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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30일 경주 월성핵발전소 10km 남짓한 곳에서 규모 4.0의 지진이 났습니다. 행안부 지질관련 조사에 따르면 고리와 월성, 울진핵발전소근처에 활성단층 16개가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울산은 아래로 고리, 위로 월성핵발전소 16기에 둘러싸인 지역입니다. 방사선 비상계획구역 30km안에 울산시민 100만 명이 속해있는 핵발전소 도시이고 산업도시입니다. 1978년 고리핵발전소에 고향터전을 내주고 이주했던 주민들이 두번, 세번 이삿짐을 싸야 했던 이주의 역사를 담고 있기도 합니다. 신규핵발전소, 노후핵발전소 수명연장, 고리와 월성1호기 영구정지, 고준위핵폐기물, 이주대책 그리고 지진과 핵발전소, 방사능 피폭 노동 등 핵발전소 문제의 종합세트라 할 수 있습니다. 그곳에서 탈핵을 위해 애쓰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싣습니다. '지진'으로 탈핵운동이 나의 문제가 된 용 국장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세요.[기자말]
탈핵울산시민공동행동(울산공동행동) 용석록 대외협력국장에게 2016년 7월 5일 울산에서 일어난 규모 5.0의 지진과 9월 12일 규모 5.8의 경주 지진은 충격이었다.

 
"2011년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는 바다 건너의 일이었지만, 직접 지진을 맞닥뜨려보니 후쿠시마가 진짜 현실로 다가왔어요. 후쿠시마가 나의 현실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뭐라도 해야 했죠."

용 국장이 탈핵운동을 하는 이유는 다름 아닌 '내 문제'였다. 
 
울산시청부터 24km 아래쪽에는 고리핵발전소 2・3・4호기와 신고리 1・2・3・4호기가 돌아가고 있어요. 울산시청 위쪽 27km에는 월성핵발전소 2・3・4호기와 신월성 1・2호기까지 12기가 울산을 둘러싸고 있어요. 영구 정지된 고리1호기와 월성1호기, 건설 중인 신고리 5·6호기까지 합하면 16기의 핵발전소에 둘러싸인 형국인 거죠. 30km 방사선비상계획구역에는 110만 울산시민 중 100만 명이 살아요. 사고가 난다면 울산 전 지역이 방사선 피폭을 당할 수 있는 구역인 셈이죠.
 
16기의 핵발전소로 둘러싸인 울산은 세계 최대 ‘핵 단지’다.
 16기의 핵발전소로 둘러싸인 울산은 세계 최대 ‘핵 단지’다.
ⓒ 용석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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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울산은 핵발전소 사고가 나면 국가 기간산업이 흔들릴 만큼 대표적인 산업도시다. 석유화학공단과 온산 국가산업단지, 미포국가산업단지가 있고 현대자동차와 현대중공업 등 주요한 기업이 있는 도시다.
 
2016년 지진을 겪은 후 울산시민들의 탈핵 감수성도 높아졌어요. 보수적인 울산 정치인들도 신규핵발전소 짓자는 주장을 대놓고 하지는 못했어요.
 
국토면적 대비 핵발전소 밀집도는 한국이 세계 1위다. 고리, 신고리, 월성, 신월성 등 16기까지 들어설 세계 최대 규모의 핵발전소 단지는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방사선 비상계획구역이다. 부산 고리와 경주 월성핵발전소는 1978년, 1983년부터 운전을 시작했으니 30~40년 된 노후핵발전소들이 즐비하다.

사고 위험은 커져만 가는데 후쿠시마 인구 대비 21배인 부산·울산 시민 380만 명이 대피할 곳이 이 좁은 국토 안에 과연 있기나 할까? 어떤 산업이 폐기물 쓰레기 처리장도 없이, 사후대처 방안도 없이 존재할 수 있을까? 

그런데 그런 현실이 있다. 핵발전은 핵폐기장도 없이 가동 중이다.

