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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놀고 싶다, 이태원>은 이태원을 구성하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각자에게 이태원은 어떤 의미인지, 참사 이후 무엇을 느끼고 어떻게 기억해 왔는지, 앞으로 우리는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지. 이 기록이 또 다른 이야기를 여는 마중물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10⋅29 이태원 참사 당시의 경험이 서술되어 있습니다. 이 점 유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태원 일대 답사 당시 김혜영씨가 찍은 헤밀턴 골목의 추모 포스트잇
 이태원 일대 답사 당시 김혜영씨가 찍은 헤밀턴 골목의 추모 포스트잇
ⓒ 용산F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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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증의 관계라고 생각해요

이태원이 고향은 아니에요. 미취학 아동 때부터 부모님을 따라서 자주 왔었어요. 일요일은 이태원 가는 날이라고 생각할 정도로요. 그때부터 접점이 생겼던 것 같아요. 고등학생 때까지는 어린 시절 좋은 기억 때문에 친구들을 많이 데려왔고, 그 이후에는 용산구에 있는 대학을 다녀서 자주 왔어요. 그러다 2017년 지구촌 축제 첫날 이태원으로 이사를 온 건데, 가족들이 공유한 추억이 많아서 그랬던 것 같아요. 부모님은 연애할 때부터 이태원에 자주 다녔대요. 그래서인지 두 분 다 다양한 문화를 수용하는 데 거리낌이 없으신 편이에요.

처음 기록단을 모집하는 포스터 문구를 보았을 때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다시 놀고 싶다, 이태원'이잖아요. 이태원을 정말 좋아하는 주민으로서 강력한 바람이에요. 정말 그러고 싶어요.

사실 저와 이태원은 애증의 관계라고 생각해요. 제가 살고 있는 곳이 대로변이에요. 이태원역에서 한강진역으로 쭈욱 가는 방향 중간이거든요? 집 바로 옆에 클럽과 술집이 있어요. 만약 이태원에 대한 애정이 없었다면, 가끔은 '아, 이런 데서 살아야 하나' 싶었을 거예요. 코로나 전에는 월요일 아침마다 똥오줌이 너무 많은 거 있죠. 저는 길에서 똥을 그렇게 많이 싸는 줄 처음 알았어요. 담배꽁초는 당연하고, 깨진 술병이나 널브러진 사람들을 일상적으로 보아야 했고요. 집 앞 풍경이 그렇다는 게 부담스럽더라고요. 집에서 편하게 있고 싶어도, 휴식 모드로 전환되기까지 더디게 느껴졌어요.

핼러윈 때는 항상 반차나 연차를 냈어요. 클럽 줄이 길어지면 집에 들어가기 어려워서요. 제가 그 앞에 서 있으면 가드 분이 어디 가냐고 묻는데, 저는 그게 되게 귀찮고 기분 나쁘죠. "저 여기 삽니다" 하고 사람들 사이를 뚫고 지나갈 때마다 받는 눈초리도 감당하기 싫었고요.

참, 이태원에는 가까운 약국이나 병원이 은근히 없어요. 보광동 아니면 숙대입구역까지 나가야 해요. 그나마 코로나 시기를 지나면서 가게들이 폐업한 자리에 메디컬 빌딩이 생겼어요. 아, 공원이 없는 것도 큰 단점이네요. 그래서 불편하기도 하고 질리기도 하는데, 이태원을 사랑하니까 여기 남아있는 거겠죠? 역시 애증의 관계에요.

한편, 저에게 이태원은 숨통 틀 수 있는 공간인 것 같아요. 보통 이태원 하면 외국인이나 퀴어를 제일 많이 떠올리지 않을까 해요. 그다음에는 클럽이나 재밌는 가게, 볼거리 정도. 사람들의 그런 인식에 저도 동의해요. 그러나 제가 이태원을 계속 찾은 이유는 해방감을 느낄 수 있어서였어요. 저라는 존재가 잘 수용된다는 기분이 들었거든요. 저를 보는 시선도 그렇고, 워낙 다양성이 공존하는 동네잖아요? 제가 자연스럽게 포용되어서 자주 온 것 같아요.

