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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용산역 광장에 자리한 강제징용 노동자상 모습
 서울 용산역 광장에 자리한 강제징용 노동자상 모습
ⓒ 김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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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이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노동자상이 일본인을 모델로 만들어졌다'는 발언에 대해 명예훼손죄가 성립할 수 없다는 판단을 내놨다.

30일 대법원 3부(주심 대법관 안철상)는 일제 강제동원 노동자상을 제작한 김운성·김서경 부부 작가가 <반일종족주의> 저자인 이우연 낙성대경제연구소 박사와 전 대전광역시의회 의원인 김소연 변호사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이우연·김소연의) 발언은 사실의 적시가 아니라 의견의 표명이나 구체적인 정황 제시가 있는 의혹의 제기로 명예훼손의 불법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볼 여지가 많고, 이를 허위라고 볼 원고들의 증명 또한 부족하다"며 피고 측 손을 들어줬다. 

구체적으로 1심에서 지고 2심에서 이겼던 이우연 박사의 판결에 대해 대법원은 원심 확정을, 1심에서 이기고 2심에서 졌던 김 변호사의 판결에 대해서는 파기환송 결정을 내렸다. 

'평화의 소녀상' 작가로도 알려진 김운성·김서경 조각가 부부는 강제동원 노동자상 건립추진위원회의 의뢰를 받고 2016년 8월부터 2019년 8월까지 일본 교토 단바망간기념관을 비롯해 서울 용산역, 제주, 부산, 대전 등에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노동자상을 제작해 설치했다.

과정에서 이우연 박사는 인터넷 언론 '제3의길'과 자신의 SNS를 활용해 "일제강점기 당시 조선인은 일본인과 동일한 대우를 받았다. 강제징용노동자상은 역사왜곡"이라면서 "강제징용노동자상의 모델은 1926년 일본인"이라는 주장을 펼쳤다. 

김 변호사도 대전시의원 시절인 2019년 8월 보도자료 등을 통해 "대전시청 앞 등에 설치된 헐벗고 깡마른 징용 노동자 모델은 우리 조상이 아니고 일본 홋카이도 토목공사 현장에서 학대당한 일본인"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김 작가 부부는 "허위사실을 퍼뜨려 명예를 훼손했다"며 2019년 10월 소송을 제기했다. 일본인을 모델로 한 적이 없고 각종 자료와 작가의 상상력을 바탕으로 제작한 것이라는 취지다.

실제 김운성 작가는 2021년 3월에 진행한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평화의 소녀상을 제작할 때도 그랬지만 강제징용 노동자상도 특정한 인물을 모델로 삼지 않았다"며 "강제징용으로 끌려간 노동자가 100만 명 이상이기 때문에 처음부터 특정한 인물을 염두에 두지 않았다. 그런데도 이우연씨는 '노동자상의 모델이 1926년에 사진에 나온 일본인'이라고 왜곡된 허위사실을 유포했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하급심은 각기 다른 판결을 내렸고, 이날 대법원은 이 박사와 김 변호사의 주장은 명예훼손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결정을 내렸다.

대법원 "작품 비평, 인신공격 아니면 명예훼손 평가 신중해야"
김운성 작가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혐오를 대법원이 인정해 준 꼴"

 
강제징용 노동자상 및 평화의 소녀상을 부인 김서경 작가와 함께 제작한 김운성 작가
 강제징용 노동자상 및 평화의 소녀상을 부인 김서경 작가와 함께 제작한 김운성 작가
ⓒ 김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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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대법원은 이번 판결의 의의에 대해 "예술작품에 대한 개인적 취향의 표현이나 특정 대상과 비교하는 등의 비평은 인신공격에 해당하지 않는다면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명예훼손 행위로 평가하는 것에 신중할 필요가 있다"라고 밝혔다. '인신공격이 아니라면 예술작품에 대한 개인적 표현은 명예훼손이 아니'라는 취지다.

대법원은 설명자료를 통해 "순수한 의견의 표명 자체만으로는 명예훼손이 성립하지 않는다"며 "어떠한 표현이 사실의 적시인지 의견의 진술인지는 어휘의 통상적인 의미나 전후 문맥 등 전체적인 흐름, 사회평균인의 지식이나 경험 등을 고려하여 그 표현의 진위를 결정하는 것이 가능한지 여부에 따라 판단된다"라고 덧붙였다.

"이 사건 노동자상이 실제로 누구를 모델로 하였는지, 그로부터 얼마나 영향을 받았는지 여부는 제작자인 원고들의 의사에 기반한 창작활동을 거쳐 그 결과물만 보는 제3자로서는 이를 알 수가 없다. 그 진위를 증거에 의하여 증명할 수 있는 영역이라고 할 수 없다."

대법원은 "이 사건 노동자상과 유사하다고 지목된 일본인들의 사진은 실제로 상당 기간 국내 교과서나 국립역사관 내 설치물에도 조선인 강제징용 노동자로서 소개된 바 있었다"며 "이 사건 발언들이 설혹 진실한 사실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피고들로서는 위 발언 당시 그 내용이 진실이라고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었다고 볼 여지가 많다"라고 적시했다.

대법원 판결에 대해 김운성 작가는 <오마이뉴스>에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표현과 혐오를 대법원이 인정해 준 꼴이 됐다"며 "이제 마음 놓고 혐오를 해도 (괜찮다는) 혐오할 수 있는 자유를 대법원이 열어준 준 거다. 돈이 되니 이러한 혐오를 좇는 자들이 더 많아질 것"이라고 씁쓸해했다. 
 

태그:#대법원, #강제동원, #이우연, #김운성, #표현의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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