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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파우저 교수. 정민구
 로버트 파우저 교수. 정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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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과 보존은 도시가 가진 영원한 숙제다. 도시 발전을 위해 개발은 필수적이지만 급격한 변화는 저항을 초래하고, 도시 정체성을 위해 보존도 필요하지만 보존의 이유를 공론화하는 것은 까다로운 일이기도 하다.

언어학자이자 도시탐구가인 로버트 파우저는 지난 10일 책 <도시독법>, <도시는 왜 역사를 보존하는가>를 펴냈다. 수십 년 동안 여러 나라에서 거주한 도시 생활자로서 스스로 경험했던 도시에 관한 이야기를 이 두 책에 담았다.

<도시독법>은 도시와 작가가 소통한 기록으로 한 개인이 도시와 어떻게 소통하며 무엇을 바라보며 살아가는가에 대한 고찰의 기록이라면, <도시는 왜 역사를 보존하는가>는 세계 여러 도시들이 도시를 보존하려는 이유와 그 명암을 살핀 책이다. 

다양한 도시에서 느낀 소외들이 있었던 것만큼 작가가 책과 관련해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을 수밖에 없는데 그 이야기를 직접 듣기 위해 지난 17일 인천 배다리 나비날다 책방에서 열린 로버트 파우저의 북콘서트를 방문했다.

"누구나 자기만의 도시사 기록해 냈으면..."
 
신사 1구역 재건축 구역 모습. 한국의 재개발은 전면 철거 방식으로 진행된다. © 정민구
 신사 1구역 재건축 구역 모습. 한국의 재개발은 전면 철거 방식으로 진행된다. © 정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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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파우저는 <도시독법> 서문에서 이렇게 밝힌다.
 
"독자들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하고 싶다. 도시는 결국 사람이 만든다.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는 우리 스스로가 만든다. 그렇다면 도시를 어떻게 바라보고, 어떤 지향점을 만들까를 생각해 보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 그 첫걸음이 바로 자신만의 도시관을 확립하는 것이다. 나의 제안은 이 책을 계기로 삼아 독자들 스스로 '자신만의 도시사'를 기록해보는 것이다."

작가의 무기는 '언어'와 '도시'다. 로버트 파우저는 언어학을 전공했고 여러 도시에서 살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마다 수십 년 동안 새로운 도시를 만나며 '이 도시에는 어떤 역사적 배경이 있을까', '이 도시의 경제적 기반은 무엇일까', '이곳에 사는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공동체는 무엇을 지향하고 있을까' 등을 궁금해했다.

그중에서도 로버트 파우저는 서울에서 살았던 시기에 대해 "가장 치열하게 살았던 시기였기 때문에 서울을 제2의 고향이라 부르고 싶다"고 서술한다.

특히 그는 <서촌홀릭>이라는 책을 쓸 정도로 서촌에 대한 애정이 깊다. 이날도 서촌에 대한 기억에 대해 상세히 이야기했다.
 
서촌의 골목길.
 서촌의 골목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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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파우저는 "2008년 서울대학교 교수로 취임해 서울을 찾았을 때 1980년대 서울이 몹시 그리웠습니다. 한옥에 살고자 북촌을 찾았지만 높은 집값에 발을 돌렸고 그때 발견한 게 서촌이었어요"라고 말했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서촌에는 재개발 바람이 불고 있었고 두려움을 느낀 그는 결국 오래 지나지 않아 서촌을 등지고 북촌으로 이사했다. 로버트 파우저는 "한국의 재개발은 정보가 너무 없어요. 한국이 IT강국이라고 하지만 재개발에 대한 정보는 '재개발이 된대' 정도의 이야기 뿐 알 수 있는 건 아무도 없어요"라고 말했다.

북촌으로 이사를 갔어도 그는 서촌의 한옥 지키기를 계속 이어갔다. 이렇게 만들어진게 '서촌주거공간연구회'였고 그는 연구회장을 맡아 서촌을 지키는 일을 했다. 그 당시 그에게 붙은 별명은 (그가 실제로 좋아하는 표현은 아니지만) '파란 눈의 한옥 지킴이'였다. 좋아하는 표현이 아니었음에도 서촌과 한옥을 지키는 일을 할 수 있다면 상관없었다고 했다.