저는 심심한 걸 굉장히 못 견디는 타입이에요. 심심하면 곧잘 무기력해지는데, 이태원에서는 심심할 틈이 없어요. 창밖으로만 보아도 되게 재미있거든요. 저 멀리 이슬람 사원이 보이고 '오늘은 이 거리에 사람이 많은데 저 골목에는 없네, 웬일이지?' 하면서요. 또 돌아다니기만 해도 좋아요. 주민 입장에서는 돈 없이도 즐길 수 있는 거죠. 이태원만의 묘한 분위기가 있어요. 딱 잘라서 말할 수 없는데, 신비스럽달까? 이태원에서만 느낄 수 있는 낭만이 있어요. 여기저기 걷다 보면, 현실을 벗어난 느낌이 들어요. 사람들이 왜 이태원에 가고 싶어 하는지 알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아빠가 65년생인데 옛날에는 외국인밖에 없었대요. 술집에 가면 외국인들이 주로 마시는 술을 팔고, 한국 기성복 사이즈보다 큰 옷을 맞춰 주는 가게가 많았다고 해요. 이렇게 외국인, 특히 미군이 와서 놀았던 게 이태원 문화를 형성하는 데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지금은 엄청난 다문화예요. 거리에서 모든 인종을 다 볼 수 있는 것 같아요. 케밥집도 많고 할랄 음식점도 있고 아프리카 음식점, 모로코 음식점도 있다 보니 다양한 문화가 많이 섞이게 된 것 같아요.

머리로는 생각했는데, 몸이 바로 집으로 가는 거예요

작년 핼러윈에는 친구랑 이태원이 아닌 다른 곳에 갔었어요. 밤에 친구가 집에 데려다준다고 해서 이태원으로 돌아왔는데, 차가 너무 막히더라고요. 처음에는 코로나 이후라 사람들이 더 많은가 보다 했어요. 이태원역 3번 출구 조금 뒤에 멈춰 있었어요. 그러다 혹시 무슨 일이 있나 검색하려니까 인터넷이 잡히지 않는 거예요. 인파가 몰려서 핸드폰이 안 터지나 보다 했죠.

갑자기 구급차가 지나가서 친구가 놀랐어요. 저는 지금부터 몇 대 더 지나갈 거니까 신경쓰지 말라고 했어요. 이태원에서는 금토일이면 항상 사이렌이 울리니까요. 평소처럼 누가 어디서 싸우나 보다, 쓰러졌나 보다 생각했죠. 심각성을 느낀 건 '서초', '도봉', '노원'이라고 쓰인 소방차를 봤을 때였어요. 관할 구역도 아닌데 왜 여기까지 왔을까 의아했는데, 끝없이 줄을 지어서 오더라고요. 그때부터 무서웠어요. 핸드폰은 여전히 안 터졌고 다른 운전자들도 창문 열고 무슨 일인지 서로 물었어요.

그런데 응급 구조대원이 들것 같은 걸 메고 막 뛰는 거예요. 한 30분 지났을까요? 살아있는 것 같지 않은 사람이 들것에 실려서 바로 옆으로 지나갔어요. 지금도 다 생각나요. 하늘색 치마 같은 걸 입으셨는데, 또래거나 제 동생이랑 비슷한 나이처럼 보였어요. 차량 통제가 계속되어서 그렇게 2시간 정도 들것에 실려 가는 사람들을 강제로 보게 된 거예요. 나갈 수도 없고 차도 움직일 수가 없고 정말 힘들었어요. 

그 무렵, 친구들이 참사 관련 영상을 많이 보내서 그런지 그게 알고리즘에 걸렸나 봐요. 다른 데 집중하려고 유튜브에 접속했는데, 현장 근처에서 사람들이 '섹스 온 더 비치' 노래에 맞춰 뛰는 영상이 나왔어요. 그런데 저도 그 시간에 비슷한 광경을 보았던 거죠. 왼쪽에서는 사람들이 실려 가고 있는데, 오른쪽에서는 춤을 추고 있었어요. 그 대비되는 상황이 너무 괴로웠어요. 경찰한테 집이 바로 뒤니까 제발 가게 해 달라고 사정사정해서 겨우 돌아갈 수 있었어요.  

부상자들이 구급차로 옮겨지고 있었고, 도로에는 사람들이 널브러져 있었어요. 그때 어디선가 심폐소생술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냐는 소리가 들려왔어요. 원래 성격이라면 못해도 갔을 거예요. "어떻게 하는지 알려주세요. 그럼 제가 해보겠습니다" 했을 거예요. 고등학생 때 심폐소생술 대회를 나간 적도 있거든요. 그런데 '나 심폐소생술 흉내 낼 수 있는데'라고 머리로는 생각했는데, 몸이 바로 집으로 가는 거예요. 제일 후회되는 기억이에요.
 