'활성 단층'과 2023년 경주지진

2023년 11월 30일 새벽 4시 55분 경주시 동남동쪽 19㎞ 지점에서 규모 4.0의 지진이 일어났다. 갑자기 침대가 덜덜거리더니 건물 전체가 떨리기 시작했다는 신고가 잇따랐다. 2016년 9월 12일 규모 5.8 지진이 일어났던 경북 경주시 내남면 부지리 화곡저수지 부근에서 직선거리로 약 21.8㎞ 떨어진 곳이었다. 월성핵발전소에서 10.1km 남짓 떨어진 곳이다.

진동은 약 4초간 이어졌고 대부분 경주시민은 새벽잠을 설치며 여진에 신경을 곤두세워야 했다. 인근의 울산과 포항 시민들도 진동을 느낀 시민들이 많았다고 한다.

12월 1일 용 국장을 홍천 본가에서 만났다.
 
2016년 9월 경주 지진 당시 식탁에 있던 컵이 밀리고 책장이 흔들리는 등 지진을 몸으로 체험했어요. 저도 그렇고 사람들이 다 건물 밖으로 뛰쳐나갔어요. 지진 진앙인 경주는 울산 바로 위쪽이에요. 여진이 계속돼서 몇 시간 동안 집에 못 들어갔어요. 지진의 공포도 무서웠지만, 핵발전소가 더 걱정이었어요.
 
2016년 7월 5일 20시 33분경 울산광역시 동구 동쪽 해역 52km 지점에서 일어난 해역지진은 규모 5.0급의 지진이었다. 두 달 후인 2016년 9월 12일 지진은 오후 7시 44분, 8시 32분쯤 경상북도 경주시 남서쪽 8~9km에서 두 차례 발생했다. 각각 규모 5.1과 5.8 지진으로 1978년 대한민국의 지진 관측이 시작된 후 한국에서 일어난 지진 가운데 최대 규모의 지진이었다. 수개월 동안 여진도 600여 회가 넘도록 계속됐었다.

2017년 11월 15일 규모 5.4 지진이 포항에서 일어났다. 진원지가 얕아 피해 규모는 경주 지진을 뛰어넘었고 다음날로 예정된 수능이 연기되었다.
 
지진의 기록을 보면 조선 인조 때 경주에서 규모 6.8~7.0 지진이 있었어요. 올해 초 행정안전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동남권에 활성단층이 16개, 핵발전소 반경 32km 이내에 확인된 활성단층도 5개나 돼요.
 
국가는 국민의 안전을 책임져야 한다. 울산시민들은 핵으로부터 안전한 삶을 원한다.
 국가는 국민의 안전을 책임져야 한다. 울산시민들은 핵으로부터 안전한 삶을 원한다.
ⓒ 용석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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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안전부가 지난 1월 '극한 재난 대응 기반기술 개발'이라는 사업명으로 2017년부터 5년 동안 조사한 동남권 단층 조사 결과 고리, 월성 인근 지역에 16개의 활성단층 분절이 발견되었다. 이중 규모 6.5 이상의 강진이 일어날 수 있는 설계 고려 단층도 5곳이 확인되었고 그 이상 있을 가능성도 제기됐다. 분절이란 지진이 날 때 한 번에 움직이는 단층 구간을 말한다. 살아있는 활성단층은 가까운 미래에 지진 발생을 예고하는 지표를 의미한다.
 
한겨레신문과 MBC 보도에 따르면, 16개의 활성단층 분절 가운데 5개가 핵발전소 반경 32㎞ 안에 있으면서 길이가 1.6㎞ 넘는 설계고려단층이에요. 읍천단층은 월성핵발전소와 불과 1.8km 거리에 있어요. 설계고려단층이 월성, 고리 핵발전소 설계 시 고려되지 않았어요. 건설 중인 신고리 5·6호기도 마찬가지예요. 활성단층 위에 핵발전소가 있으니 더욱 두렵죠.
 
내진성능 미달 부품 사용

공교롭게 지진이 발생한 11월 30일 국회에서 월성핵발전소에 '불량' 앵커볼트(고정 나사)가 대량 사용된 사실이 폭로됐다. 더불어민주당의 김성환·민형배·양이원영 국회의원은 공동기자회견을 열고 월성핵발전소 격납건물에 매입된 수천 개의 CIP(Cast-in-Placed) 앵커볼트가 내진성능을 만족하지 못한다고 밝혔다. 공익 신고자를 통해 한국수력원자력(이하 한수원)과 원자력안전위원회(이하 원안위) 등 사업자와 규제기관의 관련 자료를 발표했다.