서촌 이야기를 마치며 로버트 파우저는 "모든 사유 재산은 한 편으로 공적인 측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전히요. 도시의 어떤 경관은 우리가 같이 소유하는 부분이 있다고 저는 생각해요. 재개발 지역 안에 집이 없더라도 그 골목이나 분위기는 저에겐 재산이라고 생각이 됩니다"고 전했다.

"도시는 왜 역사를 보존할까"
 
인천 배다리 나비날다 책방에서 열린 로버트 파우저의 북콘서트. © 정민구
 인천 배다리 나비날다 책방에서 열린 로버트 파우저의 북콘서트. © 정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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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파우저는 책에 대한 이야기에 앞서 시카고의 '인종별 분리 거주 현상'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그는 "1950년대 시카고에는 남부에서 북부로 이사 온 흑인이 많이 살고 있었어요. 이중 시카고 대학은 흑인이 많이 거주하는 구역에 대학이 위치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했고 한 때는 지역을 떠나야겠다는 생각도 했었어요. 그렇지만 이전 비용이 만만치 않다 보니 대신 학교 주변 경관을 꾸며서 집값을 높이게 했고 흑인들이 시카고 대학 주변으로 거주하기 어렵게 도시를 조성하기 시작했죠. 그리고 도시는 그 경관을 유지하고 보존하려고 한 추악한 역사가 있어요"라며 사례를 언급했다.

시카고 대학의 사례는 도시의 경관 보존의 의도가 항상 선(善)이 아니라는 점을 의미한다. 작가는 책의 서문에서 "오랫동안 내가 선(善)으로 믿어온 역사적 경관 보존은 1960년대 미국에서 펼쳐진 다양한 사회 운동의 일환으로 등장한 '모던 보존'의 연장선이었다고 할 수 있다. (⋯) 그런데 내가 선이라고 여겨왔으나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 이미 지난 시대의 방식일 수 있다는 깨달음은 좌절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오래된 것에 대한 마음으로부터의 존중을 품고 있기만 한다면, 역사적 경관을 보존하는 명분과 생각 나아가 그 방법까지도 다양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것은 이 책을 쓰면서 내가 얻은 소득"이라고 밝혔다.

그렇게 작가는 도시들의 역사 경관을 보존하려 했던 모습을 나름의 분류방법을 통해 분석했다. 로마와 교토는 종교 유산을 적극 보존하려 했고, 미국 윌리엄즈버그와 일본의 나라 지방의 도시는 경관 보존에선 애국주의를 볼 수 있었다고 전했다. 미국의 찰스턴·뉴올리언스·샌안토니오에선 시민들의 애향심이, 뉴욕과 베를린에선 사회적 저항 의식이 있는 시민들이 공동체를 일구기 위해 도시를 보존했다.
 
1996년 11월 13일 구 조선총독부 건물 완전 철거. 출처 : 문화체육관광부 e-영상역사관
 1996년 11월 13일 구 조선총독부 건물 완전 철거. 출처 : 문화체육관광부 e-영상역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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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들의 이 같은 경관 보존의 역사에 대해 작가는 "역사를 보존하는 이유, 방식 맥락이 서로 완전히 달라요. 한국의 경우를 보면 김영삼 대통령 때 조선총독부 건물을 철거하게 됐는데 이에 대해 잘했다고 하는 사람도 있고 기록과 역사적 측면에서 잘못됐다는 사람도 있어요. 하지만 철거 당시에는 철거에 대한 여론이 압도적이었는데 당시엔 철거가 정치적 정통성을 확보하기 위한 일환이었던 셈이죠. 이렇듯 도시를 보존할 것인지 여부는 다양한 이유가 있다고 볼 수 있어요"라고 말했다.

한국의 역사적 경관을 보존한 사례들이 젠트리피케이션(둥지 내몰림)으로 결과적으로 카페나 와인바가 생겨나는 상업지역이 된 부작용을 언급하며 "지난날의 영화를 기념하기보다 주어진 어려움과 한계 속에서 열심히 살았던 이들,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노력했던 사람들의 삶을 기념하는 방향으로 가는 건 어떨까"라고 제안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은평시민신문에도 실렸습니다.


태그:#로버트하우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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