2022년 10월 29일 밤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좁은 골목길 바닥에 사람들의 소지품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다.
 2022년 10월 29일 밤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좁은 골목길 바닥에 사람들의 소지품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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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도착해서는 잠을 잘 수가 없었어요. 꼬박 밤을 새우고 있는데, 새벽쯤에 밖에서 웃는 소리가 막 들리는 거예요. 지금 생각해 보면 몇 미터 차이로 현장 파악이 안 되는 상황이라 당연히 몰랐을 것 같아요. 그런데 그때는 그게 너무 화가 나서 양가감정에 휩싸인 거죠. 그리고 가슴이 꽉 막힐 만큼 놀랐지만, 그런 참사가 벌어졌다는 것 자체가 너무 충격적이니까 제 감정은 묻어두고 '왜 이렇게 된 거지?' '이게 무슨 일이지?' 하는 생각에만 사로잡혔어요. 신체가 너무 굳으면 통증을 못 느끼잖아요. 그런 것처럼 마음도 충격으로 굳었나 봐요. 슬픈 건지도 모르겠고, 눈 감으면 그날 제 옆으로 지나가던 들것이 매일 보였어요. 잠을 자려고 하면 그 장면이 확 몰려와서 바로 깨고. 결국 2주 동안 맨날 밤을 샜어요. 

참사 직후에 그런 시선이 많았잖아요. "놀러 갔다 죽은 건데 왜 책임을 묻냐." 제 마음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면, "자기 일 아니라고 막말하네?" 하며 욱하고 올라오지만 참아요. 그다음에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놀게 좀 냅둬라." 이태원에서 지옥의 파티를 하는 것도 아니고, 핼러윈 가는 게 대단한 거 아니잖아요. 주민으로서 6년 동안 본 사람들은 사진 찍고 재밌게 즐기러 왔을 뿐인데, 왜 이렇게 죄악시할까요? '왜 이렇게 노는 거를 못 견뎌 하지? 놀면 안 돼?' 이런 생각을 했어요.

다른 주민들도 비슷할 거예요. 오가며 핼러윈에 자연스럽게 스며드니까요. 특별한 사람들이 핼러윈에 참여하는 게 아니에요. 모두 내 친구나 내 딸, 내 아들과 닮은 평범한 사람들이라는 걸 주민들은 알아요. 저희 부모님만 해도 그렇거든요.

그리고 요즘에는 당근마켓 앱이 있잖아요. 동네 생활 카테고리에서 그런 글을 많이 봤어요. '나 슬프다', '미안하다', '왜 이렇게 된 거냐', '화난다', '너무 힘든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막막하다' 그래서 댓글에 "저는 상담 받고 있는데 효과 좋아요" 이런 거 달았어요. 온라인 공간이지만, 동네 주민이라 생각하면서 상호작용이 있지 않았나 해요. 그런데 다들 드러내고 말하기 힘들어하는 것 같아요. 참사 당시에는 너무 너무 가슴 아픈 일이라서 그랬다면, 지금은 '오래 지난 일인데 왜 아직도 그러냐'라는 시선이 있어서요.

2주 가까이 집에서 안 나갔어요. 한두 번 밤에 가족들과 산책을 나간 적 있어요. 저는 그 골목을 마주하기 싫었는데, 어쩔 수 없이 그 옆을 지나야 했어요. 그때 곁눈질로 추모 공간이 있는 걸 보았고, 집 밖으로 나온 뒤부터는 분향소에 거의 매일 갔어요. 너무 늦게 가서 미안했어요. 그다음에는 기회가 되어서 녹사평 분향소에서 지킴이 봉사도 하고 159배를 같이 하기도 했고요. 그날, 유가족분들과 얘기 많이 했어요. 특히 두 분이 자녀 이야기를 자세히 들려주셔서 마치 제 친구 같이 느껴졌어요.

스스로 덜어낼까 봐 두려워요

전공이 미술 치료라 심리 실습 수업에도 참여하는데요. 참사를 생각하거나 그 비슷한 말을 들으면 쿵! 하고 숨이 안 쉬어지더라고요. 그런데 그게 기분 나쁘진 않아요.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는데, 그런 신체 증상이 참사를 잊지 않게 하는 것 같아요. 저는 이 참사의 무게를 스스로 덜어낼까 봐 두려워요. 그때 왜 심폐소생술을 하러 안 갔는지 죄책감이 들고, 만약 차를 타지 않고 걸어갔다면 저도 위험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다들 제 또래인데 미안해요. 저는 살아있으니까요. 그래서 심장이 쿵! 할 때마다 정신을 차리게 되죠. 

