은 예비범법자가 되는 것인가. '중대재해처벌법으로 사업주가 처벌을 받으면 영세기업의 경영방식 때문에 기업의 존립 자체가 어려워지고 따라서 노동자 일자리가 줄어든다'는 논리도 반복해서 등장한다.

현재 영세사업주들의 처지는 절박하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고물가 상황과 금리인상으로 인한 노동자 실질임금의 감소와 소비 여력 위축, 고유가와 고환율, 원자재 값 인상으로 인한 어려움, 서민과 사회적 약자에 대한 긴축재정 그리고 너무도 무능한 정부의 경제, 통상, 외교 정책, 이들이 결합해 경제위기 상황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러한 심란하고 착잡한 상황에서 '직원 5명 식당도 내일부터 중대재해 처벌' 이라고 겁을 주는 <동아일보>의 말에 어떻게 간담이 서늘하지 않겠는가.

중대재해처벌법의 시행소식을 듣고는 '살려달라'고 호소하는 영세 인쇄소, '날벼락이 떨어졌다'고 걱정하는 빵집, 카페, '추가로 안전 전문인력을 채용하고 재해 예방 예산을 마련하라는 건 너무 가혹하다'면서 '패닉'에 빠진 치킨집, 호프집, 컨설팅비용이 수백만 원에서 수천만 원이 들어가 '억장이 무너진다'는 PC방, 찜질방의 호소까지. 신문 기사들을 보자니 중대재해처벌법이 대한민국 경제를 붕괴시킬 조짐이 보인다.

한 경제신문 기자는 서울 마장동의 축산시장을 찾아 살벌한 분위기를 전하기도 했다. 칼질을 하는 사장에게 '직원이 다치면 사장이 감옥에 갈 수도 있는 법이 곧 시행되는데 알고 있느냐'고 물은 모양이다. 칼이나 쇠를 쓰는 사업장이라 '상처가 깊으면 내가 구속될 수도 있다는데' 폐업하라는 것이냐고 사장이 반문한다. 대출이자도 내지 못하는 사업체, 파산하는 자영업자가 늘고 있는 시기에, 경기침체를 가장 민감하게 느낄만한 곳에 가서 중대재해처벌법이라는 돌덩이가 날아온다고 외치고는 사업주들의 날선 반응을 보여주는 것, 이렇게 해서 보수언론과 경제지들은 무엇을 얻고자 하는 것일까.

보수언론과 경제지가 다루지 않은 것
 
1월 28일 서울 시내 한 음식점에서 직원들이 근무하고 있다.
 1월 28일 서울 시내 한 음식점에서 직원들이 근무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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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왜 50명 미만을 고용하는 기업은 안전관리자를 두거나 전담조직을 운영하지 않아도 되며, 중대재해처벌법이 아니라 이미 시행되고 있던 산업안전보건법에 안전관리 담당자가 필요한 업종이 정해져 있다는 것을 말하지 않는가. 모든 산재 사고가 아니라 한 해 동안 사망자 1명 이상 또는 6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중상자가 2명 이상 또는 중독사고가 3명 이상 사고가 나고, 안전에 대한 의무를 소홀히 했다는 것이 밝혀지는 경우에만 처벌의 대상이 된다는 것은 왜 말하지 않는가. 막무가내로 공포를 조장할 때는 분명 원하는 바가 있을 것이다.

서류 작업이 너무 많고 정부가 한다는 공동안전관리자 지원이나 컨설팅이 원활하게 되지 않는다는 진단을 기사 후반에 실을 때 기자는 '기대 이하' '형편없는 수준'이라는 언급과 함께 '사고가 줄지 의문'이라는 반응을 전하는데 이것이 비아냥으로 들리지 않기 위해서는 영세기업 노동자들이 안전하게 일하기 위한 정부 지원이 무엇이어야 하는지 다뤘어야 한다.

