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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 반란을 저지하려는 이태신 수경사령관 역할을 맡은 배우 정우성(가운데).
 군사 반란을 저지하려는 이태신 수경사령관 역할을 맡은 배우 정우성(가운데).
ⓒ 영화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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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 장교로 군 생활을 했다. 육군사관학교에 비해 상대적으로 '짧은' 훈련 기간을 거쳐 임관한 학사장교 출신이다. 이미 군을 떠난 지도 십수 년이 지났다. 하지만 여전히 마음속 깊이 남은 문장이 하나 있다. 바로 1910년 3월 26일, 안중근 의사가 뤼순감옥에서 순국 직전 유묵으로 남긴 '위국헌신 군인본분(爲國獻身 軍人本分)'이라는 말이다.

'나라를 위해 헌신하는 것이 군인의 본분'이라는 뜻으로, 안 의사 스스로도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역에서 일본 제국주의의 심장으로 불렸던 이토 히로부미를 격살한 것을 군인으로서 나라를 위해 본분을 다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이라고 평가하며 남긴 글이다. 대한민국 국군 역시 이런 안 의사의 유지를 이어받아 위국헌신 군인본분을 전 장병에게 강조하고 있다.

2006년 여름, 경북 영천에 있던 육군3사관학교에서 내가 만난 훈육장교도 다르지 않았다. 대위 계급의 깡말랐던 그는 나와 동기들에게 끊임없이 '참군인'을 외치며 "위국헌신 군인본분을 마음속에 새기라"고 했다. 그의 전투복에는 공수 훈련을 마친 특전사 대원이 부착하는 공수 휘장이 자리해 있었다.

배신했던 군인들, 최고 요직 등극

당시 간부후보생에 불과했던 내게 '위국헌신 군인본분'을 외쳤던, 특전사 출신의 훈육 장교가 지금도 군 생활을 잇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지난 11월 22일(전두환씨 사망 2주기 전날) 개봉한 영화 <서울의봄> 때문에 불현듯 '참군인이 돼라' 말하던 그의 얼굴이 떠올랐다. 영화에서 여러 명의 특전사 출신 군인들이 나왔기 때문이다.

배우 정해인씨가 연기한 김오랑 중령을 비롯해 특전사의 아버지라 불렸던 정병주 장군, 12.12 당시 명령을 받고 유일하게 출동했다가 회군했던 9공수의 윤흥기 준장 등이 있다. 물론 하나회에 속해 쿠데타를 일으킨 1공수 여단장 박희도, 3공수 여단장 최세창, 5공수 여단장 장기오도 있다. 김오랑 중령에게 발포했던 육사 선배 박종규 중령도 특전사 출신이다. 이들은 모두 자신의 상관을 배신하고, 개인과 조직의 영달을 위해 참군인의 길을 저버린 인물들이다.
  
전두환 2주기 추모식이 23일 오후 서울 광화문네거리 동화면세점앞에서 육사총구국동지회, 전국구국동지연합회 주최로 열렸다. 12.12군사반란 핵심이었던 박희도 전 육군참모총장이 참석자들에게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전두환 2주기 추모식이 23일 오후 서울 광화문네거리 동화면세점앞에서 육사총구국동지회, 전국구국동지연합회 주최로 열렸다. 12.12군사반란 핵심이었던 박희도 전 육군참모총장이 참석자들에게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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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12.12 쿠데타 당시 1공수 여단장으로 국방부와 육군본부를 무력으로 점거했던 박희도씨를 잊어선 안 된다.

그는 쿠데타 후 20기계화보병사단장을 거쳐 육군특전사령관, 제3야전군사령관, 종국에는 육군참모총장까지 오른다. 그러나 하나회 해체를 외치며 등장한 김영삼 대통령이 5.18 특별법 제정을 지시한 직후인 1995년 11월 'LA에 있는 아들을 보러 간다'면서 출국해 미국으로 도피했다. 3년 동안 미국에 체류하면서 기소중지 상태였던 그는 뒤늦게 귀국해 재판을 받았다. 1999년 7월 재판부는 그에게 반란지휘죄를 적용해 징역 5년을 선고했지만, 공범들이 이미 사면·복권된 후여서 법정구속 되진 않았다.