공론화되지 않는 게 가장 답답해요. 왜 이렇게 빨리 잊힐까요? 1년도 안 됐잖아요. 다들 가슴에 담아두고 사는 건지 아니면 잊고 싶은 건지 아니면 말할 필요가 없다고 여기는 건지. 물론 그 슬픔을 떠안고 일상을 살기란 어렵겠죠. 하지만 기억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이제 인터넷에서 굳이 찾지 않으면 소식을 잘 알 수 없어요. 너무 빨리 잊힌다는 게 답답하고 가슴이 미어져요.

세월호도 그렇고 그동안 너무 많은 참사를 겪어 왔는데, 달라진 게 없다고 생각해요. 어이없고 황당해요. 어떻게 이렇게 똑같을까요?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는 것도, 잊지 말자는 것도, 기억해 달라는 것도 반복되는 것 같아요. 왜 피해자들이 '잊지 말아 주세요'라고 간절히 호소해야 하는지. 이태원 참사에서도 같은 문구가 쓰이는 것을 보고  2014년과 달라진 게 없다고 느꼈어요. 

참사가 발생했던 그 골목이나 근처에 추모 공간이 생겼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조형적인 요소가 들어가면 좋겠네요. 사회적 재난에 대한 기록과 교육도 같이 이루어져야 하고요.

앞으로 핼러윈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고민이 많아요. 지난해 열린 추모제에는 가수 하림씨가 와서 노래를 불렀어요. 되게 좋더라고요. 저는 이태원의 문화, 그 지역이 가진 고유성을 추모제랑 연결하는 게 맞는다고 생각해요. 꼭 슬프기만 할 필요는 없으니까요. 슬픔만으로 추모제를 이끌어가면 동력이 너무 빨리 떨어지지 않을까요? 슬픔이 지난 자리에 원래 이태원이 갖고 있던 에너지가 채워졌으면, 애니메이션 <코코>*에 나온 것처럼 추모제가 진행되었으면 좋겠어요.

* 2017년 개봉한 애니메이션 영화. 멕시코의 '죽은 자들의 날(Día de Muertos)'을 배경으로 한다. 멕시코에서는 매해 10월 31일부터 11일 2일까지 세상을 떠난 이들이 가족과 친구를 만나기 위해 세상에 내려온다고 믿으며 그들을 환대하는 축제를 벌인다.

올해 핼러윈 축제에 사람들이 많이 왔으면 좋겠어요. 저도 당연히 갈 거고요. 오기로라도 참사 현장 근처에 있을 것 같아요. 이태원이 힘을 받았으면 좋겠어요. 참사 이후 눈에 띄게 폐업이 늘고 임대 공간이 많아졌어요. 그렇게 한 국면을 맞았는데, 앞으로가 더 중요하겠죠. 이태원이 참사를 어떻게 안고 갈지, 다들 고민하고 계실 거라고 생각해요. 최근에는 일부러 이태원에서 약속을 많이 잡고 있어요. 2만 원, 4만 원이라도 보탬이 되고 싶어서요.

행정 차원에서는 지역을 좀 더 알아봐 주길 바라요. 왜 아직도 모를까요? 이태원에서 어떻게 핼러윈이 시작됐는지, 청년들은 왜 굳이 이태원 핼러윈에 오는지, 그 골목에서 왜 참사가 일어날 수밖에 없었는지, 인근 가게들에 사람들이 많이 가는 이유는 무엇인지. 지역에 대해 제대로 알았으면 좋겠어요.

가장 단순한 바람으로는, 유가족 분들의 말을 경청하고 공감해 줬으면 좋겠어요. 인간 대 인간으로서 다가가고, 인간성을 회복했으면 좋겠어요. 진심으로 바라보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싶어요.

마지막으로 이태원이 예전 같았으면 좋겠어요. 서로서로 수용하고 차별과 혐오를 배제하며 해방감을 느끼는 그런 이태원의 미래가 결국 우리가 바라는 다시 놀고 싶은 이태원이 아닐까 해요.

- 인터뷰어 : 김혜영 / 인터뷰이 : 윤보영

태그:#이태원, #이태원참사, #1029이태원참사, #다시놀고싶다이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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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구에서 주민들과 마을방송을 제작하고 있습니다. 지역에 주요 현안을 콘텐츠로 제작하고 지역주민과 청소년 대상 라디오 교육을 통해 라디오방송 DJ을 양성하고 있습니다. 2012년부터 용산구에서 활동하고 있는 비영리민간단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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