CIP 앵커볼트는 콘크리트를 타설할 때 미리 설치하여 콘크리트에 매입하는 앵커볼트다. 격납건물 안에 설치하는 핵반응로, 증기발생기, 냉각 펌프, 냉각수 배관, 각종 측정기기 등 안전 등급 설비들을 CIP 앵커볼트에 단단히 고정해야 한다. 안전 등급 설비들을 단단히 고정하는 격납건물의 CIP 앵커볼트는 최고 수준의 지진 충격에 견디는 내진성능을 갖춰야 한다.

김성환 의원실이 공개한 자료에 의하면 월성핵발전소 3호기 격납건물에 CIP 앵커볼트를 사용한 353개소 고정 부위 중 21개소만 내진설계가 적용됐다. 보통 고정 부위 1개소에 CIP 앵커볼트가 2~8개 사용되니 월성핵발전소 1~4호기 격납건물을 통틀어 사용된 비내진 CIP 앵커볼트는 총 4천 개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활성단층으로 지진 위험이 가장 큰 월성핵발전소의 지진 대비가 가장 부실하다는 증거다.

핵발전소 안전 관리 종사자인 제보자는 수년간 앵커볼트의 문제를 제기했지만, 사업자인 한수원과 규제기관 원안위 등은 "원자로를 설계한 캐나다 규제당국에 문의해 문제가 없다는 회신을 받았다"라는 것을 근거로 시정조치 하지 않았다. 기준에 미달된 부분을 발견하고도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은 것은 원자력안전법 위반이다.
격납건물은 원자로가 폭발하더라도 방사성 물질이 외부로 누출되지 않도록 차폐하는 '최후의 방호벽'이다.

문제는 핵발전소 안전이 시스템에 의해 검증되는 것이 아니라 내부 제보자에 의해 우연히, 사후에 마지못해 알려지는 허술한 시스템이다. 수백만 명의 목숨이, 대한민국의 존망이 그리고 지구촌의 안위가 달린 핵발전소 운영이 이리 허술해도 되는 걸까?

길천마을, 골매마을, 신리마을 사람들
 
충격이었어요. 핵발전소와 마을이 이렇게 가까워도 되는지? 핵발전소와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마을이 있더라고요.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 않았어요.

2011년 후쿠시마 사고가 나고 그해 6월 탈핵울산시민공동행동이 출범한다. 용 국장은 울산에 살면서도 후쿠시마 사고가 나기 전에는 울산을 끼고 이렇게 많은 핵시설이 있다는 걸 몰랐다. 2013년 지역 언론사에서 일하면서 핵발전소 지역을 자주 찾아갔다.
 
핵발전소와 함께 살아가는 마을을 찾고 주민들을 만나러 다녔어요. 그런데 기자라고 하면 표정도 달라지고 입도 닫더라고요. 그동안 기자나 외부인들에게 말해봤자 자기들 생각대로 쓰고, 보도한 경험이 많았는지 기자는 다 사기꾼 취급이고, 외부인에 대한 경계도 심했어요.
 
그래도 꾸준히 찾아가 인사도 하면서 얼굴이 익자 마을 사람들은 말을 걸며 커피도 내주기도 했다. 부산 기장군 길천마을과 울산 울주군 골매마을을 자주 찾았다.
 
부산시 기장군 길천마을. 고리핵발전소 바로 앞에 있는 이 마을은 핵발전소 건설로 인해 잘 사는 마을이 아니라 임대형 원룸 건물들은 공실이 많고, 한쪽에는 녹슬고 기우는 집들이 있다.
 부산시 기장군 길천마을. 고리핵발전소 바로 앞에 있는 이 마을은 핵발전소 건설로 인해 잘 사는 마을이 아니라 임대형 원룸 건물들은 공실이 많고, 한쪽에는 녹슬고 기우는 집들이 있다.
ⓒ 용석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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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천마을은 고리핵발전소 바로 앞에 있는 마을이다. 이 마을은 고리 1~4호기가 차례로 들어서면서 주민들의 주 통행로였던 7번 국도가 단절되고 31번 국도가 우회도로로 개설되면서 마을이 외곽지역으로 밀려나는 아픔을 겪었다.