중대재해처벌법 전면 적용이 결정되자 보수언론과 경제신문들은 정치의 존재 이유를 묻고 싶다고 한다. 이 대목도 흥미롭다. 2022년 가을, 화물노동자들이 '안전운임제' 제도를 연장해서 화물노동자의 노동조건을 개선하고 지속가능한 산업 생태계를 만들자고 나섰을 때 '국가 경제는 안중에 없는 이기주의'라고 공격하며 노동자들에 대한 강경진압을 부추긴 언론들이다. '경찰 진압' 이전에 조정하고 협상하지 않은 정부, 여당에 대해서는 정치의 역할을 묻지 않던 언론이다.

건설일용노동자들의 노동조건에 대해 국가와 건설기업들이 손 놓고 있을 때 스스로 나서 안전한 현장을 만들고자 싸워온 건설노동조합을 부패카르텔인 양 몰아가 노동조합을 고사시키려 할 때 정부와 한 몸처럼 나서 건설노동자들에게 상처를 입힌 언론이다. 어떤 갈등에 대해서는 대화도 조정도 필요없고 완전히 쓸어버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언론이 어떤 갈등에는 정치가 보이지 않는다며 한탄한다. 언론이 찾는 정치의 정체는 무엇일까.

집권여당도 중대재해처벌법을 유예하라며 '눈물호소 응답하라' '중소기업 다죽는다'는 피켓을 들고 국회에서 시위를 했다. 이 장면이야말로 정치 실종의 현장이다. 여당은 법에 대비해 기업들이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살피고 자원과 예산을 배정할 힘이 있다. 눈물호소를 하는 주체가 아니라 그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하라고 국민들이 국회로 보낸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 역시 1월 25일, '중소기업의 어려움과 민생경제를 도외시한 야당의 무책임한 행위에 강력한 유감을 표명했다'고 하는데 찜찜한 마음이 가시지 않는다. 2023년 경제성장률 1.4%라는 저성장 지표는 중대재해처벌법 전면 적용 이전부터 나오고 있었다. 중소기업에 적절한 이윤을 보장해 주지 않는 대기업 중심의 하청구조가 문제라는 것은 상식이다. 영세기업들이 시설투자를 못하고 안전관리시스템을 만들 여력이 안 된다면 한국경제에 구조적 문제가 있다는 뜻이다. 이제 막 적용되는 중대재해처벌법에 이마저 덮어씌우려는 것은 아니겠지, 아닐 것이다.

희생양 만들기... 그러나 법은 시행되기 시작했다
 
민주노총과 생명안전 후퇴 및 중대재해처벌법 개악 저지 공동행동이 지난 1월 26일 오전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2주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모든 노동자의 안전과 건강하게 일할 권리를 위해! 민주노총과 생명안전 후퇴 및 중대재해처벌법 개악 저지 공동행동이 지난 1월 26일 오전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2주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이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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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 살펴보니 '언론이 왜 이렇게까지 할까?'에 대한 한 가지 답은 찾았다. 경제 정책의 실패로 중소영세기업이 어려워지자 희생양으로 삼을만한 것을 찾았는데 그것이 중대재해처벌법이다. 그리고 <매일경제>의 기사 제목에서 다른 이유를 하나 더 찾았다. '노조에 끌려다닌 야, 80만 중기 졸속입법 희생양.' 이미 시행중인 법을 왜 '졸속입법'이라고 굳이 붙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노동조합 때문에 기업이 어려워졌다, 노동조합이 만든 법 때문에 회사가 망한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노동운동, 사회운동의 힘으로 제정된 법이 기업활동에 간섭하는 것이 싫다는 표현으로 읽힌다.

그러나 이제 법은 시행되기 시작했다. 보수언론과 경제신문들은 영세기업 노동자들이 높은 데서 떨어져 사망하고 날아오는 철판에 맞아 사망하는, 억울하고 슬픈 죽음을 중대재해처벌법이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을까 관심을 갖기 부탁드린다. 안전장치 없는 시설, 낙후한 작업 방법을 개선하면 노동자의 사망이 줄어들고 그걸 위해 노력하는 것도 기업 활동의 하나라는 상식적 진단과 취재를 할 수 있기를 바란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전수경씨는 노동건강연대 활동가입니다.


태그:#중대재해처벌법, #중대재해처벌법빵집, #중대재해처벌법줄도산, #중대재해처벌법패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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