이후 박씨는 극우적인 이념 활동에 전념했다. 2006년 10월 반체제 대한민국 세력에 대항한다는 명목으로 '대한민국지키기불교도총연합'을 결성했다. 박씨는 상임공동회장에 올랐고 이 단체는 제주 4.3사건과 12.12쿠데타, 5.18광주민주화운동 등을 재평가한다며 집회를 하고 강연을 잇고 있다. 1934년생, 구십 나이임에도 지난 23일 서울 광화문네거리 동화면세점 앞에서 열린 '전두환 2주기 추모식'에 참석해 목소리를 높였다.

3공수 여단장 신분으로 12.12에 참여했던 최세창씨 역시 다르지 않다. 최씨는 직속상관인 정병주 사령관을 체포하는 하극상을 벌였다. 이후 그는 수도권의 20사단장, 수도방위사령관, 1군단장, 육군참모차장 등 요직을 거친 뒤 육군 대장 최고 보직 중 하나인 제3야전군사령관과 합동참모의장을 거쳐 노태우 정권 당시 국방부 장관까지 오른다. 1997년 4월 대법원에서 열린 12.12 군사반란 및 5.18 민주화운동 관련 재판에서 반란 가담, 상관 살해 미수 등의 혐의로 징역 5년형을 선고받았으나 1998년 8월 15일 사면됐다.

'특전사의 아버지' 정병주... '백비'만 남았다
  
12.12 쿠데타에 맞섰던 참군인 정병주 장군 묘
 12.12 쿠데타에 맞섰던 참군인 정병주 장군 묘
ⓒ 김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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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전사 박희도, 최세창, 장기오의 직속상관이 바로 정병주 사령관이다. 그는 특전사를 대한민국 최고 용맹 집단으로 키워냈다는 이유로 '특전사의 아버지'로 불렸다. 이런 그가 1979년 12월 12일 당시 쿠데타가 발발하자 장태완 육군 수도경비사령관과 반란을 마지막까지 저항해 싸우고자 한 것은 당연했던 일. 그러나 부하들의 배신으로 오히려 총격을 받고 부상을 입은 채 강제예편 당하고 만다. 당시 그를 호위하던 비서실장 김오랑 소령도 쿠데타군의 흉탄에 맞아 현장에서 숨졌다.

전두환이 집권한 내내 그는 은둔 생활을 이어갔다. 그러나 1987년 11월 대통령 후보였던 노태우가 관훈토론회에서 12.12사태에 대해 미화하는 것을 보고 침묵을 깨고 나선다. 더불어 12.12 당시 자신을 호위하다 사망한 김오랑 소령에 대한 명예회복도 같이 이루고자 했다. 하지만 이듬해인 1988년 10월 16일 밤 10시에 갑자기 행방불명되었다. 실종 139일 만인 이듬해 3월 4일에 경기도 한 야산에서 목매달아 죽은 변사체로 발견된다. 그의 죽음은 자살로 처리되었다.

이 때문일까? 국립서울현충원 장군 1묘역에 잠든 정병주 장군의 묘에는 '육군소장 정병주' 이외에 어떤 말도 적혀있지 않은 백비가 세워져 있다. 1995년 11월 28일 보도된 <조선일보>에 따르면 정 사령관의 유족들은 "명령을 생명으로 여기는 군인들이 상관에게 총질을 하고도 버젓이 활보하는 세상에 고인이 무슨 할 말이 있겠느냐"며 아무런 말도 비석에 새기지 않았다고 한다.

그가 잠든 장군 1묘역에는 전두환과 노태우의 육사 11기 동기이자 하나회 멤버로 12.12쿠데타에 적극 가담했던 백운택 1군단장이 잠들어 있다. 인근인 충혼당에는 당시 전두환씨의 최측근인 최예섭 보안사령부 기획조정실장의 유해가 모셔져 있다.