마을주민들은 이주대책위원회를 구성해 한수원에 이주를 요구하고 있다. 핵발전소가 들어서면 마을이 발전하고 잘 살 거라고 했지만 길천마을 한편에 즐비한 임대형 원룸은 공실이 많고, 다른 한편은 허술하고 허물어져 가는 집들로 마치 슬럼가를 연상케 한다. 핵발전소에서 나오는 지원금은 마을사업 등에 사용했지만 성공한 사업이 많지 않으며 개인의 삶을 바꿔주지 못했다. 오히려 집과 땅이 팔리지 않는다. 건설 인력이 빠져나간 마을은 황량한 기운이 완연하다.

골매마을은 더 기막힌 사연을 담고 있다. 울산 울주군 서생면에 있는 골매마을은 지금은 사라졌다. 용 국장이 2013년에 그 마을을 처음 찾아갔을 때만 해도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이 마을은 신리 7반으로 불리기도 했는데 고리핵발전소가 들어서면서 고리마을 26가구가 골매마을로 이주했다. 이들은 천막을 치고 공동생활을 하면서 길을 내고 집을 지어 살았다. 바닷가 축대를 쌓는 데만 3년 가까운 시간이 걸렸다. 그렇게 터를 잡고 살던 골매마을 사람들은 신고리 3·4호기가 건설되면서 또다시 강제로 이주당했다.

용 국장이 10년 전에 만났던 마을주민 중 벌써 여러 사람이 생을 마감했다. 용 국장이 지역신문에 골매마을 소식을 전하자 그 글을 보고 현장을 기록하는 한 사진가가 골매마을을 자주 찾아가 사진을 찍고 <골매마을>이라는 사진집을 내기도 했다.
 
골매마을 사람들은 핵발전소가 훤히 보이는 가까운 바닷가로 이주를 희망했어요. 그곳에서는 고향인 고리핵발전소가 훤히 보여요. 저 같으면 하루라도 핵발전소 돔을 보고 못 살 것 같은데 끝까지 고향을 버리지 못하는 마음이 아프게 다가왔어요. 바다에 의지해 살아온 터라 바닷가에 삶의 터전을 마련해야 하기도 했고, 고향을 바라보며 살고 싶었던 거지요.
신고리 5·6호기가 건설 중인 현장 앞에는 울주군 신리마을이 있다. 이 마을은 주민들이 신고리 5·6호기 건설을 자율 유치했다. 핵발전소가 좋아서가 아니라 신고리 5·6호기가 들어서면 이주를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들은 행정구역상 울산에 최초로 들어서는 신고리 3·4호기 건설 당시 반대운동을 강력하게 했었다. 울산시청 광장과 태화강 둔치에 수천 명이 모여 신고리 3·4호기 건설 반대 집회도 했으나 결국은 막아내지 못했다.

주민들은 정부가 추진하는 사업을 막기가 쉽지 않음을 몸소 겪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신리마을 전체를 이주시켜 준다는 조건으로 신고리 5·6호기 건설을 유치했다. 핵발전소가 위험하고 불안하다면서도 달리 이주할 방법이 없으니 핵발전소를 유치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핵발전소 인접 지역 주민들은 그렇게 고향 땅에서, 삶의 터전에서 밀려나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브런치 매거진 <탈핵 잇_다>에 동시에 게재됩니다.


태그:#탈핵울산공동행동, #지진과핵발전소, #용석록, #방사선비상계획구역, #최대핵발전소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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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리고 연결된 삶을 그리며 오늘도 바쁘고 단절된 삶을 살아갑니다. 영광에 22년 살면서 '핵 없는 세상'을 염원하게 되었습니다. 하루라도 빠른 태양과 바람의 나라를 꿈꿉니다. 생태와 자연, 젠더와 영성에 진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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