김오랑 정선엽 찾아... 2023년 마지막 현충원 투어를 준비하며
  
12.12 쿠데타에 맞섰다 사망한 참군인 김오랑 중령 묘.
 12.12 쿠데타에 맞섰다 사망한 참군인 김오랑 중령 묘.
ⓒ 김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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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서울의봄>의 인기로 12.12쿠데타에 맞서 싸웠던 인물들이 재조명되고 있다. 앞서 살핀 정병주 장군을 비롯해 대전현충원에 안장된 장태완 수도경비사령관, 김진기 헌병감 등이다. 하지만 이들 이외에 회자되는 인물들이 있으니 바로 김오랑 중령과 정선엽 병장이다. 두 사람 모두 쿠데타 과정에서 목숨을 잃은 군인으로 1979년 12월 13일 사망일이 같다.

조선대 2학년을 다니다 입대한 정선엽 병장의 경우 국방부 지하 벙커 경계근무를 서다 반란군에게 살해당했다. 제대 3개월을 앞둔 터였다. 반란군과 싸웠던 그의 묘비에는 오랜 시간 '순직'으로 기재돼 있었지만 유족과 후인들의 노력으로 지난해 대한민국 국방부로부터 '전사확인서'를 전달받았다. 현재 정 상병의 묘비 뒤쪽에는 '순직' 대신 '전사'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반면 정병주 장군을 호위하다 유명을 달리한 김오랑 중령의 경우 아직 묘비 뒤편에 새겨진 순직 두 글자가 전사로 바뀌진 않은 상태다. 대신 서울현충원 29번 묘역에 안장된 김 중령의 묘에는 특전사 707특수무단이 붙여놓은 검은 리본이 부착돼 있다. 

2일 오전 국립서울현충원 잠든 정병주 장군과 김오랑 중령, 정선엽 병장을 만나고 왔다. '위국헌신 군인본분'을 새기며 참군인으로 살다 떠난 이들의 마지막 모습이 궁금했기 때문인데, 빛바랜 그들 묘 앞에 서니 이들의 삶을 더 적극적으로 알려야겠다는 다짐이 일었다.

12.12를 사흘 앞둔 9일 토요일 오전 10시 30분 서울현충원에서 서울의 봄·12.12 특별 현충원투어를 진행하고자 하는 이유다. 이를 통해 쿠데타에 몸담았던 이들과 맞서 싸운 참군인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그들 무덤 앞에서 하나하나 설명하고자 한다. 많은 분들이 함께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1979년 12월 14일 12.12 쿠데타 주역들이 보안사 앞에서 찍은 기념사진
 1979년 12월 14일 12.12 쿠데타 주역들이 보안사 앞에서 찍은 기념사진
ⓒ 오마이뉴스 재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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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 장교 출신 김종훈 기자와 함께 걷는 서울의 봄·12.12 특별 현충원 투어'

일시 : 2023년 12월 9일(토) 10시 30분 ~ 14시 00분
만나는 장소 : 서울현충원 '만남의 집' 앞
투어순서 : 김오랑(정해인 분) 중령 묘 - 5.18 계엄군 사망자 묘역 - 베트남 참전용사 묘역(장태완(정우성 분) 장군 설명) - 정선엽 병장 묘 - 박윤관 상병 묘 - 5.18 진압 거부 안병하 치안감 묘 - 하나회 척결 김영삼 대통령 묘 – 12.12 가담자 묘 - 정병주 특전사령관 묘 – 김대중 대통령 묘
해설 : 김종훈 기자(<임정로드>, <약산로드>, <현충원한바퀴> 저자
신청 : https://naver.me/F2iRqQD9
문의 : rian0605@gmail.com
* 공익 목적의 무료 행사입니다. 서울현충원까지 알아서 오셔야 합니다.

태그:#김오랑, #정병주, #정선엽, #1212, #서울의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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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팀 취재기자. 오늘도 애국하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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